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70화 (170/670)

# 170

귀환 마교관

170화

가장을 나선 사비강은 으슥한 길로 접어들었다.

점점 인적이 드문 숲으로 걸어가던 사비강은 다시 한 번 기감을 활짝 펼쳐보았다.

‘후후. 잘 따라오는군.’

총 서른한 명.

상검악과 적무대다.

그들이 자신을 예의 주시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이 가장 밖으로 나서자 상검악과 적무대 전부가 따라붙었다.

마침내 인적이 드문 숲속까지 다다른 사비강.

‘슬슬 장난을 쳐볼까?’

그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한편, 그를 은밀하게 뒤쫓던 상검악의 표정은 점점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도대체 이 야심한 시각에 어딜 가는 거지?’

설마 금괴를 발견하기라도 한 걸까?

그래서 마을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감찰총국의 타격대를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러던 차에,

툭!

사비강이 뭔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것을 본 상검악은 하마터면 헛바람을 삼킬 뻔했다.

‘저, 저건…!’

금괴다!

틀림없는!

달빛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금괴!

‘어째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역시….

‘금괴의 밀실에 들어갔었단 말인가? 하지만 개문주가 없는 이상 문을 발견할 수 없었을 텐데!’

그러는 사이 사비강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금괴를 얼른 품에 넣었다.

이쯤 되자 상검악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비밀금고가 들켰다.’

그렇다면 사비강은 지금 타격대를 찾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모두가 잠든 이 새벽에 정예의 타격대를 이끌고 동방세가를 친다면 피해가 막심하리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선 조치, 후 보고다.

생각을 마친 상검악이 얼른 사비강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비강이 걸음을 우뚝 멈추고는 상검악을 보았다.

“그쪽은….”

“적무대주 상검악입니다. 국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아아. 상 대주, 기억나는군.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제가 여쭙고 싶군요. 국주님께서는 이 야심한 시각에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지요?”

“혹시 날 감시하고 있었소?”

“감시가 아니라 보호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보호라… 그럴 필요 없는데.”

“어딜 가시는 길인지요?”

“잠시 볼일이 있어서. 그러니 좀 비켜 주시겠소.”

“죄송합니다만… 사 국주님의 품을 좀 뒤져봐도 되겠습니까?”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사비강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렇습니다.”

“미쳤군. 불가하오.”

“그럼 저희들과 함께 일단 돌아가시지요.”

“흐음. 대체 왜 그러시오?”

“가장에서 사라진 물건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를 의심한다?”

“그저 오해를 풀기 위함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 영 기분 나쁜데.”

“계속 이러신다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스르르릉.

상검악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하하! 이제 보니 동방세가는 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군.”

“어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지금은 비상이니까요.”

“비상이라… 사라진 것이 그리 중한 거요?”

“그렇습니다.”

“가령… 온갖 부정과 비리로 모은 금괴라든지?”

상검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역시…!’

어느새 사비강의 손에는 싯누런 금괴가 들려 있었다.

상검악의 표정이 이내 차갑게 식어 갔다.

“감찰총국주께서 절도를 하시다니. 뜻밖이군요.”

“증거 입수일 뿐이지.”

“마지막 경고입니다. 저희와 함께 돌아가시지요.”

“싫어.”

“정 그렇다면!”

파밧!

찰나, 상검악의 신형이 사비강을 향해 귀신처럼 날아갔다.

쩌엉!

커다란 소음과 함께 사비강이 뒤로 훅 튕겨 나갔다.

촤아아아악!

바닥에 기다란 발자국을 새기며 사비강이 멈춰 섰다.

상검악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막아…?’

의외다.

사비강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원래 소문이라는 것은 진실이라는 뼈에 살이 뒤룩뒤룩 붙어 부풀고 과장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사비강에 대한 어떤 소문도 믿지 않았다.

수많은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그리고 어제, 마침내 그는 사비강을 직접 보았다.

그리고 판단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비강은 평소에 내공의 절반 정도를 마나로 치환해 둔 채로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뛰어난 고수가 보더라도 사비강의 능력은 그저 어지간한 절정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도로 보였으리라.

초절정의 경지인 상검악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때문에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치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내 공격을 막아내?’

조금 전 일격에서 그는 두 번의 마찰을 느꼈다.

사비강의 검과 자신의 검이 부딪치기 직전, 아주 얇은 무언가를 깨뜨린 것이다.

호신강기였을까?

아니다.

호신강기가 그렇게 허무하게 깨져 나갈 리가 없다.

사실 그것은 사비강이 펼친 실드였지만, 그것을 상검악이 알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직후에 사비강의 검과 부딪치고, 사비강이 뒤로 밀려났다.

사비강이 휘파람을 휙 불었다.

“상당한 힘인데?”

상검악이 미간을 좁혔다.

“무공 수위를 속였군요.”

“에이, 말은 바로 해야지. 난 내 무공 수위가 어떻다고 말한 적이 없는 걸. 그쪽이 멋대로 잘못 판단했을 뿐이겠지.”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본심으로 가지요.”

말을 마친 상검악이 바닥을 찼다.

파앙!

