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
귀환 마교관
248화
“도대체 제정신입니까?”
“죄송합니다.”
군사실로 돌아온 류여중은 독고진과 주기현을 호되게 질책했다.
두 사람의 섣부른 행동 때문에 홍묘에게 자유를 주는 것도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수를 읽지 못하겠으면 시간이라도 끌 줄 알아야지! 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
독고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아는 한 류여중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주기현 역시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안절부절 못했다.
류여중이 한숨을 내쉬고는 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앞으로는 함부로 설치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정자에 올라서서 연못을 내려다보던 사비강이 불쑥 물었다.
곁에 선 추량이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의 우월함을 보여야지요!”
“너의 우월함으로 어쩌려고?”
“제가 더 높은 서열이라는 걸 밝혀야지요!”
“누구에게?”
“누구긴 누굽니까? 그 흑귀인지 백귀인지 하는 녀석이지요!”
사비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호위 능력만 따진다면 흑귀가 훨씬 강해. 일단 그 녀석은 은신술 하나 만큼은 완벽하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어둠의 악신과 계약을 맺은 흑귀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은신술을 자랑한다.
그는 말 그대로 사비강의 그림자나 다름없었다.
지금 이곳 어딘가에 흑귀가 은신하고 있겠지만, 사비강조차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였다.
추량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건 경우가 아니지요!”
“뭐, 서열 같은 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하도록. 난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그가 정자에서 계단을 따라 막 내려섰을 때였다.
쉬이이잇!
허공을 가르며 비수 두 자루가 날아들었다.
찰나,
슈슈슛!
검은 그림자가 앞을 막아서는가 싶더니,
따다앙!
비수 두 자루를 곧바로 튕겨 내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타다닷!
석탄강, 옹기승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흑귀가 한 발 빨랐다.
쉬이이잇!
까가가앙!
한 줄기 검은 바람이 부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이 일제히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닌가?
마침 맹가숙 일당과 설 남매가 뒤를 이었다.
그런데,
후우우웅!
흑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검은 바람이 훅 불어 나갔다.
다음 순간, 맹가숙 일당과 설 남매가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이, 이건 뭐죠? 오라버니?”
“글쎄다.”
“니미럴! 이번엔 또 뭔 괴상한 사술이야?”
설 남매와 맹가숙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바람이 자신들을 지나친 순간 사방이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해졌기에.
찰나, 빛줄기가 그들을 유린하며 지나갔다.
피츗! 츄앗! 츄웃!
“크윽!”
“악!”
어둠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린아, 괜찮으냐?”
“괜, 괜찮아요. 오라버니는요?”
“나도 괜찮다.”
설수민의 말을 끝으로 칠흑처럼 어둡던 공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맹가숙 일당과 설 남매 그리고 석탄강과 옹기승 등이 연무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이는 흑귀가 된 소유강의 고유 능력이었다.
어둠의 악신과 계약을 하면서 주변을 일시적으로 완벽한 어둠으로 채워 버리는 힘.
선발대가 연무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뒤를 이어 치려고 했던 백공보 등의 무리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제길! 호위무사를 늘리다니! 비겁합니다!”
“나중에 진짜 적을 상대할 때도 그렇게 소리칠 거냐?”
사비강이 냉소적으로 대꾸하자, 신생조원들이 차마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는 물러갔다.
한편, 순식간에 신생조원들을 처리한 흑귀를 보고는 추량이 입을 딱 벌렸다.
흑귀는 사비강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져 갔다.
사비강이 추량을 힐끔거렸다.
“봤냐? 호위는 저렇게 하는 거다.”
“……!”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어가자, 추량이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양 손목에 찬 수호구를 바라보았다.
‘강해져야 해. 저놈보다 더. 강해지고 말 거야.’
**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석탄강이 왼쪽 팔뚝으로 길게 난 상처에 금창약을 발랐다.
쓰린 감각에 이맛살이 절로 찡그려졌다.
오늘 오전, 연무장에서 사비강을 기습하다가 흑귀에게 당한 상처였다.
상처가 깊진 않았지만, 길게 찢어진 상처는 마치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지렁이 위로 금창약을 고루 펴 바른 석탄강이 찢어진 천으로 왼팔을 둘둘 감았다.
오른손과 치아를 이용해 천을 바짝 당겨 묶은 후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문득 오래 전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
“많이 아파?”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와 달리 유송령의 앳된 얼굴은 시종 무뚝뚝했다.
입술을 앙다문 그녀의 표정은 마치 속감정이 겉으로 드러날까 봐 꾹 눌러 참고 있는 듯했다.
아까부터 흩날리던 하얀 눈송이는 그녀의 머리 위로 곱게 내려앉고 있었다.
끄덕끄덕.
어린 석탄강은 숨기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녀 앞에서는 마음껏 엄살을 부리게 된다.
나이가 같은데도 말이다.
유송령이 힘을 주어 천을 질끈 묶었다.
“아…!”
석탄강이 신음을 흘리자, 유송령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보 같이 왜 맞고만 있어? 너도 때려야지!”
“…….”
“네 피부가 검은 건 사흑공을 익혔기 때문이잖아. 너처럼 어려서부터 무공을 익힌 사람이 흔한 줄 알아?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일이야.”
“…….”
“한 번만 더 맞고 있으면 그땐 나도 그 녀석들과 같이 널 때려 줄 거야.”
