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귀환 마교관
155화
‘이자가… 통문각의 수문장인가?’
생도들이 입을 척 벌리고 거구의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덩치 큰 사람은 처음 보았다.
단지 덩치만 큰 게 아니다.
몸이 전체적으로 쇳덩이처럼 단단해 보인다.
손바닥은 솥뚜껑만하다.
타고난 강골(强骨).
연우경이 눈살을 가만히 찌푸리며 거구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통문각에 이런 수문장이 있었던가?’
이 정도의 특이점이 있다면 분명히 자료에서 눈에 띄었을 것이다.
혹시 몰라 담우기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자가 통문각의 수문장인가?”
“아니. 저자는 외부에서 고용된 무인일 거야.”
“역시.”
연우경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생도들의 무력을 검증하기 위한 자리다.
그런 만큼 기존의 무인들을 대신해서 특별히 고용된 고수들이 통문각 소속 행세를 하는 것이리라.
“혹시 누군지 알아?”
“알 것 같아.”
뜻밖에도 담우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아마도… 패력거신(覇力巨神) 백상산(百祥山).”
“패력거신…?”
“원래 섬서 지역에서 유명한 권사야. 힘으로 따지자면 정도맹 소속 무인들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야.”
그러는 사이 백상산은 생도들을 대충 훑어보면서 소리쳤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썩 꺼져라!”
딱히 내공을 이용한 사자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너무 커서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생도들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염자량이 한 걸음 나서며 회계 서류를 거칠게 뿌렸다.
“장부 내용상 통문각주가 공금을 횡령한 정황이 드러났소. 그리고 투심장에 맞아 죽은 고아의 시체가 발견됐소. 이에 본 감찰대는 통문각주를 연행해야겠소.”
백상산이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힐끔 보더니 콧방귀를 꼈다.
“흥! 장부 내용은 각주전에 보고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 시체가 투심장에 맞았다지만, 우리 각주님이라는 증거는 아니지 않느냐?”
“정 비키지 않겠다면 무력을 쓰겠소.”
“호오? 어디 한 번 해보시든가.”
백상산이 히죽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의 몸이 통문각 출입구를 꽉 채워서 더 이상 드나들 틈조차 없었다.
염자량이 어깨를 으쓱이며 물러났다.
“그럼, 후회 마시길.”
잠시 후 생도들 사이에서 곡보옥이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곡보옥 역시 체격이 큰 편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큰 백상산 앞에 서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굳이 무력을 확인하고 싶다면야!”
팡!
곡보옥이 말을 뱉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차고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쉬이이이잇! 퍼엉!
질풍처럼 내지른 주먹이 그대로 백상산의 복부에 날아가 꽂혔다.
폭음과 비슷한 소리가 울리면서 기의 파동이 주변으로 확 퍼져나갔다.
“크웁!”
백상산이 복부를 움켜쥐면서 허리를 숙였다.
곡보옥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후후. 어떻소? 아직도 비키지 않을….”
“크크크. 꼬마야, 제법이구나.”
“음?”
찰나, 패력거신이 날아올랐다.
쑤앙!
허공으로 솟구친 패력거신은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일련의 동작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콰앙!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바닥이 흔들렸다.
‘낙하유성권(落下流星拳)’이라는 초식이었다.
생도들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빠, 빠르다!’
‘무슨 사람 힘이 저렇게나…!’
떨어져 내린 힘이 어찌나 강한지 백상산과 곡보옥을 중심으로 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생도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백상산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곡보옥이 내지른 일 권은 힘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
강호 오대 괴력에 속하는 패력거신이다.
아마 지금의 일격으로 자신감 넘치던 그 애송이는 기절하고 말았으리라.
마침내 뿌연 먼지가 완전히 걷혔을 때.
“음…?”
백상산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양 팔을 교차한 채 서 있는 곡보옥이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는 여전히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곡보옥은 발목까지 땅바닥에 파묻힌 상태였다.
그만큼 백상산이 내려친 힘이 강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곡보옥은 쓰러지기는커녕 희미한 웃음까지 머금었다.
“선배님의 한 수 잘 배웠습니다. 그럼 이번엔 제 차례입니다.”
“이… 건방진! 하압!”