조금 전의 일격과 비교하기도 힘들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가 사비강의 눈앞에 나타나고 나서야 상검악이 있던 주변으로 바람이 불었다.

따앙!

청명한 금속성과 함께 사비강과 상검악이 서로 튕겨 나갔다.

‘도대체가…!’

상검악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처음의 일격은 자신의 방심도 포함되었을 거다.

하지만 두 번째 공격은 나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비강은 막아냈다.

그것도 매우 여유롭게!

상검악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다시 한 번 쏘아져 나갔다.

따당! 까가가강!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마구 튀었다.

마침내 상검악의 검신에 검강이 맺혔다.

쓰아아앙!

공기를 찢어발길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시퍼런 검강이 사비강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커커컹!

투두둑, 우지끈!

쿠웅! 쿵!

사비강 뒤에 우뚝 서 있던 커다란 나무들이 단숨에 잘려 나가면서 육중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찰나,

스팟!

상검악의 시야에서 사비강이 완전히 사라졌다.

‘……!’

다음 순간 등골이 서늘한 것을 느낀 그가 황급히 돌아서며 다시 검강을 날렸다.

따다앙!

강기가 튕겨 나가면서 옆에 서 있던 나무가 다시 잘려 나갔다.

동시에 불쑥 튀어나온 사비강의 손.

퍽!

“크웃!”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린 상검악이 뒤로 후다닥 물러서며 중심을 잡았다.

사비강의 장력에 떠밀린 가슴 부위에서 뻐근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초절정이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

인정해야만 했다.

때론 소문이 진실일 때도 있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소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다.

‘도대체 이자의 정체가….’

그 순간, 사비강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본 상검악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저건…!’

분명히 기억한다.

지금 사비강이 취한 기수식은 북명신검(北明神劍)이 아닌가?

단순히 자세만 같은 것이 아니다.

사비강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도와 호흡, 분위기가 완전히 똑같다.

초절정에 이른 상검악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틀림없는 북명신검이다!’

하나 북명신검은 북명신문의 독문검법일 텐데, 어째서 사비강이?

마치 그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듯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계에 있을 때, 익혀 둔 무공이 꽤 되거든.”

“도대체 무슨 소릴….”

말을 꺼내다 말고 상검악이 이를 뿌득 갈았다.

저런 헛소리에 일일이 반응할 것도 없다.

상검악이 얼른 손을 들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검은 복색을 갖춘 적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일대일의 정당한 대결을 하는 게 아니었던가?”

“생각이 바뀌었소.”

상검악이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며 대꾸했다.

그로서는 숨겨 둔 삼 할의 실력까지 모두 꺼내 보인 터였다.

그럼에도 사비강을 제압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격을 허용해서 떠밀린 상황.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비강이 현재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대로는 일대일의 대결이 무의미하다.

하나 적무대가 한꺼번에 덤빈다면?

‘승산은 충분하지.’

상대가 아무리 강한 초절정 고수라도 적무대 전원을 상대하긴 어려울 터.

적무대는 동방세가의 정예 중에서도 정예다.

서른 명 모두가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스스스스슷!

적무대가 진형을 펼치면서 사비강을 둥글게 포위했다.

그들의 전신에서 진득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결국 이렇게 나온다면야….”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나도 괜히 혼자만 힘 뺄 생각은 없어.”

“무슨…?”

다음 순간 상검악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살기.

‘설마…?’

그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적무대 전원이 사비강을 앞에 두고 뒤로 돌아섰다.

초절정 고수를 두고 등을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도저히 돌아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스스스스스스슷!

수풀 사이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적어도 백여 명은 될 듯했다.

그들의 가슴팍에 새겨진 ‘살(殺)’이라는 자수를 확인한 상검악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살막…!”

마침 그림자들 사이에서 한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축하한다. 네놈은 본 막의 표적이 됐다. 고로 죽은 목숨이지.”

악천괴가 이를 드러내며 싸늘하게 웃었다.

‘도대체가… 사 국주의 정체는 뭐란…?’

상검악이 뻣뻣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돌아보는데, 살막의 살수들이 일시에 살기를 쏟아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

총관이 이른 아침부터 가주전을 찾았다.

“상 대주와 적무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상 대주가 보이지 않다니? 언제부터?”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오늘 새벽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람을 시켜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장내는 물론, 마을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뭣이?”

그제야 하태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확실히 심상치 않다.

“국주와 천상천하유아… 끄음, 천멸대는?”

“어젯밤부터 내내 지객당에 머물고 있다가 현재는 조찬을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 한데 왜 상검악과 적무대가…?’

상검악을 비롯한 적무대는 이번에 감찰국주인 사비강을 감시하는 게 주임무였다.

한데 감찰국은 그대로인데, 적무대가 사라졌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를 마지막으로 본 자가 누군가?”

“비응각의 무인들입니다.”

“비응각?”

하태상의 표정이 흠칫 일그러졌다.

얼른 책상으로 달려가 서랍을 열어보았다.

다행히 개문주는 그대로 서랍 안에 들어 있었다.

‘상 대주가 왜 비응각을…?’

그가 서둘러 겉옷을 걸쳤다.

“비응각으로 가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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