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귀환 마교관
160화
솔직히 놀랐다.
음과 양이라는 전혀 다른 기운을 가진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것도 놀라운데, 둘의 움직임이 마치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획기적이라고 할 만큼 신선했다.
‘이건 검의 효능도 아니고, 개개인의 기량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검법이다.
도대체 이들이 익힌 검법이 뭐란 말인가?
조금 전의 일격은 단순한 공격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두 사람이 달려올 때, 마치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연일까?
아니다.
백발 사내는 우연을 믿지 않았다.
철저한 수련의 결과이리라.
그렇다고 합공이 아니다.
뭔가 다르다.
그냥 둘이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 힘은 배 이상으로 강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날 놀라게 할 거지?’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사비강을 힐끔 보니, 여전히 팔짱을 낀 채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진심으로 대할 때군.’
백발 사내는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연우경과 목단화 역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백발 사내를 두고 좌우로 거리를 크게 벌렸다.
그런데도….
‘끊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을 잇는 무언가가 있다.
하나의 생명체가 길게 늘어난 것만 같다.
이것이 바로 혈귀검법의 무서움이다.
마계에서는 한 사람이 사용하던 검법을 중원의 방식으로 바꾼 후, 두 사람이 사용하게 했다.
오른손잡이인 목단화는 샤이아의 오른쪽 신체를 맡은 격이고, 양손잡이인 연우경은 샤이아의 왼쪽 신체를 맡았다.
이 두 사람의 조화는 사비강의 예상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패검연가의 검법과 섬검목가의 검법이 다르면서도 닮은 점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어쨌든 한 사람의 무공을 두 사람이 각각 절반씩 맡아서 사용하는 셈인데, 그 융합이 워낙 절묘하다 보니 샤이아 한 사람이 사용할 때보다 훨씬 강한 검법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이는 혈귀검법을 만들어낸 사비강도 대단한 것이지만, 연우경과 목단화의 조화가 뜻밖으로 잘 어울리는 탓도 있었다.
어쨌거나 백발 사내로서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셈.
‘이러니 저러니 해봐야 생도들 주제에!’
파밧!
찰나, 백발 사내가 바닥을 차고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그가 먼저 노린 사람은 연우경이었다.
민첩함에 있어서는 목단화보다 연우경이 조금 느리다는 것을 감안한 행동이었다.
연우경이 바닥을 차며 훌쩍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목단화가 반사적으로 끌려오듯 백발 사내를 향해 쇄도했다.
쩌엉!
백발 사내의 일장을 검으로 막아낸 연우경.
그 직후 사내의 배후로 목단화의 사심자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휘리리리링!
“어딜!”
백발 사내가 뒤로 돌아서며 팔을 휘저었다.
까앙!
손과 검이 부딪쳤는데, 금속성이 울리면서 서로 튕겨 나갔다.
촤아아악!
바닥을 미끄러지면서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백발 사내가 쉴 틈도 없이 그대로 땅을 박찼다.
파앙!
이번에 그가 노린 것은 목단화였다.
쉬이이이익!
그가 뻗어내는 장력이 태풍처럼 휘몰아쳐 갔다.
목단화가 가볍게 그 손을 툭 치고는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동시에 사심자가 똬리를 틀 듯 목단화를 감싸며 방어했다.
키리리리링!
백발 사내의 팔이 사심자를 스치며 지나갔다.
마침 뒤편에 선 나무 기둥에 그의 일장이 작렬했다.
퍽!
투콰앙!
나무 기둥의 앞쪽을 때렸는데, 뒤쪽이 터져 나갔다.
지켜만 보던 사비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투심장이군.’
통문각주가 투심장을 익혔다지만 초절정 고수는 아니다.
하면 저자는….
‘통문각주 양지강을 배출한 송하문의 장로였나?’
초절정 고수라면 그의 기억에 있을 법도 하지만, 사비강으로서는 처음 보는 자였다.
아마 마계의 침공이 있기 전에 죽었거나, 은거를 했거나.
한편, 연우경과 목단화는 곧바로 백발 사내의 배후를 노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쒸에에엑!
퀴리리리링!
두 자루의 검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날아드니 이번에도 피하기보단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앗!”
백발 사내가 다시 한 번 내공을 끌어올리며 양손을 합장했다.
퍼콰아아앙!
응축된 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연우경과 목단화를 다섯 장 정도를 밀어냈다.
촤아아악!
“후욱, 후욱, 후욱!”
이쯤 되자 내공을 꽤나 소진한 백발 사내 역시 호흡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후후후. 나를 여기까지 내몰 줄이야. 진심으로 칭찬하마. 하지만….”
그가 천천히 자세를 바꿔 잡았다.
그의 전신에서 다시금 웅혼한 기운이 우러나왔다.
“나를 상대하기에는 한참 이르다!”
파앙!
그가 그대로 목단화를 향해 파고들었다.
목단화가 뒤로 날렵하게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연우경이 백발 사내의 배후를 치고 들어왔다.
그 순간, 백발 사내의 눈빛이 확연히 변했다.
‘흥!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조금 전의 공방을 통해서 혈귀검법의 허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연우경과 목단화가 단 한 사람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어마어마한 힘과 유연성을 발휘하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빈틈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즉, 혈귀검법을 쓰는 이상 연우경과 목단화는 단지 덩치가 큰 적일뿐이다.
백발 사내는 목단화를 향해 쇄도하다말고 급히 돌아섰다.
갑작스런 반응에 연우경이 깜짝 놀라면서도 청빙검을 내질러 갔다.
“하아앗!”
“흐아앗!”
