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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69화 (169/670)

# 169

귀환 마교관

169화

순간 사비강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그가 의외라는 듯 바라보자,

“동방세가에서 금괴를 발견하면 그들을 처벌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등왕패를 비롯한 그 무리들은 더욱 깊은 굴을 파고 숨어들겠지요. 즉, 꼬리자르기를 할 겁니다. 우리로서는 동방세가만 치고 만족해야겠지요. 하지만 금괴를 도둑맞는다면….”

“애간장이 타겠지. 조바심이 나서 수면 아래에 있던 녀석들도 여기저기 들쑤시며 모습을 드러낼 거고.”

“바로 그겁니다.”

구윤의 대답에 사비강은 다시 한 번 속으로 감탄했다.

‘확실히 무늬만 군사는 아니었군.’

금괴는 떳떳하게 모은 돈이 아니다.

그러니 절도를 당한다고 해도 대놓고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오.”

사비강이 다소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들이 모아 놓은 금괴의 양은 아마 상당할 거요. 그 금괴를 훔치는 건 대규모 공사와 같은 수준이 될 거요.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할 거고, 시간도 상당히 필요할 거요. 또한 치밀해야겠지. 한 마디로 금괴 한두 개 손에 쥐고 달아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지.”

“그렇겠지요. 그 엄청난 양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절도해서 옮기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명백히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깝소.”

“불가능에 가깝지만 불가능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이라면.”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믿었소?”

“글쎄요. 언제부턴가 제가 제일 믿는 사람이 되었지요. 사 국주님이라면 사실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사비강이 구윤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오. 게다가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가 절도 행각을 벌이다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그 돈의 출처가 아무리 지저분한 것일지라도 역풍을 면치 못할 거요. 목적이 수단을 언제나 정당화시켜 주진 않을 테니까.”

“어렵지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대가를 드릴 겁니다.”

“대가?”

“그곳에 쌓아 둔 금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 양이 얼마든 총액의 이 할을 감찰총국의 예산으로 편성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그 자금을 어떻게 쓰든, 맹에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오로지 사 국주 개인 권한이지요.”

한 마디로 표현이 좋아서 감찰총국의 예산이지, 사비강 개인에게 돈을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흐음.”

구윤은 간절한 심정으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혹여, 거절을 하면 어쩌나 초조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금괴를 몽땅 훔쳐 달라니.

감찰대에게 부탁할 만한 일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이 일을 가장 완벽하게 해줄 것 같은 사람은 바로 사비강이었다.

다른 조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괜히 외부 세력을 끌어들였다간 약점만 잡힐 수도 있었다.

마침내 사비강의 입에서 대답이 떨어졌다.

“대가라… 그런다고 어려운 일이 쉬운 일이 되지는 않지.”

구윤이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온갖 비정함이 난무하는 정도맹의 정치판 속에서 살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눈치 신공은 대성을 이룰 경지가 됐다.

그가 체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 주십시오. 얼마를 원하십니까?”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이제야 대화를 제대로 해볼 마음이 생기셨군.”

‘역시….’

군사는 실소를 터뜨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실 사비강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기회도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군사가 부탁하지 않아도 금괴를 훔칠 작정이었다.

이유는 군사의 생각과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 군사가 제시한 대가처럼 총액의 이 할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오히려 그는 군사를 설득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감찰대가 절도를 하겠다고 하면 반대할 수도 있으니.

한데 뜻밖에도 군사가 먼저 제안을 해온 것이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급한 사람이 손을 먼저 내밀기 마련이다.

상대의 심중을 알게 되었으니 사비강은 이제 급할 게 없다.

이 할의 대가는 수정되어야 한다.

사비강이 입매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군사가 제시한 조건을 정확히 반대로 계산하면 될 거요.”

구윤의 눈동자가 차츰 커졌다.

“설마… 팔 할?”

“그만큼 어려운 일이오.”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원래 맹으로 들어왔어야 할 돈입니다. 그자들이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서….”

“이유야 어떻든 맹에서 받아내지 못한 돈이지. 지금은 그들의 것이 되었고.”

“끄음. 좋습니다. 그럼 삼 할을 드리겠습니다.”

“흐음. 좋소. 정 그렇다면 칠 할.”

구윤이 멍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이 사람… 도대체….’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아니, 이런 인간이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과하다.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치고는 괜찮은 것 아니오?”

“아무리 그래도 공금의 칠 할이나 달라니요!”

“뭐, 그리 아까우면 이 방법은 포기합시다. 우린 금괴를 공식적으로 찾아내고, 동방세가를 벌하면 될 일이오. 그러면 맹이 그 금괴를 모두 가져갈 수 있을 거요. 사실 그편이 우리로서도 훨씬 편하고 수월한 작업이오.”

구윤이 입술을 쿡 씹었다.

안 된다.

그래서는 등왕패까지 엮어 내기가 힘들다.

중요한 건 불순 세력 모두를 소탕하는 것이다.

놈들은 맹주님까지 해치려고 했다.

지금은 금괴 몇 덩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놈들을 최대한 흔들고 교란해야 한다.

“좋습니다. 사 할 드리지요.”

“칠 할.”

“무립니다!”

“그럼 없던 걸로 하시든지.”

두 사람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옥신각신하며 실랑이를 했다.

마침내 사비강은 총액의 절반을 받기로 약조 받고서는 활짝 웃었다.

