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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34화 (234/670)

# 234

귀환 마교관

234화

죽립을 눌러 쓴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탁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클클. 이게 누구신가? 날아드는 날파리를 때려잡았더니, 반가운 얼굴이 쫓아오고 있었군.”

“설백…!”

사비강이 미간을 좁히고는 설백을 노려보았다.

이런 곳에서 설백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사비강이 시선을 돌려 달아나던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터져 나가 즉사한 상태.

‘설백과 저 복면인이 한 통속은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면 그날 설백을 구했던 복면인들과 저 복면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하면 대체 누구지?

의문을 가지며 설백을 노려보던 사비강은 그의 왼손을 보고는 흠칫거렸다.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설백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머리채를 아무렇게나 휘어잡고 있던 설백이 사비강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왼손을 보더니 히죽 웃었다.

“아아, 이거.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자네 제자라고 하던가?”

설백이 왼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머리채가 잡힌 추량이 축 늘어진 채 그의 손에 매달렸다.

한데 상태가 이상하다.

추량에게서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설백이 입매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천지분간 못하고 설치기에 손을 좀 봐줬더니 죽어 버렸지 뭔가?”

“……!”

사비강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었다.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설백이 이죽거렸다.

“이 녀석이 그러더군. 자신의 사부가 반드시 복수해 줄 거라고. 내가 어디에 있든 날 찾아낼 거라고. 그런데 진짜였군?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은 몰랐네.”

“…….”

“과연 사제지간의 정이란 대단하지. 클클클. 자, 그럼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 볼까나?”

말을 마친 설백이 손에 들린 추량을 휙 집어던졌다.

쿠당탕…!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진 추량이 사비강의 발아래까지 미끄러져 왔다.

퀭하게 부릅뜬 추량의 눈은 자신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만 같았다.

사비강이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는 추량의 목에 손을 댔다.

맥은 뛰지 않았다.

“수고했다. 그만 쉬어라.”

사비강이 추량의 눈을 감겨 주고는 일어났다.

스르르릉.

그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베르타스를 뽑아 들며 설백을 노려보았다.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클클. 과연 제자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군.”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어도 마음이 아픈 법이지.”

팟!

사비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찰나,

쩌엉!

설백은 코앞에서 날아든 베르타스를 검으로 막아냈다.

촤아아앗!

뒤로 밀려난 설백이 히죽 웃었다.

“늘 같은 방법으로 싸우는가?”

“그래도 될 만한 상대라면.”

“그렇다면 상대를 잘못 봤다!”

파앗!

이번에는 설백의 신형이 사라졌다.

마법은 아니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려든 것이다.

쉬이이이잇!

쩌엉!

다시 한 번 천둥 같은 마찰음이 울렸다.

펑! 파파팟!

두 사람의 일장이 서로 부딪치면서 손이 마구 뒤섞였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눈으로 쫓기도 힘든 현란한 몸놀림이 순식간에 오갔다.

파앙!

다시 한 번 기가 폭발하면서 두 사람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멀어졌다.

휘이이이잉!

격렬한 전투 사이의 휴식을 알리기라도 하듯 바람 한 줄기가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설백이 툴툴 웃었다.

“과연 그대는 대단하군. 대체 어떻게 그런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나이도 젊은 사람이.”

“너보단 오래 살았다.”

설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라보았다.

미쳤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멀쩡해 보였고, 농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상대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확실히 자네는 알 수 없는 인간이군.”

“누군가를 알 수 있다는 것만큼 건방진 생각도 없는 법이지.”

사비강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사이 설백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스크롤?’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설백이 꺼내 든 것은 마법 스크롤이었다.

그런데…

‘세 장을 한꺼번에?’

사비강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설백이 입매를 찢으며 말했다.

“긴장하시게. 보다시피 이번에는 세 장을 한꺼번에 사용할 걸세.”

사비강이 이맛살을 슬쩍 구겼다.

‘가능한가?’

설백은 오러의 속성을 잘 모른다.

스크롤을 찢어 일시적으로 오러를 대폭 흡수하게 되면 일종의 내공 상승효과가 생기는 건 확실하다.

다만 기존의 내공과 융합이 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해서 스크롤을 찢어도 하나씩 찢어서 사용해야 한다.

지난번에도 오러를 과다 흡수하면서 탈이 났던 것 아니었나?

한데 이번에는 세 장을 한꺼번에?

‘무슨 꿍꿍이지?’

한편, 설백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자신을 풀어 준 색면인들의 말을 떠올렸다.

“스크롤을 주겠소. 세 장까지 한꺼번에 사용해도 될 거요. 당신에게 우리가 대법을 시전했으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무슨 대법인지 물어봤지만 대답해주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했다.

세 장의 스크롤을 사용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신체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는 법.

그런데 그들은 분명한 대가를 요구했다.

“어차피 당신의 목숨은 우리에게 달렸소. 해독제를 복용하고 싶다면 사비강을 제거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 강화된 신체도 결국 시체가 되고 말 거요.”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사비강을 제거하는 것.

다행히 그 목표는 개인적인 복수와도 관련이 깊었다.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자, 그럼 제대로 해보자꾸나.”

부우우욱!

마침내 설백이 세 장의 스크롤을 겹친 채 찢어발겼다.

순간 세 장의 스크롤에서 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면서 설백의 콧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스으으으읍, 하아!”

잠시 후,

츠츠츠츳…!

설백의 몸에 금빛 줄무늬가 생겨나더니 그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났다.

곧이어 그의 이마에 선명한 마계어가 나타났다.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속성의 오러군.’

딱히 냉기나 열기를 지니지 않은.

하지만 세 장의 스크롤을 동시에 사용했으니, 어마어마한 양의 오러가 몸속을 휘젓고 있으리라.