이번에는 두 사람의 기합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쩌어어엉!
두 사람의 강기가 부딪치면서 기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촤라라라락!
두 사람이 미끄러지며 멀어졌다.
‘됐다!’
백발 사내는 곧장 목단화 쪽을 돌아보았다.
저들이 요상한 검법을 이용해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는 이상, 목단화 역시 연우경과 연동되어 움직였을 터였다.
그러니 왼편으로 미끄러져 온 그녀를 쳐내면 될….
‘엇?’
없다!
지금까지 연우경과 목단화는 둘이 아닌, 하나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렇다면 지금쯤 자신의 왼편으로 목단화가 파고들어야 했다.
그런데….
“하아앗!”
‘뒤쪽인가!’
백발 사내가 황급히 돌아서며 일장을 뻗었다.
휘리리리링!
동시에 목단화의 사심자 역시 살아있는 뱀처럼 빠르게 그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콱! 콱! 콱! 콱!
퍼엉!
“크윽!”
“꺄악!”
두 사람이 서로에게 공격을 주고받으며 튕겨 나갔다.
쓰러진 목단화는 앞섶이 터져 나가면서 가슴골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반면 백발 사내는 네 군데에 검상을 입었다.
양쪽 어깨와 옆구리.
그의 눈빛이 불신으로 가득 찼다.
‘어째서…?’
분명 저들은 서로가 연동되어 움직였어야 할 터였다.
한데 조금 전에는 전혀 하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각각의 검술을 사용한 것처럼 움직였다.
‘결국 둘은 하나가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연우경과 목단화가 다시 동시에 그를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내공을 많이 소진한 백발 사내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방어했다.
퍼퍼펑!
장력이 허공에서 마구 터져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연우경과 목단화가 좌우로 크게 갈라지며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러더니 두 사람이 다시 백발 사내를 향해 상하로 공격해 올 때는 하나가 됐다.
‘이런 지랄 맞은…!’
백발 사내가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그가 상체를 공격해 오는 연우경을 향해 일장을 날리려는 순간.
촤아아악!
목단화가 아래쪽을 미끄러져 가면서 백발 사내의 배후로 돌아갔다.
‘또 갈라져?’
하나가 됐다가 둘이 됐다가.
분명 하나의 검법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자기들 멋대로 둘로 나뉘어진다.
종잡을 수가 없다.
그가 혼란해하는 사이,
퍼어엉!
연우경과 그의 장력이 부딪쳤고,
휘리리링!
촤아아악!
뱀 한 마리가 그의 등을 할퀴며 지나갔다.
“크아악!”
등에서 피가 터져 나온 백발 사내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격렬하게 숨을 토해내는 그의 입에서 침이 늘어졌다.
‘겨우 생도 두 명을 상대로 이 고생을 할 줄이야!’
이건 어찌 보면 기량의 차이가 아닌, 생소함에서 당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이겨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일장을 정면으로 또 받아냈으니, 연우경은 한동안 검을 제대로 쥐기도 어려울 터.
등에 큰 부상을 당했지만, 이제 목단화 하나만 남았으니 해볼 만할 것이다.
“크이익!”
이를 악 다문 그가 온힘을 다해 일어서려는데.
처처처처척!
사방에서 날아드는 예기.
그가 움찔거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호신위를 상대하고 있던 생도들이 모두 자신을 둘러싼 채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여차하면 손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는 듯 강한 살기가 쏟아져 내렸다.
‘벌써 호신위가….’
모두 당했다.
자신이 연우경과 목단화를 상대하는 사이, 생도들은 놀랍게도 열한 명의 호신위들을 굴복시킨 것이다.
“끄음….”
맥이 탁 풀렸다.
생도들이 각주실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무시하는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한데, 이 정도일 줄이야.
저벅저벅.
연우경과 목단화가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두 사람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 당당한 표정만큼은 그대로였다.
“패배를 시인하시오.”
연우경의 말에 백발 사내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잠시 후, 그가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이겼다.”
“휴우. 끝났군.”
연우경과 목단화가 동시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염자량과 백미령이 얼른 두 사람을 부축해 주었다.
생도들 사이로 사비강이 다가오더니 히죽 웃었다.
“우리 감찰대가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줘서 고맙소.”
“사비강 국주….”
“송하문의 장로인 듯 한데,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소?”
그러자 백발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 임당령(任堂嶺)이오.”
가만히 이름을 되뇌던 사비강이 흠칫거리고는 백발 사내를 보았다.
“임당령이면… 송하문의 장문인?”
“그렇소. 만나게 되어 반갑소, 사비강 국주.”
사비강이 의외라는 듯 임당령을 바라보았다.
임당령은 송하문의 명성을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러고 보니… 이때는 임당령이 살아 있을 때구나.’
하지만 임당령이 죽고 나서 송하문의 위세는 급격히 추락한다.
그 때문에 투심장 역시 힘을 잃어 별 볼일 없는 장법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을 때, 송하문의 위세는 달랐다.
악천괴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역시 장법으로 유명한 초절정 고수인 것만은 분명했다.
‘우경과 단화가 애먹을 만했군.’
그나저나 송하문의 장문인을 고용할 정도라니.
‘검증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운데?’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면 해도 너무한 셈이다.
뭐, 그런 만큼 앞으로 큰 소리 치기는 좋아졌지만.
‘그리고… 따질 것도 남았고.’
사비강의 시선이 각주전 뒤쪽으로 향했다.
한편, 이들의 싸움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사비강이 곧 씨익 웃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더욱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생도들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왜 고생은 우리가 하고, 멋진 척은 교관님이 하시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