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49화 (249/670)

# 249

귀환 마교관

249화

“헉, 헉, 헉…!”

석탄강이 무릎을 짚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제기랄…!

단 한 번도.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된 일격을 가하지 못했다.

사비강은 마치 바람처럼 피해 다녔고, 그때마다 자신의 환도는 허공을 베어냈다.

뚝.

턱 끝에 맺힌 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비강이 석탄강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형편없군.”

“……!”

“칼을 휘두르는 자세도, 보유한 내공도, 집중력도, 호흡 조절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 그런 실력으로 내 앞에서 설치지 마라.”

차갑게 말을 뱉은 사비강이 몸을 휙 돌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크윽!”

석탄강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사비강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털썩.

기력이 다한 그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환도를 지팡이처럼 짚고는 소리쳤다.

“제기랄! 강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걸음을 옮기던 사비강이 우뚝 멈췄다.

“뭐?”

“강해질 수 있는 법을 알려 주십시오.”

석탄강의 두 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욕망이었다.

그런 석탄강을 사비강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넌 안 돼. 재능이 없거든.”

“……!”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석탄강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미묘한 비웃음마저 지으면서 몸을 돌린 사비강.

그가 충격을 받은 석탄강을 뒤로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크익…!’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먼저 나약한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났다.

두 번째로는 비웃음을 보인 사비강에게 화가 났다.

분노의 방향은 역시나 사비강에게 향했다.

사비강이 세 걸음쯤 옮겼을까?

“죽여 버리겠다!”

일갈을 터뜨리며 바닥을 차고는 튀어 나갔다.

쉬이이이잇!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고 민첩한 도공이 펼쳐졌다.

환도가 사비강의 목을 그대로 쳐낼 것 같은 순간,

팟!

사비강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암살 대상 앞에서 흥분하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군.”

싸늘한 소리가 옆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휘리리릭!

사비강의 손이 석탄강의 어깨를 낚아채듯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석탄강이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돌아섰다.

곧이어,

쑤욱!

“커억!”

갑자기 뻗어 나온 사비강의 손가락이 그대로 석탄강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 이게 뭔…!’

입안으로 들어와 버린 이물감에 석탄강이 당황하는 사이, 사비강이 곧바로 그의 턱을 탁, 올려 쳤다.

그 바람에 입안에 있던 단환이 그대로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고 말았다.

사비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석탄강의 몸을 빙그르 회전시키더니 주저앉히는 것이 아닌가?

타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게 된 석탄강.

그가 반사적으로 튕기듯 일어나려는데,

“가만있어라. 네가 먹은 건 독단이야. 당장 운기를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 거다.”

“……!”

석탄강이 눈을 부릅떴다.

그를 눌러 앉힌 사비강은 석탄강 앞으로 돌아와 쪼그려 앉아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강해지고 싶냐?”

석탄강이 사비강을 빤히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 같이 재능이라곤 일 푼도 없는 녀석도 강해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석탄강이 눈에 힘을 주었다.

또 다시 재능 탓.

화가 나면서도 그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그때,

“크웃!”

식도와 뱃속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그 작열통이 이제는 피부까지 번져 가고 있었다.

사비강이 짐작한 듯 말을 이었다.

“그래, 지금쯤 약효가 서서히 발휘되고 있을 거야. 온몸이 뜨거울 테지. 그게 보통 독단이 아니거든. 너 같이 재능 없는 놈이 자꾸 날 죽이겠다고 까부니까 좀 짜증이 나서 말이야.”

석탄강은 치미는 고통을 참아내며 사비강을 빤히 노려보았다.

“누군가를 암살하다 보면 상대에게 당해서 죽는 건 뭐 일상다반사가 아니겠냐? 그나마 다행인 건 네가 먹은 게 순전히 독단은 아니라는 거지.”

“……?”

“궁금해 하는 것 같으니 말해 주지. 네가 먹은 건 열화신단(熱火神團)이다. 복용 후 잘만 운기 한다면 내공을 크게 증진시켜 주지만, 운기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지. 애초에 개발될 때부터 열이 많은 자의 체질에 맞게 만들어진 거니까. 만약 운기를 잘못하게 되면? 너는 죽는다. 그래서 내가 독단이라고 한 것도 빈말은 아닌 거다.”

모든 영약과 영단이 그렇겠지만, 열화신단은 특히 주화입마에 빠지기가 쉽다.

대신 온전히 소화하는데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내공 증진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약이다.

“크읍!”

사비강의 말을 듣는 와중에도 석탄강은 뱃속에서 화끈거리는 기운을 참지 못해 신음을 터뜨렸다.

사비강이 그런 석탄강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가 도와주면 너 같은 녀석도 강해질 수 있다. 이래봬도 어엿한 교관이니까 말이다.”

석탄강이 고개를 들고 열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좋은 눈빛이군. 대신 너는 내가 필요할 때 내 칼이 되어 주어야 한다. 할 수 있겠나?”

석탄강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죽이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자신의 칼이 되어 달라니?

그 속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아, 물론 나를 암살하는 일은 계속한다. 그건 수업의 일환이니까. 다만 내가 필요할 때는 내 칼이 되는 거다. 그걸 맹세한다면 널 강하게 만들어 주마.”

석탄강과 사비강의 눈빛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얽혔다.

