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귀환 마교관
213화
“헉, 헉, 헉!”
방각은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오지 않으려고 했다.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자신은 운이 나빠서 사비강의 얕은 수법에 빠진 것일 뿐이었다.
유송령은 자신보다 훨씬 영악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사비강에게 당하진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런데…
‘제기랄! 왠지 와봐야 할 것 같단 말이야!’
단순한 호기심일까?
아니면 갑자기 나타난 이 교관이라는 작자에게서 느끼는 모종의 불안감 때문일까?
어쨌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인생을 건드릴 것만 같다.
아니, 이미 건드렸다.
단 한 번의 조언으로.
그의 혈응쌍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자세를 잠깐 교정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건 마치 발성을 살짝 바꿨을 뿐인데, 노래 실력이 전체적으로 향상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와봐야 했다.
자신에게 그만한 영향력을 준 자가 과연 유송령을 데려올 수 있을지.
아니면 자신에게 던진 그 조언이 그저 우연이었을 뿐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곳 생사투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서.
그런데…
‘문지기는 어딜 간 거야?’
동혈 입구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할 거구의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참가비’를 외치고 있어야 할 터다.
방각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어두침침한 통로를 따라서 들어갔다.
마침내 열화구 안으로 들어섰을 때,
“어어엇! 안 돼!”
“뭐하는 거냐? 유송령, 정신 차려라!”
“저 곱상한 정파 샌님한테 눈이라도 팔린 거냐?”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지?’
방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곳으로 달려갔다.
철교사투 종목 앞이었다.
그리고 그는 철봉 위에 올라서서 비무를 펼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 두 사람이 비무를?’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유송령에게서 평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과 여유가 넘치는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얼굴 가득 독기에 가까운 표정만 남아 있었다.
반면 사비강은 여유가 넘쳐났다.
그가 유송령을 보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지친 거야? 난 아직 몸도 안 풀었는데.”
“너…”
“교관한테 ‘너’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잖아? 교관님이라고 불러라.”
“닥쳐!”
퉁!
유송령이 철봉을 차며 쏜살 같이 날아갔다.
쒸이이잇!
사비강이 훌쩍 물러나자, 유송령의 눈이 반짝 빛을 뿜어냈다.
‘어디 이것도 받아내 보시지!’
유송령이 그대로 칼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비장의 한 수였다.
설마 자신이 칼을 내던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일직선상의 싸움인 만큼 좌우로 피할 공간은 없다.
그렇다고 몸을 날려서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런데…
척!
유송령이 눈을 부릅떴다.
지켜보던 관람자들 사이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사비강은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그 커다란 도신을 낚아챈 게 아닌가?
사비강은 마치 종잇장을 들고 있는 것처럼 태연했다.
‘저…걸 낚아채? 그것도 손가락으로?’
이제 놀라는 것도 지칠 지경이다.
벌써 철교사투를 시작한지 반 시진이 다 되어 간다.
그럼에도 승부가 나지 않고 있다.
아니, 승부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거다.
그렇다.
‘저 남자는 지금 일부러 승부를 내지 않고 있어!’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상대는 자신보다 무공 수준이 월등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적극적인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수작이야!’
유송령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한편, 사비강은 유송령이 내던진 도를 물끄러미 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좋은 도다. 혹시 물려받은 건가?”
유송령이 움찔 거렸다.
정확했다.
원래 거신도(巨神刀)는 아버지가 사용했던 거였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사용한다.
사비강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무게 균형이 다소 맞지 않군.”
“뭐?”
“도신에 쓸데없는 짓을 했다.”
“뭘 안다고 떠드는 거야?”
유송령의 목소리가 까칠해졌다.
싸움이 뜻대로 흐르지 않자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도신에 글귀를 새겨 넣으면서 완벽에 가까웠던 균형이 무너진 거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지만, 내 생도가 된 기념으로 이것도 조만간 손을 봐주지.”
“뭔 헛소리를…!”
그 순간 사비강이 다시 유송령에게 거신도를 던졌다.
쒸에에엑!
손잡이부터 날아간 만큼 유송령이 얼른 손을 뻗어 거신도를 낚아챘다.
탁!
사비강이 턱짓을 했다.
“자, 다시 해라.”
“지금 뭐하자는 거야!”
“보면 모르겠어? 널 가르치고 있잖아.”
“누가… 누가 멋대로…!”
유송령의 미간이 팍 구겨지더니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질주했다.
거신도가 사비강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사비강이 물러나며 가볍게 던지듯 말을 이어 갔다.
“느려. 손목이 너무 굳어 있어. 손목을 좀 더 유연하게 해.”
“시끄러!”
“싸움 도중에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게 좋아.”
“당신이나 닥쳐!”
“나는 상황이 다르지. 너보다 월등히 강하니까.”
“이익!”
쉬이잇! 쒸에엑! 샤아악!
유송령이 연신 도를 휘둘러 갔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비강은 이리저리 잘도 피했다.
‘이 정도면 쓸 만하군. 확실히 잘 키운다면 제법 도움이 되겠어.’
