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04화 (204/670)

# 204

귀환 마교관

204화

“이제 거의 다 왔군요.”

언덕 위에 올라선 천세명이 저만치 보이는 정도맹의 본단을 가리켰다.

옆에 선 등부형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이지 정도맹은 찾아올 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참으로 장엄한 광경입니다.”

그의 말대로 정도맹의 본단은 그 외벽만으로도 어지간한 성벽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 웅장한 크기에 두 사람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정도맹 본단에서 온 초청장 때문이었다.

이번에 정도맹에서 벌이는 연회는 사비강의 송별회와 더불어 맹의 안정화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에 학장 주유천은 그나마 사비강과 친목이 두텁다고 오해한 천세명과 등부형을 파견한 것이다.

천세명의 입매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우리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거요.”

“물론입니다. 그 사비강 교관조차 감찰총국주를 맡지 않았습니까? 누구보다 우리가 그에 대해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면 사비강 교관은 운도 참 좋았지요.”

“어찌 운만으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겠소? 실력도 있었겠지.”

천세명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자, 등부형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예, 실력은 삼 할 정도 쳐주겠습니다. 하하하.”

“허허, 등 형도 참.”

두 사람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이나 웃던 등부형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사실 정도맹으로서도 뜨악했을 겁니다. 웬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와서 아무렇게나 설쳐대니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오. 강호에 난 소문을 듣지 못했소? 새로운 감찰총국주가 많은 업적을 세웠다고 하지 않소?”

“그거야 맹에서 소문내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그 소문이 오롯이 사실이었다면 왜 사 교관을 혈사련의 볼모로 보내겠습니까?”

“흐음. 하긴….”

두 사람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물론, 그 오해를 바로 잡아 줄 사람은 없었다.

등부형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결국 이리 될 줄 알았습니다. 사 교관에게 감찰총국주 자리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런 중책이 어울리는 분은 따로 있지요.”

“커험. 그게 누구요?”

“그야 당연히 천 부장님이시지요. 천 부장님이야 말로 그 막중한 자리에 제일 어울리는 분이시지요.”

“허허, 등 형도 참. 낯간지럽소.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오.”

“무슨 말씀입니까? 천 부장님이야 말로 인재 중의 인재라는 것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렇게 천 부장님이 초청을 받아 맹의 본단으로 가는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허허, 이 사람 참. 괜히 넘겨짚지 맙시다.”

천세명이 손을 내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내심은 내뱉는 말과 좀 달랐다.

그 역시 은근한 기대를 하는 중이었다.

사비강이 감찰총국주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그 빈자리를 누구에게 넘기게 될까?

이런 상황에서 정도맹이 자신들을 초청했다.

물론, 정도맹은 그들뿐만 아니라, 중원 각지의 명문 정파에 초청장을 보냈다.

하지만 천세명과 등부형만큼은 그 의미를 좀 다른 특별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이건 출세의 기회다! 잘하자!’

천세명이 주먹을 불끈 쥐고 걸음을 내디뎌 갔다.

**

화려한 송별회가 열렸다.

연회는 감찰총국의 안마당에서 펼쳐졌는데, 맹 내 수뇌 인사들은 물론이고 중원 각지의 요인들이 모두 참석해서 자리를 빛냈다.

음악이 끊이지 않았고, 진귀한 음식들은 줄을 이었다.

모처럼 정도맹이 안정을 되찾고 나서 처음 열리는 연회였기에 분위기는 마냥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했다.

사비강은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했다.

대게 이런 거창한 송별회는 당사자가 고사하기 마련이다.

사비강 역시 이런 송별회는 가질 필요가 없다며 정중히 사양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맹주에게 말했다.

“이왕 떠날 텐데 그전에 거창한 송별회나 열어 주십시오. 저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뜬금없는 요구에 능운파는 두 눈을 한참이나 멀뚱멀뚱 뜨다가 곧 파안대소하며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마침 사비강 곁으로 구윤이 다가와 앉으며 말을 걸었다.

“정말이지 국주님은 독특하신 분입니다. 보통은 이런 자리를 당사자가 거절할 텐데 말이죠.”

“산해진미를 실컷 맛볼 기회인데 왜 이런 좋은 자리를 마다하겠소?”

사비강이 이름도 모를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우적우적 씹으며 술병을 들이켰다.

“캬아, 맛 좋다!”

구윤은 빙그레 웃으며 그를 가만히 보았다.

돌이켜보면 참 희한한 인연이다.

사비강은 정말이지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만난 자였다.

주변이 온통 어지러운 순간 그를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태풍의 눈 속에 들어온 것처럼 온 세상이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마음이 평온하니 모든 상황들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단지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그 끝 모를 신뢰감을 주는 자가 얼마나 될까?

한데 이 괴상망측한 행동만 일삼는 사비강에게서 그런 것을 느끼게 될 줄이야.

그래서 그에게 도박을 걸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처음으로 감을 믿고 행동했다.

그 결과가 오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더 아깝다.

