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귀환 마교관
159화
‘소문대로 건방진….’
각주가 가늘게 뜬 눈으로 사비강을 응시하다가 피식 웃었다.
“후후후. 이 아이들이 바닥에 드러누워도 그런 소리를 할지 모르겠군. 뭐, 그땐 국주께서 나서서 날 제압해도 내가 책임지겠소.”
사내는 어떻게든 사비강의 무공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비강이 냉소를 지으며 답했다.
“글쎄, 내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하다니까 그러시네.”
“후후후. 대단한 자신감이군.”
사내가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팔짱을 꼈다.
일절 나설 생각이 없다는 뜻을 확고히 한 셈.
“후회나 하지 마시오!”
사내가 일갈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파앙!
그가 선 바닥이 움푹 파였다.
순식간에 연우경 앞으로 날아든 사내가 일장을 내뻗는 순간,
꽈앙!
연우경의 검과 사내의 장력이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막아?’
백발의 사내가 미간을 팍 구겼다.
한낱 절정 초입의 생도가 자신의 장력을 막아낼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기에.
생각을 더 이상 이어 가기도 전에 후방에서 날카로운 기합성과 함께 예기가 날아들었다.
“하앗!”
재빨리 돌아서니 벌써 목단화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고 있었다.
취리리리링!
연검이 춤을 추듯 흔들리면서 사내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어림없다.”
사내는 당황하지 않고 몸을 낮추는 것과 동시에 일장을 내밀었다.
퍼엉!
취리리리링!
한데 이번에도 그의 장력은 연검을 직격하지 못했다.
연검이 마치 뱀장어처럼 굽어지더니 그의 목을 향해 옆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제법이구나!’
미간을 팍 찡그린 사내가 양손을 합장했다.
꽈아아앙!
그러자 기의 파장이 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확 퍼져 나갔다.
그 바람에 연우경과 목단화가 뒤로 떠밀리면서 바닥에 미끄러졌다.
촤아아아악!
백발 사내가 서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일 장 정도가 움푹 파였다.
사내의 전신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후후후. 과연 대단하군. 도대체 이런 괴물들을 어찌 만들어냈소?”
사내의 질문에 사비강은 그저 희미한 미소만 머금은 채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거들었을 뿐.”
“하하하! 과연 놀랍군.”
호쾌하게 웃던 백발의 사내는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연우경과 목단화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일장을 막은 연우경과 회피한 목단화.
처음에는 두 사람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난 것이라 여겼다.
한데 이제 알 것 같다.
그들이 자신의 공격을 막거나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들이 지닌 검 때문이군.’
처음 보는 검이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소문에 의하면 사비강 교관이 특목반 생도들에게 신병이기를 선물했다고 했다.
물론 믿지 않았다.
신병이기가 어디 그리 흔해빠진 물건인가?
그 출처에 대해서도 분분할뿐더러, 대체로 듣도 보도 못한 무기들의 나열이었기에.
한데 이제 반 쯤은 믿어야 할 것 같다.
연우경이 들고 있는 푸른 검신은 확실히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목단화가 든 연검 역시 장식만 화려한 싸구려 검과 질이 다르다.
사실 이 두 사람이 사용하는 검은 지난날 옥교 분타의 뇌옥에서 취한 것들이었다.
사비강은 푸른 검신을 보고 ‘청빙검(靑氷劍)’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고, 목단화는 연검이 마치 뱀의 혀와 같다고 해서 ‘사심자(蛇芯子)’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청빙검과 사심자는 백발 사내가 짐작한 대로 보통의 물건은 아니었다.
‘하나… 병기의 우월함만 믿고 설쳐대서는 곤란하단 말이지.’
백발 사내의 입매가 치켜 올라갔다.
**
“우앗! 통문각주의 일격에 생도가 그대로 나가떨어졌습니다. 앗, 그 순간 여자 생도 한 명이 연검을 들고 통문각주의 옆구리로 파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말하는 사이에 벌써….”
천리경으로 상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중계를 하는 점소이는 말을 흐리고 말았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저들의 싸움이 너무나 빨랐기에.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통문각주를 굴복시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연 생도들이 감찰대로서 자격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회의적입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다시 남자 생도와 여자 생도가 통문각주의 일장을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더 이상은 일어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생도들은 호신위를 상대해야 하기에 통문각주를 공격할 수도 없습니다! 과연 이 검증은 어떤 결말로 치달을까요?”
점소이의 중계를 들으며 사람들은 저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마른 침을 삼켰다.
너무 긴장한 탓에 시켜 놓은 술이 넘어가지도 않았다.
애초에 생도들에게 지나치게 까다로운 검증이었기 때문일까?
지켜보는 자들은 저마다 묘하게 생도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쫓겨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들이 각주까지 상원으로 끌어내리자 묘한 쾌감마저 느껴진 것이다.
일종의 대리 만족과도 비슷한.
“감찰대 힘내라!”
누군가 불쑥 소리쳤다.
“아아, 감찰대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저곳에 들릴까요?”
점소이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주먹을 뻗으며 소리쳤다.
“감찰대 힘내라!”
“정의를 실현시켜라!”
“지지 말고 일어나라!”
무인들이 저마다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그동안 곪고 썩었던 정도맹의 부조리를 상대로 모처럼 기지개를 켜며 외치는 일종의 저항이었다.
“감찰대 이겨라!”
**
“헉, 헉, 헉!”
“후욱, 후욱!”
