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40화 (240/670)

# 240

귀환 마교관

240화

소천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불청객이 어째서 자기 방까지 들어왔단 말인가?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려는데,

“아, 앞을 막던 녀석들을 탓할 건 없습니다. 어차피 누구라도 막질 못했을 테니까.”

“……!”

“그만큼 당주님을 만나 뵙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이런… 정신 나간…!”

소천악의 뺨이 연신 씰룩였다.

폭발해 버릴 것 같던 분노도 너무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자, 오히려 방향을 잃고 가슴 속에서만 허우적거렸다.

사비강이 엎드려 있는 시종에게 눈길을 던졌다.

“어쩌실 겁니까?”

“……?”

“그 시종 말입니다. 하다못해 닭을 잡을 때도 고통 없이 단칼에 목을 자르는 법인데, 좀 불쌍하게 보여서 말입니다.”

그제야 소천악의 시선이 칼날 아래에서 벌벌 떨고 있는 시종에게 향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시종은 오줌을 지리기 직전이었다.

소천악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검을 갈무리했다.

“썩 꺼져라.”

“예… 예?”

시종이 얼떨떨하게 되묻자 소천악이 다시 열불이 뻗친 듯 이맛살을 팍 구겼다.

그 순간 사비강이 불쑥 나섰다.

“썩 꺼지라고 하지 않으시냐? 당주님과 내가 할 말이 있으니 나가 있어라.”

시종이 덜덜 떨며 소천악을 바라보았다.

괜히 사비강의 말만 듣고 물러갔다가는 또 누구의 시종이냐며 불 같이 화를 낼 것만 같았기에.

소천악이 눈을 지그시 감고는 슬쩍 고개를 끄덕여 허락의 뜻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당주님! 감사합니다!”

시종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는 부리나케 방을 나갔다.

소천악은 코웃음을 치고는 창가의 탁자에 앉았다.

요즘 들어 감정의 기복이 극도로 심해진 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부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저 황당한 사비강이 나타나고 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차를 내오너라!”

잠시 후 시녀가 차를 내왔다.

소천악이 찻잔 두 개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두 잔을 내오라고 했더냐?”

“손, 손님이 계시기에….”

“손님? 누가 손님이라는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시녀가 얼른 찻잔 하나는 도로 가져가려는데, 사비강이 불쑥 다가와서는 잔을 들었다.

“불청객이긴 하지만 이왕 들어온 거니 감사한 마음으로 잘 마시겠습니다.”

시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반면 소천악은 실소를 금치 못하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이것 봐라?’

하는 짓이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생각을 뒤엎고 있으니 이젠 화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짜증과 분노만 가득했던 일상에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었다.

시녀가 눈치껏 물러가자 사비강이 빙그레 웃으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소천악이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앉으라고 한 적 없소.”

“하하. 서 있으라고 한 적도 없으신 것 같아서.”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요?”

“그럴 리가요. 대화를 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기도 안 차군.”

소천악이 냉소를 머금고는 찻잔을 들이켰다.

최근 사비강의 행보에 대해서 대략이나마 전해들은 것이 있었다.

‘혈사련의 수뇌 인사들을 포섭하는 중이라지?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백호당까지 찾아갔다고 하더니….’

이젠 자신을 구워삶기 위해서 온 것이리라.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소천악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도맹에서 온 교관이라는 자가 주제도 잊은 채 설레발을 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니. 그게 사실이었군.”

“혹시 제가 늦어서 서운하셨습니까?”

“천만에!”

소천악이 버럭 소리치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그쪽이 하는 짓은 잘 알고 있소. 이것저것 뇌물을 먹여서 사람들을 구워삶으려는 개수작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오. 그딴 얄팍한 수법은 내게 통하지 않을 것이니 이만 돌아가시오.”

“제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생각인지 모르나, 내가 당신을 곱게 보내주는 건 본련과 정도맹의 관계를 생각해서인 줄 아시오. 행여나 월섬당주가 교관을 죽였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골치 아프니까. 적어도 의문사라면 모를까.”

“너무 야박하게 그러지 마십시오. 저도 혈사련에서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럴 뿐입니다.”

“후후. 그렇다니 더욱 잘못 찾아오셨소. 요즘 들어 내가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말이지. 지금은 애써 충동을 누르고 있는 중이니 어서 돌아가시오.”

“들어보시면 당주님께도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당주님이 가장 원하는 선물을 드릴 수 있는….”

“닥치고 썩 꺼지라고 하지 않았소!”

마침내 다시 분노가 터져 나왔다.

사비강이 던져 온 신선한 자극도 이제는 효력이 다한 모양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일어나 칼을 휘둘러댈 것처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손을 가늘게 떠는 것이 정말이지 충동을 애써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어떤 선물을 가져와도 나를 만족시키진 못할 것이오. 나 또한 당신에게 도움을 줄 만큼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소. 그러니 썩 꺼지시오. 더 이상 내 인내를 시험하면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될 거요.”

엄중한 경고였다.

그나마도 이렇게까지 분을 억누르는 자신이 대견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비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왜 그리 감정 기복이 심하십니까?”

