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54화 (154/670)

# 154

귀환 마교관

154화

허물기 직전의 건물.

그 벽 안쪽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됐다.

애초에 비밀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던 곳이어서 자칫 지나칠 뻔한 곳이었다.

공교롭게도 한때 신화객잔의 저장고로 사용되던 곳이기도 했다.

물론 진짜 시체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생도들의 자격 검증을 위해 목각 인형으로 비치해 둔 증거들일 뿐.

다만 워낙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만들었기에 언뜻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목각 인형에는 ‘고아(孤兒)’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체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복부 쪽 장삼은 뭔가에 얻어맞은 듯 처참하게 터져 나간 상태였다.

그 외에도 시체 한 구는 옷자락의 일부가 찢어져 있었다.

사비강을 비롯한 감찰대원들이 모두 그곳에 모였다.

마침 염자량이 다가오며 말했다.

“찢어진 옷자락 중 일부가 골목 모퉁이에서 발견됐습니다. 시체의 찢어진 옷자락 부위와 일치합니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도들을 돌아보았다.

“자, 드디어 시체가 발견됐다. 시체는 많은 것을 말하는 법이지. 누가 말해 볼 사람 있나?”

그러자 곡보옥이 손을 들며 성큼 나섰다.

“시체 두 구가 모두 복부를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자상이 없고, 장삼이 터져 나간 모양으로 보아서는 각법(脚法)에 당한 것 같습니다. 여기 복부 쪽의 발자국도 그 증거죠. 범인은 각법을 특기로 사용하는 무인입니다.”

“흐음. 배를 맞았는데 왜 엎어져서 죽었지? 보통이면 뒤로 넘어질 텐데.”

“그건… 고꾸라져서 죽은 것일 수도 있고… 끄응.”

“그리고 발에 맞아 죽었다고 해서, 범인이 각법만 사용하리란 법은 없을 텐데. 각법 중에서도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정도는 특정해야 하지 않겠나?”

“그건… 음….”

곡보옥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생도들이 키들거렸다.

곡보옥이 머리를 벅벅 긁는데, 담우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어…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담우기가 쭈뼛거리며 나와서는 시체를 살폈다.

한참 서성거리던 담우기가 시체 인형을 뒤집더니 장삼 자락을 들추고는 손바닥을 등에 가져다 댔다.

목각 인형의 등에는 붉은 자국이 나 있었는데, 담우기의 손보다 조금 더 넓은 면적이었다.

담우기가 애체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확실히 복부의 장삼이 터져 나간 것과 신발 자국을 보면 각법에 당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눈속임입니다.”

“눈속임이라?”

담우기가 목각 인형의 등에 난 붉은 자국을 가리켰다.

“혹시… 이걸 보시고 생각나는 것 없으십니까?”

불쑥 튀어나온 질문에 사비강이 이맛살을 구겼다.

“지금… 나한테 묻는 거냐?”

“예, 그렇습니다. 국주님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채실 것 같은데요. 모르시겠습니까?”

“이런… 건방진….”

“투심장(透深掌)입니다.”

“뭐?”

생도들이 술렁이며 서로를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담우기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투심장의 특징은 바로 이렇게 체내의 깊은 곳까지 장력이 침투해서 내상을 입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격으로 맞은 부위보다는 그 반대편… 즉, 등을 맞았을 경우 복부에서 장력이 터져 나가는 특성이 있지요. 그리고 직격으로 맞은 부위에는 이렇게 붉은 상흔만 희미하게 남습니다.”

“잠깐! 그럼, 저 시체들은 배를 얻어맞은 게 아니라 등을 맞았다는 거야?”

곡보옥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담우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두 사체가 모두 등 뒤에서 직격을 당했어. 얼핏 앞에서 공격을 당한 것 같지만, 투심장의 흔적이 분명해. 이건 뒤에서 당한 거야. 복부를 맞았다면, 이 붉은 상흔이 배에 남고, 등 뒤의 장삼이 터져 나갔어야지.”

“하지만 저 발자국은?”

“죽고 나서 고의적으로 누군가 찍은 거야.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만약 정말로 각법에 당한 것이라면 저렇게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지는 않을 거야. 상대를 죽일 만큼의 각법이라면, 오히려 기가 터져 나가면서 발자국이 지워졌을 가능성이 커.”

