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귀환 마교관
242화
“꼬리가 붙었군.”
사비강이 불쑥 꺼낸 말에 추량이 흠칫거리고는 물었다.
“꼬리라면….”
“그래. 날 노리는 자들이 있다.”
“얼마나 많습니까?”
추량이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며 물었다.
자칫 이쪽에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가는 적들에게 틈을 보일 수도 있으니.
“열 명 정도 된다.”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그건 모르겠다. 은신술이 뛰어난 자들이야. 언뜻 언뜻 느껴져서 알고 있을 뿐.”
“그런데 열 명이라는 건 어찌 아셨습니까?”
“그야 천상궁에 있을 때부터 느꼈으니까.”
“예? 천상궁에서도요?”
“그래. 저 녀석들, 날 관찰한 지가 좀 되거든.”
사비강의 말대로 열 명의 살수들은 독고진이 불러들인 후부터 천상궁 인근에 머물며 사비강을 은밀히 감시해왔다.
하지만 기감이 뛰어난 사비강은 잠깐씩 드러나는 그들의 정체를 눈치 챌 수밖에 없었던 것.
해서 이번 여행길을 오르기 전부터 그는 꼬리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류 군사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기도 하지만.’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게 걸음을 옮기자 추량이 얼른 곁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어쩌죠? 사부님도 기척을 감지 못할 정도면 보통 녀석들이 아닐 텐데요.”
“뭐, 그냥 잘 싸우면 되지.”
“아, 예….”
추량이 멍하니 대답하는 사이 두 사람은 저잣거리의 객잔에 멈춰 섰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 가자.”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추량이 참았던 질문을 쏟아냈다.
“그놈들이 사부님을 죽이진 못하겠죠?”
“그야 모르지.”
“정말 죽을 수도 있습니까?”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말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마시라고요. 사부님이 죽을 수도 있다니….”
“내가 걱정 되냐?”
“아뇨. 사부님이 돌아가시면 저도 그들에게 죽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걱정 마라.”
“역시 사부님은 강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죠?”
“아니. 언제나 주인이 죽기 전에 호위무사가 먼저 죽게 되어 있으니까.”
순간 추량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 그럼 마법 같은 걸로 은신한 녀석들을 찾아내면 안 됩니까?”
“마법이 무슨 만능이야? 신의 능력쯤 되는 줄 알아?”
“신까지는 아니어도 용족의 힘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만능은 아니야. 그런 드래곤도 가끔이긴 하지만 인간에게 사냥당한다.”
“그러고 보면 참 인간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요.”
“그래. 그래야 마족도 이길 수 있겠지. 어쨌든 탐지 마법이 있어도 마나를 품은 대상만 탐지할 수 있다.”
“아… 그렇군요.”
“그것도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력이 떨어지는 법이지.”
말을 마친 사비강이 침상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내일은 신경 쓰일 일이 많을 것 같으니 푹 자 둬라.”
**
[아직이다.]
십보사귀 중 일귀가 전음으로 주의를 주었다.
몸을 꿈틀거린 사귀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마음을 다스렸다.
그는 벌써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썩였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귀는 이번에도 나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적절한 때가 아니라 판단한 것이리라.
지금까지 그는 총 세 번 움직이려고 했다.
첫 번째는 아침에 사비강이 객잔을 나설 때.
두 번째는 정오가 지나서 사비강이 나무 그늘에 앉아 육포를 뜯을 때.
그리고 조금 전, 사비강이 석양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기지개를 켤 때만큼이나 빈틈이 많을 때도 없다.
살수로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그럴 때다.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켤 때.
신체의 모든 근육과 기운들이 이완하면서 긴장이 한껏 풀어지는 순간.
그때가 바로 죽이기에 가장 좋을 때다.
한데도 일귀는 자신을 막았다.
일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일귀에게 화가 나서 한숨을 내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자신이 완벽한 기회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일귀뿐만 아니라 다른 살수들 역시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독고진이 부른 귀도살과 혈도오객 역시 지금쯤 어딘가에서 사비강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완벽한 기회가 생기면 그들도 동시에 사비강을 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야영을 할 것 같군. 오늘 밤 기회를 봐서 노린다.]
마침내 일귀의 명이 떨어졌다.
이, 삼, 사귀들이 저마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뜻밖에도 일귀였다.
그는 사비강과 추량이 잠자리에 누운 지 정확히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때,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동시에 이, 삼, 사귀가 그 뒤를 쫓아갔다.
쉬이이이잇!
그의 신형은 한 줄기 바람처럼 날아갔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순간은 무척 길고 더디게 느껴졌다.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섬세해야 할 순간.
사비강과의 거리가 좁혀져 간다.
스무 보…. 열다섯 보… 열 보… 다섯 보!
됐다.
열 보 안에만 들어오면 지금까지 놓친 표적이 없다.
마침 맞은편에서 혈도오객들이 날아드는 모습을 보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혈도오객이 다다르기도 전에 사비강은 자신의 손에 목숨을 잃으리라.
만약 자신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이, 삼, 사귀가 해결할 것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실패하기도 어렵군!’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이 과정은 굉장히 길게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촌각에 지나지 않았다.
슈아아악!
이윽고 시커멓게 칠해진 그의 검신이 사비강에게 날아드는 순간,
파앗!
“엇!”
일귀가 눈을 부릅떴다.
그와 동시에,
푸욱!
그는 자신의 복부를 뚫는 검을 보았다.
