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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75화 (175/670)

# 175

귀환 마교관

175화

사비강과 천멸대가 머물렀던 지객당은 그동안 굳게 잠겨 있었다.

혹시라도 적무대의 실종과 관련이 있을까 싶어 하태상은 시종들에게 청소도 지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랑대는 지객당에서 어떠한 특이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총관의 안내를 받아 적무대의 숙소로 향했다.

그곳 역시 적무대가 실종된 후로 굳게 잠긴 상태였다.

흑랑대에게는 먼지 한 톨도 단서가 될 수 있었기에, 이곳 역시 가주 하태상이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이었다.

“여기도 건드린 흔적이 없습니다.”

“잘 하셨소.”

총관의 말에 흑랑대주 함천석이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는 점점 불안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은 처음이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사라진 금괴다.

한데 그 금괴가 당최 어떻게 사라진 것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총관이 문을 열어 주자 서른 명의 흑랑대원들이 숙소 안으로 들어가 수색하기 시작했다.

흑랑대는 대체로 서른 명의 탐색조와 일흔 명의 추적조로 나뉜다.

다만 그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거나 명확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몇몇 특정인을 제외하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임시로 구분 짓는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까지 깨끗할 수가 있나?’

함천석은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을 느꼈다.

형체 없는 바람조차도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가 수하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그림자조차도 흔적을 남긴다.”

언뜻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함천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하루 종일 그림자가 진 곳은 땅의 습기도 다르고, 식물의 성장도 다르지 않은가?

이는 엄청난 흔적이다.

바람과 그림자조차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건만.

‘하물며 인간이… 이렇게까지 깨끗할 수 있나?’

마침 추량이 그의 곁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깔끔하네요.”

“그렇군.”

“이럴 때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뭐냐?”

함천석이 눈을 빛내며 돌아보았다.

추종술에 있어서는 자신보다도 뛰어난 수하다.

그가 하는 말이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흔적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쫓아가는 거지요.”

“무슨 소리냐?”

“우선 사라진 것은 금괴입니다. 그리고 적무대지요.”

“그런데?”

“적무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 금괴 말입니다. 상당한 양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그만한 금괴가 동방세가에 있었던 거죠?”

함천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사실 그는 등왕패의 측근으로서 그 내막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금괴가 등왕패와 연관된 세력들이 사용하는 자금줄이라는 것까지.

하나, 자신의 수하들은 그러한 내막까지 알지 못한다.

그저 명령을 내리면 복종을 하는 것이 전부이기에.

또한, 이번 임무는 일급 기밀이었으니, 보고도 못 본 척해야만 한다.

그런데 추량이 금괴의 출처에 대해 물어 오니, 함천석으로서도 난감했다.

“거기까진 알 필요 없다.”

“하지만 이대로는 단서가 나오지 않잖아요. 금괴와 관련된 이야기를 알게 되면 전후 사정을 따져서 좀 더 효율적인 추적이 가능해질 텐데요.”

“임무 자체가 일급 기밀이다. 더 알려고 하지 마라.”

“나 참, 그렇다고 우리에게까지 그 내용을 기밀로 하면 어떻게 추적을….”

그때였다.

“대주님, 여기 뭔가 있습니다!”

흑랑대원 하나가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상검악의 집무 책상 아래를 보며 소리쳤다.

대원들이 얼른 달려들어 책상을 들어 옮기자, 그 아래에 있던 종이 한 장이 나타났다.

함천석이 얼른 다가가 그 종이를 받아 들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림…?”

“이게 뭐죠? 어?”

옆에 다가와서 나란히 그림을 보던 추량이 눈을 크게 떴다.

마치 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했지만, 그 그림이 뜻하는 바를 두 사람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이건….”

“금괴군요.”

추량의 말에 함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틀림없군. 금괴야.”

“이게 어째서 여기에서 나왔을까요?”

추량의 말에 종이를 찾은 대원이 나름의 추측을 쏟아냈다.

“혹시 상검악 대주는 이곳에서 적무대원들과 함께 금괴를 훔치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흐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가장 타당하겠지.”

모든 정황이 상검악과 적무대를 가리키고 있다.

우선 상검악은 비밀 금고의 기관을 작동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런 그림까지 발견되었으니.

사실 이는 능소소가 실프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거였지만, 이들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추량은 여전히 찜찜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완벽할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특히 금고에서 금괴를 훔쳐간 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실수를 했다니….”

함천석 역시 그 부분이 신경 쓰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으니, 가장 확률이 높은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게다가 완벽에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터무니없는 부분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때였다.

흑랑대원 한 명이 황급히 달려오더니 함천석에게 보고했다.

“대주님! 적무대원의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뭐? 그게 어디냐?”

“북쪽 철괴산에 있는 낡은 사당입니다.”

함천석과 추량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

“흐음.”

함천석은 쪼그려 앉은 채로 눈앞의 사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무대의 무복을 갖춰 입은 그 사체는 전신에 검상의 흔적이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죽은 적무대원.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서 죽었나?”

함천석은 마치 대화를 하려는 듯 사체에 말을 걸었다.

물론, 사체가 대답할 리는 없었다.

그때 함천석의 눈이 반짝였다.

유독 가슴 한쪽이 툭 튀어나와 있었기에.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곳을 더듬었다.

단단한 뭔가가 손에 걸렸다.

그가 품 안으로 손을 넣어 그것을 꺼내자, 주변에 서 있던 흑랑대원들이 깜짝 놀랐다.

“금괴 아닙니까?”

함천석이 꺼내 든 것은 금괴였다.

때마침 추량이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일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난투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한 사람을 향해 여러 명이 살초를 쓴 것인데, 저항하던 한 명은 큰 부상을 입고 여기까지 도망친 듯합니다. 그리고 저렇게 쓰러져… 음? 그건 뭡니까? 벌써 수고비를 주시려는 겁니까?”

