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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88화 (188/670)

# 188

귀환 마교관

188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습관처럼 항상 기척을 감추고 다니는 서래향도 알아챘는데, 저 문 앞에 선 자만은 눈치 채지 못했다.

대단한 고수이거나, 은신술이 매우 뛰어난 자이리라.

사비강이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문 앞에 서 있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얗게 샌 머리가 듬성듬성 자란 노인이었는데, 키는 어린아이처럼 작았다.

그리고 특이점이 있다면, 얼굴을 비롯해서 몸 여기저기에 고슴도치처럼 대침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모습은 흡사 인형처럼 기괴해보였고, 얼핏 성한 곳이 없는 병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히죽 웃었다.

“좋은 냄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네? 이 빌어 처먹을 연놈들아, 그 좋은 술을 너희들끼리만 마시냐?”

노인이 저벅저벅 다가오자, 사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노인의 걸음이 멈췄다.

사비강에게서 살기를 느낀 탓이다.

“허어, 그렇게 사납게 굴지 말고 나도 한 잔 주지 않으련?”

“누구냐?”

사비강이 전에 없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로 보아서는 그리 강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본능이 경고하고 있다.

이 노인에게는 뭔가가 있다고.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마계에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악착같이 살아남으며 칼날처럼 다듬고 벼른 본능이다.

사비강은 자신의 그 본능을 믿었다.

정도맹에서는 본 적도 없는 노인.

이런 자가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노인이 헤실헤실 웃으며 다시 말했다.

“자자, 그리 까칠하게 굴지 말고 나도 술 한 잔 다오.”

“싫은데.”

말을 마친 사비강이 잔에 담긴 술을 홀짝 들이켰다.

노인이 미간을 팍 구겼다.

“무례한지고!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거늘.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른을 세워 두고 혼자만 처먹다니!”

“내 술이니까. 그리고 살아온 세월로 따지면 아마 내가 너보단 많을 거다.”

“뭐? 이거 이제 보니 완전 또라이구만?”

“후후후.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사비강이 목을 우두둑 소리 내며 꺾었다.

순간 노인으로부터 진득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사공을 익혔군.’

분명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사기였다.

“고얀 놈. 내 네놈을 죽여서 그 뼈마디로 술을 담가야겠구나.”

노인이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도를 꺼내 들었다.

길이는 단도보다는 길고 장도보다는 짧았다.

그의 전신에서 풀풀 풍겨 나오는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

사비강이 서래향을 힐끔 보았다.

“이차 협정은 좀 있다가 합시다.”

“좋으실 대로. 대신 나는 나서지 않겠어요. 오래 살고 싶거든요. 이 기회에 당신이 내민 줄이 얼마나 튼튼한지 지켜보도록 하죠.”

“그것도 좋군.”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노인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두 사람을 보다가 서래향을 보며 불쑥 말했다.

“네년에게서는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구나.”

“호호호. 그런가요?”

서래향이 형식적으로 받아넘겼다.

찰나,

“고로 마음에 안 드는 네놈을 먼저 죽이고 봐야겠다!”

노인이 벼락같이 달려들며 칼을 옆에서 후려쳐 왔다.

쒸이에에에엥!

파앙!

사비강이 얼른 물러나며 일장을 뻗었다.

타다앙!

노인이 칼의 옆면으로 장력을 막아냈다.

촤아아악!

뒤로 미끄러진 노인이 얼른 중심을 잡고 섰다.

우우웅!

그가 든 칼날이 가늘게 떨며 울음을 토했다.

곧이어,

팟!

노인이 다시 쏜살같이 달려오며 사비강의 가슴으로 짓쳐들었다.

쒸에엑!

이번에는 도기를 머금은 칼날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휘리릭!

사비강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옆으로 물러나자, 도기가 그대로 벽과 천장에 자국을 새겨 넣었다.

콰가가각!

노인의 속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쒸에에엑!

곧이어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도기!

파밧!

사비강이 재빨리 물러나며 몸을 젖혔다.

촤아아앗!

아슬아슬하게 스친 도기가 사비강의 앞섶을 길게 찢었다.

그 바람에 사비강의 가슴팍의 옷자락이 풀어헤쳐지면서 탄탄한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상대의 무공은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위협적이라고 할 만큼 강하지도 않다.

자신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다.

당이협이라면 호각을 이룰 정도.

한데 본능은 계속해서 경고를 보낸다.

노인의 실력은 그 이상이라고.

‘역시 뭔가 있어. 이 노인에게는….’

한편 연거푸 공격이 빗나갔음에도 노인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가 칼날을 혀로 핥으며 탁한 목소리를 흘려냈다.

“제법 잘 피하는구나. 젊은 녀석이 도망치는 법부터 배웠나보군.”

“후후후. 젊긴. 너보다 오래 살았다니까.”

“클클클. 이거 제대로 미친 새끼였구먼.”

노인이 한참 웃더니 손을 불쑥 뻗었다.

그러자 탁자에 놓인 술병이 둥실 떠오르더니 그의 손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쒸이잉!

찰나지간, 비수 한 자루가 허공을 가르며 노인의 어깨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크!”

노인이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두고는 몸을 빙그르 돌렸다.

쉬팟!

그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비수가 벽에 처박혔다.

한편 그가 놓쳐 버린 술병은 어느새 사비강의 손으로 날아간 후였다.

“이런! 망할 놈!”

“말했잖아. 내 술이라고.”

사비강이 씨익 웃고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가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히죽 웃어보이자, 노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이 어린노무 새끼가…!”

파앙!

찰나, 그가 바닥을 차고 다시 질주했다.

쒸이잉!

쒸이이잉!

이번에는 두 자루의 칼날이 양쪽에서 가위처럼 교차하며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타닷!

