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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30화 (230/670)

# 230

귀환 마교관

230화

“민아! 린아!”

인파를 헤집으며 나타난 사람은 아버지 설백룡(雪白龍)이었다.

“아, 아버지…!”

설수민은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수십 명의 어른들에게 둘러싸여서 숨 막힐 듯한 살기를 받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비틀거리자 설백룡이 얼른 부축해 주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설백룡이 다그치자 설수민이 울먹이며 대꾸했다.

“위지강과 호운평이… 흑… 린아를 겁간하려고 해서… 흐끅….”

자꾸만 울음이 터져 나와서 말을 제대로 이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아버지만 보면 울음이 섞여 나온다.

설백룡이 설수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 썼다. 동생 지키느라.”

“아버지….”

설백룡의 말에 결국 설수민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설서린은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머리를 감싸 쥐고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더니 다행히 그 발작 증세는 멈춘 듯했다.

설백룡이 설서린의 손에 들린 붉은 채찍으로 시선을 옮겼다.

채찍에는 진득한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저건 대체….’

대략의 사정은 보고를 해온 수하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설서린이 저 채찍으로 후기지수 두 명과 그 수하들까지 잔혹하게 죽였다고 했다.

“린아. 괜찮으냐?”

설백룡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채찍을 빼내려고 하자, 설서린이 움찔 거리며 물러났다.

“아비다, 린아.”

“아아….”

설서린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완전히 풀린 동공으로 설백룡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이 이 아이의 정신을 이렇게 집어삼킨 것일까?

설백룡이 눈살을 슬쩍 구기고는 돌아섰다.

“비켜 주시오!”

하지만 그때,

“강아! 내 아들 강아!”

“평아! 어디에 있느냐!”

위지세가의 가주 위지천(慰遲天)과 풍제문의 문주, 장청일(張靑一)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시체가 되어 널브러진 아들과 제자를 보고는 곧장 눈이 뒤집혔다.

그들 역시 수하들을 통해 이 끔찍한 사건을 전해들은 바,

두 사람이 설백룡을 보고는 일장에 때려죽일 듯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설 가야! 감히 내 아들을 죽여?”

“당신 아들이 먼저 내 딸을 겁간하려고 했소! 그게 명문 정파의 자제가 할 짓이란 말이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느냐! 네 딸년이 마공을 익혔다는 걸 내 모를 줄 아느냐! 그 사실을 숨기려고 감히 죽은 내 아들까지 모함해? 네놈이야말로 정도 문파의 가주라고 할 수 있느냐!”

“당치도 않는 소리!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오!”

하지만 상황은 설백룡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상대는 이 지역에서 권세를 떨치고 있는 위지세가의 가주.

게다가 위지세가와 어깨를 견줄 만큼 권위 있는 문파인 풍제문이다.

오래전부터 위지강과 호운평이 여인들을 겁간한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떠돌긴 했지만, 그때마다 두 문파는 헛소문으로 몰아가며 진화에 나섰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

설백룡의 표정이 굳어지는데, 풍제문주 장청일이 고함을 버럭 내질렀다.

“설 가주는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함부로 떠들지 마시오! 어찌 당신 아들의 말만 믿고 큰 소리 칠 수가 있소?”

“내 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소.”

“흥! 모든 부모가 그리 믿겠지. 하지만 그런 무모한 신뢰가 자식을 망치는 것이오! 더구나 설서린이 마공을 썼다는 걸 목격한 자가 한둘이 아니외다!”

“내 딸아이는 마공을 익힌 적이 없소!”

설백룡이 소리쳤지만 이미 눈이 뒤집힌 두 사람에게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닥치시오! 내 당장 저년을 찢어 죽이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거요! 아니, 찢어 죽여도 이 울분은 풀리지 않는다!”

아들을 잃었다.

그 어떤 말로 위지천을 설득할 수 있을까?

타앗!

위지천이 단숨에 날아올라 설서린을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

펑!

