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74화 (174/670)

# 174

귀환 마교관

174화

등왕패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면 감찰국이 강진 지단에서는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이사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현재는 그저 흥청망청 놀고 있는 모양입니다.”

“흐음.”

등왕패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턱수염을 매만졌다.

‘전태수까지 잡아 죽인 자가… 강진 지단에서는 업무 태만이라….’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오랜 경험상 이럴 경우 둘 중 하나다.

‘놈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강진 지단주가 수완이 좋거나.’

하지만 자신이 알기에 강진 지단주는 그리 심계가 깊지 않은 자였다.

오히려 단순해서 타인에게 잘 휘둘리는 자였다.

‘그렇다면 역시 뭔가 있다는….’

그의 생각은 더 깊이 이어지지 못했다.

마침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귀를 찌른 탓이다.

“두 분이서 무슨 대화를 그리 심각하게 나누십니까?”

돌아보니 구윤이 정자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연못을 헤엄치는 잉어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많이 자랐군요. 좁은 못에 갇힌 줄도 모른 채 잘도 설치며 노는군요.”

그 말이 은근히 등왕패를 빗대는 듯했다.

등왕패도 그 속내를 읽었지만 짐짓 모른 척하며 대꾸했다.

“허허, 못에 갇혀 있어도 잡혀 먹히진 않을 거라는 걸 잘 아는 모양이오.”

“하지만 못이 사라지면, 결국 죽고 말 운명이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모양입니다.”

“…….”

등왕패가 대답 대신 구윤을 빤히 바라보았다.

퐁.

싸늘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잉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구윤이 다시 물었다.

“꽤나 심각해 보이던데. 두 분께선 무슨 대화를 나누시던 중이었습니까?”

이사흠이 짐짓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거렸다.

“저어, 그것이….”

“제가 들으면 안 되는 일도 있습니까? 혹시 부정을 저지른다던가….”

그러자 등왕패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군사!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시오? 심히 듣기 좋지 않소!”

“하하. 농담입니다. 등 당주님께서 과민하시군요.”

‘감히…!’

등왕패가 내심 이를 갈며 구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꽤나 세가 기울어지고 있었기에.

구윤이 여세를 몰아서 재차 압박했다.

“그런데… 정말 저에게는 비밀입니까?”

“그게 실은… 동방세가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면?”

“동방세가의 적무대가 실종되었습니다.”

이사흠의 대답에 등왕패는 내심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도했다.

그나마 이사흠이 잘 둘러댄 것이다.

금괴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적무대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언젠간 군사의 귀에 들어갈 테니, 차라리 이런 식으로 써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구윤이 놀란 척하며 물었다.

“적무대가 사라져요? 적무대라면 동방세가주가 가장 아낀다는 정예 조직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그 문제로 등 당주님과 대화 중이었습니다.”

순간 구윤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그걸 왜 이제야 제게 보고하는 겁니까? 더군다나 등 당주님은 이미 알고 있으신 것 같고. 이 각주께서는 보고 체계에 대해 이해를 못하시는 겁니까?”

꽤나 엄중한 질책이었다.

천안각의 정보를 가장 먼저 알려야할 곳은 혜성각이었으므로, 구윤의 지적은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한 것이었다.

이사흠이 짐짓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썩 유리하지 않자, 등왕패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불쑥 끼어들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천멸대가 다녀간 그날 사라졌소.”

“그래요?”

“그렇소.”

“하면… 등 당주님께서는 지금 천멸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감찰국 소속인 천멸대를?”

등왕패가 흠칫거리고는 구윤을 바라보았다.

‘원래 총군사가 이런 성격이었던가?’

늘 조심성 많고 에둘러 표현하던 자가 아니었던가?

한데 지금은 꽤나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등왕패의 기세가 한 풀 꺾여서 대답했다.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외다.”

“그렇군요. 그 때문에 흑랑대가 동방세가로 향한 거였군요.”

다시 한 번 뜻밖의 말에 등왕패가 이사흠을 힐끔 보았다.

그 사실을 구윤이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이사흠이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알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혜성각에서 날 감시하고 있었던 건가?’

등왕패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사이 구윤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잖아도 흑랑대를 보낸 사람이 벽력당주님이라고 하여 찾아온 길이었습니다.”

“그렇소. 내가 보냈소.”

등왕패는 대답을 하면서도 내심 천만 다행이라 여겼다.

이렇게 알아서 핑계거리를 만들어 주니, 금괴를 찾는다는 진짜 목적은 충분히 덮을 수 있으리라.

등왕패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동방세가는 지역에서도 명망이 높은 가문인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응당 본 맹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줘야 하지 않겠소? 사라진 적무대를 찾기 위해서 내가 흑랑대를 보냈소.”

“과연. 잘 하셨습니다. 흑랑대가 갔으니 곧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겠군요.”

“그럴 거요.”

등왕패와 구윤의 시선이 허공에서 오랫동안 얽혔다.

**

“캬아, 진짜 엄청 넓네요! 한 문파가 이렇게 넓은 장원을 가진 건 처음 본 것 같습니다.”

동방세가장을 둘러보는 추량(秋亮)이 머리에 쓴 흑립을 들어 올리고는 연신 혀를 내둘렀다.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흑랑대주 함천석(咸千石)이 미간을 슬쩍 구기고는 엄한 목소리로 일렀다.

“자중해라. 우린 지금 놀러온 게 아니다.”

