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귀환 마교관
243화
혈도오객이 그대로 굳었다.
표적을 두고 경쟁하던 십보사귀 중 셋이 죽었다고 해서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상대의 무공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천만 냥이라는 거금이 가히 돈지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비강이 괴이한 무공을 사용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저렇게까지 빈틈이 없을 줄이야.
이건 무공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사비강은 그냥 강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신중했을 것을.
원래는 조금 더 지켜 볼 생각이었다.
한데 십보사귀가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계획이 조금 꼬였다.
자칫해서 녀석들에게 천만 냥을 넘겨줄 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일을 망친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나갈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무리해서 서두르진 않았을 것을.
오히려 그들의 죽음을 보고 좀 더 철저한 계획을 세웠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오망진(五網陳)을 펼쳐!]
일객의 명에 혈도오객이 일제히 흩어지면서 사비강과 추량을 에워쌌다.
십보사귀 중 아직 삼귀가 살아남았지만, 이 시점에서 그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충격 때문인지 먼저 나설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스스스슷!
혈도오객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고 날카롭게 기를 다듬어 갔다.
일객의 무기는 대도다.
그는 막강한 힘과 무게로 찍어 누르는 방식의 싸움을 고수한다.
그 압도적인 힘에 대게의 적들은 몇 수 버티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이객의 무기는 길고 완만하게 굽은 환도다.
무척 가늘지만 길이는 대도에 버금갈 정도로 길다.
나이 순으로 둘째가 됐지만, 실제로 무공의 수위는 그가 가장 높았다.
특기는 환영분신(幻影分身).
자신의 환영을 순식간에 예닐곱 명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그는 칼춤을 추듯 유연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유린한다.
삼객은 쌍도를 사용한다.
오객 중에서도 가장 빠르며 무공이 현란하고 화려한 특징이 있다.
사객은 비도를 쓴다.
몸에 총 백여덟 자루의 비도를 지니고 있다.
암살 임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고수한다.
마지막으로 오객은 언월도(偃月刀)다.
일객과 마찬가지로 암살 임무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무기다.
하지만 혈도오객이 원래 암살을 고집하진 않는다.
청부 살인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대체로 상대와 정면 승부를 통해 제압하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었다.
사비강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는 말했다.
“잘 봐 둬라. 내가 싸우는 걸.”
“예, 사부님!”
다음 순간,
타닷!
혈도오객이 동시에 몸을 날려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것은 사객이 날린 비도였다.
찰나, 사비강이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래비티!”
그러자 혈도오객은 갑자기 무거워지는 몸을 느끼고는 적잖게 당황했다.
날아들던 비도들도 전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크윽! 이 무슨…!”
갑자기 중력이 강해지자 혈도오객의 동작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곧이어,
팟!
사라진 사비강이 어느 샌가 일객의 등 뒤로 나타났다.
“크익! 까불지 마라!”
일객이 이를 갈며 대도를 휘둘러 갔다.
쒸이이잉!
하지만 그의 대도는 사비강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일객뿐만 아니라 혈도오객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힘으로 승부하는 일객이 도를 잡히다니.
게다가 상대는 칼날을 잡은 채 버티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당황한 일객이 도를 쥔 양팔에 내공을 잔뜩 실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게 최선인가?”
하늘을 찌를 듯 거만한 태도.
일객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넘지 못할 힘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보통이라면 상대가 자신을 보며 그리 느꼈어야 할 터.
“크이이익!”
더욱 힘을 주었지만 사비강은 무심한 듯 일객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객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식은땀이 마구 흘러내렸다.
밀리지 않는다?
상대가 뒷걸음질을 치거나 발을 끌며 뒤로 밀려났어야 했다.
한데…
츠츠츳…!
‘젠장! 내가 밀린다고?’
일객은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 손이라니!’
자신은 두 손으로 대도를 내리쳤다.
한데 사비강은 왼손으로 베르타스를 들어 막아낸 것이다.
거기에 이제는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
사비강의 얼굴을 보니 표정에 여유가 흘러 넘쳤다.
사비강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똥이라도 쌀 것 같은 표정인데?”
“끄으윽!”
일객이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러는 사이,
쉭쉭쉭!
사비강의 배후에서 다시금 비도가 날아왔다.
순간, 사비강이 오른손을 불쑥 뻗더니 일객의 머리를 쥐고는 들어 올렸다.
“우아악!”
당황한 일객이 비명을 내질렀다.
사비강은 그대로 일객을 어깨너머로 넘기면서 바닥에 내리찍었다.
꽈다앙!
거구가 그대로 머리부터 떨어지자 커다란 소음이 일어났다.
동시에 날아든 비수가 일객의 몸에 연달아 박혔다.
푸푸푹!
일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하고 말았다.
쿠웅!
일객이 고목처럼 넘어가자 남은 혈도오객이 비명처럼 외쳤다.
“대형!”
이객이 이를 빠득 갈더니 곧장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개 같은 놈이 대형을!”
찰나, 그의 몸이 열 명 가까이 늘어났다.
환영분신술이었다.
사비강이 씨익 웃더니,
“재미있군.”
다음 순간,
스파파파파팟!
사비강의 몸이 수십 명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일전에 사용한 적이 있던 미러 이미지 마법이었다.
“헉…!”