연우경과 목단화가 검을 들고 선 채로 심호흡을 했다.
두 사람이 걸친 옷은 이미 여기저기 찢어져서 걸레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두 사람과 마주 선 백발의 사내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아, 그만하고 패배를 선언해라.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인정하는 것 또한 용기다.”
하지만 연우경과 목단화는 대답 대신 서로를 힐끔 보았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그 방법밖엔 없을까?’
두 사람은 지난 육 년간 특별히 수련했던 검법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었다.
**
공동에서 수련을 시작한지 삼 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혈귀검법(血鬼劍法)이요?”
연우경과 목단화가 동시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창안한 검법이다. 너희들이 그걸 수련하면 실전에서 많은 도움이 될 거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가 함께 수련해야만 합니까?”
“이 검법은 두 사람이 동시에 사용해야만 효과적이니까.”
사비강의 대꾸에 연우경과 목단화가 서로를 잠깐 바라보더니 곧 시선을 외면했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날 연우경과 목단화가 서로 대련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두 사람은 묘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
한데 함께 호흡을 맞추고 힘을 합치라고 하니 영 어색했던 것이다.
목단화가 넌지시 물었다.
“꼭… 그래야만 하나요?”
“뭐가?”
“그냥 그 검법을 익히지 않고 따로….”
“안 돼. 그럼 너희들이 가진 검의 효능을 절반밖에 쓰지 못하는 거다.”
연우경과 목단화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사실 청빙검과 사심자는 원래 마계에서 한 사람이 사용했던 것이다.
샤이아의 양검.
마계의 전설적인 검객으로 불리는 샤이아가 양손에 쥐고 사용했던 검.
때문에 사비강은 샤이아의 검법을 중원의 방식으로 바꾸었다.
또한 각각의 검을 다른 사람이 쥐었을 때를 가정해서 검법을 창안했다.
그것이 바로 혈귀검법이었다.
“너희 둘이 혈귀검법을 대성하게 된다면, 장담컨대 중원에서 너희들을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은 몇 없을 거다.”
연우경과 목단화의 귀가 솔깃해졌다.
사비강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검법을 구사해야만 하지. 또한 서로가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검법이 흐트러지기 쉬워.”
“결코 쉬운 검법은 아니군요.”
“그래,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결코 만만한 게 아니거든. 다만 좀 수월한 방법도 있긴 하지.”
“그게 뭐죠?”
사비강이 연우경과 목단화를 힐끔 훑어보았다.
어딘지 음흉함이 깃든 눈빛이었다.
곧 그가 다른 생도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속삭이듯 말했다.
“너희 둘이 합방을 한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누구보다 잘 통하….”
“닥쳐욧!”
휘리리리링!
목단화의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심자가 굽이치며 날아들었다.
“읏차차. 뭐, 암튼 그런 검법이니 앞으로 남은 삼 년간 최선을 다해 수련해 보도록.”
얼른 물러난 사비강이 그렇게 던지듯 말하고는 걸음을 돌렸다.
**
그 후로 두 사람은 틈틈이 혈귀검법을 연마해 왔다.
하지만 실전에 적용한 적은 없었다.
연우경이 다시 목단화를 보았다.
목단화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백발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을 던졌다.
“아직도 망설이는 건가? 실력의 차이를 확인했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연우경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귀에 저만치 객잔에서 외치는 응원 소리가 닿았다.
“스으으읍. 후우!”
심호흡을 한 그가 청빙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는 자세를 고쳤다.
동시에 목단화 역시 천천히 기수식을 취해 갔다.
두 사람의 표정에서 투지가 단번에 읽혔다.
백발 사내가 미간을 구겼다.
“객기와 용기를 구분할 줄 모르는군.”
이제는 약간의 분노마저 느껴지는 음성.
그가 천천히 한 걸음 내디디며 양손에 기를 운집해 갔다.
‘아무리 발악을 해봐야 넘을 수 없는 차이라는 걸 모르… 음?’
순간 백발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연우경과 목단화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뭔가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다음 순간,
타앗!
연우경과 목단화가 동시에 바닥을 차며 쏘아져 나갔다.
백발 사내가 두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합공인가? 아니다… 이건… 이게 도대체 뭐야?’
그의 눈이 커졌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두 생도.
오른쪽에서 뛰어드는 연우경에서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왼쪽에서 달려드는 목단화에게서는 불그스름한 기운이 느껴진다.
두 기운이 점점 좁혀지자 마치….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퀴리리리링!
쒸에에에엑!
왼쪽에서는 사심자가 굽이치며 날아들었고, 오른쪽에서는 묵직한 청빙검이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하앗!”
모처럼 백발 사내의 입에서도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쌍장을 뻗어내자,
쩌저저엉!
요란한 울림과 함께 백발 사내가 뒤로 튕겨 나갔다.
주르르르르륵!
상원의 땅바닥에 깊은 발자국 두 줄기가 길게 새겨졌다.
쭉 뻗어낸 백발 사내의 양손에서 희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백발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내가… 이, 내가 밀려?’
그랬다.
자신에게 달려든 연우경과 목단화는 그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서너 장이나 밀려나고 말았다.
원래는 그 반대가 되었어야 하리라.
지금쯤 자신의 쌍장을 얻어맞은 두 사람이 하원까지 튕겨져 나가 떨어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데….
‘내가 밀려?’
그의 미간이 콱 구겨졌다.
대신 저만치 객잔에서는 모처럼 환호성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