“좋소, 거래 성립이오. 물론 이번 임무는 괴에엥장히 위험한 일이지만, 군사의 성의를 생각해서 본 감찰총국의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가 나서보겠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만 두시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또 뭡니까?”

“나는 이 기회에 동방세가와 북명신문을 모두 엮을 생각이오.”

“그걸 어떻게…?”

“그건 내 방식대로 처리할 생각이오. 그러니 믿고 맡겨 두시기 바라오.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금괴도 일단 내가 가지고 있겠소. 괜찮소?”

구윤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주사위를 던진 게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거둬 봐야 득 될 게 없으리라.

한 번 도박을 걸었으니 끝까지 간다.

“후후. 잘 생각하셨소.”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가 방을 나가기 직전, 구윤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발견한 금괴의 양을 속이지는 않겠지요?”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언제는 군사가 제일 믿는 사람이 나라고 하지 않았소?”

“끄응. 그건 그렇습니다만…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서요.”

“그게 내 매력이지.”

사비강이 천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는 방을 나갔다.

한참 후, 허공에서 비령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분명히 속일 겁니다.]

“아니다. 그는 속이지 않을 거다.”

[이미 속으신 겁니다.]

은근히 불만이 담긴 목소리였다.

“휴우, 너까지 왜 그러느냐? 심란해지잖아.”

[왜 그를 그렇게 믿으십니까?]

“글쎄… 솔직히 말하랴?”

[무슨 말씀을….]

“그에게 속는 것이라면 사실 기분 나쁘지도 않을 것 같다.”

고개를 든 구윤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 처음… 알았습니다.]

“무엇을?”

[군사님의 취향이 그런 쪽이라는….]

“야! 그런 소리가 아니야!”

구윤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의 표정 어딘가에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믿겠소. 사 국주.’

**

현 시각.

“지금쯤 도착해서 일을 진행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창가에 선 구윤이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예상대로라면 오늘 밤쯤 일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 많은 금괴를 어찌 옮길까?

천멸대를 이용하더라도 동방세가의 눈에 띄지 않게 작업을 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으리라.

‘잘 되어야 할 텐데.’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사비강의 말대로 역풍을 면치 못할 것이다.

비록 부정하게 모은 자금이라지만, 등왕패 쪽은 입을 싹 닫을 것이고.

감찰국은 눈앞의 돈에 눈이 멀어 그것을 절도하려 한 오명을 덮어쓰고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

[걱정되십니까?]

비령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 왔다.

“아예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

[문제없을 겁니다. 그라면.]

비령의 말에 구윤이 피식 웃었다.

“너는 그를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의 인성은 아직 믿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능력은 신뢰합니다.]

“그렇구나. 그럼 됐다. 마음이 놓인다.”

구윤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더 기대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번을 서는 무인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무인 역시 침음을 흘리고는 슬쩍 등 뒤를 돌아보았다.

사비강이 비밀 서고로 들어간 지 벌써 한 식경이 넘었다.

처음에는 그저 비서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고르려나보다 싶었다.

하지만 미약하게 솟아오른 의심의 싹은 금방 무성하게 자라났다.

괜히 비밀서고에 들어섰다가 또 사비강 때문에 엉뚱한 모함을 들을까 망설이는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기다리기만 할 수 없었다.

“한 번 들어가 봐야겠군.”

결국 번을 서던 무인 한 명이 몸을 돌렸다.

그때,

끼이익.

쪽문이 열리면서 사비강이 나타났다.

“아이고, 덥다. 아직은 바깥 날씨가 쌀쌀한데도 이 안은 바람 한 점 들지 않으니 덥군. 아, 덕분에 잘 둘러봤어. 바꿀 책으로는 이걸로 정했어.”

사비강이 서책 하나를 흔들어 보였다.

무인들이 사비강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쉰 그들이 문을 잠그며 돌아섰다.

“더 이상 이런 행동은 곤란합니다.”

“아아, 물론이지. 융통성도 자꾸 발휘하면 못된 버릇이 되거든. 걱정 마. 원하는 것도 찾았으니 다시 이곳에 오진 않을 거야. 하하.”

사비강이 기분 좋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비응각으로 걸어가던 상검악은 마침 그곳에서 나오는 사비강을 보고는 멈칫했다.

사비강은 손에 들린 책을 훑어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얼른 비응각으로 달려 들어갔다.

“조금 전에 사 국주가 여기에 왔었나?”

“아, 예. 무공 비서를 교환하기 위해 왔다고 해서….”

번을 서는 무인 두 명이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비서를 교환해?”

“예, 표지가 찢어졌다고….”

무인들은 대답을 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을 열어라.”

쪽문 안으로 들어간 상검악은 비서가 보관된 서고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과연 낮에 가져갔다던 흑풍도법 서책이 제자리에 꽂혀 있었다.

무인들에게 들은 대로 표지가 찢어져 있었다.

‘정말로 무공 비서만 바꿔 간 건가?’

왠지 모를 불길함이 치밀다가,

‘흐음. 나도 과민해졌군. 가주님께 옮은 모양이야.’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만두었다.

사비강은 분명 무공 비서 한 권만 손에 달랑 들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금괴를 발견했다면, 저리 태연하게 걸어가지 않았으리라.

지금쯤 그가 끌고 온 천멸대가 동방세가를 발칵 뒤집어 놓아야 했다.

‘그래도… 주의해서 나쁠 건 없겠지.’

몸을 돌린 상검악이 곧장 비응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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