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귀환 마교관
201화
푹! 푸푸푹!
“크아악!”
“으악!”
사심자가 다시 힘을 얻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비명과 피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으익! 웬 놈이… 크악!”
배후를 향해 달려들던 무인 하나는 그대로 목이 꿰뚫리면서 절명하고 말았다.
사심자는 그야말로 허공을 나는 뱀처럼 움직였다.
적이 조금만 틈을 보이면 빠르게 날아가 목과 같은 급소를 물어뜯었다.
사비강은 여전히 목단화의 양 손목을 잡은 채 움직였다.
목단화는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아니야.’
분명 자신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비강의 의지였다.
그가 자신의 양 손목을 잡고 반강제로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공력을 나눠 주었기 때문에 의식만은 또렷했다.
어느 순간 사비강이 귓가에 속삭였다.
“몸에 힘을 빼고 의지를 내게 맡겨라. 그리고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해라.”
“…알겠어요.”
악착같이 버티던 그 독기는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었다.
그녀는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사비강은 목단화의 몸을 마치 제 몸처럼 다루고 있었다.
한편, 적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비강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이놈이 도대체 어디서…!”
외눈박이가 된 호신위가 이를 빠득 갈며 중얼거렸다.
사비강이 목단화의 손목을 잡은 채 그대로 돌아섰다.
목단화가 적들을 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아까의 그 기세는 어디….”
“쉿.”
뜻밖에도 그녀의 말을 막은 사람은 사비강이었다.
그가 타이르듯 말했다.
“싸울 때는 말 한 마디도 아껴라. 네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은 이상 말하느라 힘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알겠어요.”
“저 녀석은 이미 눈알이 뽑혀서 제 정신이 아냐. 굳이 격장지계를 쓸 필요도 없지. 이미 흥분을 넘어서 광기에 가까운 상태니까.”
“네.”
외눈박이 호신위는 자신을 앞에 두고 태연히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이 개 잡것들이 뭐하는 거냐!”
열불이 뻗친 그가 검을 앞세우며 달려들었다.
목단화가 반사적으로 물러나려고 하는데,
“……!”
그녀가 흠칫거렸다.
그녀를 붙들고 있는 사비강이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여기서는 뒤로 빠지는 게 아니다.”
“그럼…?”
“앞으로 파고드는 거지!”
팟!
사비강이 뒤에서 목단화의 발을 슬쩍 걷어찼다.
그러자 목단화가 저절로 경신법을 밟으며 외눈박이 호신위에게 마주쳐 갔다.
“우앗!”
적의 검이 그대로 날아드는 것을 보면서 목단화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
사비강이 버럭 소리쳤다.
“네!”
목단화가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쒸에에에엣!
검봉이 바로 눈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위로 솟구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몸이 아래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몸에 힘을 빼고 사비강의 움직임에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대신 사심자가 상대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푸욱!
후루루룽!
복부에 꽂힌 사심자가 마치 희열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봤지?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너희 가문의 검술은 이렇게 익혀야 해. 아무리 안 될 것 같아도 검로는 나온다. 물론, 민첩한 판단력과 속도가 생명이지. 그리고 그건 가벼운 사심자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쑤욱!
말과 함께 사심자가 뽑혀 나왔다.
복부를 관통당한 외눈박이 호신위는 그대로 신음을 쏟아내며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목단화는 순간 전율이 일어났다.
방금 전에는 꼼짝없이 당할 줄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을 스쳐간 검신 때문에 눈이 시려 눈물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긴박한 순간이었다.
한데…
“베거나, 베이거나. 검술 싸움은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막거나 막아내지 못하거나는 상관없어. 그걸로 승패를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 찔러서 벤다. 그것만 머릿속에 박아 둬.”
“…알겠어요.”
“방금 전에 그 녀석은 무의식중에 네 눈을 노려 왔어.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 주려는 보상심리 때문이지. 그런 심리를 이용하면 보다 쉽게 제압할 수도 있다.”
목단화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정말 가끔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 같은데, 이럴 때는 굉장히 섬세하게 분석하지 않나?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싸우는 건 예술의 경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그러는 사이,
쒸이이잇!
그들의 등 뒤에서 다시 한 번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사비강이 몸을 휙 틀면서 그대로 목단화의 손을 쑥 뻗었다.
이번만큼은 목단화도 막거나 물러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대로 부딪쳐 갔다.
쒸이이잇!
“헛!”
직선 거리로 움직이는 목단화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호선을 그리며 떨어지던 호신위가 혀를 차고는 목단화의 공격을 막아냈다.
“치잇!”
따앙!
촤아아앗!
그가 뒤로 한참이나 밀려났다.
그러는 사이 창을 든 무인들이 두 사람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회전!”
사비강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목단화를 붙들고 빠르게 회전했다.
휘리리리리링!
두 사람은 서로 붙은 채로 팽이처럼 휘돌면서 적진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까라라라라랑!
“우악!”
“크악!
기다란 창이 튕겨 나가자 무인들이 쉽게 중심을 잃어 갔다.
적진 복판으로 들어선 사비강이 목단화의 손목을 잡은 채 연신 직선 거리로 내질러 갔다.
푹! 푹! 푸푹!
굉장히 경직된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실은 매우 유연하면서도 빨랐다.
놀랍게도 검을 한 번만 내질렀는데도, 연검의 특성상 사심자가 춤을 추며 수십 번을 내찌르는 효과가 생겨났다.