약이 바짝 오른 유송령이 다시 한 번 도를 던졌다.
쒸에에엑!
탁!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비강의 손에 도신이 잡혔다.
사비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몹쓸 습관이 있군. 도를 던지는 건 목숨을 내던지는 것과 같은 거야. 이렇게 가볍게 여길 만한 물건이 아니란 뜻이지.”
“오지랖은 그만 떨고 이제 당신도 공격을 해보시지!”
“흐음. 정 원한다면 교육은 잠시 멈추고 계도를 해볼까?”
“뭐?”
“도를 소홀히 다뤘으니 좀 혼나야겠어.”
“웃기는 소리…!”
쒸에에엑!
찰나, 사비강이 바로 앞으로 다가서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도신이 날아들었다.
섬뜩한 예기를 내뿜는 도신이 유송령의 목 바로 옆에서 멈췄다.
유송령은 그저 눈을 크게 뜬 채 송장처럼 굳어 버렸다.
‘사람이 이렇게 빠를 수도 있는 거야?’
그녀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무인들 모두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사람들 저마다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뒤늦게 유송령의 마음속에서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었다.
상대는 자신을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이대로 목을 베면 끝이었다.
한데 공격을 멈추고 기회를 준 거다.
‘정파 무인 따위에게 동정을 받다니!’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다.
그것도 다른 무인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차라리 이 자리에서 목이 날아갔더라면 장렬하게 죽은 셈이 되었을 테지만.
그런데 치욕스러운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찰싹, 찰싹…!
사비강이 도신의 옆면으로 유송령의 뺨을 때리는 게 아닌가?
“이익…! 뭐하는 짓이야?”
유송령이 버럭 소리치며 물러나자,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말했잖아? 계도하는 중이라고. 네 분신이나 다름없는 도를 함부로 다룬 대가로 혼내는 중이지.”
“닥쳐! 네까짓…!”
쒸이이잇!
다시 날아드는 거신도.
“허억!”
유송령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또 한 번 굳었다.
그리고 거신도는 어김없이 목 바로 옆에 멈췄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찰싹! 찰싹!
사비강이 또 옆면을 이용해서 유송령의 뺨을 때렸다.
약이 바짝 오른 유송령이 그대로 장력을 뻗으며 사비강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죽어, 이 새끼야!”
“오른쪽 무릎을 더 굽혀라.”
툭!
사비강이 물러나며 그녀의 종아리를 칼등으로 툭 쳐주었다.
“개수작질을!”
다시 유송령이 악에 받쳐 사비강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파바밧!
사비강이 그대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거신도를 이용해서 유송령의 몸 여기저기를 툭툭 건드렸다.
“왼쪽 어깨를 좀 더 당기고, 이번엔 오른쪽 어깨를 뒤로 빼야지. 발끝의 위치도 틀렸어. 정면을 향하도록.”
“이익…!”
그럴수록 더욱 화가 나는 유송령이었지만, 사비강은 계속해서 지적을 해나갈 뿐이었다.
**
꼬박 두 시진이 흘렀다.
유송령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헉, 헉, 허억.”
반면 지켜보는 관람자들은 숨을 죽였다.
열화구에 철교사투 종목이 생긴 이래 가장 긴 비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두 사람의 비무는 파격적이었다.
철봉을 올려다보던 적무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야 사비강의 의도를 알아 챈 것이다.
처음부터 사비강은 유송령을 떨어뜨릴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압도적인 무위를 펼쳐 일찌감치 항복을 받아낼 생각도 없었다.
그녀가 결코 패배 선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무서운 자다.
자신이 과소평가했다.
한편, 철봉 위에 선 유송령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주체하면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달궈진 철판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끝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내공을 이용해서 몸을 차갑게 식혀야 한다.
그러니 자연히 내공의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한 시진 반이 지났을 때는 이미 체력이 거의 고갈 상태였다.
상대는 운으로도 이길 수 없는 남자였다.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모든 무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정파 무인에게 패배를 시인하지는 않을 테니, 이제 철봉에서 떨어져 죽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엉뚱한 문제가 생겼다.
‘제기랄! 왜 공격을 안 하냐고!’
사비강은 여전히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오히려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까지 맴돌았다.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어떤 공격도 먹히지 않는 상대.
하지만 어떠한 공격도 해오지 않는 상대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러니 장렬하게 전사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일부러 철봉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 눈앞에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던 그때, 그녀는 발을 헛디딘 척하면서 떨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남자가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막다니!’
그랬다.
사비강은 그녀가 떨어지려고 하면, 어느새 나타나서 공격하는 척하며 그녀를 철봉 위에 바로 세운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경우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제길! 저 마귀 같은 놈! 사악한 놈! 재수 없는 놈!’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사비강이 더욱 입매를 치켜 올렸다.
‘젠장, 너무 뜨거워.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의식이 가물가물해져 간다.
이대로 쓰러지면 분명 사비강이 자신을 붙들 것이다.
그럼 패배 시인을 하지 않았다지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다.
지금껏 그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라리 죽고 말지!’
그런데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으니….
‘아악! 짜증나!’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