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65화 (265/670)

# 265

귀환 마교관

265화

조신량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만생검.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이름.

자신이 붙여 준 이름이기도 하다.

조신량의 인생에서 최고의 검이자 최악의 검.

조신량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느냐고 묻는 것이다.”

“뭐, 소문이라는 건 어떻게든 떠돌게 마련이니까.”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만생검에 대해서는 전생에 조신량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생이 어쩌고저쩌고 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할 게 뻔하므로 대충 둘러댄 것이다.

있을 법한 일이었기에 조신량은 더 따지지 않고 돌아섰다.

“꺼지게나.”

“영감의 솜씨가 필요하오.”

“일 없네. 나는 더 이상 철을 만지지 않아.”

“만지게 될 거요. 싫든 좋든.”

그것만은 사실이다.

마계의 침공이 시작된 후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오게 되니까.

하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조신량이 그런 말 한 마디에 움직일 리가 없었다.

“그건 자네 생각이지. 썩 꺼지게!”

“나와 같이 갑시다.”

“뭐?”

조신량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뭘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가자고?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강호가 위험하오. 아니, 중원이 위험하오.”

“클클클. 어디 강호가 위험하지 않은 적이 있었더냐? 오늘만 해도 굶어 죽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못해도 수백 명은 될 거다. 그러니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고….”

“사람을 살리는 검. 그것이 영감의 신념 아니었….”

“글쎄, 개소리 하지 말고 썩 꺼지라니까!”

와장창!

조신량이 끝내는 손에 들고 있던 조각상을 집어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애써 조각했던 괭이 농부상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가 연신 씨근거리며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람을 살리는 검? 하하! 사람을 살리는 검이라고 했느냐?”

부우욱!

조신량이 거칠게 옷깃을 찢어내고는 깡마른 가슴을 훤히 드러냈다.

그러더니 사비강 앞에서 큰 대자로 팔을 벌리고 선 채 소리쳤다.

“자! 어디 그 검으로 내 심장을 찌르고 살려 보아라! 할 수 있으면 해보란 말이다!”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그가 가슴을 탕탕 치며 소리쳤다.

“해보란 말이다! 어서! 사람을 살리는 검? 웃기고 자빠졌네. 이 세상에 그딴 검이 어디 있단 말이냐? 결국 인간이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칼을 가는 법이지. 더 이상 내게 어쭙잖은 소리 하지 말고 썩 꺼져라! 그게 아니라면 네놈 말대로 날 죽였다가 어디 한 번 살려 보든지!”

“흐음.”

사비강이 침음을 흘리고는 조신량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신량의 표정에서 격동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읽혔다.

스르르릉.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고는 검봉을 조신량의 눈앞으로 척 내밀었다.

“이 검으로 말이오?”

“……!”

조신량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는 눈앞에 내밀어진 베르타스의 검신을 홀린 듯이 훑어보았다.

‘도대체 이 기운은…!’

결코 정순한 기운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기(魔氣)도 아니고 사기(邪氣)도 아니다.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낯선 감각이 그의 온몸을 휘어 감는다.

굳이 따지면 마기에 더 가까운 듯한데….

‘대체 이게 뭐지?’

사실 베르타스의 온전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면 마계에서 만들어진 만큼 마기와 가장 흡사하리라.

하지만 사비강이 사용하면서 그 기운이 오묘하게 섞여 버린 것이다.

본래 정순한 기운을 바탕으로 성장한 사비강의 선천지기와 추후 익혔던 사파의 무공들, 그리고 마계에서 익힌 마나.

이러한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오묘한 기운을 풍기게 된 것이다.

일전에 공청석유를 복용했을 때, 머리 위에 나타난 그 형상들도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또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 검신이 어떤 금속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엄청난 검이라는 것은 첫눈에 알아챘다.

‘한데 대체 뭐로 만든 거지?’

만년한철(萬年寒鐵)은 아니다.

냉기에 가까운 속성을 보이는 것 같다가도 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뿜어지는 기운이 시시때때로 변하니 참으로 오묘한 물건이었다.