그를 이렇게 떠나보내기가.

구윤이 그렇게 절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자, 사비강이 불편한 듯 힐끔 보며 툭 내뱉었다.

“그 곱상한 얼굴로 그렇게 쳐다보면 사람들이 오해하겠소.”

“그러라고 하십시오. 다른 사람 눈을 신경 쓸 것 같았으면 내가 사 국주님을 찾으러 갔겠습니까?”

“허어, 점점 더 오해 살만한 소리를 하는군.”

“하하. 그랬습니까? 사 국주님. 부디 몸 잘 챙기십시오. 사파 놈들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그들의 드러난 모습에 속지 마십시오.”

“후후후. 겉과 속이 다른 걸로 따지자면 날 이길 자가 없을 거요.”

사비강이 씨익 웃어 보였다.

“하하. 그것도 그렇겠군요.”

구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사비강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지금은 천멸대가 된 생도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며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는 당이협과 매설란이 앉아 있었다.

당이협은 튀김 하나를 입에 넣고는 한참이나 우물거렸다.

매설란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맛이 어때요?”

“너무 맛있습니다.”

당이협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맛있는 걸 먹는 사람 표정이에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지만, 매설란은 생긋 웃으며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런데 왜 더 드시지 않으세요?”

“목이… 매여서 그렇습니다.”

“그럼, 술이라도 좀 드시죠.”

“술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말을 마친 당이협은 두 눈을 부릅 뜬 채 동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음식을 먹고 화가 난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만큼.

한참 만에 그가 입에 든 것을 삼키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국주님의 배려에 마음이 격해져서.”

“국주님이 무슨 배려를 했다는 거예요?”

“모르시겠습니까?”

당이협이 그녀를 슬쩍 돌아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옆에 앉은 천멸대원들이 싱글벙글 웃으며 음식들을 포식하고 있었다.

당이협이 무뚝뚝한 표정 그대로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에게 먹이고 싶으셨을 겁니다.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녀석들 배를 든든히 채워 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무럭무럭 자라라. 더 강해져라. 하고….”

당이협이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그는 다시 마음이 격동한 듯했다.

크게 부릅뜬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매설란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기에 내심 놀랐다.

‘그런 뜻이 있었나?’

이 연회를 먼저 제안한 사람은 사비강이라고 했다.

참으로 마지막까지 엉뚱한 그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저 녀석들을 위해서였을 지도 모른다니.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확대 해석한 게 아닐까?

그래, 분명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런 건데?’라고 할 거다.

왠지 그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듯하다.

그런데…

매설란이 힐끔 시선을 돌려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르겠네.”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지금 사비강의 시선은 천멸대원들에게 향해 있었으므로.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며 분위기에 취한 대원들을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가슴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아… 나는 그보다 더 좋은 국주가 될 수 있을까?’

사비강은 떠나기 전 그녀를 감찰총국주로 추천했다.

맹주 역시 허락의 뜻을 비쳤기에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이 없었다.

매설란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는 중얼거렸다.

“나, 당신만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볼 게요. 당신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한편, 연회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그들은 바로 천세명과 등부형이었다.

등부형이 천세명의 귀에 속삭였다.

“천 부장님. 아무래도 우리가 왔다는 사실을 사 교관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가서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하긴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사 교관이 우릴 미처 못 알아 볼 수도 있겠군. 갑시다.”

천세명과 등부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데 뭐라고 불러야 하오? 사 교관? 사 국주?]

[으음. 어차피 곧 떠날 사람 아닙니까? 예전처럼 사 교관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습니까?]

[역시 나도 같은 생각이오.]

천세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사비강 근처에 다다랐을 때,

“오, 사 교관! 이것 참 반갑소!”

천세명이 소리쳤다.

하지만 주위가 워낙 시끄러워서인지 사비강이 듣지 못한 듯했다.

“사 교관! 나요!”

천세명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때,

“두 분은 어디서 오신 분이오?”

문득 옆에서 들린 목소리.

마침 자리에 앉아 있던 함천석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일어난 것이다.

그 기세가 사뭇 거칠었기에 천세명이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 난 저기 사비강 교관과 잘 아는 사이오만.”

“그러니까 어디서 오신 분이오?”

“용천관에서 왔소.”

“용천관이라면 생도들을 가르치는 학관인데, 어찌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시오? 저분은 감찰총국의 국주님이오. 여기서 그렇게 불러서는 곤란하오.”

함천석이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천세명과 등부형이 그 기세에 눌려서 눈치만 살폈다.

그때였다.

“아, 이게 누구십니까? 천 부장님과 등 교관님 아니십니까?”

마침내 사비강이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다가왔다.

천세명과 등부형이 기가 살아서 손을 흔들었다.

“오, 사 교관… 아니, 사 국주! 오랜만이오!”

그러자 이번엔 함천석이 천세명의 어깨를 힘주어 움켜잡았다.

천세명이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뭐, 뭐요?”

“국주님이라고 부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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