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귀환 마교관
161화
어둠이 완전하게 내려앉은 시각.
좁은 골목길을 따라 그림자 셋이 빠르게 이동했다.
복면을 쓴 자들의 호흡과 동작에서 다급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두운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선 그들은 곧 담장을 짚고 훌쩍 타넘었다.
이미 지형지물을 완벽히 숙지해 둔 상태였기에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예상대로 담벼락 아래쪽에는 수레가 쌓여 있었다.
그 사이에 몸을 숨긴 복면인들이 잠시 숨을 돌렸다.
복면인 중 한 명이 심각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 이제 어쩌죠?”
“우선 여길 벗어나고 보자.”
형님이라 불린 복면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는 어금니를 꾹 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비강이라고 했던가….’
분명히 그는 자신들을 봤다. 아니, 느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생도들이 신검대와 마주쳤을 때, 자신들이 나서야만 했다.
그때 생도들을 암살할 생각이었다.
난투전에 뒤섞여 암기를 쏘아내고 곧바로 잠적하면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실제로 자신들은 절정 이상의 고수를 수도 없이 암살해봤으니까.
어차피 아직은 어린 생도들인 만큼 사망자가 나오게 되면 지레 겁에 질려 혼란이 올 거라 판단했다.
때문에 많은 인원을 살해할 필요도 없었다.
두 명 정도.
많으면 세 명이면 충분하리라.
한데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아니, 아예 나서지도 못했다.
‘도대체 그 벌떼 같은 건 뭐였는지….’
다시 떠올려 봐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은 각주전 뒤에 숨어서 신검대와 생도들이 난투를 벌이기만 기다렸다.
한데 생도 하나가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희한한 행동을 하지 않던가?
똥이라도 싸려나 싶은 순간, 갑자기 검은 벌떼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멸했지.’
난투고 나발이고 없었다.
허무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났다.
유일하게 버티고 서 있던 노인조차도 생도에게 손 한 번 내밀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마도 독에 당한 것이리라.
그렇게 어이없게 생도들을 놓친 후, 곧바로 몸을 빼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의 지독한 살기란….’
다시 떠올려도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생도들이 각주전에 들어간 직후 느닷없는 살기가 쏟아졌다.
살기가 쏟아진 방향은 바로 사비강이 서 있는 곳.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가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리는 줄 알았다.
‘그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어.’
사비강의 두 눈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최대한 은신을 한 상태였기에 발각될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사비강은 마치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똑바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살기가 화살비처럼 자신에게 퍼부어졌다.
한동안 꿈쩍도 하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베일 것만 같은 칼날이 전신을 포위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각주전으로 들어갔던 생도들이 왕창 튕겨져 나왔다.
곧이어 호신위를 비롯해 백발 사내까지 내려서자, 사비강의 살기가 비로소 멈추었다.
복면인은 그때가 몸을 빼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했다.
재빨리 각주전을 벗어난 복면인들은 임무 따위에서는 미련을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사비강이 쏘아낸 살기에서 분명한 차이를 느꼈다.
나섰다간 죽는다.
가까스로 외원 변두리까지 빠져나온 복면인들은 이제 마지막 외벽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혹여라도 서두르다가 자칫 정도맹 무인들에게 발각되어도 골치 아픈 일.
순간 주변의 기척이 잠잠한 것을 확인한 복면인이 재빨리 바닥을 차고 달렸다.
뒤이어 두 명의 복면인들이 쫓아갔다.
그런데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 순간,
“헛!”
가장 앞장섰던 복면인이 흠칫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후후,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당, 당신은…!”
“으음. 날 아는 모양이네. 우리가 구면인가?”
복면인의 눈빛이 대번 일그러졌다.
어째서….
‘사비강이 여기에…!’
놀랍게도 복면인들을 가로막고 선 사람은 사비강이었다.
복잡한 외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은밀하게 움직이느라 속도가 좀 느렸던 건 사실이다.
한데 이렇게 빨리 자신들을 쫓아오다니?
저벅저벅.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복면인들에게 다가갔다.
복면인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감히 우리 감찰대를 암살하려고 하다니.”
“무, 무슨 소리요?”
“무슨 소리인지는 너희들이 더 잘 알 텐데.”
“모르겠소.”
“흥, 시치미를 떼시겠다? 너희들의 살기를 분명히 느꼈는데?”
“비켜 주시오. 우린 당신에게 볼 일이 없소.”
“그렇겠지. 하지만 이젠 내가 너희들에게 볼일이 생겨 버렸다.”
“무슨….”
“쪽팔린 건 알아서 복면을 덮어쓴 거냐?”
“이익…!”
순간 복면인이 곧장 사비강을 향해 날아갔다.
나머지 두 복면인 역시 바닥을 차고 달려 나가면서 암기를 뿌렸다.
쒸에에엑!
스팟!
다음 순간, 복면인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사라져…?’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상관은 없다.
어차피 목적은 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무사히 벗어나는 것이기에.
지금의 기습도 그저 활로를 뚫으려는 것일 뿐.
그런데….
“엇!”
촤아아악!
앞장섰던 복면인이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그 바람에 뒤를 쫓아오던 두 명 역시 급하게 멈추면서 부딪치고 말았다.
퍼퍽!
“큭!”
세 복면인이 비틀거리면서도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채 눈을 부릅떴다.
사비강이 앞에 있었다.
‘귀신…인가?’
분명 저 뒤에서 자신들을 막아서지 않았던가?
한데 어느새 이렇게 물러나 있었단 말인가?
