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78화 (178/670)

# 178

귀환 마교관

178화

“으아아아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느닷없이 추량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

그의 돌발 행동에 움찔 놀란 함천석이 이맛살을 팍 구겼다.

“너, 지금 뭐하는 거냐?”

“아니, 그게 말입니다. 제가 어젯밤에….”

말을 꺼내던 추량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대주님. 대주님은 사건의 해결이 목적이십니까? 아니면 사건의 전말을 아는 게 목적이십니까?”

“당연히 해결이다.”

“쳇,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저하고는 정말 안 맞는다고요.”

추량이 의미 모를 소리를 내뱉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함천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또라이….”

그때 흑랑대의 수하 한 명이 함천석 곁으로 내려섰다.

“대주님, 원상 문주가 뵙고자 하십니다.”

**

함천석이 북명전을 찾았을 때는, 원상이 탁자에 앉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가에는 미미한 웃음마저 머금고 있는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실내로 들어서는 함천석을 향해 원상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밤 천상천하유… 천멸대를 칠거요.”

함천석이 흠칫거리고는 원상을 보았다.

‘이것 봐라?’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함천석이 눈살을 슬쩍 찌푸리고는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까?”

“후후후. 내가 할 일이 없어 함 대주를 불러서 농이나 하겠소?”

“후폭풍은 어찌 감당하시려고….”

원상이 비릿하게 웃음을 머금고는 서신을 불쑥 내밀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서신을 받아 든 함천석은 찬찬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마침내 그가 다 읽었을 때, 원상이 입을 열었다.

“그거야 흑랑대의 손에 달린 것 아니겠소?”

함천석이 서신을 돌려주었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등 당주께서는 이곳에서 사비강 국주와 천멸대를 제거할 속셈이신가?’

하긴 지금이 기회이리라.

마침 흑랑대가 이곳에 머물고 있으니 사비강과 천멸대를 깨끗하게 처리만 한다면, 그 흉수를 사파로 둔갑시키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오히려 북명신문은 갑자기 나타난 사파들과 맞서 싸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아직 문주 원상의 혐의가 완전히 벗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지.’

만약 적무대가 북명신검에 당했다는 것을 등왕패가 알았더라도 이 같은 지시를 내렸을까?

물론 북명신문의 배신을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지금처럼 무조건 신뢰하는 것도 지양하고 볼 일이 아니겠나?

한편 함천석의 반응을 물끄러미 살피던 원상이 슬쩍 눈살을 구겼다.

“마음에 안 드시나 보오?”

함천석이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럴 리가. 실수 없이 처리나 잘하시오. 뒷수습만큼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

어쨌거나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따위는 상관없는 일이다.

명이 떨어지면 그대로 움직일 뿐.

여전히 북명신문의 배신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명확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지 않나?

그리고 이대로 사비강과 천멸대를 제거하면 오히려 금괴의 행방을 추적하기는 더 수월해질 수도 있다.

마음 놓고 북명신문을 심문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마침 원상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오늘은 어제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구려. 그럼, 우리 한 번 속 시원하게 앓던 이를 뽑아 봅시다. 신경 쓰이는 건 더 깊어지기 전에 일찌감치 제거하는 게 낫지 않겠소?”

그의 말끝에 창가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올랐다.

**

숙소 침상에 누워 있는 사비강.

그의 눈은 귀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허옇게 뒤집혀 있었다.

잠시 후, 그가 옵저버 마법을 해지하자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몸을 일으킨 사비강이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역시 그렇단 말이지.’

문득 그의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왔나?”

“예, 홍염이 주군을 뵙습니다.”

침상 곁에서 그림자 하나가 거짓말처럼 스르르 나타났다.

사비강이 손을 저었다.

“너 말고. 그들 말이다.”

“아, 예. 모두 도착했습니다.”

“오늘 밤에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알겠습니다. 전하겠습니다.”

짧은 대화가 오간 후, 홍염의 기척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비강의 입매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이제 낚을 차례군.”

**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함천석은 추량과 함께 인근의 객잔으로 갔다.

북명신문 내에도 손님들만을 위한 식당이 있었지만, 감찰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 일부러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이 층 창가에서 추량과 함께 오찬을 들었다.

한창 식사를 하던 중 추량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에? 천멸대를 친…!”

그는 곧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함천석의 기세에 눌려 말끝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천석이 혀를 차며 힐난했다.

“아주 지랄을 해라. 왜? 그냥 지붕 위에 올라가서 동네방네 떠들어 보지 그러냐?”

“쩝…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고수는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제가 고수는 아니잖아요, 헤헤.”

추량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천진하게 웃자, 함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노력 좀 하지 그러냐? 네가 아무리 흑랑대 소속이라지만, 그 이전에 무인 아니냐? 추종술만 뛰어나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다. 언젠간 너도 상승무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거다.”

“쳇,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갑니까? 저도 다 압니다. 다만 아직 제가 존경할 만한 사부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요.”

“내가 가르쳐 준다니까.”

“에이, 대주님 정도로는 좀 약하죠.”

“그 소리가 쏙 들어가게끔 훈련시켜줄 텐데.”

