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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18화 (218/670)

# 218

귀환 마교관

218화

생도들이 저마다 입을 딱 벌리고는 저만치 쓰러져서 의식을 잃은 백공보를 바라보았다.

백공보가 저런 식으로 튕겨 나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도, 도대체 저 교관 얼마나 강한 거야?’

그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비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기 손가락을 들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힘을 줬나?”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이고는 쓰러져 있는 백공보에게 던지듯 말했다.

“겨우 공사를 마무리했는데, 네가 담벼락을 부숴 버렸으니 자비로 수리하도록 해라.”

몇몇 생도들이 달려가서 백공보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팔과 사비강을 번갈아 보았다.

사비강이 다시 툭 던지듯 말했다.

“울지 마라. 팔은 고쳐 줄 테니까.”

백공보가 내심 발끈했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미 그는 싸움에서 졌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한편, 연무장에 모인 무인들은 사비강의 실력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살기를 드러냈다.

사비강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선 너희들도 소속감은 있어야 할 테니, 이 조직의 명칭을 정했다.”

“뭡니까?”

방각이 물었다.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신생조(新生組)다.”

“혹시 신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뜻입니까?”

“음? 아닌데?”

“그럼, 무슨 뜻이죠?”

“너희들 무공 수준이 신생아나 다름없어서 지은 명칭이야.”

“뭐라고요?”

방각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역시나 다른 무인들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살기만 줄기줄기 피워댈 뿐이었다.

“하하하….”

어디선가 나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한 사내가 자다 깬 얼굴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비강이 처음 나타날 때부터 내내 졸린 표정으로 일관한 자였다.

수면검귀(睡眠劍鬼)라는 별호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옹기승(雍紀昇)이었다.

“하아암, 재미있군요. 신생아라….”

“확실히 넌 신생아만큼이나 잠이 많은 모양이군.”

“헤헤… 죄송합니다. 제가… 수면검공(睡眠劍功)을 익혀서….”

“뭐, 죄송할 것까지야.”

“그런데 흐아암, 질문이 있습니다만….”

“뭐냐?”

“…쿠울….”

“…….”

“…아! 깜빡 졸았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질문이 뭐냐고.”

“아아, 질문… 네. 교관님이 강한 건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릴 어떻게 가르칠 생각입니까?”

“자연스럽게 가르쳐야지.”

“자연스럽게? 흐아암, 하지만 강한 것과 가르치는 건 별개의 일일 텐데요. 우리가… 우리가….”

“졸지 말고 말해!”

“아! 깜짝이야. 네… 우리가 교관님의 교육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고 불참을 하게 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너희들은 내가 내린 임무에 아주 흥미를 가질 테니까.”

“임무…요?”

“그래. 너희들은 내가 교관으로 있는 동안 한 가지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다. 누구든 그 임무를 완수하게 되면 교육은 그날로 끝난다.”

“흐응. 흥미롭군요. 임무를 완수하면 교육이 끝이라니….”

그러자 듣고만 있던 방각이 불쑥 손을 들며 물었다.

“그럼, 그 임무는 우리 중 누구라도 완수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그 임무를 완수하면 수업은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도대체 그게 무슨 임무죠?”

“나를 암살하는 것이다.”

“…….”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휘이이이잉!

바람 부는 소리가 한 차례 지나갔다.

그제야 옹기승이 화들짝 놀라며 두리번거렸다.

“응? 뭐라고? 방금 뭐라고 한 건데? 나 졸고 있느라 못 들었어.”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 너희들의 임무는 나를 암살하는 것이다. 이름 하여, 암.살.교.실이지. 후후.”

“에엥? 그게 정말입니까?”

옹기승도 이번만큼은 잠이 싹 달아났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침 맹가숙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진심입니까?”

“진심이다.”

“우리가 교관님을 암살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단, 살수를 고용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오로지 너희들 힘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힘을 합쳐도 상관없습니까?”

“상관없어. 너희들은 이미 한 조니까.”

“그럼, 만만치 않을 겁니다.”

“후후. 쓰레기가 뭉쳐 봐야 쓰레기더미밖에 더 되겠어?”

그러자 이번에도 살기가 줄기줄기 피어올랐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그런 자세다. 그런 의지로 나를 암살하도록. 어차피 너희들 중에 몇 놈은 틈만 나면 날 죽이려고 덤빌 텐데. 이왕이면 제대로 해보는 게 좋잖아? 단, 얻어터질 각오는 하고 덤비도록.”

생도들 아니, 신생조의 조원들이 서로 바라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지금 진심인가?”

“우리보고 자기를 암살하라는 거야?”

“잘만 하면 우리도 흑도의 영웅이 되겠는데? 킬킬.”

“저 교관, 제대로 미쳤나 보군.”

그때 유송령이 불쑥 소리쳤다.

“그럼, 수업은 따로 없나요?”

“아니. 물론 수업은 수업대로 하는 거지.”

“수업 중에 죽여 버려도 불만은 없겠죠? 뭐, 어차피 시체가 되면 불평할 수도 없겠지만.”

“당연히. 암살을 시간 가리면서 하냐?”

“호호호. 알겠어요! 정말 재미있겠군!”

유송령이 활짝 웃었다.

다른 조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세상 어디에서 이런 수업을 받아 보겠나?

