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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25화 (225/670)

# 225

귀환 마교관

225화

“두 사람, 여기 있었군.”

방각이었다.

유송령이 그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후후. 등자경(鄧慈慶)이 좋은 계획을 세웠어.”

“등자경이?”

등자경은 신생조의 일원이었는데, 무공보다는 암계에 재능이 있는 자였다.

다만 그 방법이 너무 치졸하거나 잔혹하여서 정식 책략으로 채택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내용이 다수였다.

방각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혹시 알아? 이번에야말로 그자를 제거할 수 있을지.”

“그래서 계획은 뭐야?”

“우선 같이 가지. 다들 모여 있으니까. 좀 복잡해서 직접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러자 석탄강이 불쑥 나섰다.

“가지.”

유송령이 움찔거리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평소 석탄강은 정말이지 말이 없고 수동적인 사내였다.

한데 이렇게 먼저 나서는 건 무척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호승심 때문이리라.

한 번쯤은 반드시 사비강을 꺾어 보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그 기회를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다는 욕심!

유송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자. 그 암살 계획 한 번 들어봐야겠어.”

“그래, 다들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다.”

방각이 몸을 돌리고는 앞장섰다.

**

탁!

등자경이 붓을 내려 두었다.

그러고는 그가 고개를 들고 조원들을 둘러보았다.

“어떠냐? 내 계획이.”

탁자를 두고 둘러 선 조원들이 모두 진중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계획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다만…

“괜찮긴 하네. 좀 비열한 것 같지만.”

유송령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등자경은 피식 웃었다.

“강호에서는 무조건 강한 자가 살아남는 법이지. 사자가 숨어서 먹이를 잡았다고 해서 비열하다고 욕할 수는 없지 않겠나?”

“뭐, 그렇긴 하지만… 그 교관을 죽이고 나서 떳떳할 수 있느냐가 걸리는 부분이지.”

그러자 방각이 코웃음을 쳤다.

“뭐야? 그자가 목숨 한 번 구해줬더니 넋이라도 나간 거냐?”

“지금 뭐라고 했어?”

유송령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방각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혹시 정분이라도 났나 싶었지. 막말로 비열하기로 따지면 정파 새끼들이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다. 그놈들은 명분이라는 가면을 쓰고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다 하는 녀석들이니까.”

그러자 지켜만 보던 백공보가 불쑥 말했다.

“확실히 더러운 계획이다. 하지만 계획은 더럽고 추잡할수록 좋은 법이지.”

찬성의 뜻이었다.

그러자 다른 조원들 역시 저마다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다들 시선이 유송령에게 향했다.

유송령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방각을 쏘아보았다.

“나도 동참하지. 하지만 한 번만 더 그 주둥이로 더러운 말을 지껄였다가는 혀를 뽑아 버릴 거야.”

“흐흐. 할 수 있다면 해보시든가.”

유송령이 방각을 빤히 노려보다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강, 네 생각은 어때?”

“…….”

석탄강은 팔짱을 낀 채 지그시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송령의 시선이 자연히 따라갔다.

석탄강의 눈길이 닿은 곳에는 수면검귀 옹기승이 팔짱을 낀 채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석탄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많이 좋아졌군.”

“좋아, 그럼 결정한 거다.”

등자경의 말에 유송령이 얼른 입을 열었다.

“잠깐! 강아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하지만 이미 조원들은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강, 정말이지 이럴 땐 집중 좀 해.”

유송령이 석탄강을 돌아보며 투덜거리는데,

“잠시.”

석탄강이 무뚝뚝하게 말을 뱉더니 옹기승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석탄강이 졸고 있는 옹기승을 거의 들쳐 메다시피 데리고는 어디론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어어?”

유송령이 얼른 뒤쫓아 가려는데 등자경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들었다.

“송령! 마지막 설명이니까 집중해라! 네 역할이 중요하니까.”

“젠장.”

유송령이 마지못해 돌아서자, 등자경이 조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자, 잘 들어라. 우선 방각이 먼저 움직인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렇게 들어가면….”

그때,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후후후!”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든 등자경이 흠칫거렸다.

“너, 넌…?”

다른 조원들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보다가 움찔 떨었다.

객잔 입구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얀 머리카락의 남녀.

설수민과 설서린이었다.

두 사람을 확인한 조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묘한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설서린이 방긋 웃으며 걸어왔다.

“뭐야? 뭔데? 왜 하던 말을 멈춰? 응? 우리도 알려줘.”

“아, 아니… 별 것 아니다.”

등자경이 슬그머니 붓을 내려 두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설서린이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또 우리를 따돌릴 생각이야?”

“그, 그럴 리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아, 몰라. 오라버니. 또 우리를 따돌리려나 봐요.”

설서린이 우울한 표정으로 설수민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조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갔다.

설수민이 설서린을 안고 고운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가엾은 내 동생. 이 오라비가 혼내 줘야겠구나.”

설수민의 시선이 조원들에게 향했다.

조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

스르르릉.

석탄강이 환도를 뽑아 들었다.

섬뜩한 예기를 뿜어대는 환도가 달빛을 받아 시리도록 빛났다.

그가 마주 선 옹기승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싸우자.”

“…….”

옹기승은 말이 없었다.

그는…

졸고 있었다.

석탄강이 다시 말했다.

“일어나라. 싸우자.”

“…드르렁…”

“싸우고 싶다. 너와.”

“…쿠울…”

좀처럼 반응이 없자 석탄강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냈다.

