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귀환 마교관
266화
사흘 후 사비강은 다시 조신량을 찾아왔다.
초겨울의 날씨였기에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도, 조신량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작업은 이미 다 끝난 것인지 그는 대장간 앞에 의자를 하나 두고 앉아서 쉬는 중이었다.
“작업은 끝났소?”
사비강의 질문에 조신량이 고개를 들고는 힐끔 보았다.
“아아, 왔는가?”
“우리가 오는 줄도 모를 정도로 애썼나보군.”
“그렇지. 하얗게 불태웠네.”
“모처럼 망치와 모루를 잡아 보니 어땠소?”
조신량의 입가에 아주 잠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곧 냉랭한 표정으로 툭 쏘아붙이듯 대꾸했다.
“됐고. 저기 만들어 둔 거나 찾아가라고 하게.”
사비강이 말없이 피식 웃었다.
마침 유송령이 얼른 다가와서 물었다.
“균형이 맞춰진 건가요?”
“내가 손대면 안 될 건 없다.”
굉장히 거만한 말투였지만, 유송령은 따지지 않았다.
저 까칠한 교관이 인정할 정도라면 분명 뭔가 있을 테니까.
“어떻게 균형을 맞춘 거죠? 글씨를 매운 건가요?”
“도대체 저 멍청한 머리로 어떻게 무공 구결을 외우는 거지?”
조신량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자, 유송령이 도끼눈을 치뜨며 소리쳤다.
“이 망할 영감탱이! 네가 맞춰 준 균형 있는 칼자루로 목을 치고 말 테다! 당장 목 씻고 기다… 읍! 읍!”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며 날뛰던 유송령은 추량의 손에 입이 막혀서 알 수 없는 소리만 지르다가 가까스로 진정을 되찾아 갔다.
조신량은 그러는 동안에도 그저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석탄강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건 어딨소?”
“흥! 요즘 젊은 것들은 하나 같이 싸가지가 없다니까. 맡겨 놨냐?”
석탄강은 이마에 또 한 번 핏대가 서는 걸 느꼈지만, 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영감이 날 위해 만들어 준 건 고맙소. 하지만 정말 내게 어울리는 무기인지 아닌지는 직접 잡아 봐야겠지.”
“클클. 한 마디로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를 잘도 돌려서 말하는군. 잡아 보고 절이나 하지 마라. 너희 같은 사파 놈들은 역겨우니까.”
“뭐요?”
결국 석탄강도 미간을 팍 구기고 말았다.
이쯤 되자 다시 한 번 사비강이 나섰다.
“자자, 가서 잡아 보기나 하라고.”
결국 석탄강이 분을 눌러 참고는 성큼성큼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에는 유송령의 거신도가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건가…?’
상자의 덮개를 열어 본 석탄강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뜻밖에도 시커먼 낫 두 자루였다.
한데 두 자루의 낫이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도 낫을 만든 것과 같은 재질로 이루어진 듯했다.
차르르르.
무심히 두 자루의 낫을 든 석탄강은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충격에 휩싸였다.
“아…!”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사비강이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그리고 저 성깔 더러운 영감이 왜 그런 악담을 한 것인지.
아니, 그건 악담이 아니다.
이제 보니 덕담이다.
낫질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이런 뜻이었을 줄이야.
심장이 뛰었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석탄강이 얼른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탄강…?”
그가 뜻밖에도 낫 두 자루를 들고 나오자 유송령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데 석탄강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져 있었다.
다음 순간,
차르르르르륵!
낫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차르르르! 차르르르!
두 자루의 낫이 이리저리 허공을 누비며 설쳐댔다.
섬뜩한 예기가 사방으로 뿌려지고, 날카로운 기풍이 위협적으로 공간을 갈랐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태어나서 처음 낫을 잡아 본 자 같지가 않았다.
그만큼 사흑공은 사슬낫과 궁합이 잘 맞았다.
석탄강은 아주 어렸을 때, 사흑공을 전수해 준 부모를 여의는 바람에 몰랐을 뿐이다.
사흑공은 원래 두 자루의 낫을 무기로 사용할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을.
한데 그 두 자루의 낫을 사슬로 잇는다는 것은 순전히 조신량의 생각이었다.
그는 석탄강을 본 순간 자신의 직감을 확신했다.
물론, 그는 내공을 이용해서 금속을 다스리는 이 시대의 유일무이한 대장장이였다.
하지만 싸우기 위한 무공은 전혀 할 줄 모른다.
다만, 육십 년이 넘도록 대장간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을 척 보기만 해도 그가 잡고 있어야 할 무기가 딱 보이는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그랬다.
한 마디로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 대장장이는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천민 신분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한참이나 허공에 수를 놓던 석탄강은 땀을 흠뻑 빼내고 나서야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단연코 처음이었다.
물론 생사현관을 타통했을 때, 그가 느낀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데 지금은 또 다른 기분이다.
그동안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왜 무기를 바꿔 보겠다는 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을까?
그의 시선이 한쪽에서 멍하니 지켜보는 유송령에게 향했다.
그래, 어쩌면 그 환도를 사준 게 바로 그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자신에게 처음으로 환도를 사준 유송령.
그녀는 환도가 낡고 닳을 때마다 새것으로 사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난 네가 환도를 휘두르면 정말 멋있을 것 같아.”
거신도를 사용하는 그녀는 가늘고 유려한 곡선을 지닌 환도에 대한 모종의 환상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의심 없이 그냥 칼을 휘둘렀다.
한데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사흑공은 명백한 사파의 무공.
