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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36화 (236/670)

# 236

귀환 마교관

236화

설백이 마수로 변하면서 의도치 않게 오러 웹에 빠져들었다.

보통의 경우 오러 웹에 빠져들면 그 마수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심연으로 들어가서 싸우게 된다.

물론 정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이다.

이때 싸움에서 지게 되면 마수의 먹이가 되고 만다.

모든 기를 빨려서 가죽만 남은 채 배설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긴다면 그 반대로 보상이 따른다.

구하기 힘든 마수의 신체 일부를 보상으로 받거나, 녀석들이 품고 있는 마공석, 또는 마나를 흡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설백은 마수가 아니었다.

대체 어떤 대법을 이용해서 그를 마수처럼 변형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근본은 인간이었다.

때문에 오러 웹이 펼쳐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러 웹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마수가 아닌 인간에게서 어떤 보상을 받아낼 수 있겠나?

한데 뜻밖의 보상이 발생했다.

오러 웹을 만들어낸 기운은 세 장의 스크롤로 만들어진 오러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비강은 설백의 심연에 자리한 ‘거짓의 군주’와 싸웠다.

심연에 존재하는 적은 상대의 정체성에 따라 다른 법인데, 설백의 경우에는 그것이 바로 ‘거짓의 군주’였다.

치열한 접전 끝에 사비강은 거짓의 군주를 제압했고,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 주어진 것이다.

그 보상은 바로 설백이 그동안 쌓았던 내공!

비록 그의 인성이 거짓과 기만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고는 하나, 익힌 내공만큼은 무척 정순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오 갑자의 내공이 사비강의 몸으로 흘러들어 왔다.

사비강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매우 기초적인 토납법으로 대기에 떠도는 기운들을 흡수해 갔다.

오 갑자의 내공을 모두 흡수하기란 어려운 일일 터.

그 중 절반만 받아들인다고 해도 대단한 성과다.

실제로 싸우는 과정보다 이 보상을 흡입하는 데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심연의 공간에서 내공을 거의 다 흡수했을 때, 마침내 오러 웹이 깨져 나간 것이다.

심연의 어두운 하늘이 갈라지면서 빛이 쏟아졌고, 사비강은 현실로 돌아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비강의 말대로 설백은 곱게 죽지는 못했다.

그는 모든 기력을 사비강에게 빼앗기며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어 갔다.

마른 장작처럼 변해 버린 설백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사비강이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는 내쉬었다.

삼 갑자.

설백을 죽이면서 무려 삼 갑자의 내공을 얻었다.

물론 온전히 흡수할 수만 있었다면 오 갑자를 얻었으리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삼 갑자만 해도 대단하다.

보통의 무인들이 평생을 수련해도 얻기 힘든 양이다.

설백을 이렇게 만든 복면인들은 이런 현상을 예측이나 했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든.

중원인이라면 오러 웹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을 테니까.

지금도 모를 것이고.

사비강이 고개를 스윽 돌렸다.

한쪽 구석에는 머리가 깨진 복면인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피투성이가 된 추량이 쓰러져 있었다.

사비강이 추량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다짜고짜 제자로 삼아 달라고 졸라대던 녀석.

살 길인지, 죽을 길인지도 모른 채 따라가겠다고 큰 소리를 치던 녀석.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사비강이 추량의 옆구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역시나 추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망자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사비강이 좀 더 발에 힘을 주었다.

툭툭.

“일어나, 인마.”

“…….”

“그만 일어나라. 확 걷어차 버리기 전에.”

그러자 놀랍게도 죽었던 추량이 게슴츠레 눈을 뜨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

“…끝났습니까요?”

누군가 보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시체가 말을 하다니!

“그래, 끝났다. 너도 참 대단하다. 지금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냐?”

“후아! 좀 무서워야지요! 생전 처음 보는 누에고치 같은 게 떡 하니 나타나 있으니, 뭐가 어떻게 될 줄 몰라서 끝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죠!”

“잘났다.”

“그나저나 반조가 준 사령환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설 장로에게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추량의 생존 비결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그랬다.

추량은 설백을 만나는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설백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살기.

그건 살려 달라고 빌어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죽도록 얻어터졌다.

그렇게 나가떨어지는 순간, 추량은 입속에 넣어 둔 사령환을 삼켰다.

설백과 마주친 후 달아나면서 입안에 넣어 둔 것이었다.

사령환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추량은 누가 봐도 죽은 시체나 다름없었다.

설백은 추량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실망했다.

죽도록 패긴 했어도 한 줄기 목숨은 붙여 놓고 사비강을 만났을 때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마침 숲을 가로지르며 달아나는 그림자를 보았다.

홧김에 일장에 때려죽였더니 웬걸 사비강이 나타난 게 아닌가?

“그런데 사부님의 그 말은 너무 심했습니다!”

“내가 뭘?”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어도 맘이 아픈 법이라고 한 거요!”

“그럼, 넌 개 따위는 죽어도 상관없냐?”

“그게 아니라 비유가 문제라고욧! 하필 왜 절 개랑 비유하냐고욧!”

사비강이 미간을 슬쩍 찡그렸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추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그나저나 저건 대체 뭡니까? 사부님이 이기신 거죠?”

그가 알처럼 굳었던 오러 웹의 껍데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껍데기는 이제 거의 다 녹아 버려서 희고 걸쭉한 물처럼 변한 상태였다.

“보다시피. 당연히 이 몸이 이겼노라.”

“그럼, 어서 여길 벗어나죠. 그래도 전 이렇게 사부님이 절 구하러 올 줄 알았습니다!”

“뭐, 널 구하려던 건 아니지만 마침 잘 됐군. 이리 와.”

사비강이 추량을 끌고 머리가 박살난 복면인에게 다가갔다.

