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귀환 마교관
226화
“끄으으…!”
공터 여기저기에 쓰러진 신생조원들이 신음을 흘렸다.
팔다리가 부러진 자가 있는가 하면, 기절해 버려서 꿈쩍도 하지 않는 자, 전신이 찢어지고 베인 자, 연신 핏덩이를 토해내는 자도 있었다.
‘제길…!’
백공보는 악착같이 기어갔다.
그래도 신생조원들이 모두 힘을 합하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설 남매는 만만치 않았다.
아니, 아예 상대조차 안 됐다.
“훅, 훅, 훅!”
가까스로 바위 앞까지 다다른 그가 바위를 등지고 기대어 앉았다.
순간,
쉬이이잇, 팍!
비수 한 자루가 날아들면서 목 바로 옆을 스치며 바위에 박혔다.
그 바람에 파편이 튀면서 목과 얼굴을 때렸다.
“크웃!”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쉬이이이잇! 파악!
이번에는 새로 날아든 비수가 귓불을 찢으며 바위에 박혔다.
“큿!”
백공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맞은편의 나뭇가지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비수를 날린 설서린이 앉아 있었다.
“아이참, 자꾸 움직이니까 귀만 맞히기가 어려워요.”
그녀가 옆에 선 설수민을 올려다보며 푸념했다.
설수민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움직임을 관찰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예상이 가능해지지.”
“오라버니가 직접 보여줘요.”
“그럴까? 그럼 어디를 맞춰 볼까?”
“으음… 죽이면 곤란하니까 입만 찢어 보면 어때요?”
“하하. 그것도 괜찮겠다. 지금 저 녀석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웃게 만들어 주자꾸나.”
“좋아요, 오라버니! 우리가 기쁘게 해주자고요.”
“그래.”
설수민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백공보를 보았다.
백공보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미친 개잡년들…!’
설수민의 주 무기는 ‘유성비(流星飛)’라는 비수다.
구하기도 어려운 은잠사(銀蠶絲)로 이어진 유성비는 그야말로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간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입을 찢겠다고 공언한다면 틀림없이 그리 될 것이다.
설수민이 유성비를 날리려는 찰나,
“장난은 그쯤하지.”
무뚝뚝한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설수민과 설서린이 돌아보자, 석탄강과 옹기승이 서 있었다.
석탄강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불이 뿜어질 듯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두 사람 오랜만이네?”
“후후. 깜둥이랑 잠꼬대가 왔군.”
설서린에 이어 설수민이 냉소를 지었다.
석탄강이 빤히 바라보다가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먼저 간다.”
그는 앞서 유송령을 보고 몹시 화난 상태였다.
그가 막 달리려는데 옹기승의 팔을 붙들었다.
석탄강이 돌아보자, 옹기승이 나직이 일렀다.
“조심해라.”
석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을 박찼다.
파앗!
그와 동시에 설서린이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다.
“호호, 반가워라!”
순간 두 사람이 얽혔다.
파바밧! 휙휙!
순식간에 수십 초를 섞었다.
석탄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보통이 아니군.’
설 남매의 무공 수위가 어지간한 무인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분명 사비강 덕분에 무공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다니!
석탄강이 입술을 악다물고는 기합성을 터뜨렸다.
“하앗!”
순간 섬광이 번뜩였다.
타닷!
설서린의 몸이 휘청거리면서 멀어졌다.
그 틈을 비집고 옹기승이 쏜살 같이 달려오더니 재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쉬이이잇!
피츗!
‘벴다!’
검에 뭔가가 베인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타닷!
설서린이 당황한 듯 얼른 물러났다.
어깨 부위의 옷자락이 잘려 나가면서 하얀 맨살이 드러났다.
상처 부위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석탄강이 빠르게 짓쳐 들어갔다.
쉬이이잇!
환도가 허공을 가르며 설서린의 어깨를 대각선으로 쳐내려 가는 순간,
타닷!
설수민이 앞으로 나서며 설서린을 등 뒤로 돌려세웠다.
동시에 그가 일장을 뻗어 냈다.
파팡!
촤아아아앗!
장력에 부딪친 석탄강이 죽 미끄러지면서 물러났다.
환도를 쥔 양손이 가늘게 떨려 왔다.
‘세다…!’
한편 중간에 끼어든 설수민이 설서린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린아, 괜찮으냐?”
“오라버니… 피 났어요.”
“내 뒤로 물러나 있어라.”
“조심하세요, 오라버니.”
설수민이 굳은 표정으로 석탄강을 돌아보았다.
“그 사이 제법 실력이 늘었군.”
“…….”
“그래봐야 다람쥐가 날다람쥐 수준이 된 거겠지만.”
석탄강과 옹기승은 대답 대신 천천히 기수식을 취해 갔다.
설수민이 유성비를 꺼내 들었다.
“자, 덤벼라.”
다음 순간,
파바밧!
세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부딪쳐 갔다.
**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곁에 선 추량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딱 벌렸다.
“어, 어찌 이런…!”
사비강의 숙소 앞 연무장.
시체나 다름없는 신생조원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신생조원들.
마침 사비강 곁에 서 있던 적무린이 다가와 보고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이 상태였습니다.”
“흐음.”
사비강이 침음을 흘리고는 쓰러져 있는 조원들을 훑어보았다.
정말이지 몸이 성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온몸이 난자당한 자도 있었고, 팔다리가 반대로 꺾여서 부러진 자도 있었다.
일반적인 시체보다도 처참한 모습.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추량이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눈빛을 반짝이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조심하십시오, 사부님!”