그가 한참이나 넋을 놓고 생각에 빠져 있자,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마음에 드시오?”

“이게… 어디서 난 건가?”

“길에서 주웠소.”

“주워? 이걸…?”

뭐, 굳이 따지자면 거짓말은 아니었기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조신량이 얼른 돌아섰다.

“그 검이 무엇이든, 어떻게 생긴 것이든 내 알 바는 아니지. 다들 돌아가게. 나는 대장간 일을 손에서 놓은 지가 십 년도 넘었네.”

까칠하던 말투가 어느 정도 바뀌었다.

사비강은 그의 태도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어차피 영감은 이 바닥을 뜨지 못할 거요. 그건 운명과도 같은 것. 영감 스스로도 알지 않소. 조금 전에도 느꼈듯이.”

‘운명이라. 그래, 그렇게 느낀 적도 있었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조신량이 고개를 저었다.

“일 없다.”

그가 다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데,

휙!

뒤통수에서 뭔가가 날아오는 것을 느낀 그가 얼른 돌아서며 그것을 낚아챘다.

탁!

그가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망치였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보았더라면 깜짝 놀랄만한 모습이었다.

깡말라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 갑자기 휙 돌아서더니 날아드는 망치를 낚아챌 줄이야.

그것도 노인의 팔뚝보다도 훨씬 크고 육중해 보이는 망치를.

하지만 사비강은 그가 반사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대장장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내공을 다스릴 줄 아는 자.

기껏 내공까지 익히고서 대장간 일을 한다는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조신량에게는 그보다 의미 있는 일도 없었다.

물론, 십여 년 전까지.

“이게 무슨 짓…!”

조신량이 버럭 소리치다 말고 흠칫거리며 손에 들린 망치를 보았다.

‘이, 이건…!’

뭔지 모르겠다.

한데 느껴진다.

알 수 없는 기운과 힘이!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장장 육십 년이 넘도록 대장간 일을 해왔다.

척 보면 딱이고, 잡아 보면 끝이다.

‘보통 물건이 아니군.’

망치로 쓰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대단한 금속이다.

의아한 것은 이런 금속을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조신량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망치의 머리 부분을 어루만졌다.

“대단하군…!”

만약 이 녀석이라면 만년한철도 짧은 시간에 제련할 수 있으리라.

절로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자신이 더욱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은 결코 쇠를 두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뼈에 그 각오를 새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다니!

그 격동하는 마음에 사비강은 다시 기름을 부었다.

그가 하겔의 주머니에서 얇고 기다란 금속 하나를 꺼내 던진 것이다.

철커덕!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것은 시커먼 철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은 철이 아니었다.

역시 처음 보는 금속이다.

“‘쿠일’이라는 금속이오. 아마 처음 봤을 거요.”

“쿠일…?”

“색이 시커멓다는 게 특징인데 뭐, 백련정강(百鍊精鋼) 보다는 강도가 세다고 보면 될 거요.”

“그렇겠군.”

“역시 한눈에 알아보시는군.”

확실히 마음이 격동하고 있었다.

대장장이에게는 신병이기라고 할 만한 기묘한 망치와 백련정강보다 구하기 힘든 금속까지.

사비강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마지막 미끼를 던졌다.

“나를 돕는다면.”

“돕는다면?”

“만생검을 부러뜨려 주겠소.”

“……!”

조신량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가 희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 맹세할 수 있나?”

“맹세하오.”

“언제까지 가능하겠나?”

“돌아가는 길에 할 생각이오.”

“끄음.”

그가 침음을 흘리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비강은 가만히 기다렸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

나머지 결정은 그에게 맡겨야 한다.

지금은 더 이야기를 꺼내 봤자, 오히려 혼란을 줄 뿐이라고 판단했다.

한참 후에야 조신량이 답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

“얼마나 걸리겠소?”

“그리 길게 걸리진 않을 걸세. 내일 이 시간쯤에 다시 찾아오게나.”

“좋소.”

사비강이 몸을 돌리자 조신량이 얼른 불렀다.