하면 조금 전에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물러난 것인가?
그렇게 빨리?
물론, 이들이 블링크 마법을 알 리 없었기에 그저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이익! 꺼져라!”
순간 세 복면인이 동시에 암기를 뽑아 날렸다.
쒸엑! 쒸엑! 쒜에엑!
따다다당!
한 줄기 빛이 지나가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암기가 튕겨 날아갔다.
피츗! 피츗! 피츗!
세 자루의 암기가 오히려 복면인의 살갗을 베며 지나갔다.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고는 차가운 눈으로 세 복면인을 노려보았다.
“자아, 분명히 네놈들이 먼저 시작한 거다. 이제부터 계도를 시작하마.”
파앗!
찰나, 사비강의 신형이 다시 한 번 사라졌다.
**
‘제기랄!’
전태수가 입술을 꾹 씹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살수를 고용한 것은 자신이었다.
한데 녀석들은 손 한 번 써 보지도 못한 채 종적을 감췄다.
단단히 따져 물을 생각으로 놈들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하필!’
사비강이 나타났다.
놈이 살수들을 가로막아 선 것을 본 순간, 전태수는 얼른 걸음을 돌려 버렸다.
‘만약 그들이 사비강의 손에 잡힌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만약 살수들이 배후를 밝히기라도 하면, 여간 곤란해지는 일이 아니다.
차라리 자신이 복면을 쓰고 나서서라도 그 살수들을 무사히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한데 자신이 없다.
사비강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초절정 고수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허울뿐인 초짜라는 말까지.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괜히 나섰다가 자신마저 당해서 정체를 발각당하면 그땐 완전히 망하는 길이다.
‘녀석들이 무사히 빠져나가길 바랄 수밖에….’
전태수는 이를 뿌득 갈았다.
멍청한 놈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밤이다.
**
“끄으음.”
등왕패는 천천히 눈을 떴다.
침상의 천장이 보였다.
‘꿈을… 꿨군.’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몸도 찌뿌둥했다.
간밤에 잠을 좀 설쳐서 그런 모양이다.
패력거신이 생도 한 명에게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여나 녀석들이 검증 절차를 무사히 통과할까 봐.
침상에 걸터앉아 길게 기지개를 켠 그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창문을 열었다.
짹짹. 짹.
그의 근심을 날려 버리려는 듯 상쾌한 새소리와 함께 맑은 햇살이 창틈으로 스며들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걱정이 많아진 걸 보니, 나도 늙은 건가?’
생각해 보면 걱정할 것 하나 없지 않은가?
전태수가 고용한 살수들은 그래도 강호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녀석들이다.
그런 자들이 생도 두세 명 정도를 처리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검대가 생도들을 충분히 막아낼 터였다.
그도 아니면 어떤가?
통문각주의 역할을 맡은 자는 다름 아닌 송하문주인 임당령이다.
그를 호위하는 호신위들 역시 절정의 고수들.
그가 기껏 생도들을 상대로 허덕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 모든 게 완벽하다.
오늘은 그저 즐기면 되는 날이다.
심호흡을 하자 폐부 깊숙하게 맑은 공기가 스며들었다.
‘좋아, 이 즐거운 기분으로.’
등왕패가 가볍게 미소를 머금은 다음 몸을 돌렸다.
마침 시종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당주님, 맹주전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흐음. 무슨 일인가?”
“감찰대 검증 결과 발표를 비롯한 몇 가지 안건이 있는 듯합니다.”
“호오, 그렇군.”
대답을 하는 등왕패의 입이 귀에 걸렸다.
분명 ‘몇 가지 안건’이라고 했다.
그 말은 역시 생도들의 자격이 박탈되었으니, 새로 구성될 감찰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그저 결과 발표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흐하하하핫!”
등왕패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옷을 걸쳤다.
시종이 옆에서 거들면서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저어… 감찰대 결과는 묻지 않으십니까?”
“그야 뭐 뻔한 일이 아닌가? 굳이 내 기분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면 괜찮네. 난 지금 몹시 기분이 좋으니까.”
“그게 아니라….”
“그럼?”
“저어… 송하문주 임당량이 패배를 시인하고 생도들이 그를 제압했습니다.”
우뚝.
등왕패가 돌처럼 굳은 채 뻣뻣하게 돌아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나?”
“그것이… 감찰대가 통문각주를 검거하는 임무에 성공하여….”
“그게 무슨 소리야! 어째서 감찰대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거야!”
“저도 아침에 들은 소식인지라 자세히는….”
시종이 몸을 가늘게 떨며 고했다.
결국 등왕패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시종을 돌려보냈는데, 그 직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전태수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등왕패의 표정이 더욱 사납게 일그러졌다.
“무슨 일인가?”
“큰일 났습니다. 아무래도 일이 틀어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고용했던 살수들이 모두 사비강에게 붙잡힌 모양입니다.”
“뭣이?”
등왕패의 얼굴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익…!”
등왕패가 손을 들어 올리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일장에 전태수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고 싶은 심정.
그가 인내심을 극도로 발휘하며 물었다.
“해서 그들은?”
“현재 맹주전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여기로 오면 어떡하나! 자네가 연관된 사실이 밝혀지면 괜한 의심만 더 살 것이 아닌가!”
“시급히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염려 마십시오. 결코 입이 가벼운 자들은 아닙니다.”
“시끄럽네! 어서 돌아가게! 나도 곧 맹주전으로 갈 것이네!”
“예, 그럼!”
하얗게 질린 전태수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나갔다.
등왕패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이 사비강… 사비강… 사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