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68화 (168/670)

# 168

귀환 마교관

168화

왜 그 생각을 진작 하지 못했을까?

하긴 마계에서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며 마왕의 오른팔로 살아왔던 그다.

애초에 정령들과는 친화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사비강은 정령을 일절 부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정령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살면서 해본 적이 없었다.

사비강이 능소소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야! 그걸 이제야 말하면 어떡하냐? 그런 좋은 방법이 있는 것을!”

“국주님이 뭐가 들어 있는지 말을 안 해주셔서….”

“허어, 융통성 없는 아이가 여기에도 있었군. 넌 다 좋은데 가끔 맹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예? 제가…요?”

그러자 지켜보던 다른 생도들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능소소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물어볼까요?”

“당장.”

“네, 알겠어요.”

능소소가 한 걸음 물러나더니 청의봉을 들고 한 차례 휙 저었다.

사비강을 비롯한 생도들은 그저 두 눈을 멀뚱멀뚱 뜬 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능소소의 눈에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을 단 작은 요정들이 그녀의 눈앞에 가득 나타난 것.

까르르 웃는 소리를 내며 나타난 실프들이 능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 이번엔 무슨 일인가요?

“너희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 그게 뭐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맹약에 따라 이행해드려요.

“이 장원 어딘가에 숨겨진 금괴를 찾아 줘.”

- 금괴?

실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 금괴가 뭔가요?

“빛이 닿으면 노랗게 반짝이는 물건이야. 이렇게 생겼어.”

능소소가 한지를 펼치고는 붓으로 금괴 모양을 대략적으로 그려 보였다.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을 거야. 그 장소를 내게 알려 주면 좋겠어. 이왕이면 들어갈 수 있는 방법까지.”

- 알겠어요. 우리가 찾아볼게요.

다음 순간 실프들이 일제히 퍼져 나갔다.

사비강과 생도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여린 바람이 퍼져 나가는 기분을 살짝 느꼈을 뿐이었다.

그것도 집중을 해야만 겨우 느낄 수 있는 수준의 바람결이었다.

능소소가 사비강을 보았다.

“찾아보겠대요.”

“잘했다.”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능소소의 어깨를 토닥였다.

**

“결국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건….”

상검악이 미간을 좁히며 말끝을 흐리자, 하태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지.”

“본가를 의심하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걸 잘 모르겠단 말이야. 하는 짓을 봐서는 단순한 꼴통 같기도 하고.”

“연기가 아닐까요?”

“연기라고 보기에는 정말 꼴통 같아서 말이야.”

“하긴.”

상검악 역시 연회에서 사비강의 언행을 예의 주시했다.

그때의 첫인상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꼴통이긴 했지.’

그는 비서가 가득 꽂혀 있는 좁은 방을 휘이 둘러보고는 물었다.

“그래서 그자는 어떤 비서를 골랐습니까?”

“흑풍도법(黑風刀法)일세. 오래 전 흑풍문이 마교에 멸문당하면서 실전되었던 도법이지. 뭐, 별로 대단한 건 아닐세.”

“만약 그자가 의심을 해서 한 행동이라면, 이걸로 한 숨 돌리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여긴 다시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요.”

“후후. 그렇겠지.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들어오게 한 것이니까.”

말을 마친 하태상이 품에서 붉은 구슬을 꺼내더니 구석진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곳에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매직 큐브의 문이었다.

상검악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곳까지 들어온다고 한들 이 오묘한 기관을 작동시킬 수 없으니 안심해도 되겠지요.”

그들은 마계에서 건너온 이 물건들을 그저 신묘한 기관장치 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태상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서 내가 말했지.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비밀 서고도 마음껏 이용하라고.”

“그랬다면 더욱 의심은 사라지겠군요.”

두 사람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푸른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아주 미약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치며 지나갔다.

사방이 막힌 비밀 서고에서 까닭 없이 부는 바람이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

“찾았어요.”

마침내 능소소의 입에서 기다리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사비강이 벌떡 일어섰다.

“오오! 그래, 어디냐?”

“금괴를 보관한 밀실은 비응각 안에 있어요.”

“뭐?”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곳은 오늘 확인한 곳이 아닌가?

“제대로 찾은 게 확실하냐? 거긴 아까도 말했다시피 무공 비서만 잔뜩 쌓아 둔 곳이었어.”

“거기가 아니에요. 비밀서고 안에 또 다른 밀실이 있어요.”

“뭐?”

사비강이 벌떡 일어났다.

“굉장히 이상한 문이 하나 있어요.”

“이상한 문이라면?”

“그러니까 그게….”

능소소가 실프들에게 들은 바를 세세하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사비강의 입매는 점점 치켜 올라갔다.

**

번을 서는 무인들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꼴통은 왜 자꾸 나타나는 거지?’

결코 달갑지 않은 사람.

사비강이 히죽히죽 웃어대면서 다가왔다.

“여어, 또 보게 되었군.”

“무슨 용무이십니까?”

무인 한 명이 미간을 팍 좁히고는 물었다.

낮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사비강이 해맑게 웃으며 손에 든 무공 비서를 흔들어 보였다.

숙소로 돌아가서 집어던진 바람에 찢어진 표지가 덜렁거렸다.

“보다시피 표지가 찢어져 있어서 말이야.”

무인이 눈살을 살짝 구기자, 사비강이 얼른 말을 붙였다.