추량이 함천석의 손에 들린 금괴를 보며 물었다.

함천석이 그에게 금괴를 휙 던지고는 말했다.

“품에서 나왔다. 어떤 것 같나?”

“저자의 신원은 나왔습니까?”

“적무대의 일 조장이라더군.”

“그럼 상검악 대주의 통제 하에 적무대가 금괴를 절도했고, 이후 일 조장은 욕심이 생겨 금괴 하나를 훔쳐서 달아나다가 다른 적무대원에게 발각된 겁니다. 그래서 사투를 벌이다가 큰 부상을 입은 일 조장은 여기까지 간신히 도망 온 다음 죽어… 아우, 씨! 이게 뭔 개소리야?”

“네가 생각해도 말 안 되지?”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장난을 친 건지 궁금해지네요.”

“어떤 놈일 것 같나?”

“감도 안 옵니다. 그 금고에서 금괴가 증발한 것부터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니까요. 다만, 지금으로서는 상검악을 쫓는 수밖에 없죠.”

“역시 그렇겠지.”

“그가 유일한 용의자니까요.”

“그럼, 이 시체는….”

“이미 죽은 사체를 옮긴 겁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흉수는 상검악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고.”

“상검악 대주가 왜 그런 수고를 했을까? 우리에게 어떤 혼란을 주려고? 이 금괴는 왜 이자가 가지고 있을까?”

“제가 알겠습니까? 뭐, 저승길 노잣돈으로 준 모양이죠.”

함천석이 피식 웃어 버렸다.

“어쨌거나 금괴와 적무대원 하나가 발견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장소에서.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라진 금괴와 관련됐다는 것만은 분명해졌군.”

“그런데도 전 왜 보이지 않는 늪에 빠진 기분일까요?”

추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

북명신문이 있는 항산(恒山).

아이는 막대기를 들고 숲을 가로지르는 관도를 따라 걸었다.

어젯밤 소낙비가 억수같이 퍼붓더니 흙이며 자갈이 관도까지 밀려 내려와 길이 엉망이었다.

그래도 곳곳에 지렁이가 보여서 아이에게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집에서 병치레를 하는 어머니에게 지렁이를 넣고 달여 먹이면 약효가 좋기 때문이었다.

벌써 바가지에는 꿈틀거리는 지렁이 수십 마리가 들어 있었다.

어떤 녀석은 뱀처럼 길었다.

아이는 저만치 산기슭으로 달려갔다.

빗물에 떠밀려 내려온 흙더미 위에 유독 지렁이가 많았다.

기다란 막대기로 흙더미를 마구 헤집던 아이는 순간 벌러덩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뭘 본 것인지 아이의 눈을 퉁방울처럼 굵어졌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렸으며, 핏기가 싹 가신 얼굴이었다.

“으, 으으. 으아아악!”

결국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아이가 떠난 자리.

그곳 흙더미 사이로 사람의 얼굴이 얼핏 드러나 보였다.

시체의 얼굴이었다.

**

북명신문의 뇌검대주(雷劍隊主) 복일룡(卜一龍)은 눈살을 잔뜩 구긴 채 산기슭에 드러난 수십 구의 시체를 훑어보았다.

‘어째서 적무대의 시체가 이곳에서….’

북명신문과 동방세가는 등왕패의 측근 문파로서 은밀하게 교류해 왔다.

한데 얼마 전 실종됐다던 적무대가 하필 북명신문이 터를 잡고 있는, 이곳 항산에 나타난 것이다.

마침 수하 하나가 달려와 보고했다.

“상검악 대주의 시체도 확인됐습니다. 한 구를 제외한 모든 조직원이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좋지 않군.”

복일룡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새겨졌다.

동방세가의 금고가 털렸다는 은밀한 소식을 최근에 접하고 적잖게 당황했다.

한데 적무대가 하필 항산에서 죽어있을 건 뭐란 말인가?

괜히 맹의 주목을 받아서 좋을 게 없었다.

복일룡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훑어보다가 상검악의 시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상검악의 전신에 새겨진 자상들을 눈 여겨 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건…!”

복일룡의 눈동자가 커졌다.

**

정도맹의 혜성각.

이사흠이 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그는 곧바로 혜성각 안으로 들어가 구윤을 찾았다.

“북명신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북명신문에서?”

구윤이 흠칫거렸다.

사비강은 분명 동방세가와 함께 북명신문까지 엮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벌써 작업이 들어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구윤이 재차 물었다.

“뭐라고 연락이 왔습니까?”

“상검악 대주와 적무대원들의 시체가 항산에서 발견됐답니다.”

“적무대의 시체가?”

“그렇습니다. 북명신문도 현재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듯합니다.”

구윤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입을 딱 벌렸다.

‘이거였구나!’

확실히 정공에 얽매여 있는 자신이라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을 거다.

한데 사비강은 적무대를 제거해서 북명신문이 있는 항산 지역에 뿌려 둔 것이리라.

‘과연 이게 당신의 방식이었군요.’

이쯤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사비강은 그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터.

구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비강 국주가 머물고 있는 강진 지단으로 공문을 보내세요. 곧장 북명신문으로 가서 적무대의 죽음에 대한 감사를 시작하라고.”

“알겠습니다.”

이사흠이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돌아갔다.

구윤이 창밖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자, 이제부터 이차전입니다. 사 국주.”

**

정도맹의 벽력당.

“적무대의 시체들이 항산에서 발견 돼?”

“그렇습니다.”

등왕패가 눈살을 잔뜩 구기더니 이마를 매만졌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입을 열었다.

“당장 흑랑대를 북명신문으로 보내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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