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귀환 마교관
241화
“항상 너무 바빴다는 거지.”
“바쁘다?”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추 당주는 늘 뭔가 바빠 보였지. 하지만 그 이상은 아는 게 없어.”
사비강이 악천괴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악천괴가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늘 서로 의견이 부딪쳤던 것으로 아는데 아는 게 없다니. 의외로 허술하군.”
“내가 독심술가도 아니고 어찌 사람의 마음속을 다 알겠나!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확신이 없다는 거지! 즉, 누군가를 안다고 자만하지 않는다는 거야.”
악천괴가 발끈해서 한 말이었지만, 사비강은 그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긴. 악천괴가 너무 쉽게 추희룡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면 오히려 그 정보를 신뢰하지 못했을 거다.
평생을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자의 속내도 알 수 없는 게 인간 아니던가?
철썩 같이 믿은 수하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니 경쟁 관계에 있던 악천괴가 추희룡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판단일 수도 있으리라.
“적어도 하나는 알았군.”
“뭔가?”
“추희룡이 속내를 드러내길 꺼리는 자라는 것. 내면이 그만큼 복잡한 인간이라는 것.”
“그것만은 나도 부정하지 않겠네.”
악천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은 그 외에도 추희룡에 대해서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다음 악천괴를 보내주었다.
적어도 악천괴를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추희룡이 외부 세력과 손을 잡은 정황은 없다.
하지만 이것 또한 확실하다고 볼 수는 없다.
추희룡이 그만큼 철두철미한 성격일 수도 있으니.
아직까지는 그가 설백을 구한 복면인과 한패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볼 수밖에.’
진실을 알고 싶으면, 진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방법이 가장 좋다.
결국 백호당을 다시 한 번 더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희룡이 없을 때 몰래 다녀오는 것이 좋으리라.
지난번 백호당을 찾았을 때는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 중에서는 마계 도구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추희룡의 반응으로 보아 마계 도구에 대해 뭔가를 아는 눈치라는 것만 확인했다.
만약 추희룡이 마계 도구를 가지고 있다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두었으리라.
‘그렇다고 먼 곳에 따로 보관해 두지도 않았을 터.’
역시 가장 의심 되는 곳은 백호당이다.
그렇다면 백호당 내에 어떤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기관을 해체하고 들어가려면….
“염.”
“말씀하십시오.”
사비강의 부름에 홍염이 대답했다.
“기관 장치를 좀 볼 줄 아나?”
“그런 곳을 드나드는 게 저와 귀영단의 일입니다.”
홍염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
그가 말을 덧붙였다.
“그중에서도 저는 일영입니다. 기관을 해체해 본 경험으로 따지면 저보다 많은 자도 드물 겁니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실력 발휘를 할 기회를 주지.”
“언제입니까?”
“아직은 아냐. 추후에 내가 알려 주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서 지역에서 사람을 한 명 찾아야겠다.”
“누구입니까?”
홍염이 더 따지지도 않고 물었다.
사실 강서 지역이라고 하면 그 넓이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한데 거기서 사람 한 명을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바닷가에 떨어진 바늘 찾기와 같은 격이다.
하지만 사비강이 거기까지만 말했다는 것은 더 이상의 정보가 없기 때문이리라.
사비강이 대답했다.
“조신량(曺信良). 그런데 이름 보다는 ‘연금신수(鍊金神手)’라는 별호로 찾는 게 더 빠를 거야.”
“연금신…수? 강호인입니까?”
처음 듣는 별호였다.
사비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일반인이다. 한때 대장간 일을 했던 자야.”
“아, 그럼 빨리 찾아낼 수 있겠군요.”
단지 이름 석 자만 가지고 찾으라고 하면 그야말로 난감할 뻔한 상황이다.
한데 나름 별호도 있고, 직업까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이만하면 귀영단의 정보력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비강은 희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글쎄. 그리 쉽게 찾기는 힘들 거야.”
**
보름 후.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있소.”
사비강의 말에 류여중이 눈살을 구겼다.
“또 입니까?”
“적서향을 뿌리고 싶으면 뿌리시오.”
‘이 인간은 적서향을 무슨 미혼향(迷魂香) 쯤으로 생각하는 건가?’
류여중이 내심 불만 어린 감정을 숨기며 물었다.
“이번에는 또 어딜 가십니까?”
“그건….”
“역시 비밀이겠지요?”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어서.”
‘그놈의 사생활…!’
기도 안 차지만 류여중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사비강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대신 이 기회를 통해서 이제 확실히 노릴 것은 노려야 한다.
지난번에도 그리 순순히 사비강을 보내준 것은 반드시 이런 일이 한 번은 더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은 사비강의 성격을 볼 때, 언젠간 또 혈사련 영역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류여중이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매번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흐음. 그건 진짜 곤란한데.”
“어째섭니까?”
“자주 이럴 것 같거든.”
역시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다.
류여중은 지금이 거래해 볼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뭐요?”
“어려운 건 아닐 겁니다. 정도맹에서의 사비강 교관이 가진 지위도 있으니.”
“그러니까 조건이라는 게 뭐요?”