“하하하. 정중히 사양합니다.”

함천석이 한 마디 더 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밥이나 처먹어라.”

“대주님이 사시는 밥, 맛있게 먹겠습니다!”

“너, 이씨… 내가 언제 산다고….”

“그런데 대주님.”

돌연 말을 가로지르며 입을 연 추량.

한 마디 하려던 함천석이 입을 다물고 보았다.

추량의 표정이 지금까지와 조금 달랐기에.

“뭐냐?”

“저어… 그게 말입니다.”

추량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아주 잠시 갈등이 됐다.

어제 본 금괴에 대해 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지만 이대로 말하게 되면, 대주는 곧바로 문주를 찾아가 따질 거다.

그러면 또 이 수수께끼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추량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에이, 아닙니다.”

“말해.”

“아니에요. 아무것도.”

“뒤진다. 말해라.”

“아,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함천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너 지난번처럼 사건 다 해결할 때까지 혼자만 알고 숨겨 놓은 게 있으면 진짜 죽는다. 맹세코 내가 죽여 버린다.”

“하핫! 제가 언제 그랬다고 또 이렇게 살벌하게….”

“너 이 새끼야, 지난번에도 제일 중요한 단서를 너만 알고 있다가 우리가 한 달이나 개고생한 거 기억 안나?”

“에이, 그래도 그놈 잡지 않았습니까?”

“그래, 잡긴 잡았지. 이미 죽은 채로. 우리한테 떨어진 임무는 생포하라는 명령이었는데 말이야. 네놈이 그 단서만 공유했어도 놈이 살아 있을 때 잡을 수 있었어. 도대체 그 염병할 버릇은 언제 고칠래?”

“쩝… 대주님도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어려운 문제는 나만 먼저 풀어 보고 싶은 거.”

“야이 변태 같은 새끼야. 난 그런 거 없어.”

“후유, 사실은 말입니다. 흐음… 아, 아닙니다.”

찰나, 함천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추량의 멱살을 움켜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의 한손에는 젓가락이 들려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목을 찌를 것처럼 살기가 흘렀다.

“그냥 지금 죽자, 이 새끼.”

“컥, 말, 말할 게요! 진짜로 말할 게요. 사람들이 본다고요.”

그제야 함천석이 추량을 던지듯 놓아주었다.

“씨불여봐.”

“후우! 하여튼 대주님은 이런 얘기할 때 너무 예민하다니까. 아, 그리고 자식 얘기 할 때도.”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할 말만 해.”

추량이 목을 매만지고는 주변을 한 차례 스윽 둘러보았다.

이내 그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가 전음을 흘렸다.

[봤습니다. 제가 직접.]

[그러니까 뭐를?]

[금괴요.]

[그래서 그 금괴를… 뭐? 뭘 봤다고?]

함천석이 저도 모르게 다시 벌떡 일어났다.

추량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이야기를 이어 갔다.

[금괴를 봤습니다. 제 두 눈으로. 상당한 양이었습니다. 뭐, 동방세가에서 잃어버린 양보다는 적었지만요.]

[어디서?]

[북명신문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명신문 어디에!]

**

뇌검대주 복일룡이 나직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최대한 정예들로 구성했습니다. 모든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원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오늘 밤이다. 거사를 치르는데 있어서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물론입니다. 접대 자리도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수고가 많군. 혹시라도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네.”

“걱정 마십시오.”

“그럼 총 몇 명이나 되는가?”

“이백오십 명입니다.”

“넉넉하군. 이거 겨우 스물두 명을 상대로 너무 판을 키운 건 아닌가 모르겠군.”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요.”

복일룡의 말에 원상이 껄껄 웃었다.

“하긴. 뭐, 이왕이면 그들 모두 나설 일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리 될 겁니다.”

“후후후. 아무렴, 내 복 대주만큼은 안심하고 믿을 수 있지.”

원상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복일룡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총관이 다급한 표정으로 실내로 뛰어들었다.

“문, 문주님! 큰일 났습니다!”

“또 뭔가?”

원상이 신경질적으로 되묻자, 총관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것이… 금괴가….”

총관의 말을 듣는 원상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일그러져 갔다.

**

원상은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곁에 선 복일룡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을 퀭하니 뜬 채로 굳어 있었다.

옆에 선 함천석이 차디찬 어조로 쏘아붙였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다시 한 번 더 다그치자 원상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나도 모르는 일이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을 지경이오. 도대체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복 대주… 이게 다 뭔가?”

하지만 복일룡이라고 알 리가 없었다.

그 역시 머릿속이 멍할 뿐이었다.

그들 앞에 가득 들어차 있는 금괴.

복일룡이 넋이 나간 사람마냥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순간 함천석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끝까지 발뺌할 생각이오!”

“정말 모르는 일이외다!”

“흥! 혹시….”

함천석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등 당주님을 배신한 건 아니오? 사비강과 천멸대를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 표적이 우리였던 건 아니었소? 그렇게 이 금괴를 차지하고….”

“갈(喝)! 무슨 말을 그리 하시오!”

원상이 험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