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귀환 마교관
157화
“하아, 이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염자량이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절벽의 계단을 따라 올라왔더니, 또 하나의 난관이 남아 있었다.
하원이 내려다보이는 상원.
그곳에는 죽립을 눌러 쓴 무인 백여 명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각주전 지붕에서 지켜보던 노인도 있었다.
“클클클. 용케도 상원까지 왔구나. 자네들의 재능은 인정하지. 하나, 여기까지일세.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고 돌아가게나. 이왕이면 부상을 입지 않고 귀환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노인의 경고에 곡보옥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이대로 돌아가면 학관까지 가야 해서 말이오. 그러기엔 거리가 너무 멀지 않소? 그러니 각주만 데려갑시다.”
“클클클. 끝내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노인이 수염을 쓸며 웃었다.
그러는 동안, 곡보옥이 옆에 선 담우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이 사람들은 다 뭐야? 원래 통문각 소속인가?”
“맞아. 신검대(新劍隊). 통문각에서 가장 뛰어난 조직이지. 총 백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지만….”
“구성원이 다른 모양이군.”
불쑥 말을 꺼낸 사람은 연우경이었다.
담우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검대는 모두 일류 고수로 이루어져 있어. 합격술과 차련술 모두 능수능란해. 한데 이들은….”
“절정 고수가 꽤 섞여 있어.”
연우경의 말에 다른 생도들도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진짜 신검대가 아니다.
자신들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 새로 구성된 가짜 신검대다.
하지만 그 개개인의 능력과 기량이 진짜 신검대보다도 뛰어나다.
특히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도 꽤 섞여 있다.
이래서야 백한 명이나 되는 무인들을 스물한 명의 생도들이 어찌 이기겠나?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생도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사비강 역시 이를 감지하고 있었다.
‘훗, 결국 질 수밖에 없는 거였군. 뭐, 그럴수록 더 재미있지.’
그는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
지난 육 년간 생도들을 키운 건 바로 자신이다.
그 누구보다도 생도들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었다.
‘만약 제대로 부딪치게 된다면 생도들이 이길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수적 열세도 문제지만, 경험의 차이도 무시 못 할 터. 하지만….’
경험이라면 저쪽이 겪지 못한 비장의 한 수가 이쪽에도 있다는 점.
생도들 사이에서 조문탁이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죽립의 사내들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는 천진하게 나서는 조문탁을 가만히 보았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조문탁이 양손을 쭉 뻗으면서 몸을 풀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사람처럼 태연한 행동들.
노인이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뭐하는 거냐? 항복하겠다는 표시냐?”
“아, 그건 아니고. 잠시 몸을 좀 풀까 해서 말입니다.”
“뭣이? 설마… 네놈 혼자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으음… 아마도요.”
조문탁이 이리저리 몸을 뒤틀면서 대꾸했다.
벙 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노인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이런 미친 것들을 봤나? 크하하! 이제 보니 겁에 질려 완전히 돌아 버린 모양이군. 이 노부를 웃겨 줬으니, 그걸로 모든 걸 용서하마. 이제 그만 돌아가라. 생도라면 생도가 있어야 할 곳에 머물 일이다.”
“으차! 죄송하지만… 우린 생도가 아니라 감찰대입니다.”
말을 마친 조문탁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너무 당당하면서도 편안하게 걸어오니 죽립을 쓴 사내들이 다소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길까지 열어 주었다.
백한 명의 무인들이다.
혈혈단신으로 무리 속에 걸어 들어와서 뭘 어쩌겠는가?
마침내 노인 앞까지 다다른 조문탁이 씨익 웃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지요.”
“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군.”
“이왕이면 자신감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노인이 할 말을 잃고는 눈매를 씰룩였다.
그러면서도 내심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는 한 수 아래의 기량을 가진 듯했지만, 지금껏 생도들이 보인 실력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특히 단리정의 경우에는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은편 건물에서 저격을 했던 무인은 정도맹의 천상궁단(天上弓團)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였다.
비록 나이가 젊지만, 차기 궁단주가 될 재목이기도 했다.
한데 그런 그를 단 한 번 시위를 당긴 것으로 제압해 버릴 줄이야.
신궁이라면 분명 단리정 같은 녀석을 두고 일컫는 말이리라.
그러다 보니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조문탁일지라도 노인의 입장에서는 은근한 경계의 대상이었다.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어디를 어떻게 공격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
그렇다고 백한 명의 고수들이 생도 하나를 상대로 일제히 달려들어 칼부림을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생도들도 수문장인 패력거신을 상대할 때 정당하게 일대일의 승부를 보이지 않았던가?
천천히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는 조문탁을 보고는 노인이 넌지시 물었다.
“네놈 혼자서 감히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예? 그건 아닙니다만.”
“하면?”
“어르신과 여기 계신 다른 분들 모두를 상대할 겁니다. 신검대 무인들 전부요.”
“뭣이?”
노인의 뺨이 실룩였다.
이건 미친 건지, 도발인지, 생각이 없는 건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조문탁은 심호흡을 하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수식이라기에는 굉장히 이상한 자세.
언뜻 기마자세와도 닮았다.
양손에는 비도를 한 자루씩 쥐고 있다.
‘저건 도대체 무슨 무공이지?’
이젠 감도 오지 않는다.
그래도 강호 밥을 먹은 지 수십 년은 됐건만.
어디서 별 희한한 것들이 다 나타나서는.