사비강이 재빠르게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다.

간발의 차로 칼날을 피한 순간, 노인이 발을 내지르며 각공을 펼쳐 왔다.

“노옴!”

파바바밧!

그 순간,

“으음?”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사비강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콰앙!

그의 발길질에 애꿎은 책상만 산산조각 나면서 부서져 나가 버렸다.

푸스스스스…

먼지가 비산했다.

그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돌아보자, 어느새 사비강은 출입문 쪽에 버젓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노인이 히죽 웃었다.

“고놈 참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노인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빨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사비강 앞에 나타난 노인.

하지만 이번에도 사비강은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서 반대편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러나 노인 역시 똑같은 수법에 당할 정도로 단순하진 않았다.

그 역시 수십 년의 세월을 살면서 싸움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해온 몸이었다.

“크크크! 거기!”

그가 휙 돌아서며 도를 날렸다.

쒸에에엥!

도기를 품은 칼날이 그대로 사비강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타앗!

동시에 노인도 사비강에게 질풍처럼 달려갔다.

사비강이 얼른 베르타스를 앞세웠다.

투까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불꽃이 튀어 올랐다.

튕겨 나가는 칼날을 낚아챈 노인이 그대로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뒈져라! 젊은 놈!”

쒸에에에엑!

생각보다 묵직한 공격에 사비강이 얼른 물러나며 한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집어던졌다.

찰나, 노인이 빙그르 몸을 돌리면서 공격을 멈추더니 부드럽게 술병을 받아드는 것이 아닌가?

어지간히 술이 고팠던 모양.

“크크크. 이 맛있는 걸 혼자만 처먹으면 못 쓰지.”

애초에 그의 목적은 사비강이 아니라 술이었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술병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쒸에에에엑!

퍼카앙!

화살처럼 날아든 베르타스가 그대로 술병을 깨뜨리고는 지나쳤다.

그 바람에 파편들과 함께 술이 그대로 노인의 몸에 흠뻑 쏟아져 내리고 말았다.

“이런 씨팔!”

노인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축축하게 젖은 가슴을 더듬었다.

그가 손바닥에 묻은 술을 혀로 핥아대며 아깝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제기랄! 몇 년 만에 맡아 보는 술 냄새였는데… 네놈이… 네놈이…!”

“글쎄, 그건 내 술이라니까. 그렇게 술이 고팠으면 정중히 한 잔 따라달라고 굽실거렸어야지. 흐흐.”

“닥쳐라! 이 미친개 같은 놈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노인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의 몸이 불에 달군 쇳덩이처럼 벌겋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너도 나만큼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개잡종 새끼! 내가 네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 테다! 니미럴 엿 같은 새끼!”

“기대해볼게.”

뒤이어,

으드득. 우둑!

노인의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관절이 저마다 괴이하게 꺾여 갔다.

찰나,

파파파파팟!

그의 몸에 꽂혀 있던 대침이 갑자기 사방으로 튕겨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퓨퓨퓨퓨퓩!

와장창! 콰장창!

대침이 날아들자 주변의 가구와 잡기가 속수무책으로 부서져 나갔다.

몇 개의 침은 그대로 창문을 부수며 바깥까지 날아가 버렸다.

사비강이 얼른 실드를 펼치자 화살 떼처럼 날아들던 대침들이 기름에 튀겨지듯 요란한 소리를 울려댔다.

투타타타타탕!

실드에 튕겨 나간 침들이 실내의 벽과 천장, 바닥 곳곳에 꽂혔다.

한쪽에 물러나 있던 서래향 역시 탁자를 들어 막으면서 동시에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한바탕 소란이 그치고 나자, 사비강의 눈앞에는 어느새 키가 훌쩍 자라고 덩치가 세 배쯤은 커진 노인이 목을 우두둑 꺾으며 서 있었다.

‘금제(禁制)… 였던가?’

그제야 사비강은 위화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지금껏 노인은 능력을 제한한 상태에서 싸운 것이다.

그에게서 느껴졌던 위협의 근원은 바로 이것이리라.

확실히 덩치가 커진 노인에게서는 이전보다 심후한 내공이 느껴졌다.

게다가 사이한 기운 역시 훨씬 짙어졌다.

“오랜만이구나. 본좌를 이렇게까지 화나게 하는 녀석은.”

노인의 입에서 검은 입김이 풀풀 풍겨 나왔다.

“숨 쉬지 마라. 입 냄새 난다.”

“클클클. 그럼 질식시켜서 죽여주마!”

쒸에엥!

쒸에에엥!

시커먼 검기를 머금은 두 자루의 도가 사비강을 향해 날아갔다.

사비강이 얼른 몸을 피하면서 능공섭물의 수법을 이용해 베르타스를 불러들였다.

베르타스가 손에 잡히는 찰나,

따다앙!

도를 튕겨 내자 어느새 날아든 노인이 이번엔 주먹을 뻗어 왔다.

콰아앙!

기가 폭사하는 것과 동시에 사비강이 뒤로 훅 날아가면서 벽에 부딪쳤다.

쿠웅!

노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튕겨 나간 도를 낚아채고는 다시 사비강을 향해 질주했다.

가히 그 우람한 덩치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쒸에엑!

쒸에에엑!

양손에 쥔 도가 온몸을 난자할 것처럼 거칠게 날아들었다.

휘리리릭!

사비강이 얼른 몸을 튕겨 내며 회전했다.

동시에 사비강은 회전력을 이용해 베르타스로 노인의 등을 베었다.

슈카앙!

하지만 노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선 그가 히죽 웃어보였다.

“……!”

사비강 역시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인이 썩은 이를 드러내며 툴툴 웃었다.

“본좌가 익힌 무공은 금강불괴보다 강인한 신체를 만들어 주지.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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