마침내 석탄강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내가 전음으로 흘려보내는 그대로 운기해라.”

말을 마친 그가 석탄강의 뒤로 돌아가서 앉더니 전음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구우우우우.

석탄강이 운기를 시작하자 뱃속에서 들끓던 용암이 이내 혈맥을 따라 주천하기 시작했다.

“흐읍!”

하지만 내공의 기세가 워낙 뜨겁고 강렬했기에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보통의 영단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반적인 영단이라면 복용하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향에 머리부터 맑아지리라.

한데 이건 무취였다.

게다가 지금은 콧김으로 숨을 내쉴 때마다 불기운이 뿜어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뿐만 아니라 강물처럼 세차게 흘러야 할 내기가 지금은 들끓는 용암처럼 찐득하고 답답하게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혈맥을 따라 흐르던 용암은 차차 열기가 식으면서 굳어 갔다.

고통은 그만큼 줄어들었지만,

전음을 흘리던 사비강이 갑자기 혀를 찼다.

“확실히 넌 무공에 재능이 없군. 갑자기 그만두고 싶어진다.”

그러자 석탄강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이맛살을 팍 찡그렸다.

그 순간, 열기가 식으면서 굳어 버릴 것만 같던 용암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며 혈맥을 따라 휘돌기 시작했다.

“끄음…!”

열화신단을 흡수한 내공은 확실히 그 자체로 뜨거운 불과 같았다.

석탄강의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혀 갔다.

사비강은 석탄강의 등에 손을 뻗은 채로 계속해서 전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군.’

그는 뱉은 말과 달리 석탄강의 재능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석탄강에게 재능이 없다?

만약 석탄강을 아는 누군가 그 말을 들었다면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을 일이다.

석탄강이야말로 재능과 노력을 다 갖춘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비강이 그리 말한 것은 석탄강의 오기와 분노를 역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보통의 영단과 달리 열화신단의 특성상 화를 유지하면 할수록 그 효과가 좋았으므로.

그리고 지금.

석탄강은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다시 활활 타오르는 용암이 점점 빠르게 혈맥을 따라 흘러갔고, 이윽고 정수리 쪽으로 치달으면서 뭔가에 꽝, 하고 부딪쳤다.

“커헉!”

순간 입 밖으로 피가 토해졌다.

내공을 운기하면서 피를 토하는 건 결코 좋지 못한 징조.

하지만 사비강은 석탄강이 동요하지 않도록 소리쳤다.

“집중해! 탁혈(濁血)이다.”

탁혈이란, 말 그대로 더러운 피다.

몸이 정화되면서 체내에 쌓인 탁기가 피와 함께 토해진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기는 이르다.

마지막 고비가 남아 있으므로.

정수리까지 치고 오른 용암은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서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석탄강이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오기가 다시 발동하자, 조금 식어 가던 용암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며 세차게 질주했다.

꽈앙!

용암과 같은 내공이 연신 정수리의 혈을 두드려 갔다.

꿍! 꽝! 꽈앙!

이제는 석탄강의 몸이 흠칫흠칫 떨릴 정도였다.

그저 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추량은 안절부절못하면서 두 사람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운기 하는 중에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기에, 추량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음만 졸였다.

석탄강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까무러칠 것만 같은 고통에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들끓던 용암도 점점 식으면서 바위처럼 굳어 가는 듯했다.

그때 사비강의 목소리가 다시 그를 자극했다.

일부러 그러는지 사비강은 구결을 알려 줄 때를 제외하고는 전부 말로 내뱉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 그 정도뿐이면 어쩔 수 없지. 그냥 뒈져야지, 뭐.”

‘크익!’

순간 석탄강이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그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 번 운기에 집중했다.

정수리까지 치달은 용암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워졌다.

이윽고 활화산에서 갓 분출한 것처럼 용암이 세차게 흘러갔다.

드드드드…!

꽈아앙!

경천동지할 만한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한 순간!

슈아아아아아!

뜨거운 용암이 정수리의 백회혈(百會穴)을 뚫자마자 거센 강줄기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뜨거운 불기운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전신의 혈맥을 일주천한 내공은 석탄강의 몸을 무척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백회혈이 뚫리는 그 순간, 석탄강은 머릿속으로 빛이 쏟아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생사현관의 타통!

무림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은 겪어 보고 싶어 하는 경지가 아니던가?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석탄강은 내심 크게 기뻐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두 주먹 아니, 온몸의 솜털까지도 힘이 넘쳐나는 기분이다.

운기를 마친 그가 벌떡 일어났다.

벌써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지도 않았는데 밤을 꼬박 지새운 것이다.

때마침 그의 뒤에서 사비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한다.”

“교관…님.”

석탄강이 감정이 격해져 사비강을 가만히 불렀다.

오늘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역사적인 순간이리라.

석탄강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맹세한 거나 잘 지켜라.”

“명심하겠습니다!”

“뭐, 그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죽여 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런데 한 가지.”

사비강이 손을 뻗자 석탄강의 환도가 날아와 잡혔다.

“넌 환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건 압수하마.”

“예?”

“때가 되면 적절한 걸 주마.”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는 사비강이 휘적휘적 걸어갔다.

석탄강은 멀어져 가는 사비강의 뒷모습을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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