“아, 오해는 하지 말고. 이건 내가 찢은 게 아니야. 처음부터 찢어져 있었지. 발견을 늦게 했을 뿐.”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무인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리를 삼키고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비강이 속없는 사람처럼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왕 선물로 받았으니 멀쩡한 것으로 교환하고 싶어서 말이야.”

갈수록 가관이다.

선물로 받은 책을 찢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다른 것으로 바꾸겠다니.

어떻게 이런 자가 감찰총국의 책임자가 되었을까?

무인들이 무뚝뚝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죄송하지만 열어 드릴 수 없습니다.”

“아아, 또 융통성 없는 소리를. 아까 낮에 못 봤어? 가주가 날 어찌 대해야 하는지 알려 준 것 같은데….”

“저희 입장에서는 가주님이 동행하지 않는 한, 열어 드릴 수 없습니다.”

무인 하나가 나직이 으르렁거리듯 대답했다.

“흐음. 답답한 사람들일세. 가주가 내 마음대로 들락거려도 좋다고 했다니깐.”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가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 한해서입니다.”

“하아. 그럼 뭐 내가 돌아가서 가주를 데려오면 되겠어? 이 야심한 시각에 진짜 데려와? 정말로 곤히 자는 가주를 깨워서 데려온다? 잘 알 텐데. 사람이 단잠을 깨우면 굉장히 짜증난다는 거.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가주의 귀에 대고 ‘꿈 깨’라고 속삭여줘야겠군. 융통성이라곤 없는 부하들이 가주를 깨워서 데려오랍디다, 하고 전해야지, 뭐.”

이쯤 되자 무인들이 약간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보았다.

사비강은 미련 없이 돌아서더니 걸어가면서 계속해서 구시렁거렸다.

“저리 말이 안 통하니 참… 제대로 교육을 시키라고 단단히 일러 둬야겠구먼. 이거야, 원. 마음이 불편해서 선물이나 받겠어? 당장 단잠에 빠진 가주를 깨워서 섭섭하다고 따져야겠어. 그래야….”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마침내 무인 한 명이 불쑥 말했다.

사비강이 내심 조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왜 부르나? 얼른 가서 곤히 자는 가주를 깨워야 하는데. 달콤한 잠이나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지? 부하들이 지금 당장 부른다고 말이야.”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사비강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뭐, 무리하지 않아도 돼. 내가 가주를 깨워서 데려올….”

“들어가시지요. 열어 드리겠습니다.”

“훗, 이제야 좀 융통성이 생겼군.”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무인이 자물쇠를 열자, 사비강이 성큼성큼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번을 서는 무인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한 명은 안으로 따라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뜻.

그 낌새를 눈치 챈 사비강이 얼른 돌아서더니, 무인 한 명의 어깨에 팔을 휙 두르는 것이 아닌가?

무인이 화들짝 놀라며 정색했다.

“뭐, 뭡니까?”

“이런 꿀 보직의 좋은 점이 뭐겠어? 이럴 때 평소 구경도 하지 못한 비서를 실컷 볼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자, 나랑 같이 들어가자. 내가 눈 딱 감아 줄게. 같이 들어가서 평소에 보고 싶었던 비서 몇 권 훔쳐보고 나오는 거야. 흐흐흐.”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우린 그저 임무에만 충실할…!”

“거참, 융통성을 조금만 더 챙겨 봐. 날 감시한다는 핑계를 대고 같이 들어간 다음 비서 좀 훑어보라고. 만약 가주가 눈치 채면 내가 적극적으로 변호해 줄게. 날 감시하러 들어왔다가 우연히 바닥에 떨어진 비서를 주워 들고 읽은 것일 뿐이라고.”

‘그게 무슨 개 같은 변호냐!’

무인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삼키고는 사비강의 손길을 뿌리쳤다.

“들어갔다 오십시오. 우리는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쳇, 융통성이라곤 없군.”

결국 사비강이 비밀서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홀로 남은 사비강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하마터면 같이 들어올 뻔했군. 자, 그럼….”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좁은 비밀서고를 훑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언락(Unlock).”

그러자 실내 구석진 곳에 푸른색 문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매직 큐브는 만든 자의 레벨이 성능을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3서클의 마법사가 만든 매직 큐브는 4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위치만 알면 충분히 잠금 해제 할 수 있다.

즉, 위치만 파악된다면 하이 레벨의 사비강이 열지 못하는 매직 큐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하태상은….

‘후후. 단잠에 푹 빠져 있으라고.’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문손잡이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걸 주웠었군.’

동방세가에서 마계의 물건을 습득 했을 줄이야.

사비강이 등불을 들어 올리자 주변이 환해지면서 밝아졌다.

사비강의 눈빛이 반짝였다.

‘금괴!’

사방이 샛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 밝은 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이렇게 많은 금괴라니… 잘 먹겠습니다.’

사비강의 입매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그가 품에서 라겔의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자, 그럼 대규모 공사를 시작해 볼까?’

**

보름 전.

“그 금괴 말인데… 얼마나 될까요?”

총군사 구윤이 중원의 지도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옆에 서 있던 사비강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꽤 될 거요. 등왕패 패거리들의 기초 자금이 거의 다 그곳으로 모인다고 봐야 할 테니까.”

“역시 그렇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사비강을 돌아보는 구윤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사비강이 미간을 찌푸리며 보았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구윤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그 금괴… 훔쳐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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