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95화 (195/670)

# 195

귀환 마교관

195화

우르르릉! 콰쾅!

쩌엉! 쩡!

계곡에서 연신 천둥소리가 울려댔다.

번개가 번쩍이고 하늘이 갈라질 듯 굉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로 천둥벼락이 칠 때도 있었고, 사비강과 설백이 만들어내는 효과일 때도 있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싸움은 어지간한 무인의 경지를 초월한 수준이었다.

츄아아아아아아!

거친 물살이 사나운 기세로 흘러내려갔다.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는 동안 계곡물은 세 배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애초에 계곡 가운데에 드러나 있던 바위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사비강과 설백은 전투 내내 수상비를 펼쳐야 했다.

설백은 내공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 만큼 사비강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제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내공이 부족하면 결국 급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으리라.

사실 호수처럼 고여 있는 물이 아닌, 이 같은 급류 위에서 수상비를 펼치며 싸우는 것은 보통의 내공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데 두 사람은 일각이나 버텨 내고 있었다.

‘노옴. 점점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설백은 사비강을 향해 쉼 없이 검공을 쏟아 부으면서 경계심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상하게도 사비강은 바닥을 보일 것 같으면서도 계속해서 버티고 있었다.

처음 자신이 파악한 대로라면 지금쯤 사비강은 거친 물살에 떠밀려 내려가고도 남았어야 한다.

한데 급류에 휩쓸리기는커녕 여전히 자신의 공격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피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비강의 내공은 점점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당최 이해가 되질 않는단 말이야.’

설백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가 잠시 상념에 빠졌던 순간,

파밧!

타다다다당!

베르타스가 돌연 빗줄기를 뚫어내며 그의 안면으로 불쑥 날아들었다.

“어딜!”

설백이 얼른 뒤로 물러나며 일장을 뻗어 막았다.

파파앙!

촤촤촤촤촤촤앗!

그가 거친 물살을 가로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물론 이 역시 물 위에서 펼치는 보법이었기에 연신 물보라가 일어났다.

잠깐 균형을 잃은 그가 몸을 훌쩍 날리고는 계곡가의 나뭇가지 위로 올라섰다.

반면 장력에 부딪힌 사비강은 뒤로 성큼 물러나서는 계곡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동시에 실드를 펼치자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반투명한 막에 부딪치면서 튕겨 나갔다.

츄촤아아아!

거침없이 흘러가던 물줄기가 사비강을 중심으로 갈라졌다.

그 바람에 그가 디디고 선 바위가 시야에 드러났다.

설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호신강기로 물살을 막아내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공력 소모가 심한 호신강기를 한낱 물살이나 막아내기 위해 쓰다니.

이것이야말로 상대를 기만하는 수법이 아닌가?

하지만 그 기만은 곧 자만에서 비롯된 것일 터.

내공이 바다처럼 넓고 깊지 않고서야 저런 짓을 하고도 오래 버텨낼 수 있는 건 불가능하리라.

물론 설백은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현재 사비강이 펼친 것은 호신강기가 아니라 실드였으므로.

실드는 호신강기보다 훨씬 적은 양의 마나를 소모한다.

때문에 사비강은 그가 생각하는 만큼 공력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착각 중에는 착각이 아닌 부분도 있었다.

바로 사비강의 내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애초에 사비강은 상당량의 내공을 마나로 치환한 상태였다가, 조금씩 마나를 내공으로 변환하고 있었으니 설백이 느끼기에는 충분히 이상할 만했다.

어쨌거나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지자 설백도 더 이상은 시간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좀체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무공 또한 그럴 줄은 몰랐군.”

“칭찬을 하려면 좀 더 단순하게 표현해.”

“후후후. 그 자만도 여기까지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

말을 마친 설백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비강이 눈살을 가만히 찌푸렸다.

뜻밖에도 설백이 꺼내든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누런 종이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다음 순간, 설백이 그 종이를 부욱 찢어 버렸다.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츠츠츠츠츠츠…!

누런 종이가 점점 푸르게 변하면서 마치 타오르는 불씨처럼 흩어지는 게 아닌가?

물론 정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 부어지는 중인데 종이에 불이 붙을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처럼 허공으로 흩어진 종이는 푸른 연기로 변하더니 곧장 설백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스으으읍!”

설백이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눈을 감았다.

다음 순간 그의 이마가 밝게 빛나더니 푸른색 글귀가 선명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스크롤이었군!’

마법 스크롤.

주문완료형 마법 아이템이다.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자라도 스크롤을 찢는 순간, 어떤 효과가 깃든 마법이 저절로 발동된다.

처음에는 설백이 대법을 사용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한데 그의 이마에 새겨지는 마계어를 보고 확신했다.

‘저건 또 어디서 주웠지?’

사비강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데,

“후후후! 자,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해보자꾸나!”

파앙!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가면서 설백이 표범처럼 날아갔다.

쒸에에에엑!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순식간에 검봉이 사비강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까앙!

청명한 금속성에 이어 사비강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촤타타탓!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수상비가 펼쳐졌다.

한데 놀라운 현상이 이어졌다.

따다다다당!

설백이 휘두르는 검이 시퍼렇게 얼어 버리는가 싶더니, 주변의 빗방울조차도 꽁꽁 얼리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날카로운 얼음 알갱이를 품은 강기가 사비강에게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타타타타탕!

베르타스가 빠른 속도로 허공에 잔상을 남기면서 날아드는 강기와 얼음덩어리들을 모두 쳐냈다.

파앙!

수면을 박찬 사비강이 뒤로 훌쩍 물러나서 나뭇가지 위에 올라섰다.

또 다시 반대의 상황.

사비강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냉기 속성의 스크롤이었나?’

