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09화 (209/670)

# 209

귀환 마교관

209화

적무린은 심기가 불편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을 꼽으라면 바로 정파 나부랭이들이었다.

가식으로 똘똘 뭉친 정파 녀석들을 보면 얼굴에 침이라도 한 사발 뱉고 싶은 심정이다.

한데 정도맹에서 온 교관을 보좌하라니!

차라리 근신 처분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백배 천배는 나았다.

상부에 강하게 항의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직접 자넬 지목했네.”

총군사 류여중이 말해 주었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지만, 류여중도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정도맹에서 온 사비강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내 얼굴에 침이라도 뱉을 것 같은 표정이군.”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지만, 적무린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 다 식을 때까지 손도 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며, 결코 유쾌하지 않다는 뜻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툭!

사비강이 탁자 위에 명부를 올려놓았다.

“얘들 다 알지?”

적무린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명부만 들어 살폈다.

아는 자들이었다.

사실 ‘생도’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자들.

이미 혈사련 내에서도 각 조직에 속해 있다가 몇 번씩이나 징계를 받았던 녀석들이다.

한 마디로 통제가 불가능한 녀석들이다.

다만 그 실력이 아까워 차마 제명을 하지 못했던 놈들.

악질 중에서도 악질.

적무린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마침내 그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쉽지 않을 겁니다.”

“뭐, 그건 내 문제고.”

“그들은 이미 고수의 수준입니다.”

“흐음. 사파에서는 이 정도도 고수라고 부르는 모양이군.”

“……!”

적무린이 눈을 부릅뜨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사비강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에게 전하도록 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겠다고. 고수이건 나발이건 내가 맡은 이상 생도는 생도일 뿐이라고. 그렇게 전해.”

적무린이 빤히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가 빠져나가자 옆에 서 있던 추량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후아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뭐, 저렇게 답답한 사람이 다 있습니까?”

“좀 배울 생각 없어?”

“지금… 저 말 많다고 뭐라고 하시는 거죠?”

“맞아.”

“너무하십니다! 사부님도 말씀은 많이 하는 편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둘 중 하나라도 좀 조용해야 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묵언수행을 하지요!”

추량이 토라진 투로 말을 뱉고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물론 그의 당찬 각오는 한 시진도 이어지지 못했다.

**

다음날 아침.

“긴장되네요.”

추량이 사비강의 뒤를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네가 왜?”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녀석들이라고 하니까….”

드디어 첫 수업이다.

물론 수업 진행은 사비강이 도맡아 하게 되겠지만, 추량 역시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분명 사부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겠지?’

하긴 자신이라도 사파의 무인이 교관으로 왔다고 한다면 반감부터 가질 테니. 사파 녀석들은 오죽할까?

아마 사부님이 나타나자마자 살기부터 줄기줄기 뿜어댈 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놓고 무력시위를 해오려나?

아니다.

어쩌면 은밀하게 암살을 시도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사부님을 지켜 드려야 한다!’

추량이 양손으로 제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마침 두 사람이 연무실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이미 적무린이 와 있었다.

사비강이 물었다.

“다들 준비됐나?”

적무린이 피식 비웃더니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가지.”

사비강은 연무실의 모퉁이를 돌아갔다.

첫 수업은 연무실 후원에 자리한 연무장에서 가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휘이이잉.

바람에 낙엽이 바닥을 굴러갔다.

뒤따라오던 추량이 우뚝 멈추고는 두 눈을 끔뻑였다.

“으엥? 다들 어디 간 겁니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연무장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연무장에는 낙엽만 이리저리 굴러다닐 뿐이었다.

사비강이 적무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내 말은 다 전했겠지?”

적무린이 슬쩍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사실이었다.

그는 사비강의 전언을 그대로 전했다.

하지만 생도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수업 거부 사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한 명은 나왔군.”

사비강의 시선이 연무장을 둘러싼 숲으로 향했다.

숲의 나뭇가지 위에 한 사내가 걸터앉은 채 육포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이름이 뭐냐?”

사비강의 질문에 육포를 씹던 사내가 나뭇가지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더니 피식 웃었다.

“나 말이오? 방각(龐覺)이올시다.”

나이는 대략 추량과 비슷해 보였다.

사비강은 방각을 알고 있었다.

쌍도를 잘 쓰는 자.

마계의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초반에 반짝 공을 세우고는 죽은 자였다.

“반갑군. 나는 사비강이다. 오늘 수업을 들을 사람은 너밖에 없나 보군.”

“크크크.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난 그냥 그쪽 얼굴이 궁금해서 나와 본 것뿐이오. 용맹하게도 우리를 가르쳐 보겠다는 교관 나리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이제 확인했으니 됐소. 아무래도 오늘 수업은 혼자 하셔야 할 것 같소. 크하하하!”

방각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사비강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니지. 올 때는 마음대로 와도, 갈 때는 그렇게 안 되거든. 어디까지나 교관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 그게 내 수업의 방침이야.”

“뭐요? 허참,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시나 본데….”

팟!

“…엇?”

방각이 눈을 부릅떴다.

‘어느 틈에…!’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사비강은 자신의 코앞에 나타나 있었다.

만약 경신법을 펼쳐서 온 것이라면 바람이라도 불었어야 했다.

한데, 그냥 원래 이곳에 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나?

놀라기는 적무린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옆에 서 있던 사비강이 순식간에 저 먼 곳에 나타난 것.

‘도대체 저게 무슨 경신법이지?’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손을 불쑥 뻗더니 방각의 턱을 움켜잡았다.

