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귀환 마교관
227화
“멀쩡하다고?”
설서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맹가숙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그, 그렇다더군. 그 교관이라는 작자가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그 녀석들은 상처 하나 없다더군.”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설서린이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설수민을 돌아보았다.
“오라버니, 어떻게 된 걸까요?”
“글쎄다.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구나.”
“참 희한하네. 혹시 교관이 거짓말을 한 건 아냐?”
“그건 아닌 것 같더군. 독고 당주가 직접 확인까지 했다고 하니.”
맹가숙의 대꾸에 설서린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미간을 모았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신생조원들을 박살냈다.
뼈가 부러지고 내상을 입은 자들이 수두룩했다.
석탄강과 옹기승마저 쓰러뜨렸을 때, 마침 맹가숙 일당이 나타났다.
하지만 맹가숙 일당은 감히 덤벼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 없이 약했다.
맹가숙 일당은 설 남매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설 남매가 쓰러뜨린 조원들을 모두 연무장으로 옮긴 것이었다.
이후 설 남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설수민이 설서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좀 더 지켜보자꾸나. 아무래도 사비강이라는 자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재미있는 자인 것 같으니.”
“네, 오라버니.”
설서린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
“끄으음.”
석탄강이 희미한 신음을 흘렸다.
악몽이라도 꾸는 듯 괴로운 표정을 짓던 그가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났다.
“헉!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가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았다.
설수민의 유성비가 복부를 관통했다.
한데…
‘상처가 없어?’
말끔히 나았다.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가만, 여긴 어디지?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살펴보았다.
사방이 막힌 공간.
그곳에 조원들이 반듯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송령!’
얼른 유송령을 찾아보니, 마침 한쪽 끝에 누워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달려가서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령!”
“으음…”
다행히 그녀가 부스스 눈을 떴다.
석탄강을 확인한 그녀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석탄강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도 알 수 없는 곳.
그러는 동안 바닥에 누워 있던 조원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다들 낯선 환경에 웅성거리는데,
“자자, 주목해라!”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 사비강이 서 있었다.
“잘들 잤나?”
한편, 조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비강이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여기는 지하 연무실이다. 너희들은 설 남매의 공격을 받아서 쓰러져 있었고, 내가 이곳으로 옮겨 치료해 주었다.”
조원들이 웅성거렸다.
“우리를 치료했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빨리….”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비강이 손뼉을 짝짝 마주치고는 다시 말했다.
“말이 되건 안 되건 일어난 일이야. 빨리 적응하는 녀석이 살아남는 법이야.”
“설 남매는 어찌 됐습니까!”
석탄강이 이를 빠득 갈면서 소리쳤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지금쯤 뭐 어디선가 놀고 있겠지.”
그러자 백공보가 눈썹을 찌푸렸다.
“우리를 구해준 게 아닙니까?”
“뭐 치료는 해줬지만 구해준 건 아니지. 너희들은 연무장에 쓰러져 있었으니까. 누군가 너희들을 거기까지 옮겨 둔 거지.”
사비강의 말에 조원들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이런 약한 모습을 하필이면 정도맹에서 온 교관에게 보이다니.
사비강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됐으니 지금부터 수업 내용을 변경하겠다.”
느닷없는 선언에 조원들이 모두 사비강을 보았다.
“지금부터 한동안 나를 암살하는 임무는 철회하지. 대신 너희들은 설 남매를 잡아오도록.”
“뭐라고요?”
조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백공보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장난합니까? 우리가 당한 걸 봤으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흥! 그 녀석들이 어떤 놈들인 줄 교관님이 몰라서 하는 소리지요. 우린 못합니다.”
방각도 일어나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불길처럼 번져 갔다.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툭 내뱉듯 말했다.
“이제 보니 근성도 없는 쓰레기들만 모였군.”
“뭐요?”
백공보가 발끈해서 소리치자, 사비강이 턱을 치켜들었다.
“내 말이 틀렸나? 얻어터지고 와서는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는데도 꼬리나 말고 있으면서?”
“흥! 무서운 건 그쪽이겠지! 막상 설 남매가 나타나니까 정말 죽을까 봐 두려워서 우리끼리 싸움이나 붙이려는 수작 아니요!”
“너 점점 말투가 거슬린다.”
“됐소! 난 이딴 생도 놀이는 집어치우겠소! 이 나이에 누구 밑에서 배우는 건 성질에 들어먹질 않아서 말이외다!”
백공보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그런데,
쫘자자자작!
계단을 오르기 직전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으면서 얼음 장벽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이스 월(Ice Wall) 마법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백공보가 얼른 물러나자, 어느새 그의 뒤로 다가선 사비강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옆구리를 얻어맞은 백공보가 그대로 나가떨어지면서 한참을 굴렀다.
“쿠웨에엑!”
바닥에 엎드린 백공보가 구토를 하면서 겨우 몸을 추슬렀다.
조원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이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말했다.
“말했을 텐데. 교관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고. 한 번만 더 막말을 뱉어 내면 주둥이부터 뭉갠다.”
그가 조원들을 스윽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맞을래? 아니면 말 들을래?”
그러자 한쪽 구석에서 잠자코 있던 석탄강이 스르르 일어났다.
“그 녀석들을 이기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조원들의 시선이 사비강을 향했다.
석탄강의 눈이 불덩이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유송령을 이렇게 만든 설 남매에 대한 증오심으로 들끓고 있는 중이었다.
사비강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답했다.