“크읏!”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가 위지천에게 일장을 날리며 막아냈다.

“여보!”

위지천을 막으며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설백룡의 아내, 엄소옥(嚴笑玉)이었다.

엄소옥이 눈을 날카롭게 치뜨며 위지천을 노려보았다.

“정말 실망이군요. 이 지역에서 으뜸가는 세가의 주인께서 이리도 분별없이 행동하시다니! 우리가 힘없는 가문이라고 멸시하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요?”

“이익…! 이 빌어먹을 연놈들이! 뭣들 하느냐? 저 마인들이 내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까지 해치려고 한다! 당장 쳐라!”

위지천이 명을 내리자 수하들이 우르르 나서며 포위했다.

장청일 역시 수하들과 함께 나서서 설백룡 일가를 완전히 포위했다.

사방에서 숨 막힐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설 가주. 실망했소. 정도인으로서 마공을 익힐 줄이야. 그러고도 망자에게 누명을 씌워 빠져나갈 궁리만 하다니. 쯧쯧.”

설백룡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상대는 이 지역에서 가장 권세 있는 문파의 수장들이다.

한데 두 문파의 후기지수를 저리 처참하게 죽여 버렸으니, 순순히 항복한다고 해도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터.

“민아, 동생을 데리고 여길 벗어나라!”

“하지만 아버지…!”

“어서!”

엄소옥도 적들을 노려본 채 일갈했다.

“가라! 아들!”

설수민이 울먹이며 설서린을 끌어안았다.

뭐가 정파이고, 뭐가 사파란 말인가?

잘못은 저들이 먼저 하지 않았던가!

가슴 속에서 울분이 솟구쳤지만, 설수민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설서린을 끌어안고 이 자리를 뜰 수밖에.

“가야 해. 린아.”

하지만 설서린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설수민이 애써 힘을 쓰는 동안에도, 설서린은 붉은 채찍만을 꽉 움켜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츠츠츠츳…!

설수민은 느끼지 못했지만, 설서린의 손등으로 핏줄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어차피 말로 통할 연놈들이 아니군! 죽어랏!”

위지천이 일갈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동시에 장청일도 날아올랐다.

두 문파 소속 무인들이 일제히 그 뒤를 따랐다.

쏴아아아아아!

칼바람이 파도처럼 휘몰아쳐 왔다.

“흐아아앗!”

“하아앗!”

설백룡과 엄소옥이 기합성을 터뜨리면서 맞부딪쳐 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애초에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일대일의 대결을 펼친다고 해도 위지천과 장청일은 두 사람보다 몇 수 위였다.

하물며 그 수하들까지 일제히 덤비니 몇 초식을 겨루기도 전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마침내 깊은 내상까지 입은 두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아악!”

“으윽! 민아! 어서! 린아를 데리고… 커헉!”

소리치던 엄소옥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자신의 목을 뚫고 튀어나온 검신을 보았다.

“어머니!”

설수민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울컥!

피를 토하는 엄소옥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입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가…!’

설수민이 눈가를 훔치고는 얼른 설서린을 안아들었다.

“제발…! 린아, 정신 차려! 가야 해!”

하지만 설서린은 여전히 넋을 놓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가 어찌된 일인지 바위보다도 무거웠다.

“린아…?”

그제야 설수민은 설서린의 상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뺨에 새겨진 줄무늬, 붉은 눈동자, 거뭇하게 물든 입술.

때마침 등 뒤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크아아악!”

황급히 돌아보니, 아버지 설백룡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있었다.

다음 순간,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느리게 보였다.

위지천이 칼을 휘둘렀고, 아버지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한참이나 굴러갔다.

“아버지이!”

설수민이 울부짖었지만, 설백룡은 더 이상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설수민이 입술을 꽉 깨물고는 설서린에게 돌아섰다.

그 순간,

퍼엉!

“크욱!”

