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귀환 마교관
164화
전태수의 죽음은 정도맹 전체에 큰 충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출범하자마자 엄청난 일을 해결해 버린 감찰총국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어떤 이는 이제야 정도맹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며, 감찰총국을 향해 엄지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선도 없진 않았다.
특히 생도들이 검증에 통과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은근한 무시를 담은 시선이 제법 많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감찰총국의 조직도를 완성해 갔다.
우선 당이협과 그의 수하들로 구성된 조직을 만들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주로 정도맹의 본단에 속한 무인들을 감시하고 조사 및 수색하는 임무였다.
온갖 더러운 정치가 난무하는 본단이었기에 비교적 속세의 경험이 풍부한 당이협이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다.
당이협은 조직명을 ‘암영대(暗影隊)’로 정했다.
매설란은 감찰국 내의 천암각주(闡暗閣主)로 임명했는데, 각종 정보를 취합해서 유추하고 심사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귀영단은 주로 본단을 제외한 정도맹 전체의 정보를 수집했다.
특별히 맹의 부정부패에 관한 정보를 캐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다.
그리고 고적산을 비롯한 귀야채의 무인들은 기갑대로 변모시켜서 대규모 전투가 필요할 경우 투입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대주 고적산은 조직명을 ‘철혈대(鐵血隊)’라고 이름 붙였다.
귀야채의 무인들 역시 결계 안으로 함께 들어갔었기에 모두가 절정 이상의 고수로 거듭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사비강은 그들을 철혈대의 목적에 맞도록 육 년간 훈련시켰다.
마지막으로 생도들로 구성된 감찰대가 조직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감찰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감찰대의 정식 명칭은 맹주전 회의에서 사비강이 직접 공표하기로 했다.
이로써 완전체에 이른 감찰총국은 본격적으로 맹의 부패를 청산하기 위한 업무에 돌입했다.
“두 사람도 잘 알겠지만 본맹에도 파벌이 있어. 바로 맹주님과 등왕패 당주지. 당 대주는 등왕패와 관련된 것을 모두 조사하도록 해. 뒷간에 가서 오줌을 싼 후 몸을 몇 번이나 떠는지 알아낼 정도로.”
“존명.”
“설란도 한동안은 그와 관련된 정보에 주력해 주면 좋겠어.”
“알겠어요.”
사비강은 곧 두 사람과 함께 감찰총국의 연무실을 찾아갔다.
마침 감찰대 소속의 생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다들 집합해라.”
감찰대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며 사비강 앞으로 모여들었다.
과연 생도였을 때와 정식 감찰대원이 되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정식 감찰대의 구성원이다. 나와 함께 다니면서 주로 실무적인 조사, 집행 등의 임무를 담당할 거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 중에서도 조직을 이끌 대주는 있어야겠지.”
사비강의 말이 떨어지자 생도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염자량이나 연우경을 비롯한 몇몇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마침 조문탁이 손을 들고 물었다.
“대주는 저희들이 선출하는 겁니까?”
“아니. 내가 지명한다. 이건 인기투표가 아니니까. 너희들보다는 내가 더 정확히 자질과 역량을 파악할 테니까. 이의 있나?”
“없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임명하지. 단리정.”
“옛!”
“나와라. 이제부터 네가 감찰대주다.”
“예, 알겠습…! 예? 예?”
단리정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는 듯.
반면 다른 생도들은 별 불만이 없는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염자량이나 연우경 등은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단리정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진 않는 듯했다.
사비강이 미간을 좁혔다.
“지금처럼 그렇게 어리바리한 태도를 취한다면 대주는 바뀔 거다.”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단리정이 앞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사비강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앞으로 단리정이 대주다. 너희들 모두 동기인 만큼 어렵게 대하라고 강요하진 않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아 둬라. 대주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
“예, 알겠습니다!”
“필요에 따라 감찰대는 조를 나누어 행동할 수도 있을 거다. 그때마다 조장은 대주가 직접 정한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조만간 감찰을 떠날 테니까 모두 채비를 갖춰 두도록.”
말을 마친 사비강이 몸을 휙 돌리고 걸어갔다.
매설란이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괜찮을까요?”
“뭐가?”
“단리정이 대주를 맡아도.”
“왜?”
“조금 소극적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후후후. 그건 당신이 저 녀석을 잘 몰라서 그래. 누구보다 상황 파악 능력이 빠르고, 판단력도 좋아. 게다가 리더십도 좋지.”
“리더십…이 뭐죠?”
“음… 마계에서 쓰던 말인데… 조직원들을 잘 이끄는 재능 정도랄까?”
“하긴. 왠지 안정감은 있을 것 같네요.”
“두고 봐. 녀석은 누구보다 잘해낼 테니까.”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훗날 마계가 침공했을 때, 무공에 소질이 별로 없으면서도 많은 사람을 이끌고 대항했던 자가 바로 단리정이다.
수많은 무인들이 죽었을 때, 강호인들은 머리를 잃은 짐승마냥 허우적거렸다.
그때 머리가 되어 준 사람이 단리정이었다.
‘물론, 본인이 가진 무공 수위가 약한데다 너무 늦은 상황이었기에 별로 버티지도 못했지만.’
하지만 앞으로 닥칠 미래는 달라지리라.
지금의 단리정을 본다면, 그 누구도 약하다고 말할 순 없을 테니까.
