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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80화 (280/670)

# 280

귀환 마교관

280화

환영 인사 따위는 없었다.

응천 분타주는 애초에 사비강의 방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와 함께 오는 신생조는 혈사련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골칫덩이들이 아닌가?

천신교 때문에 지원을 요청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천상궁에서 하필 그런 것들을 보내올 줄은 몰랐다.

“혹시 천상궁에서 본타를 향해 우회적으로 책임 추궁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응천 분타 총관 장천수(張川受)의 말에 분타주 노회군(盧懷君)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천신교와 마찰이 있었을 때, 분타의 무인 상당수가 사상을 당하지 않았던가?

이곳 실정을 자세히 모르는 천상궁에서 본다면 이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리라.

물론 사비강이 이곳으로 온 것에는 전혀 다른 사유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제멋대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비강이 방문했을 때, 노회군의 반응은 시종 냉랭했다.

물론 사비강은 그런 대접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별채를 안내받은 후 신생조원들을 부르고 조장부터 정했다.

“너희들을 이끌 조장은 맹가숙이다.”

맹가숙은 눈살을 찌푸리며 반대했지만, 어차피 사비강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한편, 그런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노회군은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구시렁거렸다.

“사비강이라는 저자… 정도맹에서는 감찰총국주였다지?”

“그렇습니다. 그가 세운 공로가 대단한 듯합니다.”

“생각보다 어리군.”

“저자가 감찰총국주가 되는 데에는 정도맹 총군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어찌 감찰총국주가 되었겠나?”

노회군이 장천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저 새파랗게 젊은 교관과 망나니들이 도무지 천신교를 토벌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저들이 이곳에 온 사유에 대해서는 알아보았나?”

“예, 알고 보니 천상궁에서 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사고라면?”

장천수가 신생조에 대한 정보를 대략이나마 전했다.

신생조와 묵귀대의 마찰, 그리고 그에 대한 징계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노회군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련주께서도 이번엔 너무하셨군. 이곳 사정을 제대로 알고 계신 건지.”

적어도 단주나 대주들이 내려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껏 보낸 게 사고를 친 신생조라니!

그렇다고 인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문제는 이대로 저들이 천신교 토벌에 실패했을 때다.

자칫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응천 분타에 물을 수도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무래도 저들을 믿을 수가 없다. 오히려 천신교의 밥이 될까 봐 걱정이야.”

“제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사비강 교관이 정도맹에서는 이름을 꽤나 알린 것 같지만, 그 역시 총군사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습니까? 괜히 저들이 섬멸당하면 천상궁에서 본타에 책임을 추궁하겠지요.”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 이대로는 불구덩이 속에 저 불나방들이 날아드는 것밖에 되지 않아.”

“해서 말인데… 차라리 저들을 보내지 않는 건 어떻습니까?”

“무슨 수로?”

장천수가 주변을 힐끔 둘러보고는 노회군에게 귓속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노회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

쉬이이잇!

적무린의 검이 허공을 날카롭게 베었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 검광의 잔상이 남았다.

굉장히 패도적이면서도 거친 검법.

마치 누구든 멋모르고 덤비면 가차 없이 베어 주겠다는 듯 살벌한 기세였다.

철컥!

적무린은 다시 검을 갈무리한 다음 기수식을 취했다.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리던 그가 다시 한 번 발검을 시도했다.

쉬이이이잇!

검이 허공을 할퀴더니 곧장 화살처럼 질주했다.

후우우웅!

기풍이 검로를 따라 거세게 불어 나갔다.

하지만 적무린은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참 부족하다.’

턱 끝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철컥.

다시 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제길!’

답답했다.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그날의 광경이 벗어나질 않았다.

바로 사비강과 만생검살이 검을 섞었던 날이다.

그날 사비강은 일격에 만생검살을 죽여 버렸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일격에 가능했을까?

모든 싸움은 첫 일격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때문에 적무린이 가장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훈련했던 것 역시 발검이다.

단 일격에 상대의 기를 꺾고 위압감을 내뿜는 것은 그의 특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차원이 달랐다.’

그날 사비강의 일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결코 일격에 만생검살을 죽이지 못했을 거다.

일격은커녕 과연 이길 수나 있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만생검살이 내뿜는 기도는 심상치가 않았다.

한데 사비강은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단 일격으로 끝내 버린 것이다.

만생검이 정말로 만 개의 파편으로 쪼개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비강이 처음부터 그러한 공격을 노렸다는 것이 무서운 부분이다.

‘도대체 그 인간은 얼마나 강한 거지?’

괜한 자괴감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어디 가서 기선제압을 하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이래서야 사비강 앞에서는 발검은커녕 손잡이에 손도 대지 못하고 끝나지 않겠나?

때마침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맹가숙이 걸어오고 있었다.

“사비강 교관이 날 조장으로 지목했소.”

“그래서?”

투덜거리는 맹가숙을 보며 적무린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맹가숙이 미간을 푹 구겼다.

“그래서긴. 난 하기 싫단 말이외다. 조장 노릇 따위는.”

“그럼 직접 말해. 여기 와서 투덜거려 봐야 달라질 건 없다.”