이객이 당황해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수십 명으로 늘어난 사비강은 결코 그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사비강이 밀물처럼 밀고 나가면서 이객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열 명에 달했던 이객은 수십 명의 사비강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힘으로도, 머릿수로도 극복할 수 없는 차이였다.
마지막 살아남은 이객이 사비강의 검에 목이 날아가 버리자, 삼객이 경악해서 외쳤다.
“이형!”
누구보다도 빠른 삼객이 쌍도를 휘두르며 격분해서 달려들었다.
“노옴! 온몸을 토막 내…!”
쉬이이잇, 푹!
“커억!”
한 줄기 섬광이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 앞에서 칼을 부리는 인간들을 보면 하나 같이 굼벵이처럼 보였건만.
이번만큼은 사비강의 신형을 두 눈으로 확인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목을 가로지르는 선혈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었다.
츄우우웃!
피를 분수처럼 토해낸 삼객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무슨 수에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힘이 센 일객은 힘으로, 분신술을 사용하는 이객은 분신으로, 속도가 빠른 삼객은 그보다 더 빠른 속공으로 당했다.
이쯤 되자, 사객과 오객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이건 단순히 싸움에서 졌다는 수준이 아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통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이대로 몸을 돌려 달아난들 살 수 있을까?
삼객 보다도 빠른 놈이 아니던가?
“제기랄! 죽어라아앗!”
사객이 품에서 모든 비수를 꺼내 일시에 날려 보냈다.
손이 닿지 않는 것들은 공력을 이용해서 쏟아냈다.
촤아아아아아!
백여 자루의 비수가 일시에 사비강을 노리며 날아갔다.
그 틈을 타서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던 삼귀가 몸을 날렸다.
순간, 사비강이 손을 휘저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토네이도(tornado).”
찰나, 사비강 앞으로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의 세기가 어찌나 강력한지, 바닥에 떨어진 자갈과 돌멩이들이 휘말리면서 돌풍으로 변했다.
물론 사비강에게 날아드는 백여 자루의 비수도 속절없이 돌풍에 휘말리면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반면 달려들던 삼귀는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마침내 백여 자루의 비도가 까마득하게 솟아올랐을 때,
“라이트닝 레인(Lightning Rain)!”
사비강이 손을 뻗으며 불쑥 소리쳤다.
그러자,
콰지지지직! 치지지직!
백여 자루의 비도에 뇌전이 담기더니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슈슈슈슈슈슉!
콰콰쾅! 콰지지지직!
뇌전이 담긴 백여 자루의 비도는 그야말로 천재지변과도 같은 재앙을 불러왔다.
사방의 바닥이 파편으로 튀어 올랐고, 집중적으로 퍼부어지는 장소에 있었던 사객과 삼귀는 최선을 다해 막아내려고 했지만, 끝내 온몸에 비도가 박힌 채 절명하고 말았다.
치지지직. 치직…!
비도가 떨어져 내리고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지류를 따라 이따금씩 뇌전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건 너냐?”
사비강의 싸늘한 눈초리가 오객에게 향했다.
“어…어어…”
오객이 당황해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 이놈은 괴물이다…!’
사객마저 비도술에 오히려 당하고 말았다.
스팟!
사비강이 블링크 마법을 써서 코앞에 나타나자, 오객이 털썩 무릎을 꿇더니 소리쳤다.
“살, 살려 주십시오. 저, 저는 아무런 특기가 없습니다. 제, 제가 왜 혈도오객 중 막내겠습니까?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쥐뿔도 없어서 그렇지요.”
“흐음. 뭐, 그렇다면 한 번쯤은 봐 줄까?”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 돌아서자, 오객이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한데 죽여 주마!”
순간 오객이 벌떡 일어나며 언월도를 내질렀다.
푸욱!
‘흐흐흐! 해냈다! 내가… 음?’
기뻐하던 오객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검 한 자루가 삐죽 튀어 나와 있었다.
“이런… 씨벌…!”
그가 천천히 돌아서자 숨을 훅훅 몰아쉬는 추량이 보였다.
추량이 히죽 웃었다.
“내 존재를 너무 까먹는 것 같아서 알려 주려고.”
“이… 개…!”
쑤욱!
추량이 검을 뽑아 내자 오객은 그대로 쿵 넘어가며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후우, 이번엔 어땠습니까?”
“잘했다.”
사비강이 피식 웃고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아홉 구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꼭 이럴 땐 모자란 하나를 마저 채우고 싶단 말이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뭐, 이런 거지.”
말을 마친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휙 날려 보냈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간 베르타스가 우거진 수풀에 다다랐을 때,
타앙!
마치 북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면서 튕겨 나갔다.
하지만 베르타스는 허공에 둥실 떠오른 채로 천천히 사비강의 손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수풀 사이에서 한 남자가 스르르 나타났다.
나이가 지긋한 사내였는데, 바로 귀도살이었다.
조금 전의 일격은 그가 호신강기로 막아낸 것이었다.
“제법 재주를 부리는구나. 이건 이기어검술이 아닌 것 같은데?”
귀도살의 말에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아니지. 그런데 이기어검을 보고 싶다면 보여 줄 수는 있다.”
“뭣이?”
다음 순간, 베르타스가 전과 다른 속도로 귀도살을 향해 날아갔다.
쏴아아아앗!
이번에야말로 빛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