그때 문득 매설란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감찰대 말이에요. 정식 명칭은 정했어요?”
“정했지. 아주 기가 막히고 멋진 이름으로 말이야. 흐흐흐.”
사비강의 웃음소리에서 매설란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
실제 감찰 집행을 실시하는 조직인 감찰대는 감찰국의 꽃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감찰대의 정식 명칭은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대의명분과 세간의 이목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정파 무인들이기에 한 조직의 정식 명칭을 정하는 데에는 많은 심혈을 기울인다.
때문에 오늘 맹주전 회의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사비강이 공표할 감찰대의 정식 명칭이었다.
실제로 이전 감찰대의 정식 명칭을 정하는 데에는 수많은 수뇌 인사가 참여했음에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 탁상공론 끝에 정한 이름이 ‘의검대(義劍隊)’라는 지극히 평이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들이 얼마나 실속 없는 체면 문화에 빠져 있는지 알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직 구성의 모든 권한을 사비강에게 위임한 상황.
그러니 감찰대의 정식 명칭 역시 사비강이 임의대로 정할 수 있었다.
다만….
‘어쭙잖은 이름을 들먹일 생각일랑 말아라!’
등왕패는 두 눈 가득 독기를 담고 맹주전 한쪽에 선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저 빌어먹을 놈 때문에 자신이 아끼던 수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저승길로 들어섰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악이 빠득빠득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든 정식 명칭을 꼬투리 잡아서 물고 늘어지리라.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자고로 조직명이란, 그 조직의 자의식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한데 그 이름 때문에 초장부터 비난을 받게 되면 누구든 거기에 신경이 쓰이게 마련.
등왕패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처음부터 악착같이 발목을 잡을 작정이었다.
마침내 대략의 무난한 회의가 끝나고 사비강이 감찰대의 정식 명칭을 공표할 순간이 왔다.
사비강이 나서자 등왕패가 불쑥 입을 열었다.
“출범식을 가지자마자 여러 공을 세웠으니, 이번 감찰국의 핵심인 감찰대의 정식 명칭도 아주 대단할 것 같소! 기대가 몹시 크오!”
“하하하! 아마 여러분 모두 제가 정한 감찰대의 명칭을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사비강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자, 등왕패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흥! 어디 그 잘난 이름 한 번 들어보자!’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맹주, 능운파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허허, 그래서 사비강 국주께선 감찰대의 이름을 어떻게 정하셨소?”
“무릇 감찰대란 불의를 확실히 심판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불의한 자들이 들었을 때 두려움에 떨 만큼 강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오, 훌륭한 생각이오!”
“과연 옳은 말씀이오.”
최근 연이은 공을 세운 사비강인데다 곧 감찰국주로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할 상황인 만큼 많은 무인들이 벌써부터 엄지를 치켜세웠다.
물론, 처음부터 초를 치기로 작정한 등왕패와 같은 무리도 있었지만.
“해서, 본 감찰대의 정식 명칭은….”
사비강이 잠시 심호흡을 했다.
모든 이의 이목이 사비강에게 집중됐다.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天上天下唯我獨尊血風滅殺隊)입니다!”
“…….”
“…….”
순간 장내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 모두가 입을 쩍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비강의 말대로 사람들 모두 놀라긴 놀랐다.
조금 다른 의미지만.
정식 명칭을 듣는 즉시 딴지를 걸려고 했던 등왕패 조차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하하! 모두 놀라실 줄 알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좋은 명칭이지 않습니까?”
한참 만에 반응을 보인 사람은 군사, 구윤이었다.
“저어… 사 국주님. 아무래도 그 명칭은 다소 부르기가 어렵고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나 생각….”
“감찰대는 아무나 쉽게 불러댈 수 있는 조직이 아니지요. 게다가 강한 것을 자극적이라고 표현한다면, 저는 그 자극적인 명칭이 아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끄음. 하지만….”
구윤이 말을 꺼내는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등왕패가 불쑥 나섰다.
“사 국주! 조직의 명칭을 정하는 것이 장난으로 보이시오? 어떻게 그렇게 품위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등 당주님.”
사비강이 불쑥 말을 가로질렀다.
그 표정이 언뜻 서늘하게 느껴졌기에 등왕패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되물었다.
“뭐요?”
“품위가 이름에서 나온답니까?”
“……!”
“또한 감찰대는 근엄한 척 품위나 챙기는 조직이 아닙니다. 내부의 적을 발견하고 피바람을 일으켜서라도 소탕하는 조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찰대는 정의의 지존이 되어야 하고, 악을 말살시키는 기둥이 되어야겠지요. 그러니 이 명칭은 아주 잘 어울리고 멋지지 않습니까?”
사비강의 표정에서 끝 모를 자부심이 느껴졌다.
결국 전례 없이 강렬하고도 긴 명칭 때문에 맹주전에서는 한동안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직의 구성 권한은 오로지 사비강에게 있다는 점.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재고를 요청해도 사비강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비강은 다른 사람들이 이 멋진 이름에 시기와 질투를 느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작명 수준은 마계에 있을 때부터 논란거리였지만, 정도맹의 무인들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결국 오랜 토론이 무색하게 사비강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감찰대의 정식 명칭은 ‘천상천하유아독존혈풍멸살대’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등재됐다.
물론, 사비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후 감찰대를 ‘천멸대’라고 줄여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