“으음?”
“이건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이 녀석들, 이렇게 쓰러진 척하고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사부님을 공격할 지도 모릅니다!”
“그럴 것 같진….”
“제가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추량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쓰러진 조원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살금살금 걸어가서는 목검 끝으로 쓰러져 있는 석탄강을 쿡 찔러 보았다.
물론 의식을 잃은 석탄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쿡쿡.
역시 석탄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추량이 조심스럽게 쪼그리고 앉아서는 그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맥이 뛰고 있었다.
“사부님, 아무래도… 응?”
추량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데, 어느새 사비강은 벌써 조원들 틈으로 걸어가서 몸을 여기저기 만지며 뒤적거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엎어져 있는 조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려 눕히기도 했다.
“사부님! 그러시다가 이 녀석들이…!”
“시끄러. 이 녀석들 전부 당한 게 맞다.”
“허… 하지만 대체 누가…?”
“여기 서신까지 있군.”
사비강이 옹기승의 품에서 피에 젖은 서신 한 장을 발견했다.
표면에는 ‘사비강 교관님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교관님을 암살하려는 녀석들을 대신 잡아서 따끔하게 혼냈어요. 감사 인사는 필요 없어요.
-설(雪)-
서신의 내용을 본 적무린이 내심 조소를 지었다.
마지막 ‘설’ 자로 보건데, 설 남매의 짓이 틀림없으리라.
그들의 노림수가 빤히 읽힌다.
수업을 방해하겠다는 수작이다.
‘후후. 아무래도 이번엔 좀 고달프겠소, 교관.’
적무린이 사비강을 슬쩍 보았다.
확실히 사비강의 반응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무표정한 가운데에서도 어딘지 화가 난 듯한.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사비강이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추량을 돌아보았다.
“이것들 안으로 옮겨라.”
“예? 하지만 갑자기 일어나서 공격이라도 하면… 휴, 알겠습니다.”
사비강의 눈빛을 보고는 추량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무린이 사비강을 돌아보고는 어딘지 비소를 띤 표정으로 말했다.
“본련에서는 이번 일을 문제 삼을 겁니다.”
“무슨 이유로?”
적무린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말을 이었다.
“소속된 조원들의 부상이 깊습니다.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슨?”
“저 녀석들은 이미 다 나았으니까.”
적무린이 이맛살을 슬쩍 찌푸렸다.
사비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사비강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이 일을 굳이 위에 보고하지 않아도 돼.”
적무린이 사비강의 뒷모습을 보며 내심 코웃음을 쳤다.
지금 자신을 구슬리는 것인가?
그렇다면 자신을 너무 무르게 봤다.
‘교관, 난 아직 당신 편이 아니오.’
적무린이 냉소를 짓고는 걸음을 돌렸다.
**
그날 오후.
독고진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노옴, 드디어 걸렸구나!’
처음에는 볼모로 잡혀 온다기에 불쌍하게 여겨 주려고 했다.
한데 이젠 아주 제집처럼 지내지 않는가?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신축 건물을 지어 올리는가 하면, 숲을 밀어서 정원까지 번듯하게 꾸몄다.
게다가 무슨 자신감인지 조원들에게 자신을 암살하라고 지시하다니.
‘흥! 그렇게 설치다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설 남매가 돌아왔다.
사비강의 파격적인 행보가 오히려 그들의 관심을 잡아 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수업을 방해했다.
적무린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신생조원들 다수가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이는 명백히 교관이 책임을 져야 할 일!
탕탕탕!
숙소 입구에 다다른 독고진이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우선 련주에게 정식으로 보고하기 이전에 자신이 먼저 확인해서 책임을 추궁할 생각이었다.
잠시 후 사비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고 당주께서 여긴 어쩐 일이오?”
“조원들을 보러 왔소.”
“갑자기?”
“흥! 간밤에 일이 있었다고 들었소. 조원들이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
“헛소문이오.”
사비강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답하자, 독고진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이젠 거짓말까지?’
오히려 잘 됐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욱 세게 몰아붙일 수 있으리라.
“헛소문인지 아닌지는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소! 비켜 주시오!”
“거참, 조원들은 지금 수업 마치고 쉬는 중이라니까.”
“그렇다면 더욱 상관없지 않소?”
“쉬는 중에 방해를 받을까 봐 그렇소.”
“하하하! 언제부터 조원들을 그리 아끼셨는지? 아무튼 비키시오!”
독고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사비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물러났다.
그가 독고진 뒤에 선 적무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적무린은 가만히 턱을 치켜들고는 서 있을 뿐이었다.
[고자질이 취미인가보군.]
사비강의 전음에 적무린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원칙대로 보고했을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 독고진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어디요? 조원들이 있는 곳이!”
“따라오시오.”
사비강이 앞장섰다.
**
“이게… 어떻게…?”
그토록 말이 없던 적무린조차 멍하니 중얼거리고 말았다.
분명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어야 할 조원들이다.
한데 지하 연무실에 누워 있는 조원들은 상처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호흡조차 모두들 고르게 내쉬고 있었다.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다들 힘겨운 수련을 한 터라 지쳐서 잠들었소. 깨우지는 마시오.”
사비강의 말 그대로였다.
이들은 부상을 입은 게 아니라 정말로 잠에 빠져든 상태였다.
자잘한 부상을 입었지만 적무린이 보고한 것처럼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독고진이 전음으로 적무린을 다그쳤지만, 그라고 해서 사비강이 가진 힐링 포션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사비강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겠소? 슬슬 깨워서 수업을 진행해야 할 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