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귀환 마교관
228화
벌컥!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추량이 뛰어 들어왔다.
마침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던 사비강이 눈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헉, 헉, 헉. 사, 사부님!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왜 그래?”
“그, 그게… 유송령이 이 앞에…!”
“뭔 소리야?”
“아무튼 빨리 나와 보세요.”
추량이 얼른 몸을 돌리고는 달려갔다.
사비강이 투덜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연무장에 다다른 사비강이 우뚝 멈추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언제 발견한 거냐?”
“저도 이제 막 발견했습니다.”
추량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대답했다.
두 사람의 눈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유송령이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꽤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던 그녀의 얼굴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퉁퉁 부어오른 모습이었다.
“교관….”
유송령이 간신히 고개를 들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구기고는 맞은편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설 남매냐?”
유송령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어터진 입가에서 피 섞인 침이 늘어졌다.
추량이 보다 못해 얼른 손수건을 꺼내 닦아 주었다.
유송령의 숨소리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사비강이 품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그녀의 입에 조금씩 흘려보냈다.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하지만 힐링 포션의 양이 부족해서인지 거짓말 같은 변화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많은 힐링 포션을 들이붓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모든 약물에는 복용법이 있고, 음식도 과다 섭취하면 소화 불량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현재 유송령은 기력이 무척이나 쇠한 상태.
그녀가 약기운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복용시켜야 한다.
자칫 약기운에 취하게 되면 나을 병도 낫지 못하게 되므로.
“다른 녀석들도 당했나?”
유송령이 다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공격했나?”
이번에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건 예상 밖이다.
다른 생도들이 합격술을 펼치면, 사로잡지는 못하더라도 호각 정도는 이룰 것이라 판단했다.
한데 모두 당했다니.
설 남매의 무위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다.
추량이 이를 뿌득 갈았다.
“그 설 남매, 정말 너무하군요! 같은 조원이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 순간, 의식을 잃은 유송령이 스르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얼른 부축하려던 추량이 눈을 부릅떴다.
“사부님…! 이거…!”
사비강 역시 눈에 힘을 주고는 유송령의 등을 보았다.
고꾸라진 유송령의 등은 옷자락이 완전히 찢어진 상태였는데, 새하얗게 드러난 맨살에 칼로 새겨 피에 젖은 글귀가 있었다.
교.관.님. 답례예요.
추량이 이를 빠드득 갈고는 말했다.
“이것도 설 남매 짓일 겁니다! 어떻게 이런 짓까지…!”
묵묵히 보던 사비강이 휘릭 장포를 벗더니 유송령의 몸을 덮어 주었다.
그가 곧 유송령을 번쩍 안아들었다.
막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적무린이 다가오더니 유송령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까지 혼자 온 모양이야. 추량이 아침에 발견했어.”
적무린이 이맛살을 슬쩍 구기고는 유송령을 덮은 장포를 들추어 보았다.
어지간해서는 표정의 변화가 없는 그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건…!”
“설 남매가 별로 귀엽지도 않은 짓을 하는군.”
사비강이 성큼 걸음을 내딛자 적무린의 시선이 쫓아왔다.
“어쩔 생각입니까?”
“제대로 귀여워해 줘야지.”
“그 녀석들은 다릅니다. 그냥 포기하는 게….”
사비강이 멈칫거리고는 돌아보자, 적무린이 깊어진 눈동자로 빤히 마주보았다.
“하나만 물어도 됩니까?”
“얼마든지.”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왜라….”
사비강이 유송령을 안아 든 채로 먼 산을 응시했다.
적무린이 말을 덧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 녀석들은 다릅니다. 그런 위험한 녀석들을 굳이 불러들이려는….”
“내가 찍었으니까.”
“……?”
“거창한 이유 따위는 없어. 내가 그 녀석들을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그게 이유라면 이유야.”
“그런….”