찰나,

쒸이이잇!

석탄강의 손을 떠난 비수가 빠른 속도로 옹기승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쉬익, 땅!

마치 잠꼬대라도 하듯이 옹기승이 검을 뽑아 내며 날아드는 비수를 쳐냈다.

석탄강의 미간이 좁혀졌다.

‘짜증나는군.’

그러는 동안에도 옹기승은 검을 품에 안고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석탄강이 환도를 집어넣고는 옹기승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일어나라.”

그가 옹기승의 뺨을 툭 치려는데,

휙!

옹기승이 뒤로 머리를 젖히면서 손이 허공을 때렸다.

석탄강이 어금니를 깨물고는 다시 왼손을 내질렀다.

파밧!

그러나 이번에도 옹기승은 뒤로 주춤 물러나면서 석탄강의 주먹을 피해 버렸다.

석탄강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파바바밧!

이번에는 더욱 빠르게 석탄강이 주먹을 내질러 갔다.

이쯤 되자 도저히 자는 사람을 깨우는 행위 같지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인이 본다면 필시 사람을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옹기승이 그때마다 보법을 밟아 가면서 주먹을 피했다.

마침내,

차아앙!

석탄강이 환도를 뽑아 들더니 옹기승을 향해 마구 휘둘러 가기 시작했다.

휙! 휙! 휙! 휙!

옹기승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이리저리 보법을 밟으며 피했다.

‘확실히 좋아졌군!’

옹기승의 실력이 향상됐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약이 올랐다.

현재 옹기승은 확실히 기면 상태였다.

잠이 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그 역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더 이상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가 없었다.

쑤아아아앙!

석탄강이 검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환도를 대각선으로 베어 들어갔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 수였다.

그 움직임이 무척이나 빨랐기에 옹기승은 자칫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

찰나,

까아앙!

청명한 금속성이 울리면서 도검이 부딪쳤다.

촤아아아아악!

마침내 옹기승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온 것이다.

한참이나 밀려난 두 사람.

그제야 옹기승이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응? 어? 여기 어디야? 내가 왜 너하고 있는 거지?”

“…….”

“너 여기서 뭐해?”

‘재수 없는 놈.’

석탄강이 나직이 한숨을 쉬고는 대꾸했다.

“여긴 내가 개인적으로 수련할 때 자주 찾는 장소다.”

“그런데 난 왜 여기 있지?”

“나와 싸우는 중이었다.”

“싸워? 왜? 내가 뭐 잘못한 것 있어?”

“없다.”

“그런데… 헉!”

옹기승은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석탄강이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가지 않고 곧장 그를 향해 질주해 왔기에.

쉬이이잇!

석탄강은 검은 바람이 되었다.

까앙!

불꽃이 터지면서 다시 한 번 도검이 부딪쳤다.

옹기승은 확실히 느꼈다.

‘늘었군!’

역시 깨달은 건 혼자만이 아니었다.

확실히 신생조에 배정된 녀석들은 하나 같이 보통이 아니다.

개망나니 같은 녀석들만 모아 놓은 것 같지만, 그들 모두가 낭중지추일 뿐이다.

그렇게 튀어나온 송곳을 사비강은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고 있었다.

옹기승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석탄강이 무심하게 말했다.

“이제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보군.”

타앗!

쉬이이잇!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격돌해 갔다.

**

털썩!

석탄강과 옹기승이 풀밭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헉, 헉, 헉!”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허공을 메워 갔다.

결국 승패는 가리지 못했다.

석탄강이 피식 웃어 버렸다.

숨이 이렇게 찬데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시원하게 몸을 풀어 본 것은.

물론, 낮에 겨룬 유송령과의 비무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번 비무는 달랐다.

사실 유송령을 마음먹고 상대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자신도 알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옹기승은 다르다.

늘 이기고 싶지만 이기지 못한다.

옹기승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한 번도 자신을 이긴 적이 없다.

다만, 자신은 옹기승을 늘 이기고 싶어 하고, 옹기승은 자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짜증날 뿐이다.

‘어쩌면….’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하는 걸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원 없이 부딪쳐 봤으니까.

“별이 많군.”

석탄강이 그답지 않게 감상에 젖은 말을 흘렸다.

문득 사비강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딘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히죽 웃는 모습이.

석탄강이 피식 웃었다.

“그 인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드르렁… 쿨…”

옹기승이 나직이 코를 골았다.

평소 같았으면 다시 발끈해서 도를 뽑아 들었겠지만, 지금은 내버려 두었다.

그저 역시나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때였다.

부스럭.

인기척!

우거진 수풀 한쪽에서 먼가가 움직였다.

그리고…

‘혈향!’

바람결에 묻은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하필이면 지금…!

석탄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타앗!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서는 환도를 휘둘렀다.

쉬이이잇!

바람을 가르던 환도가 상대의 목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령아!”

석탄강이 얼른 손을 뻗어 쓰러지는 유송령을 받쳐 안았다.

피에 잔뜩 젖은 유송령은 기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유송령이 석탄강을 올려다보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이건…!”

“조원… 전부… 당했어.”

“누구냐?”

“설 남매… 돌아… 왔어.”

말을 마친 그녀가 이내 의식을 잃고는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령아!”

석탄강이 유송령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뱃속부터 들끓어 올랐다.

마침 그의 뒤에서 진중한 목소리가 울렸다.

“가자.”

어느새 깨어난 옹기승이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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