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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62화 (262/670)

# 262

귀환 마교관

262화

‘뭐지?’

사비강이 눈썹을 잔뜩 일그러뜨리고는 거상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결계 안으로 들어와서 벌써 이십 보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한데 거상은 아직까지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안 움직이는 거냐?’

혹시 결계가 망가졌나 싶어서 단전의 내공을 운기해 보았지만, 역시나 단 한 줌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계가 건재하다는 뜻이다.

살금… 살금…

사비강은 최대한 숨을 죽이고 걸음을 옮겼다.

베르타스가 있는 곳까지 대략 십 보 정도 남았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거상을 힐끔 보았다.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는 녀석.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 지도!’

어차피 공동 안으로 꽤나 들어선 상황.

돌아가기도 늦었다.

타앗!

사비강은 재빨리 베르타스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물론, 내공이 없는 만큼 경공을 펼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꾸드드득!

“이런 젠장!”

거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마치 사비강을 유인한 것처럼 베르타스에 가까워질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다가 움직인 것이다.

슈우우웃! 콰앙!

“크욱!”

사비강이 얼른 몸을 날려서 바닥을 굴렀다.

튀어 오른 파편이 그의 몸에 마구 날아와 부딪쳤다.

평소 같았으면 호신강기나 실드만으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타격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사비강은 달리다가 구르길 반복하면서 가까스로 베르타스를 집어 들었다.

“제기랄!”

그리고 곧장 동혈을 향해 달리려는데,

휙!

쿠웅!

놀랍게도 거상이 몸을 날리더니 동혈의 입구 쪽을 막으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 녀석… 지능이 있는 건가?’

조금 전에는 베르타스를 주울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더니, 이제는 유일한 탈출구인 동혈을 막아서다니!

“젠장, 어느 정도 균형은 맞춰야 할 것 아냐? 도대체 이딴 결계를 어떤 변태 새끼가 만든 거야?”

나직이 울분을 터뜨렸지만 헤쳐 나갈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역시 부딪치는 수밖에.

어차피 자신의 목적은 저 해머를 빼앗는 게 아니던가?

이 공동을 탈출하는 건 애초의 목적이 아니다.

“고맙다. 내 목적이 뭔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줘서.”

사비강이 입매를 히죽 치켜 올렸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객기에 가까웠다.

해머를 빼앗기는커녕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으니.

“자, 덤벼 봐! 개미 새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해서 그 모양이냐! 하하하!”

사비강이 낭랑하게 비웃자, 거상의 눈빛이 푸른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했다.

찰나,

슈우우웅!

“헛!”

사비강이 얼른 달리면서 몸을 던졌다.

콰자앙!

투타앙!

날아드는 파편을 얼른 베르타스로 쳐냈다.

하지만 공력을 보유하지 않은 채 모든 파편을 쳐내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퍼퍽! 퍽! 퍽퍽!

“크억!”

몇 개의 파편이 이마를 찢으며 날아갔고, 복부와 어깨에도 마구 날아들면서 부딪쳤다.

쿠당탕탕!

결국 사비강이 튕겨 나가면서 한참이나 바닥을 굴렀다.

“카악, 퉷!”

침을 뱉자 피가 섞여 나왔다.

하지만 입가나 훔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거상은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해머를 휘둘러 왔다.

‘제기랄! 이번에야말로 죽겠군!’

이번만큼은 피할 방도가 없었다.

사비강은 그대로 자신의 온몸을 덮쳐 오는 해머를 바라보기만 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겨우 여기서 죽으려고 회귀까지 했던가?’

이 거지 같은 상황이 분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찰나,

꽈다앙!

해머가 그대로 사비강을 찍었다.

그런데…

‘죽지 않았어?’

사비강은 바로 옆을 때린 해머를 바라보았다.

바닥과 벽에 움푹 처박힌 해머!

만약 조금만 옆으로 떨어졌어도 전신의 뼈마디가 가루가 되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빗나간 건가?’

거상을 올려다본 사비강은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너, 이 개새끼…!”

사비강을 아슬아슬하게 비껴서 내려친 거상이 푸른빛의 눈으로 빤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비스듬히 틀었다.

만약 녀석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정말이지 쓸데없을 정도로 지능이 높은 녀석이었다.

‘내 반드시 언젠간 이 결계를 만든 놈의 낯짝을 보고 싶군!’

사비강이 이를 갈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상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넌 날 지금 죽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돌대가리 새끼야.”

꾸드드득.

거상은 대답 대신 천천히 해머를 들어올렸다.

다음 순간, 그의 눈동자가 다시 붉은 빛을 뿜었다.

마치 이 순간부터는 더 이상 봐주지 않고 일격에 죽여 버리겠다는 듯.

아니나 다를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속도와 강도로 해머를 내려찍었다.

쉬이이이이잇!

“헛!”

사비강이 얼른 몸을 날리자,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해머가 떨어져 내렸다.

꽈다아앙!

투타타타타!

해머가 바닥과 벽에 깊숙이 파묻히는 것과 동시에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사비강은 검을 휘두르면서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체술을 이용해서 한두 개의 파편을 쳐내봤자, 대다수의 파편이 몸에 부딪치고 만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파편을 얻어맞으면서라도 달리는 게 낫다.

퍼퍽! 퍽!

“크읏! 제기랄!”

파편 하나가 그의 허벅지를 찢어 버리는 바람에 한쪽 무릎을 털썩 꿇으며 미끄러졌다.

거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해머를 후려쳐 왔다.

꽈앙!

만약 조금만 늦게 몸을 날렸더라면 이번에야말로 온몸이 터져 죽었으리라.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 진동이 일어났다.