“이걸 가져가야 하지 않겠나?”

바슈크의 해머와 쿠일 금속을 가리킨 것이다.

사비강이 슬쩍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건 맡겨 두겠소.”

멀어져 가는 사비강을 보며 조신량은 내심 한숨을 쉬고는 손에 들린 바슈크의 해머를 보았다.

‘영악한 자로다.’

**

다음날, 사비강은 같은 시각 조신량을 찾아왔다.

조신량은 대장간을 서성거리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결정은 내리셨소?”

사비강의 질문에 조신량이 대뜸 손을 내밀었다.

“이리 주게.”

“뭘 말이오?”

“내게 맡길 검 말일세.”

“여기서 맡기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서….”

“잔말 말고 주게. 난 거슬리는 걸 계속 들고 다닐 만큼 성질이 좋지 못해.”

사비강이 피식 웃고는 거신도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환도는 석탄강에게 돌려주었다.

조신량이 거신도를 뽑아 들더니 다짜고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도대체 이렇게 좋은 칼에다가 누가 이런 멍청한 짓을 한 거야!”

“여기 그 멍청한 짓을 한 사람이오.”

사비강이 유송령을 가리키자, 그녀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뭐, 겨우 글자 몇 개 새겼다고 그리 될 줄 알았겠어요?”

“멍청하긴! 글자 몇 개가 장난으로 보이느냐?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있지 않느냐!”

“이봐요, 영감님. 멍청하다니요. 우리 아버지도 생전에 나한테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겠지! 그저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겠지! 그러니 딸년이 저리 멍청해진 거지.”

“뭐야? 영감! 말 다했어? 그 멍청한 칼에 목이 날아가고 싶은 거냐! 필요 없으니까 내 칼…!”

고래고래 고함을 내지르던 유송령은 석탄강이 슬쩍 나서며 제지하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조신량이 혀를 찼다.

“생각보다 훨씬 멍청한 년이군. 은인으로 모셔도 모자랄 판에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 넌 저 싸가지 없는 교관 덕에 횡재한 줄 알아라.”

싸가지 없다는 말에 사비강이 움찔 했지만 더 따지지는 않았다.

조신량의 독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석탄강을 힐끔 보더니 또 다시 혀를 끌끌 찼다.

“환도라니… 기가 막히는군.”

“내 환도가 어때서 그러시오?”

“자네 독특한 무공을 익혔군.”

“사흑공이라는 것이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익혔던 거라….”

“됐다. 네 과거 이야기나 듣자고 물어본 게 아니다.”

우직한 석탄강 역시 연이어 좋지 않은 소리를 듣자 이마에 슬쩍 핏대가 섰다.

하지만 그가 꾹 눌러 참으며 물었다.

“내 환도에 문제가 있소?”

그렇잖아도 얼마 전 사비강이 자신에게는 환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심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조신량이 피식 비웃듯 말했다.

“낫질이나 해야 할 놈이 칼을 차고 다니니 문제가 아니겠느냐?”

“뭐요?”

결국 석탄강도 발끈해서는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신량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리 무식하니 만들어 주기도 아깝군. 그렇게 살기나 줄기줄기 피워대 봐라. 그럼 넌 평생 시장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그 칼자루나 들고 살아야 할 거다. 흥!”

그러자 사비강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조신량을 달랬다.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고 녀석들 무기도 손 좀 봐 주시오. 뭐, 탄강의 것은 새로 만들어야 하는 수준이겠지만.”

“자네도 참으로 영악하군.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내게 쿠일 금속을 준 게 아니었나?”

“역시 눈치가 빠르군.”

“아무튼 사흘은 기다려야 할 걸세. 그나마도 사흘밖에 걸리지 않는 건….”

“내가 준 망치 때문이겠지.”

“…인정하지.”

사비강이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럼 사흘 후에 다시 오겠소.”

“그러든지 말든지.”

조신량은 끝까지 냉랭한 반응을 보이더니 곧 풀무질을 시작했다.

십여 년 동안 식어 있던 대장간에 뜨거운 불길이 다시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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