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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79화 (179/670)

# 179

귀환 마교관

179화

함천석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지금 그쪽에서 큰소리칠 상황이라고 보시오?”

“아무리 그래도 우리를 그리 모함해서는…!”

“흥! 모함?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금괴는 대체 뭐란 말이오? 어떻게 설명을 하시겠소? 우리가 이걸 보고도 어찌 문주를 믿을 수 있겠소!”

“글쎄, 정말 모르는 일이라 하지 않소!”

원상은 복장이 터져 나갈 노릇이었다.

도대체 이 많은 금괴가 왜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함천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등왕패 당주께서 보냈다는 그 밀서도 가짜 아니오?”

“이익…! 지금 말 다 했소? 그 밀서가 위조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 금괴를 설명해 보란 말이오. 이게 왜 여기에 있소? 게다가 동방세가에서 사라진 금괴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군. 나머지는 어디 있소?”

“정말 답답하군! 글쎄 모르는 일이라니까!”

원상이 가슴을 퍽퍽 치며 소리쳤다.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속을 까뒤집어서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함천석과 원상 사이에서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

원상이 눈을 지그시 감고는 다소 차분해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 일단 우리 진정합시다.”

“나보다 문주께서 더 흥분한 것 같소.”

“후우, 인정하겠소. 솔직히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소. 생각해 보시오. 꼼짝없이 본문이 배신자로 의심을 받게 생겼는데, 어찌 태연할 수 있겠소? 맹세코 이건 우리가 한 짓이 아니오!”

“동방세가의 금괴를 알고 있고, 복명신검에 당한 적무대의 시체가 발견 됐소. 이제는 북명신문 내에서 그 금괴가 발견됐는데… 이 명백한 증거를 두고도 모르쇠라니. 만약 등 당주께서 이 사실을 알았더라도 같은 지시를 내렸을지 모르겠소.”

“그렇다고 지금 등 당주께서 내린 지시를 거역할 생각이오?”

함천석이 입을 꾹 다물고 원상을 노려보았다.

원상은 뒤집어지려는 속을 애써 다스리며 말을 꺼냈다.

“일단 침착합시다. 오늘밤 거사는 치러야 하지 않겠소? 우선 거기에 먼저 집중합시다. 맹세컨대 이건 등 당주의 지시가 분명하오.”

함천석이 말없이 노려보자, 원상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등 당주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정말 미쳤다고 천멸대를 제거하려고 하겠소? 흑랑대가 뒷수습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그 녀석들을 제거한들, 무림공적으로 몰릴 것이 뻔하지 않겠소?”

한참만에야 함천석의 입이 열렸다.

“일단 본단으로 서신을 보내 지금의 상황을 알리고, 등 당주님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여쭤 봐야겠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다시 밀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이 금괴들을 천멸대가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오?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천멸대가 발견해 버리면 우리 모두 망하는 거요! 그건 결코 등 당주께서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깊이 생각해 보시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말이다.

함천석이 곁에 선 추량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주님은 어찌 보십니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관찰력과 판단력만큼은 추량을 따라갈 자가 없다.

자신의 감보다는 추량의 판단을 믿는 쪽이 언제나 높은 확률이었다.

그리고 함천석 또한 이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곤 생각치 않았다.

그가 계속 갈등에 빠져 있자, 원상이 다시 너그러운 목소리로 구슬려 왔다.

“우선 큰일을 치르고 나서 생각해 봅시다. 내 어떻게든 이 누명을 벗을 것이니! 본문은 이 금괴와 어떠한 연관도 없소. 그것만 믿어 주시오.”

어차피 흑랑대의 협조가 없으면 거사를 치를 수 없다.

그들만큼 완벽하게 흔적을 만들어내는 조직도 없었기에.

결국 함천석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좋소. 거사를 치르고 나서 따져 보도록 합시다. 단, 우리는 뒷수습을 해주는 것 이외에, 전투에서는 어떤 관여도 하지 않을 것이오. 오늘밤 우리는 인근 객잔에 머물겠소.”

“물론이외다. 거기까지 신세를 질 생각은 없소.”

그제야 원상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다가는 천멸대를 치는 일 자체가 무산될까 봐 노심초사하던 터였다.

함천석으로서는 의문 투성이긴 했지만, 일단 사비강과 천멸대를 먼저 제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봤다.

어차피 북명신문이 미치지 않고서야 흑랑대까지 칠 생각은 하지 못할 터였다.

그랬다간 흔적을 만들 조직도 없을 테고, 후폭풍을 면치 못할 테니까.

함천석이 추량과 함께 돌아가고 나자, 원상이 주먹으로 벽을 쾅, 쳤다.

푸스스스스.

천장이 흔들리면서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어떻게 금괴가 여기서 나오는 거야!”

그가 소리를 빽 지르자, 복일룡이 얼른 대꾸했다.

“수하들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들입니다. 이곳은 그저 잡동사니나 쌓아 두던 창고라고….”

“그러니까 그게 말이나 돼? 저 많은 금괴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이야!”

복일룡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에게 다그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하에 가득해야 할 잡동사니는 보이지도 않고, 금괴로 둔갑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크음. 이번 일이 끝나도 문제가 복잡해지겠군.”