우르르르릉…! 꾸르르릉!

연이은 충격에 괴형산 전체가 몸살이라도 앓는 듯 떨려 왔다.

푸스스스!

천장에서는 돌 부스러기가 마구 떨어져 내렸다.

하긴 저렇게 커다란 녀석이 온힘을 다해 망치질을 해대고 있으니, 제아무리 웅대한 자연이라도 버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콰앙! 콰다앙! 쾅쾅!

거상은 마치 망치로 쥐새끼를 때려잡는 것처럼 마구 바닥을 두드려댔다.

그러면서도 사비강이 동혈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 육중한 덩치로 막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는 결국 지쳐서 죽겠군!’

사비강이 연신 숨을 몰아쉬며 게슴츠레 뜬 눈으로 거상을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쩌적… 쩍!

동혈 벽을 따라 균열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커다란 틈이 생기면서 갈라지는 게 아닌가?

사비강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꺾어 들고 천장을 보았다.

푸스스스스…!

먼지와 함께 돌 부스러기가 연신 떨어져 내렸다.

‘제기랄, 천장이 무너지면 진짜 끝장인데…!’

그건 최악의 경우다.

천장이 무너진다고 해서 결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결계는 그 경계가 수직으로는 무한에 가깝게 형성된다.

때문에 하늘을 날더라도 이 영역에 속하면 내공이나 마나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니 천장이 무너지면 사비강은 그대로 깔려 죽을 수밖에 없다.

내공 한 줌 없는 자가 저 엄청난 바윗덩이에 깔려서 살아남을 확률은 그야말로 기적과도 가깝기에.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상은 사비강을 향해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제기랄! 층간 소음 따위는 개뿔 신경도 안 쓰는 새끼구나!”

요란하게 흔들려대는 바닥을 느끼며 사비강이 얼른 뒤돌아 달렸다.

후웅!

다음 순간 거상의 몸이 날아올랐다.

자신을 덮쳐 오는 녀석을 보며 사비강도 몸을 날렸다.

“죽을까 보냐!”

절규와 같은 외침 끝에 거상의 해머가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사비강을 스치면서 바닥을 때렸다.

꽈자아앙!

짜르르르릉! 꾸구웅!

이번에는 이상하게 파편이 튀지 않았다.

대신 알 수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크읏. 뭐, 뭐지?”

사비강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쩌저저적…! 쩌억!

바닥에서 일어난 균열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공동의 벽을 타고 올라갔다.

“니미럴, 천장이 무너지면 좆 되는 건데….”

기우였다.

쩌적…! 쩌억…!

문제는 천장이 아니었다.

‘이런 젠장! 바닥이 무너져도 마찬가지라고!’

쿠구구궁…!

저만치 공동 복판의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빌어먹을!”

사비강이 얼른 바닥을 차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거미줄처럼 퍼져 나간 균열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쿠쿠구우웅!

“으아앗!”

경신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무너져 내리는 바위를 밟아 가며 날아올랐겠지만, 지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결국 사비강은 추락하는 바위와 함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허우적거리며 옆에서 나란히 떨어지고 있었다.

첨벙!

풍덩!

천만다행히도 추락 지점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물속 깊이 빠져든 사비강은 재빨리 유영을 하며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내공을 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잠수는 불가능했기에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반면 몸이 무거운 거상은 해머를 꼭 쥔 채로 수면 아래로 깊숙하게 가라앉았다.

“푸하!”

가까스로 수면 위로 솟아오른 사비강이 얼른 물가로 헤엄을 쳐서 나왔다.

“헉, 헉, 헉…!”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운 사비강은 거칠게 숨을 쉬며 무너져 내린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쁘다고 해야 할까?

일단 목숨은 건졌는데….

‘젠장, 저 해머는 어떻게 건지지?’

숨을 쉴 필요가 없는 거상이 물속에서 죽을 리는 없다.

게다가 물속이라고 해서 결계가 발동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역시 녀석을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도구다.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적어도 저 해머가 마계의 군단으로 넘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게다가 여기서 포기한다고 해도 내공 한 줌 없으니 빠져나갈 방도도 없다.

꼼짝없이 갇혀 죽게 생긴 꼴이다.

“젠장, 머리 아프군!”

사비강이 비척거리면서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 온갖 고난을 겪었더니 삭신이 쑤셔 왔다.

잠시 호흡을 고른 사비강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동굴이었기에 사물을 제대로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결계의 영향으로 허공에 미미한 빛이 떠돌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지자 좀 더 사물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주변을 훑어보던 사비강이 어느 순간 멈칫거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건…?’

그가 눈을 질끈 감고는 다시 떴다.

‘설마 지금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사비강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지 몇 번이나 눈을 끔뻑였다.

‘맙소사…!’

눈에 보이는 것은 진짜였다.

사비강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꾸웅…! 꾸웅…!

물속에서 육중한 소음이 울려 나왔다.

동시에 바닥도 미미하게 흔들렸다.

“제길, 저놈이 또 뭘 하는 거야?”

사비강이 혀를 차고는 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결계의 파장으로 미미한 빛이 떠돌긴 했지만, 어두운 동굴에서 깊은 물속까지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그림자로 짐작컨대, 녀석이 해머로 벽을 때려 부수는 모양이었다.

‘저 미친놈… 설마 계단을 만들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정말이지 지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저 녀석이 올라오기 전에 수를 쓸 수밖에 없군!’

사비강이 휙 돌아서서는 조금 전에 보았던 그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마침내 그의 입가에 감격에 겨운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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