계곡 가운데 바위 위에 우뚝 선 설백의 전신에서 엄청난 한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는 이미 계곡물이 얼어 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찬 빗줄기마저도 그의 몸에 닿기 직전에 우박으로 변하고 있었다.

틀림없다.

그가 발동시킨 것은 냉기 속성의 오러를 부여하는 스크롤이었으리라.

조금 전에 날아든 강기는 틀림없이 오러의 속성에 더 가까웠다.

설백이 가진 내공에다가 스크롤에 담겨 있던 오러까지 더해졌으니 훨씬 강해진 셈이다.

스크롤 자체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위해 제작된 만큼, 설백도 전신에서 넘쳐나는 냉기 속성의 오러를 마음껏 부릴 수 있었다.

특히나 그가 본래 익힌 무공 또한 극음의 기운이 강했기에 더욱 적응하기 쉬웠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크크크. 제법이구나!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것 같으냐?”

비릿한 웃음을 흘린 설백이 다시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이번에는 두 장이었다.

‘쯧… 역시.’

사비강이 내심 혀를 찼다.

그가 스크롤을 한 장 가지고 있다면, 분명 같은 종류의 스크롤이 여러 장 있으리라 짐작했다.

보통 마법 스크롤의 경우 일회성에 가깝기 때문에 뭉치로 보관해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쫘아아악!

그가 두 장의 스크롤을 겹쳐 찢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종이가 푸른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연기가 되어 설백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아아악!”

설백이 넘쳐나는 힘을 느끼면서 환희에 찬 심호흡을 했다.

그의 이마에 글자가 새겨졌고, 두 눈에서도 푸른빛이 맴돌았다.

“크하하하! 절망 속에서 죽어 가라!”

콰앙!

단지 발을 굴렸을 뿐인데 꽁꽁 얼어붙었던 바위가 산산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그는 사비강 앞에 나타나더니 검을 내질렀다.

사비강이 얼른 베르타스를 뻗었다.

쩌엉!

두 자루의 검봉이 서로 부딪치면서 천둥이 울렸다.

동시에 얼음 알갱이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투타타타타타!

주변의 나무들이 얼음 알갱이에 얻어맞으면서 맥없이 쓰러져 갔다.

우지끈, 쿠웅!

사비강은 오른팔이 저릿하게 울리는 것을 느끼며 뒤로 성큼 물러났다.

확실히 강해졌다.

이대로라면 상대하기가 버거울 만큼.

하지만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위험할 순 있지만 방법은 있다.

사비강은 거칠게 숨을 내쉬는 설백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꽤 즐거워 보이는군.”

“후후후. 그럴 수밖에. 사사건건 방해하던 애송이 녀석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게 됐으니.”

“그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을 손에 넣어서 정신이 나간 거겠지.”

“후후. 날 도발할 생각이라면 틀렸네!”

“도발이 아니라 사실을 직시했을 뿐!”

파팟!

두 사람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그때,

쑤아아앙!

강기를 머금은 베르타스가 사비강의 손에서 떠나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설백도 화들짝 놀라면서 얼른 검을 앞세웠다.

따앙!

온몸이 떨릴 정도의 충격으로 그가 튕기듯 물러났다.

‘지금이다!’

그 틈을 이용해 사비강은 블링크 마법을 시전하면서 설백의 배후로 이동했다.

팟!

“노옴, 그런 얄팍한 수작으로 나를…!”

설백이 노호성을 터뜨리며 재빠르게 돌아섰다.

그 바람에 검강이 사비강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피츗!

‘큿!’

하지만 사비강은 개의치 않았다.

이 순간, 어깨 좀 베이는 건 문제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파박!

사비강이 양 손바닥을 불쑥 뻗으면서 설백의 가슴에 댔다.

장력을 이용해 타격한 것도 아니었고, 장풍을 쏘아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을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그의 양 손바닥을 통해 냉기 속성의 마나가 설백에게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흐읍! 이게 뭔…!”

설백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나려고 했지만,

쩌저저저적…!

그의 가슴과 사비강의 손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동상처럼 굳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노옴! 이게 무슨 짓이냐?”

“후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뭣이?”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사비강이 연신 냉기 속성의 마나를 주입하며 씨익 웃었다.

사실 타인에게 마나를 주입하는 것은 내공을 나눠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 뭐든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도 못한 법.

이미 설백은 본인의 능력 이상으로 냉기 속성의 오러를 흡입한 상태였다.

제아무리 주문완료형 마법 아이템일지라도 마법에 대해 일개 지식도 없는 자가 신체 강화형 스크롤을 다량 사용할 경우에는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설백이 연속으로 스크롤을 세 장이나 사용했음에도 이렇게 버텨 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심후한 내공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많은 마나가 주입된다면?

오히려 약은 독이 되고 말리라.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설백의 몸은 빠르게 얼어 가고 있었다.

쩌적…! 쩌억!

“크익…! 이게 어떻게 된…!”

“하나 묻지. 그 기물은 어디서 얻었나?”

“닥쳐라! 내가 네놈 따위에게…! 크읍!”

설백은 점점 몸의 감각이 굳어 가는 것을 느꼈다.

사비강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말할 생각이 없나보군. 그럼 죽어야지.”

망설임은 없었다.

어차피 그저 궁금했을 뿐 중요한 것도 아니다.

사비강이 마무리를 지으려는 순간,

쑤아아아앙!

마침 빗줄기를 가르며 강기 한 줄기가 날아드는 게 아닌가?

사비강이 얼른 물러나자, 검은 그림자 둘이 나타나더니 설백을 빠르게 점혈하고는 부축했다.

사비강이 복면인 둘을 바라보며 이맛살을 구겼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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