“당신이 알 바가 아니지.”

“소유강(召有强).”

“……!”

이름 석 자를 꺼내자 소천악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주먹을 꽉 쥐고 어금니를 악 다문 표정이, 마치 당장이라도 사비강을 일격에 때려죽일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그 혀를 놀려 보라.”

“역시 그렇군요. 아드님 때문이군요.”

와락!

마침내 소천악이 사비강의 멱살을 쥐고 끌어당겼다.

“정녕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감히 네깟 놈이 내 아들 이름을 입에 올려?”

소천악에게서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득한 살기가 잔뜩 뿜어져 나왔다.

사비강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선 이걸 놓고 이야기하시지요.”

“아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군. 네놈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인내는 끝났다.

소천악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비강은 일절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소천악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아드님을 찾아드려도 말입니까?”

“……!”

소천악이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절망과 분노, 희망과 불신, 기대와 낙담….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비강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칠 년 전, 아들이 사라진 이후로 자신 앞에서 소유강의 이름을 입에 올린 사람은 없었다.

섣불리 그 이름을 올렸다가는 일격에 죽어 버리기 일쑤였다.

강호기행을 떠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소유강.

그 이름 석 자는 소천악에게 가장 아픈 상처가 되었다.

한데 사비강이 지금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그 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거다.

치밀어 오르는 살심과 일말의 희망이 소천악의 마음속에서 밀고 당기며 싸웠다.

사비강이 그 심리를 들여다본 것처럼 말했다.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 끈을 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부모 심정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네놈이 지금 나를 놀리려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희망을 드리는 겁니다.”

“희망?”

“제가 소유강을 찾아드리지요.”

“네깟 놈이 무슨 수로!”

“보름입니다. 보름 안에 찾아드리지요.”

소천악의 표정이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보름? 보름이라니.

지난 칠 년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찾지 못한 아들이었다.

혈사련주가 친히 각종 수색대를 모두 풀어 찾아보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끝내 찾지 못한 아들이다.

한데 단 보름 만에 아들을 찾아주겠다고?

사비강의 파격적인 발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름 안에 내가 찾아오지 못한다면 그땐 날 죽여도 좋습니다.”

“어떻게 내 아들을 보름 안에… 설마…!”

불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사비강이 선수를 쳤다.

“혹시라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아드님을 정도맹에서 어떻게 한 것은 아니니까. 그건 장담합니다.”

“한데 어째서 보름 만에….”

“제 정보통에 의하면 아드님이 위치한 곳을 대략이나마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곳을 집중 공략하게 되면 틀림없이 찾을 겁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소천악의 아들, 소유강은 현재 마계의 결계에 갇혀 있는 상태다.

원래 그가 발견되는 시점은 앞으로 약 팔 년 후인, 마계의 침공이 시작되고 나서였다.

그는 그 결계에 갇혀 무려 십오 년이나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이미 무림인의 절반이 죽은 상태였고, 그의 아버지인 소천악 역시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 후로 소유강은 마족들과 맞서 싸우면서 맹활약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죽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꺼내 주지.’

그렇다고 해도 장장 칠 년이나 아들을 찾지 못한 소천악으로서는 사비강의 호언장담이 허황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내 아들을 찾아낼 거라는 걸 어찌 믿….”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단, 저 또한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소유강을 찾게 되면, 그 녀석을 신생조로 편입시킬 겁니다. 그때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하하! 별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군.”

소천악이 사비강의 멱살을 던지듯 놓아 주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사비강을 죽인다고 한들 실종된 아들이 돌아오겠나?

“오늘은 피를 묻히기 싫군. 더 이상 헛소리 말고 썩 꺼지시오.”

소천악의 말에 사비강이 천천히 돌아섰다.

사비강은 알고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상은 지푸라기라도 건져 보겠다는 심정으로 자신을 놓아 줬다는 것을.

사비강이 방을 막 빠져나가려는 순간, 창밖을 보던 소천악이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강아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깟 게 대수겠소?”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약조한 걸로 알겠습니다.”

**

그날 밤, 홍염과 악천괴가 사비강을 찾아왔다.

악천괴가 방을 휘이 둘러보더니 창가로 가서 밖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참 상식을 깨는군. 볼모 주제에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을 줄이야.”

“누가 그러더군. 어디서든 장수하려면 변하는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하는 법이라고.”

사비강의 대꾸에 악천괴가 코웃음을 쳤다.

사실 그 말은 일전에 악천괴가 살막의 막주가 되고 나서 했던 말이었기에.

악천괴가 돌아서며 물었다.

“날 부른 이유는?”

“백호당주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서.”

“추 당주 말인가?”

악천괴가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자인지 아는 대로 말해 봐.”

“알고 말 것도 없지. 추 당주는 내가 아는 자 중에서 가장 모를 자니까.”

“가장 모른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대충 감이 오는 법이지. 한데 추 당주만큼은 좀처럼 감이 안 온단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군.”

“그게 뭐지?”

악천괴의 표정에 어딘지 묘한 웃음이 스며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