“차라리 천멸대를 처리하고, 흑랑대도 제거해 버리는 게 어떨까요?”

“그게 무슨 소린가? 그때는 정말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게야! 당치도 않은 소리는 꺼내지도 말게!”

원상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우선 당장 해야 할 것들부터 해나가자고. 천멸대는 어쩌고 있나?”

“오늘밤 해시 초에 접대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렸더니 흔쾌히 응했습니다.”

“잘 됐군. 모쪼록 그 일만큼은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할 걸세.”

“걱정 마십시오.”

복일룡이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

북명신문에서는 소소한 접대 자리라고 했지만, 사실 거창한 연회나 다름없었다.

감사가 진행되는 중이긴 했지만, 예전부터 각 문파마다 감찰대에게 성대한 접대를 해온 것은 관례와 비슷한 것이어서 특별히 이상하게 볼 것도 없었다.

게다가 사비강이 이러한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니 북명신문으로서는 이번 감찰대도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생도들은 지객당 안마당에 차려진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고, 상석에 앉은 사비강은 여유롭게 술잔을 들었다.

안마당 한편에는 악단까지 배치해 잔잔한 음악을 연주했다.

원상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음식은 입에 잘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뭐, 좀 짜긴 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합니다.”

‘하여튼 저 시건방짐은….’

원상이 눈살을 슬쩍 구기는데, 사비강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뭘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셨습니까?”

“본문에 와서 고생을 하시니 이 정도는 당연히 대접해 드려야지요.”

“하하. 우리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가 다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수색을 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조사할 땐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시원하게 벗어던질 수 있고, 또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뒷말 없이 책임을 질 수 있을 테니까요.”

“하하하! 북명신문 문주께서 이렇게 화통하신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물론, 원상은 술을 마시자마자 곧바로 내공을 운기해서 취기를 체외로 배출해 버리곤 했다.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래, 실컷 처마셔라. 먹다 남긴 술은 네놈 무덤에 뿌려 주마.’

사비강은 원상의 바람대로 얼큰하게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댔다.

이따금씩 아리따운 미모의 시녀들이 다가와 술잔을 채우면, 예외 없이 음흉한 눈길로 그들의 몸매를 훑어보곤 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원상이 악단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지금껏 잔잔하게 울리던 음악이 다소 경쾌한 흐름으로 바뀌더니 대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검을 든 무인들이 총총 걸음으로 들어섰다.

연회 중앙 자리로 들어선 그들은 모두 화려한 복장에 가면을 쓰고 있었다.

사비강이 원상을 돌아보며 물었다.

“호오, 저들은 누굽니까?”

“북명신문의 자랑인 뇌검대입니다. 그 중에서도 정예들이지요. 오늘 특별히 국주님을 위해 검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술자리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니 편안히 감상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오, 그렇다면 정말 기대되는군요.”

사비강이 눈을 반짝이자, 원상이 내심 조소를 지었다.

‘그래. 나도 기대된다. 네놈의 목이 날아가는 모습이!’

마침 음악 연주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뇌검대가 곡조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무 명의 무인들이 통일된 동작으로 움직이니 그 힘과 화려함이 배가 되었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무인들 각자가 다른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는 또 물결이 치는 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춤사위가 이어졌을까?

찰나,

타닷, 쉬이이잇!

화려하게 검무를 추던 무인들이 갑자기 사비강과 천멸대를 향해 검을 부리며 날아갔다.

쉬이이잉!

따다당! 탕!

순간 대원들의 몸에서 실드가 반사적으로 펼쳐지더니 검을 가볍게 튕겨 내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한편 사비강을 향해 검을 뻗은 복일룡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놀랍게도 사비강은 젓가락으로 검신을 잡은 채 태연히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이건 아무리 봐도… 먹는 게 아닌 것 같은데.”

“……!”

복일룡은 얼어붙은 듯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젓가락으로 검을 낚아채다니!

‘도대체 이자는…!’

자존심이 상한 그가 더욱 힘을 주었다.

“이이익…!”

그의 손과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는 검을 내찌를 수도, 빼낼 수도 없는 지경.

‘뭔 힘이 이렇게나…!’

뒤늦게 사비강이 젓가락을 놓아주었다.

그 바람에 복일룡이 휘청거리면서 물러났다.

“아, 미안하오. 내가 요즘 누구랑 부딪치기만 하면 자꾸 칼을 부러뜨려서 말이오. 이번에도 나도 모르게 실수할 뻔했소. 그나저나 이거 굉장히 화려한 검무군.”

말을 내뱉은 사비강이 마치 속없는 사람처럼 히죽 웃더니 술잔을 들었다.

복일룡의 일격이 이렇게 간단히 막힐 줄은 몰랐기에, 곁에 있던 원상 역시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는 술을 들이켜는 사비강을 보고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곧장 검을 내질러 갔다.

“노옴!”

그가 일갈을 터뜨리며 달려드는데,

휙!

따앙!

사비강이 무심히 던진 술잔이 검신과 부딪치면서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검을 내질러 오던 원상이 휘청거리면서 물러났다.

그의 팔이 저릿하게 떨려 왔다.

‘뭐, 뭐냐? 이 힘은 도대체…!’

마침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문주께서도 이 검무에 참가하는 거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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