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47화 (247/670)

# 247

귀환 마교관

247화

쿠쿵! 꽈르르르릉!

지축이 뒤흔들리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추량이 화들짝 놀라며 돌아섰다.

“사, 사부님?”

분명 동혈 안쪽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온 소음이었다.

푸스스스스!

동혈 천장에서 돌가루가 부스러져 내렸다.

“뭐, 뭐야?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추량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시커먼 동혈 안쪽을 바라보았다.

“가봐야 할까?”

한 걸음 떼어내던 추량이 다시 우뚝 멈췄다.

‘아니지. 자리를 지키라고 하셨으니 굳이 들어갈 필요는….’

만에 하나 동혈이 무너져 내리면 밖에서 구출 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

그래, 이건 결코 안에 들어갔다가 깔려 죽을까 봐 겁나서가 아니다.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어도 참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 갈등을 한참 동안 반복하고 있을 때.

부스럭. 저벅… 저벅…

마침 동혈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사부님? 아니면 설마 흑귀라는 그 귀신인가?’

추량이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웬, 웬 놈이냐!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베, 베어 버리겠다!”

“알았으니까 살기 좀 죽여라.”

동혈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다름 아닌 사비강이었다.

“사부님!”

그제야 추량이 반색하며 달려 들어갔다.

그가 막 동혈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쉬이이잇!

시커먼 바람 한 줄기가 자신을 스쳐 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그가 걸음을 멈추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사비강이 입구까지 나왔다.

“뭘 그리 멀뚱멀뚱 서 있는 거야?”

“아, 사부님! 무사하셨군요! 그런데 그 소유강은 만났습니까? 설마… 정말로 귀신이 된 건 아니겠죠?”

“그 귀신 네 뒤에 있다.”

“예?”

추량이 깜짝 놀라서는 되묻다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하… 하… 사부님도 참. 농담도 잘하셔….”

그때,

툭툭.

뭔가가 추량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등골이 오싹해진 추량이 뻣뻣하게 굳은 자세로 몸을 돌렸다.

다음 순간,

“으아아아악! 누, 누, 누, 누구냐! 덤, 덤, 덤벼라! 오, 오냐! 네, 네놈이 바로 그 흑, 흑귀구나! 내가 죽, 죽, 죽여 주마!”

휙휙휙휙!

추량이 검을 마구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추량을 멀뚱히 쳐다보는 자는 다름 아닌 소유강.

붉은 눈동자, 창백한 피부, 치렁치렁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정말 귀신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악신과 계약을 맺으면서 전신에 새겨진 괴이한 문신은 그를 더욱 괴기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소유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비강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내 제자다. 뭐, 호위무사 비슷한 용도로 데리고 있는 중이지.”

소유강이 추량을 힐끔 보고는 물었다.

“한데 흑귀는 무슨 말입니까?”

어느새 그의 말투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네가 이곳에 있는 동안 사람들이 널 그렇게 부르더군.”

“흑귀라….”

소유강이 가만히 읊조리더니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후후. 마음에 드는군요.”

“뭐, 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럼 앞으로는 ‘흑귀’라고 부르지.”

소유강 아니, 흑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이 라겔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추량에게 던졌다.

“받아라. 선물이다.”

추량이 얼떨결에 받아든 것은 손목에 착용하는 보호구였다.

추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부님. 이게 뭡니까?”

“카르텔의 수호구.”

“카르… 네?”

“양 손목에 착용해서 하나는 방패로 쓰고, 하나는 검으로 사용할 수 있지.”

사비강이 시범을 보여주려는 듯 카르텔의 수호구를 가져가 양 손목에 착용하더니 흑귀에게 말했다.

“나를 공격해 봐.”

흑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쒸이이잇!

그가 한 자 정도 되는 검을 빠르게 내찔렀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

찰나지간,

후아아아앙! 타앙!

사비강의 손목 보호대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순식간에 퍼져 나와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흑귀가 휘청거리면서 물러나자,

“량, 잘 봐둬라. 이게 카르텔의 수호구로 만든 마나 방패다. 그리고 이건….”

말을 마친 사비강이 곧장 다른 손을 흑귀에게 내질러 갔다.

쑤아아아앙!

마나 방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내지른 손목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날카롭게 뻗어 나와 송곳처럼 변했다.

“헛!”

물러나던 흑귀가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마나가 그의 목젖에 닿았다.

“이게 검으로 변했을 때의 모습이다.”

슈르르르르.

잠시 후 송곳처럼 뾰족했던 마나는 다시 카르텔의 수호구 안으로 흡수되면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추량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 감격의 바다가 출렁거렸다.

“완전 멋있잖아요!”

“다루기가 쉽지만은 않을 거야. 적응 잘해서 네 것으로 만들어 봐.”

사비강이 카르텔의 수호구를 벗어 추량에게 던져 주었다.

추량이 얼른 받아내고는 넙죽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때마침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카르텔의 수호구를 착용한 추량이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는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킁킁. 무슨 냄새 안 납니까?”

“무슨 냄새?”

“타는 냄새 같은데….”

추량과 사비강이 동시에 냄새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이 바라보는 곳에는 흑귀가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몸에 새겨진 문신 부위가 시커먼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추량이 소리쳤다.

“우앗! 너, 너! 몸이 타고 있어!”

“으음?”

그제야 흑귀가 제 몸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사비강이 라겔의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너와 계약한 녀석이 하급 악신이긴 하지만 어쨌든 저주는 저주다. 햇빛이 닿으면 몸이 타버릴 테니까 이걸 입어라.”

사비강이 라겔의 주머니에서 시커먼 천을 꺼내더니 흑귀에게 던져 주었다.

흑귀가 얼른 그것을 몸에 둘렀다.