“뭐, 그렇긴 하지만 좀 더 여유….”

“여유를 가지고 쉬러 온 건 더더욱 아니지.”

“아아, 정말 우리 대주님은 빡빡하시다니까. 모처럼 파견 업무를 나왔는데 긴장 좀 풀고 시작하자고요. 그렇게 두 눈에 힘이 퐈악! 들어가면, 눈앞에서 절세미녀가 지나가도 모릅니다요.”

“그런 건 몰라도 된다.”

“하여튼 사는 재미가 없는 분이라니깐.”

추량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함천석의 사나운 눈초리를 보고서야 슬그머니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함천석은 피식 웃어 버리고는 앞서 걷는 하태상을 따라 걸음을 옮겨 갔다.

사실 냉랭하게 대하긴 했지만, 추량은 흑랑대에서도 그가 가장 아끼는 부하였다.

그래서 좀 버릇이 없긴 하지만.

무공은 다소 떨어질 지라도 추종술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자신보다도 훨씬 뛰어난 감각과 분석력을 가진 녀석이다.

“추적조는?”

“일단 마을 근방을 샅샅이 수색하게 했습니다. 인근 숲까지요.”

“뭐라도 나오길 바라야겠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하태상은 두 사람을 이끌고 비응각에 도착했다.

그가 비응각 안의 비밀 서고에 들어서며 말했다.

“이곳이 금고 입구입니다. 기관을 작동해야만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평소였다면 좀 더 당당하게 말했을 테지만, 금고가 털린 이상 하태상은 천하의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대주에 불과한 함천석에게도 시종 깍듯하게 대했다.

그의 한 마디가 등왕패에게 어떻게 전해지느냐에 따라 자신의 앞날이 정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흐음.”

함천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둘러보았다.

확실히 신묘한 기관이었다.

붉은 구슬을 가까이 가져가면 환영처럼 푸른색 문이 나타났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텅 빈 창고가 나타난다.

한데 구슬이 없을 때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다.

‘하긴 이 정도로 신묘하니까, 그 많은 금괴를 동방세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거지.’

이 특별한 기관만 없었다면 동방세가는 지금처럼 강성해지지 못했으리라.

금고 안으로 들어선 함천석과 추량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따로 통하는 길도 없는 완벽한 밀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수많은 금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니?

함천석이 추량을 돌아보았다.

추량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로서도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날 번을 선 자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답니까?”

함천석의 질문에 하태상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더욱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전혀 보지 못했답니다.”

그가 무인들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함천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들을 만나 봅시다.”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함천석은 확신했다.

이런 경우 답은 하나다.

‘유일한 목격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군.’

여기서 유일한 목격자는 바로 번을 선 그 무인 두 명이다.

분명 그들이 뭔가를 알고 있으리라.

**

그날 번을 섰던 무인들은 동방세가의 뇌옥에 갇혀 있었다.

어찌나 모진 고문을 당한 것인지 온몸에서 성한 곳이 없었다.

둘 중 한 명은 이따금씩 헛소리까지 내지를 정도로 처참한 꼴이었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취조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흑랑대에서 취조를 전담하는 무인이 그들을 다시 고문했다.

물론, 함천석과 추량이 함께 지켜보며 취조했다.

그렇게 대략 세 시진이나 지나서야 그들은 뇌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함천석과 추량의 표정은 어두웠다.

함천석이 물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추량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표정을 읽은 함천석의 표정은 더욱 그늘졌다.

좋지 않다.

늘 까불거리는 추량이다.

그러면서도 희한할 정도로 답을 척척 내놓는 녀석이었다.

한데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만큼 이번에는 답이 안 보인다는 뜻이다.

함천석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 역시 번을 선 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저들이 환술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 많은 금괴를 한꺼번에 옮기려면 상당한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한 사람이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금괴를 실어 날랐어야 한다.

‘역시 무리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흑랑대주가 된 이래 이렇게까지 앞이 깜깜한 적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지객당과 적무대 숙소 중에 어디가 더 가깝습니까?”

“지객당입니다.”

“그럼 그쪽부터 가봅시다.”

총관의 대답에 함천석이 말을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

사비강은 강진 지단 인근의 주루로 들어가 이 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점소이가 얼른 다가왔다.

“어서 오십쇼! 뭘 드릴까요?”

“먹을수록 배고픈 것으로 내와.”

언뜻 알아듣기 힘든 주문에 점소이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그가 곧 방글방글 웃으며 대꾸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손님.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요.”

한참 후, 점소이가 음식과 술을 들고 왔다.

한데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자였다.

점소이가 잔에 술을 따라주는데,

[저쪽 반응은?]

사비강이 전음을 흘려보냈다.

놀랍게도 점소이는 전음으로 답을 해왔다.

[오늘 오전 흑랑대가 동방세가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한창 조사 중일 겁니다.]

점소이는 바로 인피면구를 쓴 귀영단의 일영, 홍염이었다.

중원 각지에 퍼져서 정보를 수집하는 그들은 현재 사비강의 연락책이기도 했다.

군사와의 비밀스런 소통은 물론, 살막과의 연락도 그들을 통하고 있었다.

[그럼, 곧 사체도 발견되겠군. 마침 딱 괜찮은 시기야. 악 막주에게 전해. 이제 북명신문을 엮을 차례라고.]

[알겠습니다.]

전음으로 대화가 끝나자, 점소이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헤벌쭉 웃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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