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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67화 (267/670)

# 267

귀환 마교관

267화

끝없이 펼쳐진 담장만 봐도 이곳이 꽤나 부유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비강 일행은 그 정문을 지나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안채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듯 부유한 가장이라면 시종들조차도 어느 정도 거만을 떨기 마련인데, 이들은 하나 같이 예의가 바르고 무척 겸손했다.

사비강 일행이 이 낯선 곳에 들른 이유는 조신량이 정강산을 떠나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안채로 들어서자, 가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달려 나오면서 반갑게 조신량을 맞이했다.

“아이고, 영감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내려오셨습니까? 한데 이분들은…?”

“내 손님들일세.”

“그렇군요. 영감님의 손객이면 제게도 마찬가지지요. 안으로 드시지요.”

중년의 사내는 곧장 지객당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는 값비싼 차를 내오도록 지시하고는 사비강 일행에게 정중히 본인을 소개했다.

“어서 오십시오. 노대영(盧大英)이라고 합니다.”

그의 소개를 들은 사비강은 흠칫거리고는 노대영을 바라보았다.

“방금 성함이 노대영이라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혹시 절 아시는지요?”

사비강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처음 뵙소.”

사실이었다.

사비강은 지금껏 노대영을 만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다.

노대영.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그는 마계가 침공했을 때,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무림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인물이었다.

강호인이 아니면서도 강호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꼭 한 번쯤은 보고 싶은 자였는데, 이렇게 인연이 닿게 될 줄이야.

노대영은 그러고도 조신량과 함께 한참 동안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찻잔을 거의 다 비워 갈 때쯤 조신량이 굳은 표정으로 탁자 위에 커다란 상자를 올려 두었다.

노대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물었다.

“이게 뭡니까? 영감님.”

“난 이제 떠날 생각이네.”

“역시… 그러셨군요. 결국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영감님의 조각술이 어디 보통 실력입니까? 더구나 생계를 목적으로 하시는 것도 아닌데… 분명 대단한 분이실 거라고 짐작했지요.”

“조각하는 일이 아닐세.”

“아무렴 어떻습니까? 영감님은 그런 곳에서 혼자 지내시기에는 아까운 분이십니다.”

“시답잖은 소리. 이걸 자네에게 맡기려고 하네.”

노대영은 상자의 덮개를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은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애환상이었다.

“이걸 정말… 제게 주시는 겁니까?”

“말했다시피 잠시 맡길 뿐이야. 들고 다니기에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애환상을 바라보는 조신량의 눈에는 애틋함이 듬뿍 담겨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잘 보관해 주시게. 꼭 다시 찾으러 올 테니”

“물론입니다.”

노대영은 시종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사비강 일행을 배웅했다.

사비강이 그를 돌아보고는 포권했다.

“노 대인의 헌신에 감사드리오.”

“하하, 헌신이라니요.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사비강은 의미 모를 미소만 지어 보이고는 돌아섰다.

사실 그가 말한 헌신이란,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말한 것이었다.

그렇게 조신량은 정강산을 완전히 떠났다.

**

정강산을 떠난 지 사흘째가 되는 날, 큰 비가 내렸다.

때 아닌 장대비로 사비강 일행은 산골 마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개울물이 불어나고 거송이 쓰러지는 등 길이 막히면서 이동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경신법을 사용한다면 그 정도 난관은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조신량과 함께 이동해야 했기에 사비강은 어쩔 수 없이 그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촌장 집에 들러 신세를 지기로 했다.

방이 부족한 관계로 두 사람씩 한방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조신량과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은 바로 추량이었다.

그렇잖아도 조신량에게 궁금한 게 많았던 추량은 그날 밤 쌓아 두었던 질문을 모조리 꺼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 애환상이라는 건 뭡니까?”

“알 것 없다.”

“대장장이 일을 하시면서 내공은 어떻게 익히신 겁니까?”

“몰라도 돼.”

“왜 갑자기 대장장이 일을 그만 두신 겁니까? 그렇게 재주가 좋으신데요.”

“내 맘이지.”

“만생검은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시끄러워.”

“지금 우리가 만생검을 부러뜨리러 가는 게 맞습니까?”

“아, 이것아! 그렇게 궁금하면 네 사부한테 가서 물어보든가!”

결국 참지 못한 조신량이 이불을 박차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가 귀를 후비며 으르렁거렸다.

“거참, 쫑알쫑알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한 번만 더 떠들면 바깥으로 내쫓겠다!”

“하아, 영감님은 정말 춘대래의 지존입니다.”

“춘… 뭐?”

“춘대래요. 겨울처럼 차갑게 굴면서 상대가 봄처럼 다가오길 기다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우리 사부님이 매 국주님께 붙여 준 별호지요.”

“춘대래… 큭, 하하하!”

뭐가 그리 웃긴지 조신량이 고개를 꺾어 들고는 한참이나 웃어젖혔다.

잠시 후 그가 차분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춘대래. 그래, 그런 놈이 또 있었지.”

자조 섞인 그의 웃음을 보며 추량이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얼른 물었다.

“그게 누굽니까?”

“언제나 내게 까칠하게 굴던 녀석. 하지만 속정만큼은 깊은 녀석이었다.”

**

“그러지 말고 잘 좀 알려줘 봐. 넌 너무 까칠해.”

젊은 조신량의 말에 동생 조신우(曺信遇)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형님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니까 그런 거 아니우.”

“허참. 난 너처럼 무공을 정식으로 익힌 적이 없지 않느냐?”

“알겠수다. 아무튼 지금은 운기조식에나 집중하라고요. 집중!”