‘이건…!’
자신이 펼치는 검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비강이 자신의 몸을 이용해 펼치는 이 검술은 그녀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혼돈뇌정이잖아!’
섬광벽력검의 일초식인 혼돈뇌정!
원래 서너 개쯤으로 갈라져야 할 검봉이 지금은 수십 개로 보였다.
그게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니!
‘정말 대단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어?’
그때,
“정신 차려! 언제까지 넋 놓고 감탄만 할 거냐?”
“아, 죄송해요.”
“네 몸의 움직임과 기의 흐름을 잘 기억해 둬.”
“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수십 명의 적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던 마지막 남은 호신위가 입을 척 벌렸다.
그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까부터 성문 쪽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제길…! 틀렸어!’
천애의 요새가 뚫렸다.
정사를 막론하고 모든 강호인들이 자신들을 비난하는데, 이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게다가 눈앞의 저 인간.
여자를 뒤에서 잡고 제 몸처럼 부려대는 저 인간 같지 않은 인간!
사람이 어떻게 저런 식으로 싸우면서도 저 정도의 무위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잡고 있는 여자는 가벼운 인형이 아니다.
한데 놀랍게도 그는 싸우면서도 여자의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훈련 교재라도 된 것처럼.
‘안 돼… 이 싸움은 졌다.’
투지를 잃어버리자 살기도 사라졌다.
수장격인 그가 소극적으로 나오니, 자연히 싸움의 흐름은 점점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공격해 오길 주저하자, 사비강이 목단화를 뒤에서 잡은 채로 돌아섰다.
두 사람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호신위가 흠칫거렸다.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목단화에게 말했다.
“자, 도발은 이럴 때 하는 거다. 해봐.”
“네? 지금요?”
“그래, 저기 저놈에게 해봐.”
갑작스럽게 도발이라니.
목단화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호신위를 보다가 불쑥 소리쳤다.
“쫄, 쫄았냐? 덤벼.”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그게 도발이냐?”
“그럼 어떻게 해요?”
“아까 나한테 꺼지라고 하듯이 말해야지.”
“그, 그건…!”
“자, 화끈한 걸로 다시 해봐.”
사비강의 말에 목단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편, 호신위는 어이가 없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정말….
그때, 목단화가 결심을 굳힌 듯 불쑥 소리쳤다.
“야이, 병신아! 너도 고추가 달린 새끼면 쫄지 말고 덤벼. 네 거시기는 가마솥에다가 찜 쪄 먹었냐?”
순간 장내가 고요해졌다.
호신위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태어나서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그렇잖아도 자신을 두고 무시하는 처사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가 미간을 팍 구기더니 버럭 소리쳤다.
“이 개잡년이! 당장 찢어발겨 주마!”
그가 눈을 뒤집고는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사비강이 싸늘하게 웃었다.
“아주 잘했다.”
찰나, 그는 목단화의 양 손목을 쥔 채로 마주 부딪쳐 갔다.
**
성주실.
챙챙! 채챙!
아스라이 무기 소리가 들렸다.
“크윽…!”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호신위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앞서 목단화가 날린 라이트닝 볼트에 머리를 직격당한 자였다.
정신을 차린 그가 부서진 창가로 다가갔다.
‘이건 대체…!’
성내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형세가 불리한 상황.
그가 막 몸을 던지려는데,
“커억! 쿨럭!”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화들짝 돌아섰다.
놀랍게도 막충이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피가 배어 나오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맹주님!”
호신위가 얼른 달려가자, 막충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책상을 가리켰다.
“서랍… 그걸… 가져와라…! 어서!”
“알, 알겠습니다!”
호신위가 얼른 집무 책상으로 달려가 서랍을 열었다.
그러는 사이 막충은 비틀거리며 창가로 걸어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퀴리리리링!
쉬컥!
굽이치며 날아간 사심자가 적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츄아아아아!
피를 분수처럼 뿜어낸 적은 머리를 잃은 채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마지막 남은 적이었다.
‘끝났…다.’
목단화는 멍했다.
마치 꿈을 꾸고 난 기분.
‘너무 강해. 정말 강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샘 같다.
도대체 사비강 국주는 어떤 사람이지?
교관으로서, 국주로서 그를 가까이에서 봐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세상에 누가 이런 식으로 검술을 익힐 수 있을까?
처음에는 넋을 놓고 그의 의지대로 움직였지만, 나중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많은 도움이 됐다.
마지막쯤에는 목단화가 거의 스스로 움직였다.
사비강은 그녀의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면서 혹시나 어긋난 자세가 있으면 슬쩍 교정해 주는 수준이었다.
사심자도 대단했다.
거의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섬광벽력검을 사심자로 펼치게 되니, 그 특유의 유연함 때문에 수많은 변초가 가능해졌다.
그야말로 단 한 번의 실전으로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이것 또한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고 나서 얻은 깨달음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애썼다.”
사비강이 툭 던지듯 말했다.
목단화가 그를 슬쩍 올려다보자, 사비강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누구든 죽음의 문턱을 살짝 밟게 되면 어떤 깨달음이 생기게 마련이지.”
“…….”
목단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걸 노린 건가?
그래서 바로 도와주지 않았던 건가?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어떤 깨달음을 얻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아아. 근데 이 사람….
‘저런 표정도 짓는구나.’
목단화는 그 생각을 끝으로 완전히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