“글쎄. 지금보다 더 강하게는 만들어 주지. 그게 내 일이니까.”
“그럼, 해보지요.”
그러자 옹기승도 부스스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뭐… 저도 한 번… 해보는 쪽으로… 쿠울…”
이쯤 되자 몇몇 조원들도 도전하겠노라 나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공보처럼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조원들도 있었다.
사비강이 불쑥 입을 열었다.
“좋다. 아직까지 망설이는 녀석들을 위해서 포상금을 주도록 하마.”
“포상금 말입니까?”
“그래. 방황하는 동기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니, 그에 따른 포상금을 지급해 주지.”
그러자 백공보가 다시 코웃음을 쳤다.
“흥! 돈 천 냥쯤 던져 주고 우리가 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
“백만 냥 준다.”
“…….”
“그 녀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 녀석에게는 백만 냥을 주마.”
조원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썩어 나기에 이렇게 물 쓰듯 한단 말인가?
말이 백만 냥이지, 평생 동안 아무 일 안하고도 놀고먹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닌가?
“뭐, 동료를 바른 길로 인도한 것에 대한 대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데려오겠습니다.”
조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더 이상 망설이는 자는 없었다.
돈이라면 지옥 불에도 뛰어들 흑도의 무인들이 아니던가?
십만 냥 아니, 일만 냥만 되도 엄청난 돈이다.
합격술을 써서 잡은 후 나눠 가져도 될 문제다.
사비강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좋아, 어느 정도 결심이 선 것 같군. 그럼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개선해야 할 점부터 알려 주마.”
**
“형님, 정말 감축 드립니다! 우리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하하!”
모유명(毛幽冥)이 연신 웃으며 재잘거렸다.
그 곁을 나란히 걷는 이두룡(李頭龍) 역시 기분이 좋은 듯 싱글벙글 미소 지었다.
“후후. 다 네 덕분이다.”
“에이, 별 말씀을요. 다 형님이 강해서 그런 거죠.”
“그걸 부정하진 않겠지만, 네 협조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이 자리까지 올랐겠냐?”
“과찬입니다, 형님.”
“녀석, 겸손한 것도 날 닮았구나.”
“하하하. 그런 가요? 아무튼 광룡단(狂龍團)의 제 십삼 대주가 되신 것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고맙다. 오늘은 내가 한 잔 거하게 쏘마!”
이두룡이 모유명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지난 수년 간 얼마나 고단한 세월을 보냈던가?
명색이 혈사련 소속 무인이긴 했지만, 지방 분타의 자잘한 부대에 속해서 활동하던 두 사람이었다.
한데 오늘 드디어 총타인 천상궁으로 와서 광룡단 소속으로 배정 받은 것이다.
그것도 대주와 조장이라는 신분으로!
물론 광룡단만 해도 대주가 열 세명.
그 중에서도 가장 말단이지만, 이 한 걸음은 성공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터였다.
“하하하! 오늘은 계집년들까지 내가 쏘마!”
“정말입니까?”
모유명이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묻자 이두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오늘은 물 좋은 곳으로 가서 계집년들을 마음껏 주무르….”
“형님?”
이두룡이 말을 꺼내다 말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모유명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 시선을 쫓아 보니, 과연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여인이 저잣거리를 사뿐사뿐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곁에는 훤칠한 키에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수려한 외모의 남성이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의 눈길은 오로지 여인에게만 향했다.
백발을 늘어뜨린 그녀는 바로 설서린이었다.
꿀꺽.
이두룡이 마른 침을 삼키고는 옆을 지나치는 설서린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봉긋한 가슴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곡선 하나하나를 촘촘하게 뜯어보았다.
“거참 먹음직스럽게 생겼군.”
“후후. 형님, 이제 대주가 되셨으니 저런 년들은 얼마든지 따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럴 테지. 하지만 저런 년이 흔하지는 않겠지.”
이두룡의 시선은 설서린의 뒷모습에 꽂혀서 벗어날 줄 몰랐다.
“흐흐. 그럼 제가 한 번 가서 작업을 걸어 볼….”
찰나,
삐잉!
아주 가느다란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곧이어 이두룡의 눈앞에 섬광이 번쩍이는 순간,
촤아아앗!
“크아악! 내누우우운!”
이두룡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
그가 손으로 감싸 쥔 눈에서는 붉은 핏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유명이 화들짝 놀라 물러나는데,
삐잉!
이번에도 가느다란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다음 순간,
“으아아아악!”
모유명이 턱을 쥐고 비명을 질러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며 비명을 지르자, 순식간에 저잣거리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모유명의 아래턱이 그대로 잘려 나간 것.
한편, 난장판이 된 저잣거리를 뒤로 하고 태연히 걷는 두 사람.
설서린이 설수민을 돌아보며 눈을 곱게 흘겼다.
“오라버니도 차암. 너무 심하잖아요.”
“널 더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걸 용서할 수 없더구나. 물론, 그 더러운 주둥이도.”
“그래도 혹시 알아요? 저들 중에 내 악몽을 깨워 줄 남자가 있었을지?”
설서린이 묘한 말을 남기고는 생긋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어머?”
설서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걸음을 멈췄다.
설수민 역시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슉! 슈슈슉!
마침 그들 뒤쪽으로도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렸다.
설서린이 재미있다는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정말 감쪽같이 나았네?”
두 사람의 앞뒤를 가로막은 자들은 바로 신생조원들.
스르르릉. 스르릉.
선두에 서 있던 석탄강과 옹기승이 도검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