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귀환 마교관
212화
“철교사투(鐵橋死鬪).”
유송령이 눈빛을 빛내며 손가락으로 저만치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얼핏 보면 높고 기다란 철봉 같았다.
철봉 아래는 뜨겁게 달궈진 철판이 있었는데, 독특하게도 철판 바닥에 아이 손목만한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유송령이 배시시 웃었다.
“열화구에서 가장 인기 높은 종목이야. 아래 보이는 철판은 항상 뜨겁게 달궈진 상태지. 살이 닿자마자 불에 타버릴 걸?”
적어도 이곳의 열기가 뜨거운 이유에는 저 철판도 한몫 단단히 하는 것 같았다.
유송령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비무 방식은 간단해. 저 철봉 위에서 서로 겨루면 돼. 만약 둘 중 하나가 패배를 인정하거나 철봉에서 떨어지면 지는 거야.”
그녀가 마침 옆의 탁자에 놓인 닭다리를 하나 집어 들더니 훌쩍 몸을 날렸다.
경공을 펼쳐서 단숨에 철봉 위로 올라서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나비 같았다.
‘과연 경공 실력이 상당하군.’
사비강이 내심 감탄하는 사이 철봉 위에 꼿꼿하게 선 그녀가 들고 있던 닭다리를 놓았다.
닭다리가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촤촤촤촤촤촤촤앙!
철판 바닥에서 수십 개의 창살이 불쑥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화르르르륵!
뜨겁게 달궈진 창살이 닭다리를 꿰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광경.
무섭게 치솟아 올랐던 창살은 어느 순간 철판 아래로 스르르 들어갔다.
지켜보고 있던 추량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참고로 떨어지면 저 닭다리 신세가 되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어때? 해볼 생각이 있어?”
유송령의 말에 사비강이 빤히 바라보다가 웃었다.
“이미 답은 한 것 같은데.”
“하하. 좋아, 그럼 올라와.”
사비강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아니,
그냥 갑자기 철봉 위로 나타났다.
블링크 마법이었다.
기선 제압을 위해서 일부러 마법을 사용한 것.
예상대로 유송령은 물론, 주위에서 둘러싸고 있던 사파의 무인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이 수군거렸다.
“어이, 방금 봤어?”
“못 봤어. 저게 뭐지? 갑자기 사라졌다가 저 위에 나타난 것 같은데?”
“그만큼 빠른 건가? 적어도 경신법 하나는 저 유가의 여자를 능가하는 것 같군.”
“뭐, 그래봐야 정파 나부랭이지.”
무인들은 감탄하면서도 내심 사비강을 멸시했다.
블링크 마법을 이미 본 적이 있었던 적무린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사비강을 속으로 비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송령은 지금 사비강에게 생사비무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데 사비강이 그걸 받아들였다.
결국 그는 유송령의 덫에 걸린 것이다.
사비강의 목적은 그녀를 수업에 참석시키는 것.
하지만 사비강이 이기려면, 유송령을 저 철봉에서 떨어뜨려야 한다.
보다시피 철봉에서 떨어지는 순간 뜨거운 창살에 사지가 꿰뚫리고 만다.
즉, 사망이다.
물론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은 저런 곳으로 뛰어내려도 창살에 뚫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의적으로 뛰어내릴 경우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추락할 경우에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그녀를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산 채로 제압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항복 선언을 받아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유송령이 과연 항복을 할까?
설사 그런 점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유송령이라면 정파 무인에게 항복을 하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 걸 선택하리라.
결론은…
‘교관이 유송령을 데려갈 방법은 없지.’
이럴 경우 사비강이 취할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몇 수 겨루다가 자신이 불리해질 것 같으면, 생도의 안전을 생각해서 포기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
그게 가식적인 정도 무인들이 가장 즐겨 쓰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워 유송령을 철봉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것.
그 경우에는 그녀가 먼저 제안한 것이니 자업자득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유송령이 마주 선 사비강을 보며 씨익 웃더니 장내를 둘러보았다.
“자, 다들 내기를 해도 좋아. 누가 이길지 한 번 걸어 보라고.”
하지만 무인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다.
“쳇, 이건 돈이 안 돼. 누가 내기를 하겠어?”
“그러게 말이야. 저 정파 나부랭이 교관이 이길 가능성은 일 푼도 되지 않을 텐데.”
“킬킬킬.”
사실 정파 무인들을 혐오하는 그들로서는 설사 사비강에게 승산이 있다고 해도 유송령에게만 판돈을 걸 것이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정파 무인을 응원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유송령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쪽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일종의 격장지계였지만, 사비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아쉽군. 다들 너에게 돈을 걸었다면 내 제자가 떼돈을 벌었을 텐데 말이야.”
추량을 두고 한 말이었다.
추량 역시 그 뜻을 알아듣고는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제자… 나를 제자라고 불러 주셨다.’
그 사실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다.
한편 유송령은 사비강의 그런 태도를 허세로 판단하고는 코웃음을 쳤다.
대신 그녀는 천천히 자세를 잡아 갔다.
스르르르릉!
그녀가 등에 맨 커다란 도를 뽑아 들자, 도신에서 시퍼런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반면 사비강은 팔짱을 낀 채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유송령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물었다.
“왜 그래? 자신 없어?”
“뭐가?”
“왜 무기를 꺼내지 않는 거야?”
“무기라면 거기 있잖아.”
사비강의 손가락이 유송령이 들고 있는 도를 가리켰다.