설서린이 내뻗은 일장을 얻어맞은 설수민이 멀찍이 튕겨 나가며 나뒹굴었다.

“크윽…! 린아…!”

설수민이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며 설서린을 불렀다.

하지만 설서린은 그의 부름을 전혀 듣지 못하는 듯했다.

대신 그녀는 손에 쥔 붉은 채찍을 척 늘어뜨렸다.

촤촤촤촤촤촤앗!

붉은 채찍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났다.

가시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휘휘 굽었다.

“마…병기다!”

“마공을 익힌 년이다! 조심해라!”

“저항한다면 죽여도 좋다! 쳐랏!”

“우와아앗!”

순간 무인들이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안 돼!”

설수민이 절규하듯 외쳤지만, 그들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화르르륵! 화르르르륵!

촤, 촤아아아악!

설서린을 중심으로 불길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그녀를 덮쳐 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지가 찢어지고 화상을 입은 채로 나가떨어지는 게 아닌가?

“흐히히히히!”

귀신같은 웃음소리.

‘또… 또다!’

설수민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설서린이 서 있던 자리.

그곳에는 설서린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여인이 입매를 길게 찢으며 서 있었다.

팟!

다음 순간, 그녀가 당황한 채로 서 있는 위지천과 장청일에게 화살처럼 날아갔다.

츄아아아아악!

불길을 머금은 채찍이 두 사람의 목을 가르며 지나갔다.

**

츄아아아악!

불붙은 채찍이 사비강의 팔뚝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 뜨…!”

사비강이 얼른 물러나며 냉기 속성의 마나를 운용해서 소매에 붙은 불을 꺼트렸다.

하지만 숨 돌릴 틈은 없었다.

쉬르르르륵!

마칸의 꼬리는 집요했다.

아가리를 벌린 용처럼 연신 사비강을 집어 삼킬 듯 달려들었다.

슈카앙! 스카앙!

베르타스와 마칸의 꼬리가 연신 부딪치면서 소음과 연기를 피워 올렸다.

타다닷!

사비강이 재빨리 뒤로 물러서자, 이번엔 하늘로 솟구친 화룡이 포효를 하며 내려 꽂혔다.

콰르르르르!

투까앙!

수룡으로 변한 베르타스가 화룡의 머리를 쳐냈다.

화룡이 바닥에 처박히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투타타타!

따다당!

사비강이 얼른 베르타스를 휘둘러 날아드는 파편들을 쳐냈다.

파편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화염 속성 마나의 영향을 받아 불이 붙은 돌덩이였다.

사비강이 혀를 찼다.

‘귀찮아 죽겠군. 차라리 죽여 버려?’

사실 온힘을 다해 싸운다면 설서린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

다만, 그럴 경우 설서린을 살리는 건 포기해야 한다.

‘그러자니 아깝고.’

혼이 담긴 마계의 무기들은 주인을 직접 고른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마칸의 꼬리가 제대로 변형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녀석이 설서린을 어느 정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증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마칸의 꼬리는 저렇듯 본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설서린의 정신력이 마칸의 꼬리를 이겨낼 만큼 강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

하지만 설서린이 마칸의 꼬리를 지배할 수만 있다면…?

‘불패군단의 좋은 재목이 될 수 있겠지!’

역시 포기하기는 아깝다.

죽여 버리기보다는 이용하는 편이 좋다.

한데 저 미쳐 날뛰는 망아지를 어떻게 제압한다?

그러는 사이,

슈르르르르륵!

또 다시 성난 화룡이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사비강이 얼른 블링크를 시전했다.

팟!

갑자기 목표물을 잃은 화룡이 급하게 몸을 틀었다.

콰르르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바닥을 찍으며 방향을 튼 녀석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사비강을 찾아내고는 곧장 날아갔다.

‘지긋지긋한 놈!’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콱 움켜쥐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

‘가만, 조금 전에 분명히…?’

슈르르르륵!

화룡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사비강의 입매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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