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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63화 (163/670)

# 163

귀환 마교관

163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인지라 사람들은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누구 하나 입을 벙긋하지도 않았다.

등왕패 역시 갑자기 나타난 당이협과 매설란을 보면서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구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커험, 험. 이게 대체 어찌된 건지… 설명을 좀 해주시겠소?”

질문을 던지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사비강.

용천관에서 괴짜 교관으로 소문이 났던 자.

자신은 그에게 도박을 걸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라면 혹시나 부정부패로 가득 찬 정도맹을 흔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누군가는 사비강을 두고 용천관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라고 표현했고, 누군가는 변화의 획을 그은 위인이라 표현했다.

어쨌거나 그의 행보가 매번 파격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구윤은 그 예측할 수 없는 ‘파격’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이건 지나치게 파격적이지 않소?’

구윤은 심호흡을 했다.

사비강의 대답에 따라서 앞으로 그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어찌 이리 바람 잘 날 없는지.

이쯤 되자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회의감이 살짝 들 정도다.

‘아니야. 끝까지 가보자. 우선 들어보자.’

심호흡을 크게 한 구윤이 재차 입을 열었다.

“사비강 국주,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소?”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한 걸음 나섰다.

“저 약재는 ‘초오(草烏)’라는 것으로 특별히 가공해서 냄새와 맛을 없앤 것입니다. 하나, 독성이 강해서 지속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끝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약초입니다.”

사람들이 미약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비강이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맹주님께서 드신 탕약에는 저 약재가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들어갔지요. 그걸 행동으로 옮긴 자들이 바로 저 두 사람입니다.”

“뭣이?”

“이놈들! 그게 정말이더냐!”

수뇌 인사들이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엄청난 살기에 포박되어 있는 두 사람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저 두 사람은 약제실에서 일하는 자들이지요. 이미 두 사람은 그 배후를 전태수 단주로 지목했습니다.”

“그런…!”

“또한 전 단주의 집무실에서 저 초오를 발견했습니다.”

장내가 크게 술렁였다.

구윤 역시 보고를 받으면서도 믿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가 슬쩍 능운파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인자한 표정을 짓던 맹주였다.

한데 지금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모처럼 그가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내게 답하라. 그게 사실이냐?”

맹주의 두 눈에서 심상찮은 살기가 뻗어 나갔다.

순간 두 사람이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쿵 찧었다.

두 사람의 이마가 깨지면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맹주님,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그저 시킨 대로 한 죄밖에는 없습니다! 만약 행하지 않으면, 입막음으로 그 즉시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절대로 저희들의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아주십시오!”

“누가 시켰던 것이냐?”

“전태수 단주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들에게 오셔서 탕약에 초오를 넣으라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 외에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고해라.”

“그것뿐입니다! 정말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믿어 주십시오!”

두 사람이 연신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능운파가 주먹을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입에서 이내 차가운 음성이 떨어졌다.

“저 둘을 당장 공개처형하라.”

“맹, 맹주님!”

두 사람이 울부짖었지만, 곧 다른 무인들이 들어오더니 그들을 질질 끌고 나갔다.

상황이 이리되자, 장내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그때까지 눈치를 살피던 등왕패가 슬그머니 나섰다.

“하나, 단지 저들의 말만 듣고 전 단주를 심판한 것은 성급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소. 게다가 감찰총국은 아직 정식 기관도 아닐 텐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감찰총국은 이미 열흘 전부터 정식 기관입니다. 다만 생도들로 구성된 감찰대만이 검증 절차를 남겨 두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에 본 국에서는 감찰대를 제외한 모든 조직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표적수사가 아니오?”

“표적수사?”

“그렇소. 어찌 전태수 단주가 그런 음모를 꾸미는 줄 알고 집중적으로 조사했단 말이오? 누군가의 제보도 없이?”

굳이 둘러말해서 ‘표적수사’라고 표현했을 뿐, 한 마디로 처음부터 누명을 씌울 작정은 아니었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사실 사비강은 이미 미래를 한 번 겪지 않았던가?

때문에 그는 전태수가 맹주를 독살하는데 가담했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감찰총국의 국주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전태수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를 살려 두지 않고 바로 죽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괜히 절차를 따져 가면서 그를 살려둬 봤자, 등왕패를 비롯한 반 맹주파 무리들이 어떤 식으로 나서서 그를 살려 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만인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를 보이듯 깔끔하게 제거해 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등왕패의 입장에서는 표적수사라는 의구심이 들만도 했으리라.

이미 죽어 버린 전태수를 다시 살릴 수야 없겠지만, 어떻게든 이번 집행에 이의를 제기해서 감찰총국의 권한을 상당 부분 무력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제보가 있었습니다.”

“뭣이? 그게 누구요?”

“마침 저기 서 있군요.”

사비강의 손가락이 장내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방향을 따라 옮겨졌다.

“저 여자는…?”

“혈사련의 홍묘가 아닌가?”

“하면 제보자가 저 여자라는 건가?”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사비강이 또박또박 말했다.