“누군지 알아내.”

“흐음.”

이번만큼은 추량도 전에 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시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가 한참이나 시체의 특징을 살피더니 사비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느 쪽에서 왔죠?”

“저쪽.”

“제 몸 좀 치료해 주세요.”

“받아라.”

사비강이 품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던져 주었다.

얼른 받아내서 들이마신 추량이 잠시 운기해서 몸을 점검하고는 눈을 떴다.

다음 순간,

팟!

그가 몸을 날리면서 복면인의 흔적을 되짚어 나갔다.

디딤 발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경공의 흔적도 다르게 남는 법이다.

그렇게 장원 근처까지 다다른 추량이 사비강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건 혈사련의 야조대(夜鳥隊)에서 사용하는 경신법입니다.”

“야조대?”

“예, 총 서른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죠.”

“야조대는 어느 소속이지?”

“백호당입니다.”

사비강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렇군. 따라와라. 아, 그 피 좀 닦고.”

사비강은 다시 추량을 이끌고 하오문의 분타인 장원으로 향했다.

장원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소화가 사비강을 알아보고는 얼른 달려왔다.

“어떻게 됐나요? 이자인가요?”

그녀가 추량을 노려보며 물었다.

달아난 복면인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놓쳤어.”

물론 거짓말이었다.

피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소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럼 이자는…?”

“내 제자야.”

“제자…?”

소화는 사비강의 정체가 원래 교관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생도를 가리켜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다만 제자라는 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으니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시선을 의식하고는 사비강이 말을 덧붙였다.

“도중에 사고가 좀 있었어. 여기 일과는 무관하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런데 이자는 왜…?”

“이 녀석이 흔적을 찾아보고 배후를 알아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어. 이곳에서 벌어진 참상에 대해서 조사하려고 데려왔지.”

“그래서 이렇게 늦었군요.”

소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량은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벽에 남은 칼자국,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 부서져 나간 기둥, 잘려 나간 옷자락, 사체에 남겨진 상처들.

이 모든 것은 증거가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입만 다물고 있을 뿐, 몸으로 말한다.

한참이나 살핀 추량이 사비강에게 다가왔다.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소화도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기다렸다.

“뭔가 좀 알아내셨나요?”

“저어… 그게 좀 애매합니다.”

“애매하다는 건?”

사비강의 질문에 추량이 대답했다.

“습격한 자는 모두 서른 명 정도입니다.”

“그렇게나!”

“모두 무공 수준이 절정 이상입니다. 초절정 고수도 더러 보입니다.”

소화는 이제 가녀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토록 고강한 무공을 지닌 고수들이 왜 이런 하오문의 분타를 습격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비강은 그녀의 반응에 주목했다.

‘어쩌면 이 여자는 별로 아는 게 없을 지도 모르겠군.’

사비강이 생각을 거두고는 물었다.

“사용한 무공은?”

“그게… 처음 보는 흔적들입니다. 무척 생소한 것들이어서 도대체 어떤 무공을 사용한 건지 감이 안 잡힙니다.”

“혈사련은 관련이 없나?”

“예, 혈사련 쪽의 무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무공은 아닙니다.”

“정도맹 쪽도?”

추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역시….

‘그때의 복면인들인가?’

문제는 그 복면인들의 정체를 아직 모르니 답답한 노릇이다.

사비강이 소화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나비 장수의 시체가 여기에 있나?”

소화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아무래도 그들이 데려간 모양이에요.”

“나비 장수가 파는 물건들에 대해 아는 바는?”

“거기까지는 저도 몰라요.”

사비강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짓을 말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하긴. 이 여자는 소화루의 주인일 뿐이다.

모르긴 해도 나비 장수는 이 여자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리라.

어쩌면 분타주보다도 더.

사비강이 소매를 찢어 건넸다.

“우린 이만 가지. 만약 나와 더 할 얘기가 있다면 소화루 창가에 이걸 묶어 두도록. 사람이 찾아갈 거야.”

소화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었다.

이제 하오문과 볼일은 끝났다.

남은 건 그들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

협박을 해서 원하는 정보를 캐낼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는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지금 같은 경우는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이리라.

“돌아가자.”

사비강을 따라 추량이 걸음을 옮겼다.

**

척!

숲속 공터에 한 인영이 내려섰다.

그는 얼굴이 온통 붉은 적면인이었다.

그가 주변을 휘이 둘러보았다.

“……!”

눈살을 찌푸린 그가 메마른 고목처럼 쓰러져 있는 설백에게 다가갔다.

입을 쩍 벌린 채 피골이 상접하여 죽은 시체.

살아 있을 때의 그 야심찬 욕망을 떠올려 본다면 실로 허무한 죽음의 현장이었다.

낙엽이 마구 굴러 와서는 그 얼굴에 부딪쳤다.

“이게… 뭐지?”

죽었더라도 변형이 되어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설백의 모습은 살아있을 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머리카락이 뜯겨져 나간 자리를 보면 신체 변이가 이루어지긴 했던 모양이다.

한데…

적면인이 쪼그려 앉아서는 바닥의 젖은 흙을 매만졌다.

조금 일찍 와 보았더라면 그곳에 남아 있던 하얀 액체를 보았겠지만, 지금은 모두 흙속에 스며들었는지, 증발을 해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설백이 죽었다.

사비강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한쪽 구석에 머리가 터져 죽은 시체도 있었지만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적면인이 설백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음 순간,

“화염구(火焰球)!”

그가 말을 뱉자 놀랍게도 불덩이가 날아가더니 설백의 시체에 작렬했다.

콰앙! 화르르륵!

적면인의 눈동자에 타오르는 설백의 시체가 비쳤다.

그가 날린 화염구는 분명 파이어볼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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