적무린이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추량이 얼른 달려가 사비강 곁으로 따라 붙었다.
[사부님….]
[어때? 좀 멋있었냐?]
[완전!]
전음을 주고받으며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적무린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
피투성이가 된 신생조원들이 일렬로 쓰러져 있었다.
그 앞을 설서린이 사뿐사뿐 걸었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간 설서린이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바위에 기댄 채 가물거리는 눈을 겨우 뜨고 있는 석탄강을 보며 생긋 웃었다.
“많이 아파?”
핏물로 범벅이 된 석탄강은 그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설서린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온갖 살기와 저주를 퍼붓고 싶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제 생기를 담아내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설서린이 턱을 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응.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어쩜 이렇게 말끔하게 나았지? 팔이 부러졌던 녀석도… 다리가 부러진 저 녀석도… 내상도 치료가 됐고.”
“괴이한 사술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어느새 뒤로 다가선 설수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서린이 돌아서며 물었다.
“하지만 그자는 정도맹에서 온 교관이라고 했는데요?”
“정파의 무인이라고 해도 사술을 익혔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
“그럼, 정말 나쁜 놈이네요?”
“후후후. 알잖느냐?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란 게 없죠.”
“그래.”
설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설서린이 갑자기 생각난 듯 휙 돌아섰다.
그녀가 쓰러진 조원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더니 가늘게 뜬 눈으로 중얼거렸다.
“오라버니,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부러진 뼈도 이렇게 멀쩡하게 붙고, 찢어진 상처도 흔적 없이 지워진 걸 보면요.”
“신기하긴 하구나.”
“혹시… 이거 절단 돼도 붙일 수 있을까요?”
설서린이 옹기승의 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설수민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답했다.
“글쎄다. 불가능하지 않을까?”
“오라버니, 우리 실험해 봐요!”
“실험?”
“네. 팔이 부러진 게 아니라 아예 잘려 버려도 다시 붙일 수 있는지!”
“하하하! 그거 재미있겠구나.”
“그렇죠?”
설서린이 들뜬 아이마냥 생글거리자, 의식이 남아 있는 조원들의 표정은 아예 사색이 되고 말았다.
‘저 미친 것들이 설마…!’
하지만 그 설마 하던 일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생글거리며 물러난 설서린이 손가락으로 쓰러져 있는 조원들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박자를 맞춰 중얼거렸다.
“어떤 것으로 할까요. 천지신명께 물어봅시다!”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가리킨 사람은 방각.
방각이 눈을 크게 뜨고는 소리쳤다.
“살, 살려줘! 나, 난 아니야!”
설서린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걱정 마. 죽이진 않을 거야. 그냥 잘린 팔도 다시 붙나 안 붙나 보려는 거야.”
“헉! 제,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호호, 오라버니. 이거 너무 재미있어요.”
“네가 좋으니까 나도 좋구나.”
설수민이 섬뜩한 미소를 그렸다.
설서린은 방각이 쥐고 있던 도를 뺏어 들었다.
“이왕이면 네 칼로 썰어 줄게.”
마침내 그녀가 방각의 어깨에 대고 힘을 주려는 찰나,
“못 붙인다.”
불쑥 들려온 목소리.
설서린이 움찔거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설수민 역시 뜻밖이라는 듯 미간을 좁히고는 공터에 나타난 낯선 상대를 보았다.
“교, 교관님!”
방각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사비강을 불렀다.
그제야 설서린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아하. 새로 온 교관이구나!”
“그래. 내가 너희들을 계도할 교관, 사비강이다.”
“흐응. 근데 못 붙인다는 게 무슨 말이야?”
사비강이 귀를 파면서 대꾸했다.
“너희들 흥을 깬 것 같아서 미안하다만. 잘려 나간 건 못 붙인다.”
“흐응. 정말? 해봤어?”
“해봤지.”
“아하하. 정말 이상한 교관이네. 별 걸 다 해봤대.”