“홍묘님. 정도맹에 사로잡혀 있는 홍묘님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자유를 보장해 주시지요.”
뜻밖의 제안에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침음을 흘렸다.
류여중은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홍묘에게도 이만큼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혈사련과 비밀스러운 접촉을 시도하기도 훨씬 수월해진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정도맹을 염탐하기에도 훨씬 수월해지리라.
반면 현재의 혈사련은 정도맹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었다.
정기적으로 정도맹은 수뇌 인사를 파견해서 각지의 분타를 둘러보거나 혈사련으로 와서 당당하게 정탐을 하곤 했던 것.
전쟁에서 패한 입장이니 어쩔 수 없지만, 군사의 입장에서는 이대로 정보의 비대칭을 묵과할 수만은 없었다.
그러니 이참에 홍묘를 통해서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잠시 후,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소. 그건 이번에 다녀오고 나서 정식으로 정도맹에 제안해 보겠소.”
‘됐군!’
류여중이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정도맹에 연락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칫 서두르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기에 꾹 눌러 참았다.
“다녀오신 후에 그 생각이 변하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물론이오. 어차피 나는 앞으로도 자주 돌아다닐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류여중이 어디선가 적서향을 가져와 사비강의 몸에 뿌렸다.
**
만통각을 나선 사비강은 곧장 추량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한편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으니….
“정말 주제 파악을 못하는 놈이로군요. 아예 천상궁을 제집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를 뿌득 갈면서 말하는 자는 다름 아닌 흑운방의 소방주 주기현이었다.
그는 일전에 사비강에게 된통 당하고 나서 마음 깊은 곳에 앙금이 남아 있던 터였다.
그의 곁에 선 남자는 바로 현무당주 독고진.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류 군사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놈을 저리 놔주시는 건지. 쯧.”
“어쩌면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주기현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뿜었다.
독고진이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지.”
혈사련 밖에서 놈이 암살당하면 정도맹에서도 책임을 추궁하기가 애매해지리라.
어쩌면 사비강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나저나 괜찮겠는가? 천만 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닐 텐데.”
독고진의 물음에 주기현이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놈이 뿌린 돈이니 놈을 위해 써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 말도 일리는 있군!”
마침 두 사람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도착했습니다.”
“가지.”
독고진이 비열한 웃음을 머금고는 돌아섰다.
**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암실(暗室)에서는 진득한 살기가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독고진과 주기현은 그 숨 막힐 듯한 살기를 즐기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군.’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뿜어지는 살기만으로도 그들의 실력을 대략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애초에 독고진이 부른 청부 살수들은 모두 열 명.
하나의 조직체에 의뢰한 것은 아니다.
정파라면 이를 가는 사파의 고수들 중에서도 청부 살인을 받는 자들에게 연락한 것이다.
“해서 그놈 모가지에 걸린 상금이 얼마요?”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연 자는 다름 아닌 십보사귀(十步四鬼) 중에서도 맏형인 일귀(一鬼)였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열 보 안의 모든 것을 죽일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은 무시무시한 별호다.
“천만 냥이오.”
대답한 자는 다름 아닌 주기현이었다.
그는 이번 청부를 위해 독고진에게 암살 고수들을 모집해 달라는 부탁을 해두었다.
그렇잖아도 사비강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독고진이었기에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주었고, 총 열 명의 고수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언제 또 사비강이 천상궁을 나설지 알 수 없었기에 그는 열 명의 고수들을 인근에 상시 거주토록 했다.
그리고 오늘, 사비강이 류여중을 찾아갔다는 보고를 듣고 곧장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천만 냥…!”
십보사귀 중 막내인 사귀(四鬼)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 뿐만 아니라 암실에 모인 모든 살수들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천만 냥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기한은?”
탁한 목소리로 질문을 꺼낸 자는 다름 아닌 귀도살(鬼刀殺)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암살한 자가 모두 백 명이 넘었다.
백 명까지는 수를 하나하나 헤아렸지만, 그 이상이 되면서부터는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그래서일까?
목소리에서부터 혈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가 귀환하기 전까지면 충분하오.”
이번에도 주기현이 대답했다.
“그럼 더 물어볼 것도 없군. 바로 떠나지. 누구든 우리를 방해하면 가만 안 두겠다.”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까칠하게 말을 뱉은 자는 바로 혈도오객(血刀五客) 중 둘째인 이객(二客)이었다.
그러자 십보사귀 중 막내가 으르렁거렸다.
“흥! 저런 녀석들이 꼭 제일 먼저 뒤지더군.”
“어이, 내 혈도에 네 거시기 피 좀 묻혀 보고 싶은가보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독고진이 입을 열었다.
“네놈들이 서로 무슨 짓을 하든. 저놈의 목을 따고 나서부터다. 그것만은 명심해라.”
나직한 말투였지만, 임무에 들어가기도 전에 옥신각신하는 이들에 대한 불만이 오롯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사파 제일의 혈사련 현무당주가 아니던가?
날고 긴다는 살수라 하더라도 그의 경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귀도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주께서는 염려 마시오. 조만간 놈의 모가지를 선물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