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귀환 마교관
261화
콰앙!
공동이 쩌렁쩌렁 울렸다.
푸스스스…!
천장에서 돌가루가 부스러져 내리면서 사비강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제길!”
모처럼 거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꾸드드드드…!
집채보다도 큰 거상(巨像)은 천천히 허리를 펴면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바닥을 구른 사비강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찰나,
슈우웃!
거상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렵하게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사비강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맞서면 죽는다!’
그가 몸을 휙 돌리고 전력 질주했다.
하지만 그의 속도는 굼벵이처럼 느렸다.
“하아아앗!”
목이 찢어져라 기합성을 터뜨리며 바닥을 차고 날았다.
콰자앙!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
사비강이 공동을 벗어나 동혈 안쪽으로 굴러들어가면서, 거상이 내리친 커다란 망치는 동혈의 천장 부위를 때리고는 바닥을 찍었다.
그 바람에 사비강은 거대한 망치에 압사당하는 비극만은 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사비강은 잃었던 내공이 온전하게 단전에 모여 있음을 확인했다.
결계를 벗어난 것이다.
“젠장!”
퍼억!
사비강이 동혈의 벽을 치자, 그의 주먹이 벽 깊숙이 파묻혀 버렸다.
후두둑.
그가 주먹을 꺼내자 돌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공만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어도…!’
난감한 상황이다.
이곳에 이런 결계가 있었을 줄은 몰랐다.
사비강이 이곳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바슈크의 해머.
중원인들은 모르겠지만, 마계에서는 무척 유명한 전설의 대장장이 바슈크가 쓰던 망치다.
괴형산에 그 바슈크의 해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슈크의 해머가 이런 지랄 맞은 결계로 지켜지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따지고 보면 이번 결계가 드래곤 하트를 구할 때보다 훨씬 까다로운 셈이었다.
“제기랄, 아무래도 생각 좀 하고 다시 들어가야겠군.”
사비강이 투덜거리고는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허기가 졌다.
내공 한 줌 없이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이리라.
인근 계곡으로 가서 물고기를 낚아채고는 구워서 먹었다.
사비강은 고기를 가시째 씹어 삼키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 녀석한테서 망치를 빼올 수 있을까?’
대충 허기를 달랜 사비강은 벌러덩 드러누워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가 처음 이곳 동혈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일이 이처럼 어렵게 돌아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척 너른 공동으로 딱 들어섰던 그 순간, 사비강은 어둠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조각상을 보고는 무척 반가웠다.
바슈크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조각상.
그 손에 들린 것이 바로 ‘바슈크의 해머’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저걸 찾으려고 내가 여기까지 온 거지!’
회심의 미소를 지은 사비강은 훌쩍 몸을 날리고는 바슈크의 어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조각상이 들고 있는 해머를 뽑아 들려는 그 순간이었다.
스아아아아.
묘한 기운이 사방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사비강은 본능적으로 결계가 발동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결계를 겪어 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엇!”
순간 당황한 사비강이 얼른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콰당!
“크읏!”
꽤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더니 무릎에 전해진 충격에 통증을 느끼고는 입술을 콱 다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정도 높이는 경공으로 얼마든지 사뿐히 내려섰을 터.
‘역시 아라콘의 결계였군! 젠장!’
아라콘의 결계.
이곳의 결계는 모든 마나와 내공을 무력화시킨다.
단, 애초에 이곳에 있었던 것은 예외다.
하나, 결계 밖에서 들어온 모든 에너지는 이곳에서 소실되고 만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그그그그그긍…!
거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무생물인 거상은 마나로 움직이게 된다.
즉, 거상은 이곳에 결계가 생기기 이전에 옮겨진 것이다.
그런 후, 결계가 만들어지면서 거상이 들고 있는 바슈크의 해머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 결계를 해지할 수 있는 자는 딱 두 명이다.
결계를 만든 술사와 마왕.
그들에게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결계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라콘의 결계만큼이나 성가신 게 없다.
사비강을 발견한 거상은 해머를 들고 거침없이 사비강을 내려쳤다.
만약 해머를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손가락에 눌린 개미새끼처럼 온몸이 터져 죽고 말 터였다.
결국 내공과 마나가 한 줌도 없는 상태로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던 사비강은 가까스로 공동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결계를 벗어나자 내공은 언제 사라졌었냐는 듯 단전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하필이면 아라콘의 결계라니.’
사비강이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동혈 쪽을 돌아보았다.
역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내공 한 줌 없는 몸으로 거상과 싸워서 바슈크의 해머를 빼앗는 것이란 기적에 가까웠다.
사비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서성거리면서 계속 생각했다.
한참 동안 궁리하던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는 동혈 입구를 바라보았다.
‘뭐, 일단은 시도해 보는 수밖에.’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도전해 볼 수밖에 없다.
이곳에 죽치고 앉아서 백날을 생각한들 묘안이 떠오를까?
애초에 저 결계는 결계를 만든 자와 마왕이 아니고서는 깰 수 없도록 만들어진 거다.
아니면 아예 결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저곳에 있었다거나.
‘그럼, 우선 유인책부터…!’
제일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저 거상을 결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사비강은 온전한 내공과 마나를 보유한 상태에서 거상과 싸울 수 있다.
거상은 그리 센 녀석이 아니다.