그래도 가만히 서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
노인이 엉거주춤 자세를 잡고는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저 어린 녀석을 상대로 선공을 취하는 것도 모양새가 썩 좋지 않을 것이기에.
사파 무인들이 보면 이렇게 선공을 양보하는 모습이 한심할 정도로 답답해 보이겠지만, 이것이 정파의 통상적인 무도인 걸 어쩌겠는가?
게다가 지금은 정식 싸움도 아닌, 생도 검증의 현장인 것을.
마침내 조문탁이 양손을 불끈 쥐며 기합성을 터뜨렸다.
“흐아아압!”
그 기합성이 워낙 컸기에 에워싸고 있던 신검대 무인들이 저마다 움찔 거리며 후다닥 물러났다.
그러나….
‘뭐야?’
노인의 이맛살이 더욱 구겨졌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조문탁은 여전히 양손을 불끈 쥔 채로 심호흡만 한다.
그리고 그 뒤에서 지켜보는 생도들은 마치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것처럼 눈에 힘을 주고 있다.
조문탁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긴장하니까 잘 안 되네.”
“너 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장난질을….”
“흐아아압!”
다시 한 번 터져 나온 기합성!
노인이 이번에도 얼른 방어 자세를 취하면서 후다닥 물러났다.
신검대 무인들 역시 움찔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런데….
‘뭐, 뭐야?’
이번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저만치 뭔가를 잔뜩 기대하던 생도들이 ‘아아’ 소리를 내며 탄식을 뱉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노인의 눈자위가 파르르 떨렸다.
“장난은 끝난 거냐? 이만하면 노부가 새파란 후배들에게 충분히 아량을 베푼 것 같다만.”
더 이상 사정을 두지 않겠다는 뜻.
필요하다면 선공도 하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조문탁은 노인의 경고가 들리지도 않는지 혼자만의 상황에 빠져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군. 네놈을 내 직접…!”
“흐아아압!”
다시 터져 나온 기합성!
노인과 신검대 무인들이 이번에도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뿐.
같은 방식에 여러 번씩 속을 그들이 아니었다.
결국 노인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그가 검을 뽑아 들고는 조문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노옴! 똥을 싸려거든 뒷간으로 갈 것이지. 어디서 개수작을…!”
“흐아아아압!”
다시 터져 나온 기합성.
그러나 이번에는 그 누구도 움찔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이들은 노골적으로 비웃음까지 던졌다.
그런데,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조문탁의 허리띠에 빼곡하게 박힌 검은 돌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벌떼처럼 퍼져 나간 수백 개의 돌기들이 순간 신검대 무인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쒜에에에에에에엥!
“크읍!”
“이건 뭐…! 크악!”
“으히이익! 으아악!”
느닷없이 날아든 돌기들에 의해 난자당한 신검대 무인들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며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노인 역시 마찬가지.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호신강기까지 펼쳤지만, 이미 전신의 여기저기에 자잘한 상처가 남았다.
한 차례 폭풍처럼 휘몰아친 검은 돌기들은 순식간에 조문탁의 허리띠로 돌아와 제자리에 꽂혔다.
“끄으으윽!”
“으으으.”
백한 명의 무인들이 모두 쓰러진 채로 신음을 흘려댔다.
유일하게 서 있는 자는 노인뿐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핏대가 섰다.
“이노오오옴! 감히 개수작을…!”
그가 바닥을 팡, 차더니 허공을 부웅 날아서 조문탁이 있는 곳으로 단숨에 날아왔다.
한데….
탁!
“크읏…!”
조문탁 앞에 떨어져 내린 노인이 가물가물 감기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는 푹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검은 돌기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다.
지난 육 년간 검은 벌집을 사용하는 방법에만 몰두했던 조문탁이었다.
워낙 대량의 마나가 소모되는 만큼 그것만 연마해도 육 년의 시간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보던 당이협이 기가 막힌 제안을 해왔다.
바로 검은 벌집에 자신이 만든 독을 바르자는 것.
이번에는 검증 절차인 만큼 살상용 독은 아니었다.
수면 독이었다.
때문에 일격을 가해 오던 노인은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순식간에 바닥에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진 신검대를 보며 조문탁이 휙 돌아섰다.
“후유, 큰일 날 뻔했네. 나는 오늘 여기까지….”
말을 마친 조문탁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넘어갔다.
마침 그가 쓰러지기 직전에 곡보옥이 얼른 달려가 부축했다.
대량의 마나를 일시에 소진한 탓에 기절하고 만 것이다.
“하여튼 성가신 놈이라니까. 손이 너무 많이 가.”
곡보옥이 조문탁을 들쳐 메며 투덜거렸다.
염자량이 피식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도 문탁이 덕분에 이번엔 쉽게 넘어갔잖아.”
“그럼 뭐하냐? 일회용인데. 이 녀석, 이러고 나면 이틀은 꼼짝없이 운기만 해야 할 걸?”
“그래도 우리 믿고 사용했으니 좋게 봐주자고.”
“그래서 더 문제라는 거야. 만약 진짜 싸움이 벌어졌어 봐. 그리고 우리가 곁에 없으면? 그땐 어쩔 거야?”
“그럼 뭐 검은 벌집은 사용하지 않겠지.”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생도들은 드디어 각주전을 향해 걸음을 옮겨 갔다.
그런데 그 뒤를 따라 걸어가려던 사비강이 멈칫거리고는 각주전 뒤쪽을 빤히 응시했다.
그의 입매가 슬쩍 올라갔다.
‘크크크.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