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귀환 마교관
206화
쒸이이이잇!
검봉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추량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쳐다보는 게 최대한의 용기였다.
마침내 검이 목울대 앞에서 뚝 멈췄다.
검봉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가 금방이라도 목에 구멍을 뚫어 버릴 것 같다.
꿀꺽.
침을 삼키니 차디찬 날에 목울대가 조금씩 닿는다.
‘역, 역시… 대단해!’
추량의 표정에 희열이 차올랐다.
한편, 검을 내뻗은 사비강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왜 움직이지 않았느냐? 제자야.”
“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후후후. 그랬겠지. 네가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무공에 제압을 당했기 때문이니라.”
“그, 그것이 무엇입니까?”
“절대지존무적이기결박술(絶代至尊無敵理氣結縛術)이라는 거지.”
“오오! 대단합니다! 정말 엄청납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내공을 이용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무림제일 고수라고 할지라도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지.”
“역시 사부님은 대단합니다! 제게 그 절대지존무적이기결박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전에….”
사비강이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더니 검봉을 들어 추량의 코끝을 간질였다.
“사, 사부님! 이건 무엇입니까?”
“간지럼을 일으켜 상대를 방심하게 만드는 기만책이다.”
“역시… 으헤헤. 근데 좀 간지럽습니다. 풋, 크헤헤헤!”
“참아라! 이 정도도 참지 못해서야 어찌 내 제자가 되겠느냐?”
“푸헤헤헤헤!”
**
“크큭! 으헤헤헤헤! 간지럽다고요. 사부니임. 흐헤헤헤! 이제 그만….”
연신 웃음을 흘리던 추량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아주 잠깐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음? 내가 왜 누워 있는 거지? 그리고 사부님이 왜….’
바로 앞에는 사비강이 쪼그려 앉아있었다.
사비강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풀잎을 들고는 추량의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그제야 추량은 자신이 잠에 빠졌다가 꿈을 꾼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헉! 언제 잠에 든 거지?’
맹을 나와 곧장 사비강을 추적했다.
꼬박 하루 만에 그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따라오지 못하게 할까 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행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틈에 잠이 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사비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추량을 보더니 풀잎을 그 얼굴에다가 휙 던졌다.
“너 뭐냐?”
“사, 사부님!”
추량이 벌떡 일어나 절을 했다.
“사부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안 돼.”
“하지만 사부님! 절 제자로 거두어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날 따라다니라고 하진 않았어.”
“사부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도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귀찮아.”
“사부님의 짐꾼이 되겠습니다!”
“맡길 짐도 없다.”
“여정 기간에 드실 음식을 모두 제가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객잔에서 사 먹으면 된다.”
“온갖 잡일은 제가 다 도맡아 하겠습니다!”
“필요 없어.”
“객잔에서 쉴 때는 제가 책임지고 미녀들을 합석시키겠습니다!”
“음…?”
사비강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
“가능하겠냐?”
“물론입니다! 최고의 미녀들로 합석시키겠습니다. 이래봬도 여인들 꽤나 홀리고 다녔습니다.”
“가자, 제자야.”
“감사합니다, 사부님!”
추량이 또 다시 넙죽 절을 올렸다.
**
“사비강이 온다고 합니다.”
혈사련의 회웅당주(灰熊堂主) 신추귀(愼秋貴)가 입매를 치켜 올렸다.
탁자를 두고 마주 앉은 현무당주 독고진이 찻잔을 들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오. 세상사 참 모를 일이지.”
“그렇다고 해도 이리 순순히 올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니 눈에 뵈는 것이 없을 거요. 자기가 어디에 발을 들이는 지도 모를 거요.”
“그러고 보니 독고 당주님께서는 그자를 직접 본 적이 있으시지요?”
“지난 정사협정 때 한 번 보았소.”
“어떤 자였습니까?”
“아주 자만에 빠져서 시건방진 자였소.”
독고진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그가 보기엔 사비강은 딱 그런 인물이었기에.
자신감을 넘어 자만으로 똘똘 뭉친 자.
독고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천운이 따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자는 그 협상 자리에 어울릴 인물이 아니었소. 뒷배가 아주 든든했을 테지.”
“하나 어찌 운으로만 정도맹의 감찰총국주가 되었겠습니까? 게다가 그가 정도맹을 안정화 시켰다는 보고도 있지 않습니까?”
“흐음. 그게 과연 그자의 역량 때문인지 주위 사람들의 능력이 뛰어난 건지 알 수 없지 않소?”
독고진의 말에 신추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요. 그나저나 그자가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겠습니다. 그자가 맡을 자들은….”
신추귀가 말끝을 흐리고는 비열한 웃음을 떠올렸다.
앞으로 사비강이 맡을 조직은 혈사련에서도 가장 악질들로만 모아놓은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후기지수라고 볼 수도 없었다.
이미 각 조직에 차출되었다가 문제를 일으킨 자들로만 재구성된 반이었기에.
때문에 생도라 불리는 자들의 나이도 천차만별이었다.
독고진이 말했다.
“그자가 아무리 용천관에서 문제아들을 가르쳤다지만, 그 녀석들은 질적으로 전혀 다를 거요. 대체로 말 보다는 손이 앞서는 녀석들이니까. 후후후.”
신추귀도 히죽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사실 말이 좋아 교관으로 초빙이지, 실제로는 볼모로 불러들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간에 알려진 교관이라는 것은 그저 보기 좋은 허울일 뿐이었다.