석탄강은 유송령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갑자기 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발길질을 퍼붓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만약 유송령이 나타나서 녀석들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얻어맞고 있을 지도 몰랐다.
무릎을 꿇고 빌어도 녀석들은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뭐라고 말 좀 하지 그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송령이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을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상하게 유송령은 아버지 유관룡(柳冠龍)이 죽은 후로 더욱 성숙해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입술을 비집고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유송령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났다.
“알면 됐어.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
“예?”
석탄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유송령을 보았다.
삼 년 전,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은 바로 유관룡이었다.
아버지는 정도인과 싸우다가 죽었다.
천애고아가 되어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자신을 보고는 유관룡이 손을 내밀었다.
“독특한 무공을 익힌 아이구나. 너는 이대로 죽어 가기엔 아깝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리고 이곳으로 와서 그의 딸인 유송령을 처음 보았다.
그때부터 줄곧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존대해 왔다.
한데 갑자기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라니.
이제 자신을 데려온 유관룡이 죽어 버렸으니 자신도 버리겠다는 뜻일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유송령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이제 넌 내 친구니까. 너 나랑 나이도 똑같다며?”
“아….”
“그리고 다시는 그런 녀석들에게 무릎 꿇지 마. 아니,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마. 무릎을 꿇을 바엔 차라리 목숨을 걸고 싸워. 적어도 무인이라면.”
말을 마친 유송령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주먹을 콱 말아 쥐고 있었다.
아마도 반 년 전 정도인에게 무릎을 꿇었다가 목이 잘려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이리라.
“알겠습… 아니, 알았어.”
“그래, 이제 가자.”
“어딜…?”
“상처 치료했으니까 가야지. 그놈들을 꺾어 주러!”
언제나 돌처럼 굳어 있던 석탄강의 표정이 순간 환하게 밝아졌다.
“응!”
그가 유송령의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내가 그녀를 지켜 주겠다고.
이 친구를!
**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지.’
석탄강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때처럼 상처를 입고 금창약이나 처바르고 있다니.
그가 시선을 내려 자신의 왼팔을 보았다.
한때는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데 이 빌어먹을 세상은 강한 놈들 천지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여기저기에서 강적이 자꾸만 나타난다.
유송령이 설 남매에게 상처를 받고 돌아왔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지키기는커녕 복수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 유송령의 등에 칼로 글귀까지 새겨 넣는 것을 볼 때는 자신의 무력감에 자결하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다행히 사비강이 그녀의 등을 온전하게 치료하면서 흉터가 남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됐다.
‘아직 멀었어. 더 강해져야 한다!’
이를 뿌득 간 석탄강이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밤이 깊은 시각.
그가 눈을 떴다.
기척!
석탄강은 천천히 자세를 고쳐 잡고 최대한 자신의 기를 숨겼다.
익숙한 기척이었다.
사비강이 분명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원래 이곳은 사비강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이긴 하다.
하지만 내일 아침을 위해 이곳에서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야밤에 사비강이 나타날 줄이야.
어딜 가려는 거지?
일단 의문은 가슴속에 접어 두었다.
중요한 건 그가 어딜 가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그를 죽이느냐다.
‘이번에야말로…!’
마침 사비강이 나뭇가지 아래로 지나는 순간,
타앗!
석탄강이 몸을 날렸다.
쉬이이이잇!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다름 아닌 추량이었다.
“하아앗!”
그가 왼팔을 들어 올리며 기합성을 터뜨리자 놀랍게도 푸르스름한 막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저건 또 뭔…!’
까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환도가 튕겨 나가면서 석탄강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타서 추량이 다시 한 번 기합성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받아랏!”
“치잇!”
석탄강이 혀를 찼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어로 인해 허점을 보이고 만 것.
추량이 얼른 석탄강의 품으로 파고들며 주먹을 쑥 뻗었다.
카르텔의 수호구에서 마나가 뭉치면서 검강처럼 날카롭게 솟아나와 석탄강의 가슴을 내질러…
‘…야 하는데? 어라?’
추량의 주먹이 그대로 석탄강의 가슴을 때리는 게 아닌가?
퍽!
“크읏!”
석탄강이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는 두 가지 이유로 당황했다.
우선 추량의 예상치 못한 방어 능력에 놀랐고, 다음으로는 더 강력한 반격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주먹질이라는 데에 당황했다.
‘날 봐주는 건가?’
그리 생각하니 더욱 열불이 뻗쳐 왔다.
한편, 추량은 추량대로 당황하고 있었다.
‘뭐, 뭐야? 왜 송곳이 안 튀어나오는 거야?’
사비강의 지시 때문에 흑귀는 일절 나서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자신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
한데 카르텔의 수호구가 말을 듣지 않다니!
당혹감에 팔을 마구 흔들었더니 쓸데없는 방어막이 다시 불쑥 튀어나왔다.
후아앙!
“으헉! 이게 아닌데?”
사비강이 그의 어깨를 짚고는 말했다.
“수고했다. 물러나 있어.”
그러더니 사비강이 석탄강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내 제자도 널 무시하는 모양이구나. 후후.”
“크읏!”
“자, 그 독기로 다시 한 번 덤벼 봐라. 이젠 방해자가 나서지 않도록 하마.”
석탄강이 어금니를 뿌득 갈더니,
타앗!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