“조교라면 그 정도는 건의할 수 있을 것 아니오?”

맹가숙이 눈을 흘기자, 적무린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가 웃긴 거요?”

“글쎄… 맹 영감도 많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맹가숙이 미간을 팍 구겼다.

저런 표현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적무린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가 건의한다고 교관이 받아 줄 것 같나?”

“그야….”

맹가숙이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그렇다.

사비강이 받아 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자신은 여기 와서 투덜거리고 있는 건가?

적무린이 무심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맹 영감을 이렇게까지 응석받이로 만들어 버리다니. 사비강 교관은 확실히 무서운 자야.”

“응석받이…? 지금 말 다 했소…?”

맹가숙이 나직이 으르렁거리는데, 마침 저만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적무린과 맹가숙이 돌아보니, 분타주 노회군이 일단의 수하 무인들을 이끌고 사비강의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맹가숙이 이맛살을 구기고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또 뭐야?”

“뭔지 가서 확인해 보자고. 간 김에 불만이 있다면 교관께 직접 말하도록 하고.”

“크흠!”

두 사람이 사비강의 숙소로 향했다.

**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구기고는 노회군을 바라보았다.

노회군 뒤로는 일단의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예를 갖추는 듯했지만, 그들이 드러내는 기도와 은근한 투기, 딱딱한 표정 등은 결코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침 추량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분타주님께서 무슨 일로 별채….”

“소문으로만 듣던 사비강 교관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오.”

노회군은 추량을 가볍게 무시한 채 곧장 사비강을 향해 걸어가며 포권했다.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이제 와서 환영 인사를 하는 건 아닐 테고.”

“하하하. 내가 원래 좀 무뚝뚝한 성격이오. 절대로 홀대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니 오해가 있다면 푸시길 바라오.”

느닷없는 분타주의 방문에 적무린과 신생조원들도 모여들었다.

“해서 이제라도 환영 인사를 하시려고?”

“하하. 그건 아니고. 내 듣자하니 사비강 교관께서는 무인들을 지도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고 들었소. 본련으로 오기 전부터 많은 생도들을 지도했고, 또 이제는 신생조를 강하게 키워서 토벌대에 참여시킬 정도라니, 내가 어찌 존경하지 않겠소? 그래서 말인데….”

그가 뒤에 서 있는 무인들을 힐끔 보더니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은 본타의 조직 중 하나인 광풍대(狂風隊)라오. 원래 쉰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스무 명이 사상을 당하는 바람에 서른 명만 이끌고 왔소. 아시다시피 그 스무 명이 바로 천신교와 싸우면서 피해를 입은 거요.”

“그래서 할 말이 뭐요?”

사비강이 시큰둥하게 말을 내뱉자, 노회군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다면 이 녀석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셨으면 해서 말이오.”

“흐음. 거절하지.”

사비강의 대답에 노회군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는 이렇게 간단히 거절할 거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만큼 띄웠으면 들떠서라도 냉큼 승낙할 줄 알았건만.

그가 헛기침을 하고는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말고 한 수 부탁드리겠소. 이 녀석들이 워낙 답답해서 말이오. 오죽하면 천신교에게 얻어터지고 왔겠소?”

사실 말은 그리 했지만, 광풍대는 응천 분타에서 최정예에 속하는 조직이었다.

이 기회에 사비강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가볍게 무시해 버리니 조바심이 난 것이다.

마침 광풍대주 배승목(裵承牧)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포권하며 말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사 교관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본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서른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포권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다고 넘어갈 사비강도 아니었다.

“난 이미 거절했을 텐데.”

냉랭하게 말을 뱉은 사비강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서른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움직이면서 사비강의 앞을 막아서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퇴로까지 차단하면서 사실상 사비강을 에워싸서 포위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사비강과 떨어진 추량은 이들이 진법을 이용해서 사비강만 고립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승목이 다시 나섰다.

“교관께서는 본대를 기피하지 마시고 한 수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말투가 조금 달라졌다.

은근한 압박이 실린 어투.

게다가 주위를 에워싼 무인들에게서 진득한 살기마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비강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맹가숙은 분타주의 노림수를 눈치 채고는 발끈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우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고서야…!”

그가 성큼 나서려고 하는데, 적무린이 가만히 어깨를 붙들었다.

“지켜보자고.”

“조교께선 저 녀석들의 도발이 안 보이시오?”

“그러니 그 도발을 교관이 어찌 대처하는지 한 번 지켜보자고. 어차피 여기서 교관이 증명하지 못하면, 천신교 토벌은 물 건너가게 될 거야. 그럼, 영감이 조장을 맡을 일도 없을 테니까.”

“끄음.”

맹가숙이 침음을 흘리고는 어금니를 꾹 씹었다.

한편, 사비강은 주변을 서늘한 시선으로 둘러보고는 나직이 읊조리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배움의 갈망이 충만하다면, 무시할 수 없는 게 또 교관의 입장이지. 이래봬도 난 어엿한 교관이니까.”

그의 표정에 냉소가 서렸다.

“그럼, 지도를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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