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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38화 (238/670)

# 238

귀환 마교관

238화

똑.

얼음처럼 차갑고, 유리처럼 투명한 검신 끝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사비강은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자신의 심장을 뚫은 베르타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온통 피에 젖어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헉, 헉, 허억…”

들숨과 날숨에 따라 어깨가 연신 들먹였다.

‘제길… 나도… 늙었군.’

쓴 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

하긴 이제 젊은 나이는 아니다.

마계에서 수십 년을 보냈다.

이곳의 시간은 중원의 두 배 이상이다.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자신을 따르던 수많은 수하들이 피범벅이 된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마계에 온 후로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자신의 오른팔로 끝까지 곁을 지키며 죽어간 헬무트조차 완전히 믿지 않았다.

의심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한데…

‘조금은 믿어 줄 걸 그랬군.’

쓸데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의심하던 수하들은 모두 마왕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었다.

자신을 지키려다가.

이제야 그들을 형제로 느끼다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사비강은 다시 자신의 가슴을 뚫은 베르타스를 보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칼날.

마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마공석을 갈아서 만든 칼.

거기에 온갖 주술까지 덧씌운 최고의 병기.

이 녀석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만 삼천 년이라고 했던가?

그런 녀석에게 심장이 뚫렸으니 살아남기는 글러먹었다.

그 뿐만 아니다.

현재 사비강의 몸은 수십 자루의 창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

두 다리로 아직까지 버티고 서 있는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슈비츠 폰 그렌탈.”

마왕, 타란트가 무감한 표정으로 사비강의 이름을 불렀다.

마왕이 직접 붙여 준 그 이름.

사비강은 욕지거리를 뱉으려고 했지만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참지 못했다.

“쿠웨에엑!”

시뻘건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타란트…!”

사비강의 얼굴이 지옥에서 갓 올라온 악귀처럼 무섭게 일그러졌다.

마왕이 두터운 손을 뻗어 사비강의 핏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슈비츠여, 많이 늙었군.”

“이 늙은이가 두려워 칼을 꺼내 들었나? 타란트.”

“글쎄. 인간의 간사함이 거슬렸을 뿐.”

“그걸… 인간 식으로 두렵다고 표현하는 거다!”

사비강이 버럭 소리치면서 베르타스를 콱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사비강의 전신에서 자주색 빛이 강렬하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강아! 강아!”

귀에 익은 목소리가 고막을 찔러댔다.

사비강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으음…?”

그는 잠시 지금의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여긴… 부신각?

그가 어리둥절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정신 차려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불쑥 튀어나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부신각주 진백이 허겁지겁 물건들을 챙기고 있었다.

그가 멀뚱멀뚱 앉아 있는 사비강을 보며 다그쳤다.

“이그, 답답한 것아! 뭘 그리 멀뚱멀뚱 앉아 있느냐? 어서 이것들 좀 챙겨라!”

“각주님, 왜 그러십니까?”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던 사비강은 흠칫거리고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목소리가 젊어졌다.

얼른 동경을 찾아서 보니 젊은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이때라면 마계의 침공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그때 다시 부신각주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대체 동경을 쥐고 뭐하는 거냐! 어서 짐을 챙기래도!”

“아, 예.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그 녀석들이 나타났다!”

“그 녀석들이라니요?”

“지옥귀들 말이다! 그들이 용천관에 나타났다! 어서 달아나야 한다! 혹시 내가 잘못되더라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라! 알겠느냐? 어서 이것도 챙기고!”

진백이 사비강의 품에 짐을 던져 주었다.

지옥귀.

‘그래, 이때는 마족을 지옥귀라고 불렀지.’

지옥에서 올라온 사자들처럼 닥치는 대로 중원인들을 죽여 댔으니까.

생각났다.

이날 밤이.

그래, 진백 각주는 자신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려다가….

“아!”

사비강이 얼른 손을 뻗어 진백을 붙들었다.

“각주님, 지금 나가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뭔 소리냐? 내 말 듣지 못했느냐? 지금 지옥귀들이 용천관에 왔다니까!”

“하지만 지금 나가면 죽습니다!”

“이곳에 있어도 죽는 건 매한가지다!”

“그게 아니라 기회를 봐서 소란이 잠잠해지면…!”

하지만 진백은 사비강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평소 겁도 많고 소심한 사비강이었다.

이럴 때 과감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바짝 웅크리는 게 사비강의 성격이었다.

그런 사비강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기다릴 리가 없었다.

“답답한 녀석! 내 뒤에 꼭 붙어라!”

진백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부신각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 순간,

콰자앙!

문짝이 부서져 나가면서 그림자가 들어왔다.

“으헉!”

깜짝 놀란 사비강이 침상 아래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아버지처럼 자신을 돌봐 준 각주가 눈앞에서 죽을 위기임에도 나서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생소한 복장의 상대가 부신각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부를 슬쩍 훑어보았다.

그가 쓰러진 진백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진백의 눈이 침상 아래에 숨은 사비강과 정확히 마주쳤다.

[숨도 쉬지 마라.]

진백의 희미한 전음이 들려왔다.

사비강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진백이 시키는 대로 호흡도 참은 채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그림자는 실내를 한 번 휘 둘러보더니 바닥에 쓰러진 진백의 머리를 잡았다.

다음 순간,

파지지직! 치지직!

강렬한 뇌전이 진백의 몸을 관통했다.

“크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솟구쳤다.