“우린 적당히 볼모로 잡고 있다가 기회가 왔을 때 그를 처리하면 그만이오.”
그 후에는 암살 사실을 최대한 은폐한다.
한동안은 사비강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밀 것이다.
그러는 동안 혈사련은 정도맹의 볼모로 잡힌 홍묘를 구출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이후에는 화려한 정사대전이 재개되는 거지.”
독고진이 툴툴 웃었다.
신추귀가 따라 웃으며 잔을 들었다.
“사비강 그자도 참 안 됐습니다. 하하하.”
“뭐, 그것도 그자가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적원(赤猿)을 말씀하시는군요.”
“아마 지금쯤 사비강을 만나지 않았을까?”
“과연 적원이라면 예상치 못한 암습이 가능하겠군요.”
신추귀의 말에 독고진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반조(潘照)는 혈사련에서 ‘적원’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사내였다.
붉은 원숭이.
즉, 그만큼 재주가 많다는 뜻이다.
그는 수레에 담긴 상자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평범한 나무 상자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암기 발사 장치였다.
‘좋아, 이제 그놈을 없앨 수 있겠어!’
반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미 그는 이틀 전에 사비강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먼저 미인계였다.
마침 사비강과 동행하는 녀석이 여인들을 꼬드겨서 데려갔다.
그 여인들은 모두 자신이 심어둔 수하였다.
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합석만 하고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정인이 있다나?
결국 미인계를 이용한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비강이 여인들과 정사를 벌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가 없는 계책이었다.
그래서 그 방법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재수 없는 정파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눈앞의 미녀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면서 그 기분만으로 며칠을 굶어도 사는 녀석들일 테니까.
그렇다면 이번엔 다른 방식을 사용한다.
바로 정파 놈들의 그 알량한 정의와 배려심을 역이용하는 거다.
조금 있으면 이곳으로 사비강이 지나갈 것이다.
그럼 자신이 미리 섭외한 노인은 구덩이에 빠진 수레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척 할 거다.
명분에 죽고 못 사는 정파 녀석들이라면 분명 오지랖을 부려 도와주려 할 것이다.
이때 수레나 나무 상자에 손을 대면 곧바로 암기가 발사된다.
암기는 독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코앞에서 발사되는 만큼 절대 피할 수 없으리라.
호신강기?
그딴 건 펼칠 여유도 없이 직격당할 거다.
침에 말린 독은 맹독 중에서도 맹독이다.
반각 이내에 해독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다.
당이협을 수하로 두었다고 들었다.
해서, 특별히 사천당가에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희귀한 독으로 발라 두었다.
매우 비싼 독.
오로지 자신만이 해독제를 가지고 있다.
‘사비강.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는 녀석일지라도 내게 표적이 된 이상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장치를 이용한 암살은 살수보다 위험한 면이 있다.
바로 사전에 눈치를 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고용한 노인은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고, 발사 장치에서는 아무런 살기를 느낄 수도 없다.
대게의 살수들이 암살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그 감출 수 없는 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추고 감추더라도, 상대를 죽이려는 그 순간만큼은 살기가 일어나게 되어 있으므로.
하지만 무생물인 암기 발사 장치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는 어지간한 고수보다도 유용하다.
“후후후. 그럼 이제 구경이나 해야겠군.”
반조가 입매를 치켜 올렸다.
이제는 적당히 떨어진 곳에 은신한 채 두고 보기만 하면 될 일이다.
**
사비강과 추량이 언덕길을 따라 내려갈 때였다.
길가에서 한 노인이 구덩이에 빠진 수레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추량이 사비강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놔둬. 강호에서 선의는 함부로 베푸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저 노인은 무인이 아닌데요?”
“나도 알아.”
추량은 더 대꾸하지 않고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그런데 마침 노인이 먼저 도움을 요청해 왔다.
“거기, 두 분. 혹시 무인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하.”
추량이 선뜻 나서며 대답했다.
노인이 반색하며 말했다.
“저 좀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수레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당최 구덩이에서 빠지지가 않는구려. 두 대협께서 이 노부를 도와주신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요.”
사비강이 걸음을 멈추고 힐끔 돌아보았다.
“도와주면 뭘 해주겠소?”
뜻밖의 말에 노인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대답했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사례는 반드시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뭐로?”
“끄응. 은자 한 냥을….”
“일 없소.”
사비강이 냉정하게 돌아섰다.
노인은 다급했다.
이 일을 해주는 대가로 받은 게 은자 서른 냥이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한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서른 냥을 빼앗기는 건 물론, 호된 질책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은, 은자 다섯 냥 드리겠습니다!”
“고작 다섯 냥 때문에 땀 빼고 싶지 않소.”
“열, 열 냥을 드리겠습니다!”
“…….”
“열다섯 냥!”
“수고하시오.”
노인은 난감해졌다.
뭐 저렇게 매정한 인간이 다 있단 말인가?
무공을 익힌 몸이라면 그냥 좀 도와줘도 될 법 하건만!
추량도 어쩔 수 없이 사비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급해진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잠깐! 잠깐!”
“뭐요?”
“서른 냥을 드리지요.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사실이었다.
물론, 이 서른 냥을 지불한 다음에는 고용자에게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사비강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 정도라면 힘을 쓸 만하군.”
그가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수레 뒤편으로 갔다.
“그럼, 제가 앞에서 끌겠습니다.”
노인이 말을 뱉는 것과 동시에 얼른 손잡이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수레에 담겨 있던 나무 상자가 미끄러지면서 사비강과 추량을 덮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