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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66화 (166/670)

# 166

귀환 마교관

166화

사비강보다 나이가 두 배는 더 들어 보이는 사람이 시종 겸손하게 말을 이어 갔다.

“긴 여정에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사비강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뭐, 이왕이면 눈치껏 육두마차라도 한 대 보내주셨다면 더할 나위 없이 편했겠지만, 워낙 싸돌아다니는 성격이라 그리 불만은 없었습니다.”

“하하. 소문대로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하태상의 환영 의식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가장의 모든 무인이 이열 횡대로 늘어서서 사비강과 천멸대를 향해 포권했다.

감찰 초행인 생도들은 그저 이 생소한 광경이 신기하면서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태상은 지객당에서 가장 좋은 방을 사비강 일행에게 내주었다.

사비강과 생도들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뜨끈한 물도 욕조 가득 받아 두었다.

이후에도 가주전 안마당에서 푸짐한 먹거리를 늘어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매번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감찰대도 할 만한데?”

“그러게 말이야.”

염자량과 조문탁이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갔고, 사비강과 생도들은 모처럼 산해진미로 배를 두둑하게 채워 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가주 하태상이 사비강을 향해 말했다.

“사 국주님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습니다. 학관에 계실 때부터 남다른 면모를 보여서 생도들이 잘 따랐다는 소문까지요. 한데 정사대전에서 큰 공을 세우시고, 이번에는 맹주님까지 구하셨다고 하니, 참으로 신이 내려주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후. 내가 좀 대단한 건 사실이지요. 뭐, 신이 내려줬다기보다는 스스로 이 세상에 되돌아온 거지만.”

사비강의 알 수 없는 대꾸에 하태상이 내심 조소를 지었다.

‘과연 소문대로구나.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더니… 겉은 멀쩡해가지고.’

그가 속내를 숨기며 술병을 들었다.

“사 국주님께서 이제 본격적으로 감찰 업무를 시작하실 테니, 본 맹도 더욱 깨끗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국주님께 술 한 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이다.”

하태상이 술을 따라 주고는 자신의 빈 잔을 들어올렸다.

한데 사비강은 잔을 채워 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홀짝 들이키는 게 아닌가?

하태상은 빈 잔을 든 손이 민망해 이맛살을 슬쩍 찌푸리고는 탁, 소리가 나게 내려 두었다.

‘뭐지? 기본적인 소양도 없는가?’

마침 사비강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하하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모쪼록 국주님과 천멸대가 머무는 동안….”

“천멸대가 아니라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입니다.”

사비강이 끼어들며 사뭇 진지한 투로 말하자, 하태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하. 네.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가 모쪼록 편히 머물렀다 가길 바랄 뿐입니다.”

하태상이 말을 마치고 입매를 파르르 떨었다.

‘젠장, 이 멍청한 이름을 내 입으로 지껄이다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호감을 샀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 좀 더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예? 얼마나….”

“음. 어차피 우리가 강진까지 가기로 한 날보다 좀 빨리 도착했으니, 한 사흘 정도 머물렀다가 떠나고 싶습니다.”

‘사흘씩이나?’

하태상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상황.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아, 불편하면 말씀만 하십시오. 내일이라도 당장 떠나 드리겠습니다. 아니지, 벌써 부담을 드린 건가? 아, 정말 나도 참 눈치도 없지. 우리 같은 감찰대를 반길 자가 없다는 걸 진작 알았어야 하는 건데. 가주님의 호의에 내가 너무 들떠 있었나 봅니다. 가주께서 이리 불편한 마음인 줄도 모르고 부담을 주다니. 이게 다 인사치레라는 것도 모르고. 나처럼 눈치도 없고 예의도 모르는 놈은 정말이지 감찰국주로서 자격이 없는… 아니,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하하하! 국주님께서도 무슨 말씀을 그리 심하게 하십니까? 사흘이 대숩니까? 사흘이 아니라 석 달을 머물러도 좋습니다. 오히려 가문의 영광이지요!”

“정녕 그리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원하시는 만큼 머무르십시오.”

“역시 가주께서 그리 환대해 주시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괜히 제가 세속에 찌들어서 가주님을 함부로 평했나 봅니다.”

하태상이 사람 좋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하지만 속내는 좀 달랐다.

‘이것들이 여기가 무슨 객잔쯤 되는 줄 아나? 왜 사흘씩이나 머문다는 거야?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떠나라고 할 수도 없고. 제길!’

다시금 어젯밤 이유 없이 불안하던 그 심정이 되새겨졌다.

그래, 과민하지 말자.

소문에 의하면 사비강은 기분대로 행동할 때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 예상보다도 감찰대가 일찍 도착한 것 또한 사실이지 않나?

그저 자신의 환대가 마음에 든 것이리라.

문득 사비강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강진 지단의 부정과 부패가 몹시 심하다고 들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저 또한 그 소문을 들었지요.”