조신우가 따끔하게 질책하는 바람에 조신량이 얼른 눈을 감고 내공을 운기하는 데에 집중했다.

조신량이 운기조식을 해온 것은 약관이 넘어설 무렵부터였다.

동생 조신우가 자신에게 어느 날 이런 말을 한 것이 계기였다.

“형님. 형님도 혹시 공력을 이용해서 무기를 만들면 더 좋은 걸 만들 수 있지 않겠소?”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기껏 내공심법을 익혀서 대장간 일을 하는데 쏟아 붓는다고 하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리라.

한데 점점 욕심이 생겼다.

어려서부터 동생을 먹여 살리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대장간 일인데, 하면 할수록 이 일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더 좋은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욕심도 생겼다.

아니, 그에게 있어서는 무기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무기로 관아의 병사들이 도적들을 때려잡는 것을 보면 묘한 쾌감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말했다.

“형님은 사람을 살리는 검을 만드는 거요.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시오.”

그 말 한 마디가 어찌나 힘이 되든지.

‘그래, 나는 사람을 살리는 검을 만든다!’

대장간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동생을 무관에 등록시킨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조신우 역시 형을 끔찍이도 생각하는지라 틈만 나면 내공심법을 가르쳐 주었다.

본인의 무공 수련에 지장이 생길 텐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신우는 늘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고로 형이 잘 되어야 아우가 잘 되는 법이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동생 조신우에게 배운 내공은 확실히 대장간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일반 표사들도 흔히 익히는 삼류 내공심법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조신우가 위험을 무릅쓰고 무관의 비기인 내공심법까지 남몰래 알려 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형의 성취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것.

그렇게 타고난 재능에다가 내공까지 적절히 섞다 보니 조신량의 제조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러다 보니 정마대전이 한창 발발할 때도 명문 정파는 그가 만든 무기를 대거 사들이곤 했다.

나중에는 익힌 내공심법을 좀 더 발전시켜서 대장장이로서 더욱 적합한 방식으로 운기하게 됐다.

그야말로 타고난 장인의 기질이 있었던 것.

이렇듯 솜씨가 워낙 좋다 보니 무인들 사이에서는 꽤나 명성을 알리게 되었고, ‘연금신수’라는 별호까지 얻게 된 것이다.

조신량은 낯뜨거워하면서도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형을 극진히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인지 조신우는 무공으로 대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운이 좋은 것인지 원치 않은 생사비무에서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때 그는 형이 만들어 준 검이 훌륭해서 살 수 있었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했다.

조신량 역시 아우를 위해서 최대한 좋은 재료로 무기를 만들어 주곤 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장간으로 방립(方笠)을 깊이 눌러 쓴 사내가 찾아왔다.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다.

그는 음침한 시선으로 조신량을 보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연금신수요?”

“뭐,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곤 합디다.”

조신량은 괜히 낯이 뜨거워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꾸했다.

방립 아래의 남자 입매가 피식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호인들을 대하면서 이런 적은 수도 없이 많았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나같이 자신을 비웃다가도, 결국 무기를 만들어 건네면 엎드려 절이라도 할 기세였기 때문에.

방립의 사내가 전표 한 장을 작업대 위에 척 올려 두었다.

전표를 확인한 조신량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이건…?”

무려 십만 냥!

지금까지 이렇게 큰돈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명검 하나 만들어 주시오.”

“언, 언제까지 말이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소.”

“한 달은 걸릴 거요.”

“그 정도면 충분하오. 완성이 되면 그만큼의 금액을 더 드리지.”

말을 마친 방립의 사내는 그렇게 돌아갔다.

그날 조신량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십만 냥짜리 전표를 보고 또 보았다.

살아생전에 이처럼 큰돈을 한 번에 받아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완성하면 이십만 냥. 그 돈이면… 신우에게도 절세의 명검을 만들어 줄 수 있겠구나.’

왠지 분위기가 어두운 사람이었지만 그게 대수랴.

이십만 냥이면 동생에게 아주 좋은 명검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자신 때문에 무공을 대성하지 못한 동생.

조신량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한 달을 밤낮없이 제련한 결과 마침내 명검이라 할 만한 걸 만들어냈다.

방립의 사내도 무척 흡족한 듯했다.

“훌륭하군. 한데 이건 뭐요?”

그가 검신을 가리켜 물었다.

그곳에 ‘만생검’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애초에 사람을 살리는 검을 만드는 게 목표였소. 그 검을 부디 좋은 곳에 사용하여 만인의 목숨을 살리라는 뜻에서 새기게 됐소.”

“훗, 만인의 목숨이라. 뭐, 좋소.”

방립의 사내는 어딘지 조소를 지어 보이더니 더 이상은 말하지 않고 십만 냥 전표를 두고는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신량은 이십만 냥 전표를 눈앞에 두고도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이십만 냥이라니!

그는 곧바로 조신우를 불러서 자랑했다.

“내가 이십만 냥을 받았다! 곧 너에게 절세 명검을 한 자루 만들어 주마!”

“거참, 그 돈으로 형님 맛있는 거나 사드슈! 아니면 그 검을 만들어 더 비싸게 팔아먹거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신우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신량은 들뜬 마음으로 이십만 냥을 투자해서 천하의 명검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두 달이 흘렀을 때였다.

명검이 완성되기까지는 대략 사흘 정도가 남아 있었다.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흘 후는 동생 조신우의 생일이기도 했다.

‘녀석이 생일 선물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군.’

그런데 잠시 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그의 아우, 조신우가 죽게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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