잠시 후 진백은 시커멓게 그을려진 채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옷자락이 터져 나간 가슴에는 길고 검은 흉터가 새겨졌다.

뇌전의 모양이었다.

‘지옥귀가 아니라… 놈들의 앞잡이가 된 무림인…!’

그런 놈들이 있다.

한둘이 아니다.

지옥귀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자진해서 그들의 앞잡이가 된 자들!

부릅뜬 진백의 눈은 여전히 사비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는 듯.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미 한 번 겪은 일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 떨림과 공포감은 여전했다.

진백을 죽인 그림자가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마침내 그가 침상 앞에 멈췄다.

‘숨도 쉬지 마, 숨도 쉬지 마.’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 듯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지금이라도 발목을 베어 버린다면?

아니다.

그랬다가 실패라도 하면 꼼짝없이 죽는다.

버티고 참아야 한다.

잠시 후, 발이 뒤로 돌아섰다.

그런데,

“헉!”

침상 아래로 낯선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찾았다.”

꽈르르르릉!

번개가 치며 천둥이 울렸다.

**

“헉! 헉, 헉…”

벌떡 일어나 앉은 사비강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빛이 번쩍이더니,

꽈르르릉!

천둥이 울렸다.

쏴아아아아!

빗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사비강은 침상에서 일어나 탁자로 걸어가 물을 마셨다.

목을 축이고 나니 조금 개운해졌다.

‘더러운 꿈을 꿨군.’

한 번은 지난 생에서 가장 화가 났던 순간이었고, 다른 한 번은 지난 생에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었다.

쩌저저정! 꽈르릉!

다시 천둥번개가 쳤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굵은 빗줄기가 밤하늘을 가르며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마침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연무장으로 튕겨 나가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곧이어 연무장에서 나뒹구는 그림자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신생조원들이었다.

이 와중에도 신생조원들은 사비강을 암살하기 위해 숙소로 잠입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온갖 결계가 중첩으로 적용되어 있으니 쉽진 않았을 것이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혈기왕성하군.”

얼마나 올라왔을까?

자신이 있는 곳은 칠 층이다.

육층까지 방어용 결계가 쳐져 있는데,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장치들이 준비되어 있다.

오늘쯤이면 사 층까지 뚫었을까?

하여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저 근성하나만큼은 알아줘야겠다.

이것도 결국 마계의 침공을 대비한 수련이다.

언젠가 추량이 물어 온 적이 있었다.

“왜 초절정 고수나 수뇌 인사들을 상대로는 그러한 사실을 알리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어째서 어린 생도들에게나 가르치고, 저런 망나니들에게만 가르쳐 주는 겁니까?”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질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그 답을 스스로도 알 것이다.

마왕이 그러지 않았던가?

늙은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간사함이 신경 쓰일 뿐이라고.

그 간사함이라는 것은 결국 살아온 세월과도 비례하기 마련이다.

어린 생도들은 아직 떼 묻지 않은 백짓장과 같다.

그들은 그리는 대로 그려진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을 산 늙은이들은 다르다.

이미 너무 많은 떼가 묻었다.

향후 십 년 후에 마계가 침공할 테니 나를 따르라?

미친 놈 취급할 것이다.

해서 막강한 마법을 보여주고 믿어 달라고 하면?

사악한 마공을 익혔다면서 무림의 공적이 되어 쫓겨 다닐 판이다.

이 바닥을 왜 모르겠나?

강호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기에 그렇다.

기득권은 절대로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므로.

‘하긴 나 같아도 믿을 수 없겠지.’

그렇다고 어린 생도들을 한꺼번에 교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차근차근 밟아 가야 한다.

아직 떼 묻지 않은 생도들.

망나니로 낙인 찍혀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저런 녀석들.

그런 녀석들을 키워 가는 거다.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는 좀 불안하겠어.”

사비강이 손을 들어 보았다.

오늘 옹기승이 수면검공을 펼치면서 옷깃을 베었다.

그때 손목에 아주 희미한 상처가 생겼다.

녀석의 검기에 긁힌 것이다.

평소라면 그 정도도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하이 레벨의 마법을 왕창 쏟아내면서 집중력이 다소 흐트러진 면도 있었다.

설백을 죽이면서 삼 갑자의 공력을 추가로 얻었지만, 아직은 하이 레벨의 마법을 연속으로 쓰기에는 역시 힘겨운 부분이다.

좀 더 힘을 길러야 한다.

‘슬슬 다시 움직여 볼까?’

고개를 들어 비가 쏟아져 내리는 하늘을 보았다.

번쩍, 꽈르르르릉!

다시 한 번 천둥번개가 울렸다.

‘뇌전이라….’

기분 나쁜 꿈.

전생에서 진백은 마족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무림인에게 당했다.

진백을 죽인 그 무공에 대해서 조사해 봤다.

가슴에 뇌전의 흔적을 남기고 모든 기력을 빨아들이는 사악한 무공.

뇌전흡살공(雷電吸殺功).

이름도 잊지 않는다.

칠무종(漆無終).

귀영단에게 칠무종을 찾으라고 지시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소식은 없다.

동명이인은 찾았지만 뇌전흡살공을 익힌 자가 없다는 게 문제다.

‘뭐, 언젠가는 그 녀석도 밝혀내겠지.’

조급함을 버리고 하나씩 하는 거다.

“그럼, 우선은 백호당주부터 만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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