“그렇습니까? 그럼 잘 됐군요.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강진 지단의 부정부패에는 숨은 배후가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또한 소문일 뿐이지만… 혹시 뭔가 짐작되는 바가 없습니까?”

아주 잠깐 하태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배후가 바로 동방세가임이 틀림없었기에.

하지만 그가 모른 척 웃었다.

“하하. 글쎄요.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죄송합니다.”

“그렇습니까? 소문에 의하면 그 배후 세력이 상당한 비자금을 축적하고 있다 합니다. 내 반드시 그 비자금을 찾아내서 아주 죽도록 패줘야 할 텐데 말입니다.”

“허어, 그렇습니까? 정말 간도 크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나나 줄 것이지.”

“제 말이 바로 그… 예?”

“아, 감찰국에 주면 좋은 일에 쓴다는 의미입니다.”

“아… 그러게 말입니다.”

사비강이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하 가주님은 이 지역에서 명망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덕을 많이 베푸신다고.”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지요.”

“한데 그 많은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이 너른 세가를 유지하는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요.”

얼핏 들으면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 같지만, 하태상으로서는 마치 노림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역시 기분 탓이려나?’

하태상이 웃어넘겼다.

“하하하.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열심히 사는 건 참 좋은데… 요즘은 나쁜 놈들이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그 나쁜 놈들을 엄벌해 주기 위해 사 국주님 같은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후후후. 그렇지요. 아마 그 열심히 사는 나쁜 놈은 조만간 깜짝 놀랄 겁니다.”

사비강이 말을 던지고는 물끄러미 하태상을 바라보았다.

하태상 역시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참이나 얽혔다.

**

사방이 금괴로 빼곡하게 차 있다.

하태상은 등불을 들어 이리저리 비춰 보면서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이곳으로 들어와 금괴를 바라보곤 했다.

이렇게 티 없이 노란 금괴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다.

그에게는 이 수많은 금괴가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잠시 눈을 지그시 감은 그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신경이 쓰여.”

“무슨 말씀이신지요?”

뒤에 서 있던 상검악이 넌지시 물었다.

하태상은 대답 대신 오늘 저녁 사비강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간 대화 속에 수많은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물론, 상대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들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신경이 쓰인다.

하태상이 이맛살을 구긴 채 말했다.

“이 밀실만큼은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네.”

“물론이지요.”

“오늘 그자와 나눈 대화가 마음에 걸려.”

“설마 뭔가를 알고 그러겠습니까? 그냥 생각 없이 던진 말들일 겁니다.”

“흐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이곳은 들어올 수 없는 구역 아닙니까?”

“하긴.”

하태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 든 구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 주먹만 한 구슬은 붉은 빛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개문주(開門珠)’.

말 그대로 문을 여는 구슬이다.

그가 그것을 얻게 된 것은 정확히 칠 년 전이었다.

강호를 유랑하던 중 우연찮게 마주친 보부상으로부터 낡은 상자를 꽤 비싼 값을 주고 구입했다.

그 안에는 푸른 구슬과 붉은 구슬이 들어 있었는데, 두 개 모두 신묘한 빛을 품었다.

원래 보석이나 장신구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그 구슬만큼은 그의 호기심을 끌었다.

사실 이는 마계에서 넘어온 물건들이었지만, 하태상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 후 하태상은 세가로 돌아와 그 구슬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연구했다.

보부상도 구슬의 용도는 모른다고 했었다.

그러던 중 장내의 공터에서 두 구슬을 부딪친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푸른 구슬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더니 허공에 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문을 열어 보니 반대편의 공터가 아니라, 사방이 막힌 공간이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붉은 구슬을 가까이 가져갔을 때만 그 문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는 사실 마계에서 만든 마법 창고로, ‘매직큐브(Magic Cube)’라는 것이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위해 만든 것인데, 붉은 구슬을 가져갔을 때만 마법으로 잠긴 문이 나타나면서 열리도록 되어 있었다.

라겔의 주머니처럼 아공간(亞空間)에 창고를 만든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저장 용량이 한정되어 있고 한 번 설치한 장소에서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때문에 라겔의 주머니에 비해서는 한참 아래 급으로 여겨지는 물건이다.

어쨌거나 이런 사실을 모르더라도 하태상으로서는 그저 신묘한 공간 하나를 얻은 셈이었다.

그는 곧바로 그 공간을 이용할 방안을 떠올렸고, 즉시 생각한 바를 실행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매직큐브에는 금괴가 가득 차 있게 된 것이다.

‘그래, 이곳은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이 붉은 구슬이 없는 이상.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곳이지.’

하태상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자꾸만 불안한 기분은 왜일까?

**

사비강이 실내에 모인 천멸대를 훑어보았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 가장을 샅샅이 수색한다. 물론,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서 세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무얼 찾는 겁니까?”

“보안이 철저한 밀실을 찾는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장소가 보이면 내게 보고하도록. 단, 그 밀실 안으로 직접 들어가지는 마라. 어떠한 의심도 살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천멸대원들이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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