모자가 달린 피풍의(避風衣)처럼 생겼는데, 마계에서는 ‘케이프’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쉽게 ‘차양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으로는 어딜 가나 낮에는 그걸 입어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저주 때문에 몸이 타들어가도 고통은 느끼지 못할 테니까 각별히 주의하도록.”

흑귀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스르르 기척을 지웠다.

그 모습을 보던 추량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이야, 정말 귀신같네요. 낮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것도 귀신이랑 같고.”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같은 처지니까 사이좋게 잘 지내도록.”

“예? 같은 처지라뇨?”

“저 녀석도 앞으로 내 호위를 할 거야.”

“예에에에? 설마 저로는 부족했던 겁니까? 그런 겁니까?”

추량이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사비강이 물끄러미 추량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이런 생각이 담겨 있었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마침내 사비강이 걸음을 돌리고 길을 떠났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어디선가 탁한 목소리의 전음이 들려왔다.

멍하니 서 있던 추량이 발끈한 표정으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흥! 절대로 지지 않겠어! 사부님의 진정한 호위무사는 바로 이 몸이란 말이다!’

**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천악은 소유강과 재회하면서 크게 기뻐했다.

물론 소유강이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무척 안타까워했지만, 살아서 다시 본 게 어딘가?

그날 밤, 소천악은 천상궁의 수뇌 인사들과 인근 유지들을 초청해서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월섬당은 백호와 주작, 현무에 이어 천상궁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곳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연회에 참여했다.

심지어 총군사인 류여중도 연회에 참여해 소천악을 축하해 주었다.

소천악은 특히 사비강에게 극진히 대접했다.

일전에 차갑게 대하던 태도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연회는 사비강에게 감사의 뜻으로 베푸는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하하! 사 대협! 일전에는 내가 대협의 진심을 몰랐었소. 혹여 기분이 언짢았더라면 이 자리에서 너그러이 푸시길 바라오.”

“이미 지나간 일이지요.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여정 중에 제게 힘을 주신 분들이 이 자리에 계셔서 사례를 하고 싶군요.”

“아, 그런 일이 있었소? 그게 누구요? 나 역시 사 대협을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구려!”

“해서 말인데, 제가 특별히 준비한 요리를 그분들께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한데 사 대협이 직접 요리를 하신 거요?”

“뭐, 그런 셈입니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추량에게 눈짓을 보냈다.

추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딘가로 가더니 곧 덮개로 덮인 쟁반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드려라.”

사비강의 말에 추량이 곧장 향한 곳은 뜻밖에도 현무당주 독고진과 흑운방의 소방주 주기현이 앉은 자리였다.

독고진과 주기현은 그렇잖아도 사비강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것이 못마땅하던 차였다.

한데 직접 요리를 했다고 하니 독이라도 탄 것이 아닌가 싶어서 의심이 들었다.

두 사람이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추량을 쏘아보았다.

“이게 무엇이냐?”

“사부님이 두 분께 드리는 답례입니다. 드시지요.”

독고진과 주기현이 코웃음을 치고는 덮개를 열었다.

다음 순간,

“꺄아아악!”

“헉!”

근처에 있던 시녀들이 비명을 질렀고, 두 사람을 포함한 다른 무인들도 헛바람을 삼키며 성큼 물러났다.

쟁반에 담겨 있는 것은 사람의 머리였다.

독고진이 탁자를 쾅 내려치고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런 개 같은!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오?”

“지금 우리에게 사람의 머리를 먹으라고 하는 것이오?”

주기현도 벌떡 일어나 외쳤다.

사비강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누군지 모르겠소? 최대한 썩지 않게 잘 가져왔는데. 벌써 알아보지 못한다면 곤란하지.”

“무슨…!”

“독고 당주님께 드린 건 귀도살. 주 소방주에게 드린 건 십보사귀 중 일귀. 그 외에도 혈도오객이 있었지만 시체 머리통만 세 개씩이나 들고 다니자니 그것도 번거로워서 두 개만 준비했소.”

“뭐, 뭐요?”

“두 분께서 먼저 선물을 보냈으니, 답례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마음에 들길 바라겠소.”

사비강이 냉랭하게 말을 뱉자, 두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대부분 사비강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연회의 성격이 사비강에게 사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사비강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이 다수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대부분은 북천각주가 발로 뛰면서 회유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니 질타의 시선이 독고진과 주기현에게 돌아갈 수밖에.

월섬당주 소천악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말했다.

“설마 내 아들을 구하려는 사 대협에게 두 분께서 살인을 청부한 것이오?”

어느새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직위로 따지자면 현무당주가 그보다 한 끗 위였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칠 년 동안 잃었던 아들을 다시 만나지 않았나?

한데 그 인연을 이어 준 자가 저들에게 죽을 뻔했으며, 그 때문에 아들을 다시 못 만날 뻔했다고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뻗쳐 왔다.

분위기가 흉흉하게 변하자, 불쑥 나선 사람은 뜻밖에도 총군사 류여중이었다.

“아무래도 몇 가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은 일단 추후에 따져 보는 게 어떻습니까? 오늘처럼 좋은 자리를 굳이 살벌한 분위기로 몰아갈 것까진 없지 않겠습니까?”

총군사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소천악도 더는 따지지 못했다.

다른 자들 역시 더 이상은 독고진과 주기현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반면 류여중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당했구나. 정말이지 영악한 자로다. 이걸로 자신의 세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구나.’

군중의 심리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혼자 있을 때 긴가민가하던 것도, 많은 사람들이 동요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니.

놀랍게도 사비강은 그 심리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사비강은 연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류여중이 독고진과 주기현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나 좀 봅시다!]

전에 없이 화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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