백상산이 일갈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서 곧장 양 주먹을 좌우로 활짝 펼쳤다.
‘만개거화(滿開巨花)’라는 초식이었다.
마치 일순간 꽃이 활짝 펼쳐지는 것과 닮은 동작이라 하여 붙은 이름.
어딘지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명칭과는 달리 만개거화를 정통으로 맞게 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순간적으로 기의 폭발을 이용하여 타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곡보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백상산의 주먹을 팔로 막아냈다.
‘흥! 네놈 팔이 부러지려고 작정했구나!’
백상산은 확신했다.
지금껏 자신의 만개거화를 막아낸 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바위도 깨뜨리는 힘이다.
한데….
꽈앙!
육중한 소리와 함께 곡보옥이 뒤로 주르륵 밀려가는 것이 아닌가?
백상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막아? 만개거화를!’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곡보옥이 착용하고 있는 철인구는 지닌 능력에 비례하여 근력과 방어력을 상승시킨다.
지난 육 년간 곡보옥은 절정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수련을 해왔다.
특히 자신의 특기인 근력을 중점적으로 키웠기에 철인구의 효능 역시 극대화 된 상태.
곡보옥이 히죽 웃으며 바닥을 찼다.
“갑니다, 선배님!”
슈아아아앙!
백상산이 눈을 부릅떴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번에는 다르다!’
녀석이 처음 자신의 복부를 가격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다.
그에게는 자갈처럼 작은 곡보옥의 주먹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바위가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절대로 맞으면 안 된다.
막거나 피하거나.
스읏!
결국 백상산은 피하는 것을 택했다.
우습게도 저 작은 주먹을 이번에는 막아낼 자신조차 없었던 것.
그만큼 곡보옥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곡보옥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그 순간,
“그만 까불어라!”
백상산이 그대로 일 권을 내지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런데,
퍽!
“커억!”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면서 허공이 뒤집히는 것이 아닌가?
‘다리를 걸어?’
지금껏 누군가에게 다리가 걸려 넘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그런 경우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감히 누가 자신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생각을 하겠나?
그걸 시도하는 순간 오히려 상대방의 다리가 부러지고 말리라.
자신에게 다리를 건다는 것은, 바닥에 뿌리 깊게 박힌 거목을 발로 차서 쓰러뜨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한데….
‘걸렸다…!’
믿을 수 없게도 백상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콰앙!
육중한 몸이 쓰러지자 먼지가 다시 한 번 자욱하게 일어났다.
“하앗!”
찰나, 기합성이 들리면서 곡보옥이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다.
백상산은 이제 놀랄 힘도 없었다.
‘저건 분명….’
낙하유성권이다.
설마 조금 전에 자신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걸까?
말이 안 된다.
무공이란 그 오의(奧義)를 깨닫지 못하면 그저 흉내 내기에 불과하다.
한데….
‘흉내 내기가 아니잖아!’
사실 사비강은 지난 육 년 동안 곡보옥에게 권법과 각법, 그리고 장법 등 무기 없이 싸울 수 있는 여러 초식을 가르쳐 주었다.
지난 생에 뛰어난 무공서를 대부분 섭렵했던 그였기에 그러한 초식을 가르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곡보옥 역시 사비강이 가르쳐 주는 모든 것을 체화시키진 못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을 익혔고, 때로는 응용하여 자신만의 무공을 창안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백상산이 사용했던 낙하유성권이었다.
물론, 백상산만큼 완벽하게 시전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단순한 흉내 내기 수준은 아니었다.
“크익!”
백상산이 몸을 옆으로 굴리자, 그 빈자리에 곡보옥의 주먹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꽈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백상산이 이를 빠득 갈더니 회심의 일격을 가해 왔다.
“노오옴!”
살풍태력권(殺風太力拳)이었다.
오늘날 그의 명성을 강호에 알린 살초이자, 그만의 특기!
쏴아아아앙!
세찬 파공성과 함께 강철 같은 주먹이 곡보옥의 안면으로 날아갔다.
느릴 것 같은 덩치와 달리 그는 정말 빨랐다.
때문에 곡보옥은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손을 들어올렸다.
‘흥! 끝이다! 그 손을 아작 내주…!’
콰악!