그 중에서도 낫이라니.
무공명과 무기에서부터 진한 사파의 냄새가 풍긴다.
그래서 왠지 더 마음에 든다.
석탄강이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조신량에게 절을 올리려는 순간,
“하지 말라고 했지? 하지 마. 안 받아.”
“이유가 뭡니까?”
“말했잖아. 너희 사파 놈들이 그렇게 뒤끝 없고 멋있는 척하는 게 용납이 안 돼.”
“영감님은 정파 무인들에게 무기를 만들어 주던 분입니까?”
“…알 것 없다.”
조신량이 냉랭하게 대꾸하자 석탄강도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그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귀한 것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생 아끼겠습니다.”
“멍청하긴. 아낄 게 따로 있지. 그런 걸 아끼다간 대신 모가지를 대가로 내놓게 되는 거야. 마구 쓰라고.”
말은 차갑게 내뱉지만, 실상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안 석탄강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유송령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신량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던 태도를 싹 바꿨다.
석탄강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지켜보고 나니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어르신, 이제 보니 정말 대단한 분이셨군요?”
“네년은 갑자기 왜 그러냐? 고뿔이라도 걸린 거냐? 코가 막혔으면 풀어라.”
“아이참, 어르신도. 아직도 제가 한 말에 화나신 거예요?”
“어어, 이러니까 더 무섭네. 징그러우니까 어서 네 무기나 챙겨 가라!”
“호호, 알겠어요. 고마워요오.”
유송령이 한쪽 눈을 찡긋 하고는 신이 난 듯 대장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그곳에는 커다란 거신도가 천으로 둘둘 쌓인 채 놓여 있었다.
천으로 쌓여 있었지만 그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거신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송령이 거신도를 들고는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가려진 천 때문에 아직은 뭐가 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달라졌을 거야. 저 영감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강아에게 만들어 준 사슬낫을 보면 실력 하나는 틀림없어 보이니까.’
사비강이 말하길 거신도는 애초에 무게 중심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즉, 처음부터 완벽에 가까운 무기인 만큼 더 이상 손 볼 곳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송령이 천을 풀기 전에 다시 물었다.
“글귀를 매워 둔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균형을 맞추신 거죠?”
“쯧쯧. 무식하긴. 애초에 그 거신도는 너에게 무거운 편이었다. 한데 검신에 글귀까지 새겨 놓는 바람에 균형도 엉망이 되고 말았지. 그럼 방법이 뭐가 있겠느냐?”
“아…!”
“그래, 글귀를 손잡이 쪽에도 새겨 넣음으로써 균형도 맞추고 무게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는 게지. 말하자면 네년에게 좀 더 편하게 맞춰진 거다.”
“그렇구나. 글귀를 더 새겨 넣어서 균형을 맞춘 거구나.”
유송령은 기대 가득한 눈으로 거신도를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단은 그 무게 균형을 온전하게 느끼기 위해서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오로지 손의 촉각을 최대한 이끌기 위해서.
눈을 감은 그녀가 천천히 천을 풀어내고는 자세를 잡았다.
다음 순간,
“하아앗!”
날카로운 기합성과 함께 거신도가 허공을 베었다.
쉬이이익! 쉭쉭쉭! 쉬이익!
유송령은 거신도를 들고 현란하게 춤을 추었다.
‘확실히 가벼워! 겨우 글귀를 조금 더 새겨 넣고 균형을 맞춘 것만으로 이렇게 다른 칼이 될 수가 있나?’
확실히 자신은 무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를 줄이야!
눈을 감은 채 한참이나 춤사위를 벌이던 그녀가 어느 순간 눈을 떴다.
거신도가 날고 있었다.
허공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세차게 휘몰아쳐 가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기분만큼은 초절정의 영역에 들어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허공을 휘젓고 나서야 유송령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고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거신도의 도신을 바라보았다.
“달라졌어요.”
“커험. 달라진 게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된 것일 뿐이다.”
“감사해요, 어르신!”
“인사는 필요 없다.”
“그나저나 새로 새겨 넣은 글귀가 뭐죠?”
유송령이 들뜬 마음으로 손잡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신에서부터 이어지는 글귀를 한 번에 읽으면 다음과 같았다.
건드리면 죽는다.
…
안 죽을 수도 있고.
유송령의 이마에 핏대가 파팟 도드라졌다.
그녀가 뺨을 씰룩였다.
“이, 이게… 대체…”
“커흠. 정확히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 글자 밖에 없었다. 애초에 왜 그런 글자를 새겨 넣어서… 쯧쯧. 다 네가 처음 새겨 넣은 글자 때문이라고 생각….”
“야이, 영감탱아! 그럼 그냥 그림을 그려 넣든지! 이게 뭔 개소리야!”
“뭐, 뭣? 영감탱? 저딴 글귀 아래에 느닷없이 그림이 어울리기나 하더냐! 애초에 문맥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
“문맥? 이 영감탱아! 나한테 문맥적으로 한 번 얻어맞아 보자! 지금이 문맥적으로도 딱 얻어맞기 좋은 때 같으니!”
“이 미친 년 보게! 언제는 고뿔 걸린 소리로 고맙다고 나불거리더니 이제는 아주 눈깔이 돌아서 지랄 발광하는 것 좀 보게!”
“닥쳐! 목 씻고 기다려! 영감탱이! 당장 내가 문맥적이고 균형 잘 맞은 이 칼로 썰어 줄 테니!”
대장간 앞에서 솟구친 그녀의 목소리는 태산도 떠나갈 듯 쩌렁쩌렁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