“우선 네 말버릇부터 고쳐야겠다. 정사를 막론하고 사부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서야 제대로 된 교육이 되겠냐?”

“웃…기지 마쇼…! 존경이 강요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백번 옳은 말이지. 존경이라는 건 강요가 아니라 우러나와야 하는 법. 그리고 난 지금부터 네 마음속에서 그 존경심이 우러나오도록 쥐어짤 거다. 대게는 쥐어짜다 보면 우러나오더라고.”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섬뜩한지 방각은 등골이 오싹했다.

“크이익!”

다음 순간, 방각이 얼른 일장을 뻗으면서 훌쩍 물러났다.

팡!

사비강이 손을 뻗어 장력을 와해시키고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배울 자세가 된 모양이군.”

“흥! 웃기지 마라! 어디 한 번 쥐어짜 보든지!”

“후후후. 사양하지 않으마.”

찰나,

팟!

사비강이 다시 눈앞에서 사라졌다.

방각이 얼른 돌아서며 도를 휘둘렀다.

“어디서 사술 따위를!”

쒸아아앙!

도기가 날아들면서 허공을 벴다.

확실히 실전으로 다져진 몸이어서 그런지 학관의 생도들에 비하면 상당한 무공 수준이었다.

퍼캉!

도기가 사비강의 실드에 막히면서 그대로 깨져 나갔다.

방각이 눈을 부릅떴다.

‘뭐, 이런…!’

그가 이번에는 쌍도를 동시에 뽑아 들고 훌쩍 날아올랐다.

사비강이 손을 슬쩍 뻗으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그 순간,

후우우우우웅!

갑자기 마른 바닥에서 엄청난 화염 폭풍이 생성되며 휘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이익…! 이번엔 또 무슨 사술을!”

방각은 필시 눈속임이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멀쩡한 땅바닥에서 불기둥이 솟구칠 이유가 있나?

모든 사술이 그렇듯 실제로 믿지 않으면 화를 당하지 않는 법.

“안 통한다!”

그가 일갈을 터뜨리며 그대로 사비강에게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화르르르륵!

화염 폭풍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그를 삼켰다.

“우아악! 크아아악!”

방각은 어마어마한 열기에 온몸이 익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급하게 물러났다.

동시에 최대한 음기를 운용해서 몸을 차갑게 식혔다.

하마터면 온몸이 불에 익어 즉사할 뻔한 상황.

이를 지켜본 추량은 눈빛을 반짝였고, 적무린은 충격을 받은 듯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방각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제기랄! 이게 무슨 사술…! 커억!”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눈앞에 다시 나타난 사비강이 그의 턱을 또 움켜잡았다.

사비강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참 웃기지. 사술은 너희 사파 놈들의 전유물일 텐데. 뭐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꾸 사술, 사술 거린단 말이야.”

“크으윽!”

“넌 그래도 내 첫 수업에 참여한 생도니까 특별히 예쁘게 봐 주마.”

말을 마친 사비강이 품에서 단약을 꺼내더니 방각의 입속에 쑤셔 넣었다.

“커걱! 이게… 뭐…!”

“닥치고 먹어라. 몸에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사비강이 강제로 그의 입을 닫아 버렸다.

방각이 어쩔 수 없이 단약을 삼키고 나자, 사비강이 그를 저만치 내던졌다.

콰당탕!

“으윽! 제길! 내게 뭘 먹인 거요?”

말투가 조금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비강을 씹어 먹을 것 같은 표정이다.

“이미 먹은 거야. 좋게 생각해라.”

“이익…!”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뱃속이 뜨끈한 것이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젠장할!”

그가 연무장 한옆으로 달려가 입에 손가락을 넣고 토악질을 했다.

“쿠웨에에엑!”

어느새 다가온 건지 사비강이 그의 곁에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소용없어. 네가 먹은 건 순식간에 녹아서 흡수되는 성질이거든.”

“그, 그런…!”

그러고 보니 벌서 아랫배가 뜨끈해지는 것 같다.

방각이 사비강의 손을 탁 뿌리치고는 후다닥 물러났다.

“감히 본련 한복판에서 나를 죽이고도 당신이 무사할 것 같소?”

“난 아직 너 안 죽였어.”

사비강이 품에서 단약을 하나 더 꺼냈다.

아까와 색이 조금 달랐다.

방각의 눈이 반짝였다.

‘해독제인가?’

찰나,

파밧!

방각의 신형이 사비강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해독제를 빼앗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뻐엉!

“크아악!”

사비강이 내지른 일장에 가슴을 얻어맞은 방각이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한참이나 굴러갔다.

사비강이 툴툴 웃었다.

“흐흐. 안 되지. 이 좋은 걸 그저 가져가려고 하다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앞으로 매일 하나씩 주겠다.”

방각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가슴을 문질렀다.

‘매일 하나씩이라니! 결국 매일 해독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안 될 맹독이었구나!’

교관이라는 자가 이렇게도 비열하다니!

속에서 열불이 뻗쳤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미 자신의 생명줄은 사비강이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비강의 표정이 어느덧 진중해졌다.

“네 얼굴은 내가 확실히 기억해 뒀으니 뒈지기 싫으면 반드시 나오도록.”

“죽음이 두려울까보냐!”

“그럼 뭐, 한 번 죽어 보든지.”

사비강이 손을 흔들고는 돌아섰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아, 다른 녀석들도 내일은 꼭 나오라고 전해라. 아무래도 수업은 혼자 듣는 것보다 여럿인 게 즐겁잖아?”

방각은 해쓱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사비강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