시퍼런 빛을 발하는 검이 복부에 틀어박히는 순간 붉게 변하며 피를 흡수해 갔다.
‘이, 이 새끼가 왜…?’
일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앞을 막으면서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추량이었기에.
‘이 녀석이 이렇게 강했나?’
안중에도 없던 녀석이다.
아니, 살수 임무를 함에 있어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변수가 될 수 있으니 주의는 기울였다.
충분할 정도로 계산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녀석이 절대로 방해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한 이 순간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혈도오객도 날아든 것이 아니겠나?
한데 난데없이 이런 애송이가 나타나 단전에 검을 쑤셔 박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이 검은 사비강이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검집을 천으로 둘둘 싸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는데….
‘왜 이 녀석이 그놈의 검을?’
이 복잡한 생각은 찰나지간에 지나갔다.
추량이 입매를 찢으며 히죽 웃었다.
그 웃음에 배어든 살기를 느낀 일귀는 생의 마지막을 깨닫고 검신을 콱 움켜쥐었다.
녀석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이, 삼, 사귀가 목표물을 제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마침 이귀가 일귀를 지나쳤다.
이귀는 일귀의 등을 뚫고 튀어나오는 검을 두 눈으로 확인한 터였다.
이런 경우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지금 같은 일을 대비해서 수많은 훈련을 해온 그들이었다.
일귀의 죽음은 원통한 노릇이지만, 지금은 임무가 먼저다.
그렇게 이귀가 자신의 옆을 스치는 그 순간, 일귀는 어쨌든 임무는 성공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파밧,
추량이 검을 뽑는 대신 일귀의 품에서 단검을 뽑아 들더니 곧장 돌아서서 스쳐 지나간 이귀의 어깨를 붙잡고 확 끌어당겼다.
꽈당!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진 이귀를 향해 추량이 연속해서 단검을 내찔렀다.
푹! 푹! 푹!
순식간에 이귀의 목과 가슴, 아랫배가 뚫렸다.
츄우우우웃!
목의 동맥이 파열되자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예기치 못하게 일귀와 이귀가 당하고 나자, 삼귀와 사귀가 급하게 옆으로 튕기듯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반대편에서 혈도오객은 사비강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
쉬쉬쉬쉭!
여러 자루의 비수가 누워 있는 사비강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찰나, 추량이 손을 불쑥 뻗더니 이귀와 삼귀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날아들던 비수가 방향을 슬쩍 틀면서 그대로 삼귀와 사귀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따다다당!
삼귀와 사귀가 얼른 검을 휘두르면서 날아드는 비수를 쳐냈다.
하지만 그중 한 자루가 사귀의 어깨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이런 젠장! 눈깔이 삐었나, 손이 삐었나! 대체 어디로 던지는 거냐!”
사귀가 악에 받쳐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어이가 없는 건 혈도오객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사비강을 향해 던진 암기가 어째서 삼귀와 사귀에게 날아간단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혈도오객이 당황해서 잠깐 주춤거리는 사이, 사비강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아우…!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사비강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놀랍게도 추량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말했잖아. 주인은 호위무사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지금은 내가 호위무사였고.”
추량의 입에서 들린 목소리는 바로 사비강의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혈도오객과 삼귀, 사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사실 두 사람은 셰이프 스위치(Shape Switch) 마법을 이용해서 외모를 바꾼 상태였다.
거기에 옷까지 바꿔 입은 후 들고 있던 검집을 천으로 둘둘 말고 나오니 그야말로 감쪽같을 수밖에.
어디 그뿐인가?
사비강은 최대한 추량과 비슷한 기도의 수준을 유지했고, 추량 역시 평소 사비강의 기도를 흉내 냈다.
그러다 보니 십보사귀와 혈도오객은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미처 눈치 채지는 못했다.
추량은 추종과 조작술의 달인이었고, 사비강은 초절정 고수의 영역에 이르러 있었으니, 서로를 흉내 내고 조작하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추량이 사비강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런데 정말 멋있었습니다.”
“나도 알아.”
“아까 저한테 날아오던 암기는 어떻게 하신 겁니까?”
추량이 사비강의 동작을 따라하려는 듯 손을 옆으로 휙휙 저었다.
사비강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텔레키네시스 마법이다. 아직 너는 쓸 수 없는 난이도지.”
“아! 손대지 않고 물건을 막 자유자재로 옮기는 것 말이군요!”
“그래, 하지만 조금 전 같은 경우는 방향만 살짝 틀어 놓은 거다. 보통 그렇게 빠르고 힘 있게 날아오는 것을 아예 멈추거나 역행하게 만드는 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엄청난 마나를 소모해야 하지.”
“과연 그렇군요. 방향만 살짝 틀어서 또 다른 적을 공격하게 하다니. 대단한 응용력입니다, 사부님!”
한편, 두 사람이 태연하게 떠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곱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일귀와 이귀가 죽어서 눈이 뒤집힌 사귀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이 썩어 문드러질 놈들이 우리를 개무시해?”
찰나, 사비강이 손을 불쑥 뻗으며 말했다.
“응용하는 법을 하나 더 알려 주지.”
그러고는 손을 휙 젓자, 일귀의 복부에 꽂혀 있던 베르타스가 쑤욱 뽑혀 나오더니 달려오던 사귀의 목을 썩둑 베고는 사비강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툭, 데굴데굴…
푸츗, 츄아아아아!
목을 잃은 사귀가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