“그보다 더 한 짓도 해봤지.”
“흐응. 정말 재미있는 교관이네. 그렇죠? 오라버니.”
“그렇구나.”
설서린과 달리 설수민의 표정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사비강을 보자마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군.’
마음을 놓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린아. 내 뒤로 돌아 서거라.”
“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걱정 말거라.”
설수민이 앞으로 성큼 나서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눈물겨운 오누이의 정이군.”
“그쪽이야말로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이군.”
“그러엄. 이 끈끈한 정이 없었더라면 너희들을 계도하려고 여기까지 왔겠느냐?”
“계도라…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헛걸음을 했다.”
“그거야 뭐, 두고 보면 알지. 난 벌써 너희들이 반성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데.”
철컥.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검집 채로 꺼내 들었다.
설수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검을 뽑지 않을 건가?’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어차피 두드려 팰 거라서 말이다.”
설수민이 실소를 머금고는 서서히 기수식을 취했다.
“헛소리를 듣고 헛소리를 떠드는 걸 보니 제 정신은 아닌 모양이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파밧!
설수민의 신형이 사라졌다.
쉬이이잇!
순식간에 허공을 가른 설수민이 사비강 코앞까지 날아와 발을 내질렀다.
팡!
사비강이 검집을 들어 설수민의 발길질을 막아냈다.
츠츠츠츠츳!
뒤로 밀려 나간 사비강.
한데 그가 자세를 바로 잡을 겨를도 없이 설수민이 다시 나타났다.
쉬이잇! 퍽!
촤아아앗!
설수민의 무릎을 팔꿈치로 막아낸 사비강이 한참이나 미끄러지며 멈춰 섰다.
설수민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과연 제법이군.”
윙윙. 윙윙.
그의 양손 끝에서 유성비가 원을 그리며 돌았다.
은잠사는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늘었기에 마치 비수 두 자루가 저절로 떠서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수민이 히죽 웃었다.
“설마 내게 유성비가 한 자루만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닐 테지.”
다음 순간,
삐잉! 삐잉! 삐잉!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가 싶더니,
피츗! 피츗! 피츗!
세 자루의 유성비가 사비강의 옷깃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세 자루!’
사비강이 곧장 설수민을 향해 달려갔다.
타다닷!
“겨우 세 자루로 놀라긴 이를 텐데.”
다시 설수민의 손끝에서 유성비가 날았다.
삐잉! 삐잉! 삐잉…!
어떤 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고, 어떤 건 곡선을 그리며 돌아왔다.
은잠사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겐 열 자루의 유성비가 있다.”
은빛 광선들이 사비강을 찢을 듯 쇄도했다.
그 순간,
팟!
사비강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으음?”
비수를 다루는 만큼 어지간한 움직임은 민첩하게 파악하는 설수민이었다.
한데, 이번만큼은 사비강의 움직임을 쫓을 수가 없었다.
그가 미간을 좁히고 서 있는 동안,
파파파파파팟!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던 유성비가 바닥에 마구 내려 꽂혔다.
그 직후,
“그게 어쨌다는 거냐?”
등 뒤에서 들린 서늘한 목소리.
콰앙!
사비강이 베르타스의 검집으로 설수민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
류여중이 돌아보았다.
“사비강이 설 남매를 찾아갔다고요?”
“예. 설 남매가 또 한 번 일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독고진이 입매를 치켜 올리며 대꾸했다.
그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후후후. 제아무리 잘났다 해도 설수민을 감당하긴 어려울 겁니다.”
“글세… 그건 어떨지….”
류여중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가 생각에 잠겨 있자 독고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설마 설 남매가 사비강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류여중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찻잔을 들었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설수민이 언제나 보호하는 설서린에 대해서.
진짜 무서운 건 설수민이 아니라, 설서린이라는 것을.
“문제는 설수민이 아닙니다.”
류여중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