가르치는 교관을 암살하라니.

그만큼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어쨌거나 파격적이다.

한편, 적무린 역시 내심 놀란 표정으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객기인가?’

하지만 단순히 객기는 아닐 것 같다.

지금까지 자신이 본 바에 의하면 이 교관이 과격할지언정 무모한 자는 아니었기에.

‘뭐, 얼마 안 가서 죽겠군.’

그가 실소를 지었다.

반면 추량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사부님! 여기서 돌아가시면 저 혼자 혈사련 복판에 남잖아요!]

[넌 내가 죽을 것부터 생각하냐? 배은망덕한 놈이네.]

[그, 그건 아니지만…!]

[이 몸은 무적이니까 걱정 마라.]

사비강이 히죽 웃어 보였다.

**

“암살을 임무로 던져 주었다고요?”

류여중이 휙 돌아서며 물었다.

독고진이 대꾸했다.

“그렇답니다. 정말이지 미친 거 아닙니까?”

“혹시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그랬답니다. 생도들에게 아니지, 이젠 신생조라 불러야겠군요. 그렇게 이름을 정했다니. 아무튼 그 조원들에게 암살을 지시했답니다. 자기가 교관으로 머물러 있는 동안 얼마든지 암살 시도를 하라고요. 대신 얻어터질 각오는 하고 덤비라고 했다나?”

“그런….”

“나참, 저도 처음에 들었을 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정말이더군요. 반어법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진짜로 자기를 암살하라고 지시했답니다.”

“하면 조원들은 모두 참여한 상황입니까?”

류여중의 질문에 독고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의 대부분 참여했습니다만, 세 사람이 빠졌습니다.”

“누구지요?”

독고진이 이름을 불러 주자, 류여중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그 세 명이라면….”

“흐흐흐. 수업에 참여한 조원들은 애송이 수준이지요.”

류여중은 독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공감을 나타냈다.

실제로 수업에 불참한 그 세 명은 무서운 자들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류여중이 침음을 흘리던 끝에 나직이 읊조리듯 말했다.

“이번만큼은 사비강, 그자가 실수를 한 것 같군요.”

“맞습니다. 만약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자만이 그런 악수를 둔 거지요. 제 무덤 제가 판 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독고진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

그날 밤, 홍염이 찾아왔다.

그 역시 완전히 변해 버린 숙소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이제 좀 지낼 만하시겠군요.”

“후후. 앞으로는 나를 좀 소중히 여겨야 할 것 같아서.”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일은 어떻게 됐지?”

“보부상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홍염의 말에 사비강이 눈을 빛냈다.

“그래? 어디에 있나?”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송악현(松岳縣)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이 됐는데, 그곳에서 잠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그를 돕는 배후가 있다는 뜻이겠군.”

“그런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쫓는 것을 눈치 챈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지?”

“그 보부상에게 접근하는 세력이 또 있는 것 같습니다.”

“접근하는 세력이라면… 우리처럼 그를 쫓는 거야? 아니면 이미 접선 중인 세력이란 거야?”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흐음.”

“다만….”

“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여러 가지 정황상 혈사련이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혈사련이?”

사비강은 되물으면서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설백을 납치했던 복면인들의 정체에 대해서 혈사련이 엮여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우선 이곳의 누군가가 그 보부상과 접선을 원하거나, 하고 있는 중이라는 건 분명하단 말이군.’

사비강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최대한 빨리 그 보부상의 배후 세력을 알아내도록. 그리고 혈사련에서도 누가 그 일과 관련되어 있는지 찾아내.”

“알겠습니다.”

“참, 다음에 올 때는 이게 필요할 거야.”

사비강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휙 던져 주었다.

홍염이 얼른 그것을 받아 보았다.

철전처럼 생겼는데,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이게…?”

“다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는 필요할 거야.”

“……?”

“일종의 열쇠라고 보면 돼. 그러니 잊어버리지 말고.”

“예, 주군.”

홍염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이내 기척을 스르르 지워 갔다.

그야말로 귀신과 같은 은신술이었다.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사비강은 방 한쪽 구석으로 걸어가서 벽면에 손을 댔다.

그러자 손바닥만 한 면적이 안으로 스르륵 들어가더니 그 아래로 서랍 같은 공간이 부드럽게 밀려 나왔다.

그 비밀 서랍 바닥에는 붉은 천이 깔려 있었는데, 홍염에게 건넨 물건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사비강이 라겔의 주머니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더니 그 서랍에 올려 두었다.

드르르륵.

서랍이 다시 벽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다음 순간,

쏴아아아아아앙!

희미한 빛의 파장이 사방으로 훅, 퍼져 나갔다.

‘됐군.’

사비강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침내 결계가 완성된 것이다.

이제 이곳은 자신의 허락이 없으면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으리라.

아니면 조금 전의 홍염처럼 마법 도구가 있어야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추량에게도 줘야겠군.’

애초에 사비강은 이곳을 설계할 때부터 결계를 의식했다.

때문에 현재 이 건물은 온갖 마계의 결계가 중첩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공사한 인부들은 까맣게 몰랐다.

의미 없어 보이는 주춧돌 하나도 사실은 마계의 결계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그럼, 오늘은 두 다리 쭉 뻗고 잠이나 자 볼까?’

사비강이 길게 기지개를 켜며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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