보통이라면 고통에 겨워하다가 정신을 잃었을 텐데….

“하아아악!”

설백이 길게 숨을 내쉬며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

“후후후후! 힘이 넘치는구나!”

그는 전신의 혈맥을 따라 휘돌아가는 오러를 느꼈다.

과연 지난번과 달랐다.

일전에 계곡에서 스크롤을 사용했을 때는 오러와 내공이 서로 뒤엉키면서 상충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름 잘 융화시켜서 소화를 해냈지만, 오러 특유의 끈적끈적한 느낌은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급기야 지나치게 흘러넘치는 오러를 감당하지 못해 자멸할 뻔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던가?

한데 지금은 달랐다.

전신의 혈맥을 따라 오러가 강줄기처럼 흘러갔다.

끈적거리는 느낌은 이제 없다.

마치 오래전부터 단전에 쌓아 왔던 정순한 기운의 내공처럼 오러 역시 기경팔맥을 자유롭게 휘돌고 있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고, 양손에는 힘이 넘쳐난다.

“크하하하하하!”

그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먼 숲의 새들까지 푸드득 거리며 날아올랐고, 천지가 뒤흔들릴 만큼 쩌렁쩌렁 울렸다.

사비강은 설백의 몸에 변화가 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보통이라면 저렇게 세 장의 스크롤을 소화해 낼 수는 없으리라.

제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할지라도 스크롤 세 장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건 무모한 짓이다.

한데 설백은 전혀 이상이 없다.

“언제까지 놀라자빠져 있을 것인가!”

설백이 일갈을 터뜨리더니,

스팟!

그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기다.”

어느새 뒤에 나타난 설백이 그대로 검을 후려쳐 왔다.

사비강이 그대로 베르타스를 등 뒤로 돌려세우며 막았다.

쩌엉!

“크웃!”

사비강이 주르륵 미끄러지면서 겨우 멈춰 섰다.

쑤아아앙!

이번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오러가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힘은 강기와 마찬가지.

꽈앙!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터지면서 사비강이 다시 한 번 밀려났다.

설백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슈쾅! 꽈앙! 쩡!

연속된 공격으로 사비강을 궁지로 내내 몰아갔다.

사비강 역시 그대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쉬파파파팟!

베르타스가 어지럽게 허공을 갈랐고, 그때마다 설백은 이리저리 몸을 놀리며 피하거나 검을 맞부딪쳐 왔다.

확실히 설백은 지난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수십 합을 겨루었지만 승패는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사비강이 조금 더 밀리는가 싶다가도 어느샌가 설백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설백의 빠르고 강한 움직임을 벌에 비유한다면, 사비강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검법은 나비와 같았다.

벌이 매섭게 쏘아붙이면, 나비는 너울처럼 일렁이듯 공격을 피했다.

콰콰콰콰콰앙!

주변의 바닥이 움푹움푹 파여 나갔고, 커다란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격렬한 전투를 벌였을까?

“하아앗!”

사비강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그대로 베르타스를 쥐고 질주했다.

한결같이 부드러운 변초로 대응하던 사비강이 돌연 분위기를 바꿔 매섭게 치고 간 것이다.

설백이 얼른 검을 앞세웠다.

“까불지 마라!”

쉬이이이잇! 쩌어엉!

두 사람의 검봉이 정확히 마주치면서 천둥이 울렸다.

다음 순간,

짜자자작, 카차아앙!

설백의 검신이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서로에게 쏟아 부은 공력은 비슷할지라도, 그것을 담아내는 병기의 우월함을 따졌을 때는 베르타스가 훨씬 압도적이었다.

설백이 눈을 크게 부릅뜨는 순간,

츄아아아악!

베르타스가 설백의 팔을 길게 찢으며 지나쳤다.

“크우욱!”

사비강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휙 돌아서며 손을 뻗었다.

“마그마 블래스트(Magma Blast)!”

순간 뜨거운 고열로 뭉쳐진 불덩어리가 설백을 향해 연이어 발사됐다.

쏴앙! 쏴앙! 쏴아앙!

“크잇!”

설백이 얼른 양팔을 교차하면서 호신강기를 펼쳤다.

콰콰콰아앙!

세 번째 불덩어리를 막아냈을 때, 호신강기가 완전히 부서져 나가면서 네 번째 불덩어리가 그의 양팔에 작렬했다.

퍼엉!

“크아악!”

설백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가자 사비강이 곧장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소닉 바이브레이션(Sonic Vibration)!”

이는 음속으로 만들어진 진동의 구체를 소환하는 것.

쑤아아아앙!

구체가 날아들자 설백이 눈을 부릅뜨고는 일장을 뻗었다.

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구체에 그의 장력이 닿는 순간,

쏴사사사사삭!

공기가 강하게 진동하면서 설백의 오른팔을 갈기갈기 찢어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설백이 얼른 호신강기를 펼치고는 뒤로 훌쩍 물러나는 순간,

쉬이이이잇!

사비강이 무서운 속도로 그의 품으로 짓쳐들었다.

찰나,

푸우욱!

“끄억…!”

설백이 입을 딱 벌리고 눈을 크게 치떴다.

베르타스가 그의 복부에 꽂힌 채로 뿜어져 나오는 피를 꿀럭꿀럭 흡수해 갔다.

“이런… 개새…! 푸우우웃!”

다음 순간 설백이 피를 분수처럼 토해냈다.

쑤아아아악!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내고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설백의 목을 쳤다.

그런데,

까아앙!

날카로운 금속성.

사비강이 미간을 구기고는 검 끝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설백이 손을 들어 베르타스를 막아낸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그의 손은 어딘지 이상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마치 짐승의 발처럼.

‘저건…?’

까드드드득…!

다음 순간 설백의 몸이 기이하게 꺾이면서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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