물론, 내공과 마나가 한 줌도 없는 일반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겠지만, 어느 정도 내공과 마나를 가진 자라면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생각대로 잘 되어야 할 텐데…!’
사비강이 심호흡을 하고는 동혈을 따라 저벅저벅 들어갔다.
마침 저만치 공동이 보였다.
이 통로가 끝나는 지점이 바로 결계가 발동되는 경계다.
사비강은 그 경계 바로 앞에 다가가 멈춰 섰다.
거상은 처음과 같은 자세로 뭔가를 내려치는 듯한 동작을 한 채 굳어 있었다.
이렇게 보아서는 절대로 움직일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발자국이라도 결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저 거상은…
‘지랄발광을 하겠지.’
사비강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그가 공동 안으로 완전히 들어서고도 십 보 정도 걸었을 때,
꾸드드드득…!
아니나 다를까, 거상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다음 순간, 거상의 두 눈에서 새파란 빛이 뿜어졌다.
녀석의 몸에 담긴 마나가 발동한다는 뜻이다.
찰나,
후우우웅!
“이런 미친…!”
놀랍게도 거상은 단숨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육중한 덩치가 우스우리만치 가볍게 날아올랐다.
사비강이 욕지거리를 뱉어 내며 뒤돌아 달렸다.
콰아아앙!
거상이 떨어지면서 해머를 내려찍었다.
튀어 오른 파편이 사비강의 등을 사정없이 때렸다.
“크억!”
옷이 찢어지고 등가죽이 벗겨졌다.
내공을 발휘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사비강은 거상 앞에서 그저 한 마리의 벌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파편에 맞은 사비강이 바닥을 구르다가 주먹으로 땅을 내려쳤다.
“젠장!”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다시 일어나 달렸다.
거상은 다시 해머를 들어 올려 사비강을 향해 내려쳤다.
간발의 차이로 사비강이 동혈 안쪽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마찬가지로 감쪽같이 사라졌던 내공이 단전에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오! 저 좆만 한 녀석을 진짜!”
사비강이 분에 겨워 소리쳤지만, 거상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었다.
거상은 사비강이 결계 밖으로 나가 버리자, 해머를 내려찍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쿵쿵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처음과 같은 자세를 잡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런 젠장!”
완벽한 실패다.
놈은 결계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덩치가 커서 동혈 안으로 기어들어올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놈은 결계 밖의 상황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것이다.
결국 저 안으로 들어가서 내공도 없이 저 괴물과 싸워야 한단 말인데….
이건 어른과 아이의 차이도 아니다.
그야말로 인간과 개미 정도의 차이랄까?
그렇다고 이대로 좌절할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저 해머를 찾아야 한다.
저게 아니면 연금신수를 설득하기도 힘들어질 것이고, 설득한다고 해도 그의 능력을 오롯이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
‘좋아, 그럼 다음 작전 개시다.’
사비강은 심호흡을 하고는 내공을 운기해 오른손에 집중했다.
우우우웅…!
베르타스에 내공이 주입되자, 녀석이 온몸을 떨며 우는 소리를 내질렀다.
쑤우우우웅!
검강이 맺혔다.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강렬한 검강이었다.
‘이기어검술은 통하지 않을 거다.’
이기어검술 역시 기로써 검을 다스리는 것인데, 검이 저 결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기가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오로지 관성(慣性)이다!’
사비강은 천천히 투검(投劍) 자세를 취했다.
우웅. 우웅. 우웅…!
베르타스가 마음의 준비라도 하듯 끊임없이 울어댔다.
만약 이 방법마저 통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난감해진다.
공동 안 어딘가에 떨어질 베르타스를 줍기 위해 다시 저 지옥 같은 곳으로 들어가야 할 테니.
하긴, 이러나저러나 들어가긴 해야겠지.
그래서 망설임은 없다.
다음 순간,
“간다!”
사비강이 일갈을 터뜨리며 온힘을 다해 베르타스를 집어던졌다.
쑤아아아앙!
엄청난 파공음을 터뜨리며 베르타스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시퍼렇게 맺혀 있던 검강은 역시나 결계를 지나치는 그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예상대로 관성은 그대로 살아남았는지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베르타스가 날았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이 사비강의 눈에는 몹시 느리게만 보였다.
‘제발…!’
사비강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마침내 베르타스가 그대로 거상의 왼손을 지나쳐 오른손에 든 해머로 향하는데,
휙!
까아앙!
언제 눈을 뜬 것인지, 거상이 베르타스를 가볍게 쳐내는 것이 아닌가?
무섭게 날아가던 베르타스는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마왕의 검이라는 명성이 무색해질 만큼 허무한 순간이었다.
사비강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또 실패라니…!”
거상은 무심한 표정으로 사비강이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같은 자세로 돌아가서는 굳어 버렸다.
허탈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이런 썅!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렇게 되면 데블 파이어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활을 쏴서 날린다고 한들, 데블 파이어가 결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나의 힘을 잃고 단순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을 테니.
모처럼 뱃속부터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가지고 싶은, 가져야 할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아닌가?
자칫하다가는 바슈크의 해머는커녕 가지고 있던 베르타스도 잃어버리게 생겼다.
‘제길! 다시 들어가는 수밖에…!’
사비강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거상을 빤히 노려보았다.
어쨌거나 다른 방법이 없다.
베르타스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들어가야만 한다.
사비강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