“제보자이자, 목격자지요.”

졸지에 지목된 서래향은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뭐야? 지금 날 지목한 거야? 사비강, 미친 거 아냐?’

애초에 그녀는 사비강에게 어떠한 제보도 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전태수가 약제실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초오를 건네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그녀가 멀뚱멀뚱 서 있는데, 구윤이 다그치듯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서래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사이 등왕패가 발끈해서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럴 리가 없잖…!”

“맞아요. 내가 봤어요. 모두.”

서래향의 낭랑한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들려 왔다.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술렁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으이익!”

등왕패가 이를 빠득 갈며 서래향을 노려보았다.

서래향이 등왕패 쪽을 향해 희미한 조소까지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전태수 단주가 조금 전 그 두 사람에게 초오 약재를 건네는 것을 분명히 봤어요.”

“정말입니까? 언제 그것을 목격했습니까?”

구윤의 질문에 이번에는 사비강이 얼른 나섰다.

“그젯밤 자시 초에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네, 맞아요. 자시 초였어요.”

서래향이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강현각(姜顯閣) 후원에서 봤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요. 강현각 후원에서 본 게 맞아요.”

서래향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비강이 내심 웃었다.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는군.’

강현각은 탕약을 조제하는 곳이었다.

듣고만 있던 등왕패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럴 리가 없다.

전태수는 치밀한 성격이다.

저런 여자에게 들켰을 리가 없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관련자들이 모두 죽은데다 명백한 증거까지 나왔으니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어디서 거짓말을! 우리가 사파인 당신 말을 믿을 것 같은가? 그래, 분명 저년은 생도들을 암살하기 위해서 살수를 고용했다가, 조금 전 전태수 단주에게 그 배후로 지목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저러는 것일 거요!”

그러자 사비강이 등왕패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 반대가 아니겠소?”

“뭣이?”

“시간상 따져도 그녀가 내게 제보한 것이 먼저였소. 한데 오늘 갑자기 전태수가 저 여자를 살수들의 배후로 지목했지. 그건 아무래도 자신의 행적을 목격한 자를 제거하기 위한 수작이 아니었을까 싶소만.”

꽤나 설득력이 있는 추론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금방 사비강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등왕패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볼모로 잡힌 사파 여인의 말을 듣고 그리 성급하게….”

“닥치시오!”

느닷없이 사비강이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움찔 떨 정도였다.

사비강이 사나운 눈길로 등왕패를 쏘아보았다.

“더 이상 발언을 계속하면, 맹주님을 암살하려고 한 자를 옹호하고 두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소. 그래도 좋다면 어디 계속 말씀해 보시던가.”

“끄익…!”

등왕패가 사비강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더니 몸을 휙 돌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

“이게 무슨 짓이죠?”

이제 막 감찰총국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사비강이 멈칫하곤 돌아보았다.

서래향이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사비강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맹주전의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사비강을 찾아 감찰총국으로 온 것이었다.

사비강이 능청스럽게 반문했다.

“뭐가 말이오?”

“왜 날 엮었죠?”

“엮다니?”

“목격자와 제보자. 그게 나라고 했잖아요.”

“사실이잖소?”

“뭐라고요?”

“당신이 인정하지 않았던가? 맹주전에서 본인 입으로.”

“지금 나랑 장난…!”

“입 조심하시오. 이곳은 정도맹 한복판이오. 보이지 않는 눈과 숨어 있는 귀가 가득하지. 여기서 세치 혀를 잘못 놀렸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을 수 있소.”

사비강이 나직하게, 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서래향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쫄았소?”

“뭐라고요?”

서래향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자, 사비강이 손을 휘휘 저었다.

“후후. 걱정 마시오. 지금은 아무도 엿보거나 엿듣는 자가 없으니.”

“하!”

서래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지금 장난칠 상황인가?

만약 자신이 그 자리에서 증언을 거부했다면?

아니, 그런 제보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면 어쩌려고 했나?

그런데 사비강이 그 속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불쑥 말했다.

“아마 거부할 수 없었겠지. 당신은 어찌 되었든 이곳에서 오랫동안 볼모 신세로 지내야 하니까.”

“그래서 날 엮었다는 건가요? 내 약점을 파악해서?”

“아니, 그 반대요. 나는 당신에게 기회를 준 거니까.”

“기회라고?”

“일전에 당신 입으로 그러지 않았소? 어디서든 줄을 잘 서야 하는 법이라고.”

“그야….”

“자, 난 당신에게 오늘 줄을 던져 주었소. 그 줄을 잡을지 말지는 당신에게 달렸지.”

“그 줄이 썩은 동아줄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믿죠?”

“당신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길고 짧은 건 대보지 않아도 안다고.”

“하지만 당신 입으로 늘어나는 줄도 있다고 했죠.”

“그래, 그 줄이 바로 이 줄이오. 잘 생각하시오. 어디서든 줄을 잘 서야 하는 법이니까.”

사비강이 싱긋 웃더니 저벅저벅 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서래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사비강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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