“크읏!”
백상산이 이를 빠득 갈고는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곡보옥 역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온 힘을 다해 살풍태력권을 손으로 막아냈다.
‘이런 미친…! 맨손으로 날 막아?’
이쯤 되자 백상산은 부아가 치밀었다.
평생 그의 자부심이 되었던 권법이 계속해서 막히자 짜증이 일어났다.
“흐아아압!”
그가 체면 불고하고 기합성을 터뜨려 내며 왼 주먹을 내질렀다.
그런데….
팍!
“크읍!”
놀랍게도 곡보옥은 이번에도 그의 살풍태력권을 손으로 막아냈다.
졸지에 양 주먹이 곡보옥의 손바닥에 잡혀 버린 백상산.
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는데.
“이여어업!”
이번에는 곡보옥이 기합성을 터뜨렸다.
동시에 그의 손아귀에서 거짓말처럼 강한 힘이 솟아났다.
“크아아아악!”
백상산이 입을 찢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사실 이는 마나환근심결(魔羅換筋心訣)의 영향이었다.
지난 육 년간 곡보옥이 독자 개발한 무공.
보통 내력 그 자체로 근력의 부족함을 보강하는 중원의 방식과 달리, 마나환근심결은 내공을 실제적인 근력 강화에 소모한다.
근력보다는 내공을 중시하는 중원인이 본다면 언뜻 비웃음을 살 수도 있을 만한 무공이지만, 철인구를 착용한 곡보옥에게는 더 없이 유용한 무공이었다.
곡보옥의 근력이 갑자기 급상승하자 철인구의 효율도 순간적으로 증폭됐다.
마침내 곡보옥의 손이 백상산의 주먹을 낙엽처럼 구겨 버렸다.
쿠자작!
“끄아아아악!”
백상산이 비틀거리며 물러나더니 털썩 무릎을 꿇어 버렸다.
그의 양손은 뼈마디가 부서져 너덜너덜한 상태가 됐다.
반면 순간적으로 근력을 상승시켰던 탓에 곡보옥의 손은 크게 부어 있었다.
게다가 붉게 달아올랐던 손은 점차 원래의 색과 크기로 돌아오고 있었다.
곡보옥이 포권을 취했다.
“선배께 한 수 배웠습니다.”
지켜보던 수문 무사들이 입을 척 벌린 채 물러났다.
반면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생도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마치 이런 결과를 예상이나 했다는 듯.
곡보옥이 생도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
“멋있는 척 하기는.”
염자량이 핀잔을 주며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다른 생도들도 그 뒤를 따랐다.
**
“뭐? 패력거신이 당했다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려고 했던 등왕패는 수하의 보고를 듣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패력거신 백상산이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막아설 수문장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빨라. 벌써 패력거신이 무너지다니!’
그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합공을 당한 것이냐?”
“그것이….”
“말해라.”
등왕패가 다그치자 수하가 고개를 숙이며 즉각 대답했다.
“한 명에게 당했습니다.”
“뭐라고? 지금 한 명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곡보옥’이라는 생도인데 그가 나서는 동안 다른 생도들은 관전만 했습니다.”
“곡보옥….”
생각났다.
연회장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그 겉늙은 생도 녀석!
그놈 혼자 패력거신을 상대했단 말인가?
강호 오대 괴력으로 알려진 패력거신 백상산을!
‘사비강 이놈…!’
도대체 생도들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럴 수가 있나?
불과 삼 개월 사이에!
수하의 입에서 기분 나쁜 보고가 이어졌다.
“현재 외원에서도 소문이 퍼져 관전을 하려는 자들이 통문각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끄음.”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하지만 안 된다.
이 정도 일로 가볍게 움직여서는.
‘손을 써 둔 것도 있으니….’
괜한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은 일절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래, 그래봐야 수문장을 넘어뜨린 것에 불과하다.
아직 녀석들에게는 더 많은 고비가 남았을 터.
침착하자.
‘괜한 걱정이겠지. 한 사람 쯤이야 운으로도 이길 수 있을 테고.’
등왕패가 심호흡을 하고는 손을 저었다.
“알았다. 물러가라.”
수하가 사라지고 나자 등왕패는 침상에 드러누웠다.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