“뭐?”
유송령이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곧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네. 좋아, 나중에 후회는 하지 말라고.”
“약속이나 지키도록.”
“정말이지 보기보다 재미있고, 보기보다 멍청하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유송령이 철봉을 찼다.
퉁!
순간 유송령이 날아올랐고 철봉이 휘청거리면서 흔들렸다.
하지만 사비강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객기도 정도껏!”
유송령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대도를 휘둘러 왔다.
쒸에에에엥!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파공음이 일어났다.
찰나,
스팟!
‘……?’
유송령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비강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
그러는 사이 그녀가 휘두른 대도는 그대로 허공을 베며 지나갔다.
“어디서 잔재주를!”
그녀가 재빨리 돌아서며 칼을 횡으로 베어 들어갔다.
어느새 그녀의 등 뒤에 나타나 있던 사비강이 훌쩍 물러났다.
쒸에엥!
이번에도 칼날은 허공을 베며 지나쳤다.
“칫!”
유송령이 혀를 차고는 그대로 사비강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떨어져!”
쒸이이잉!
도임에도 불구하고 검처럼 곧게 뻗어 나갔다.
사비강이 발끝으로 철봉을 툭 차면서 솟아올랐다.
척.
놀랍게도 그는 유송령이 내지른 도신을 밟은 채로 꼿꼿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지켜보는 무인들 사이에서 억눌린 탄성이 새어 나왔다.
사비강이 보여주는 무위는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생각보다 상대의 무공이 막강하자 유송령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 남자, 도대체 뭐야? 정 그렇다면 나도 본격적으로 해주지!’
적당히 놀려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강하다.
그렇다면 본심을 다해 주리라.
“후우우. 검을 뽑는 게 좋을 거야.”
유송령의 말에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검을 뽑으면 넌 죽어.”
“하하. 하여튼 정파 새끼들은 그 허세를 빼면 시체가 되지. 아니, 시체가 되어야 그 허세가 빠지는 걸까?”
유송령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순간 사비강이 팔짱을 풀었다.
유송령이 차갑게 웃었다.
“이제야 좀 제대로 해보려고?”
“그래. 교관에게 살기를 뿜어대는 생도를 귀엽게 봐 줄 정도로 좋은 성격이 아니라서.”
“끝까지 웃길 줄 아는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투웅!
유송령이 철봉을 차며 날아갔다.
쒸이이이잇!
과연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더욱 빠르고, 더욱 예리했으며, 더욱 힘이 넘쳐났다.
사비강이 그대로 손을 뻗으며 엄지를 튕겼다.
따앙!
사비강을 향해 떨어지던 도신이 그대로 튕겨 나가면서 유송령이 휘청거렸다.
“이익…!”
그녀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면서 그대로 몸을 회전했다.
쒸이이잇!
자연스럽게 대도가 사비강의 옆구리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찰나,
스팟!
사비강의 신형이 다시 한 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흥! 두 번 당할까 봐!”
유송령이 앙칼지게 소리치며 그대로 몸을 회전했다.
뀌이이이이잉!
커다란 도가 울음을 터뜨리며 뒤에 나타난 사비강의 허벅지를 노렸다.
동시에,
쑤아아앙!
도기가 도신을 타며 퍼져 나왔다.
그 순간,
사비강이 손을 불쑥 뻗으며 읊조렸다.
“에어 웨이브(wind Wave)!”
후웅! 후웅! 후우웅!
바람이 물결처럼 파도치며 유송령에게 날아갔다.
비교적 단순한 마법이었지만, 철봉 위에서 펼쳐지는 일직선상의 비무이기에 유송령이 피할 방법이 없었다.
퍽, 퍼퍽! 퍽!
“크웃!”
느닷없이 바람에 떠밀린 유송령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장풍?’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한데 뭔가 다르긴 하다.
보통의 장풍이라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날 터였다.
이렇게 여러 번의 기풍이 날아들게 하려면 그만큼 손도 여러 번 내질러야 한다.
한데 단 한 번 내지르는 것으로 기의 파동을 일으켜 적을 타격할 수 있다니?
‘대체 어떤 무공을 익힌 거지?’
에어 웨이브 마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유송령으로서는 당연히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어쨌거나 그 바람에 그녀는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나면서 도신에 맺혔던 도기도 스르르 흩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퉁!
사비강이 철봉을 차며 빠르게 쇄도했다.
비무가 시작된 이후 처음 시도하는 공격이었다.
“앗!”
유송령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얼른 대도를 내리쳤다.
쒸이이잉!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그대로 허공을 베면서 애꿎은 철봉만 내리쳤다.
따앙!
그 바람에 딛고 선 철봉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크웃!”
그러는 사이 사비강은 칼등을 밟으며 빠르게 타고 달렸다.
타다닷!
“헛! 웃기지 마!”
깜짝 놀란 유송령이 칼을 재차 휘둘렀다.
놀랍게도 사비강은 칼등에 발이 붙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떠오르며 균형을 잡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도를 휘두르면서도 사비강의 무게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남자… 내 움직임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경공을 펼치고 있어!’
그야말로 상승무공.
마침내 사비강이 그녀의 어깨를 툭 차면서 뒤로 내려섰다.
“자, 다시 해봐. 조금 전에는 도기를 발현하는 게 너무 늦었다. 반 박자 빠르게 발산했어야 했다.”
“무슨… 소리를…!”
유송령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이 남자, 날 가르치려는 거야?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