생도들이 내심 감탄한 표정으로 담우기를 바라보았다.

‘우기가 저렇게 식견이 깊었나?’

‘저러니까 또 완전히 다른 사람 같잖아?’

담우기가 몸을 일으키더니 애체를 다시 한 번 더 밀어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뭐, 시체가 한 구일 경우 투심장을 등에 맞았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등을 가격 당했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뭔데?”

곡보옥의 물음에 담우기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바로 피해자들이 달아나다가 배후에서 당했다는 것. 즉, 골목 모퉁이에서 발견된 옷자락의 일부는 달아나던 중 뭔가에 걸려 찢어진 것일 거고.”

곡보옥이 뭔가를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 있는 시체들은….”

“그래. 누군가 죽인 다음에 여기로 옮긴 거야.”

“왜?”

“시체를 숨기려고 했거나, 또 다른 목적이 있었거나.”

과연 대단한 통찰력이었다.

사비강이 내심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또 다른 목적이 있다면 무얼 말하는 거냐?”

“누명입니다. 이곳은 신화객잔의 저장고로 사용되던 장소입니다. 게다가 신화객잔의 주인장은 각법을 특기로 사용하는 고수입니다. 얼핏 판단하기에 신화객잔의 주인장을 범인으로 몰고 갈 수 있지요. 즉, 우리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함정입니다.”

담우기가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선 투심장을 사용할 줄 아는 무인을 찾아내야 해. 투심장은 송하문(松下門)의 특기지. 그리고 외원에 거주하는 송하문도는 공교롭게도….”

“통문각주 양지강(良支强).”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연우경에게 향했다.

연우경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정도는 사전에 조사해 두었으니까.”

담우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통문각주 양지강이 바로 송하문 출신이지.”

생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검거를 해야 할 차례.

사비강이 생도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고생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방심은 금물이다. 통문각주 양지강을 잡아라.”

“예, 알겠습니다!”

생도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달려갔다.

홀로 남은 사비강은 목각 인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목각 인형 앞에 쪼그려 앉아서 등에 손을 대보았다.

“투심장이라….”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음 순간,

“캬아! 담우기 녀석,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아우, 갑자기 물어봐서 깜짝 놀랐네. 하마터면 망신당할 뻔했잖아. 하여튼 재수 없는 놈인 건 확실한데…. 나름 쓸 만한 녀석이란 말이야. 흠. 투심장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먼.”

사비강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칠십여 년 간 온갖 무공을 다 보고 연구했지만, 투심장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다.

그가 기억해야 할 만큼 고강한 무공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

등왕패는 전태수와 창가에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

최근 들어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을 돕는 자가 바로 패천단주 전태수였다.

“오늘만 지나면 끝이군.”

등왕패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산 너머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전태수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꾸했다.

“지금쯤 똥줄이 바짝 타들어가겠지요. 후후. 감찰대로서의 기분을 누리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요.”

“그렇군. 내일이면….”

“당주님께서는 오늘 밤 푹 주무십시오. 내일 해가 뜨면 다른 세상이 열려 있을 겁니다.”

“하긴. 전 단주가 직접 손을 써 뒀다니 안심일세.”

“앞으로도 맡겨만 주십시오. 곤란한 일은 모두 제가 도맡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 단주도 참 괜찮은 사람이야.”

“감사합니다, 당주님.”

전태수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등왕패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가 창밖으로 시선을 두며 물었다.

“맹주님의 기력이 날로 쇠해지니 걱정일세. 자고로 집안이 안정되려면 기둥이 튼튼해야 하는 법인데.”

“꾸준히 탕약을 복용하고 계시지만 좀처럼 예전의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허어, 세월이 참 무상하이. 그렇게 강건하시던 분이.”

“세월로 낡은 기둥이야 새것으로 다시 떠받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자네도 참. 말은 쉽게 하는구먼.”

등왕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수하 한 명이 등왕패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감찰대가 시체를 찾아냈습니다.”

“호오? 그래서 어디로 향했나?”

“통문각으로 향했습니다.”

등왕패는 물론 전태수의 표정에도 의외라는 빛이 살짝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생각보다 통찰력은 있는 모양이군.”

전태수가 말을 받았다.

“그래봐야 이제 문지방 하나를 겨우 넘은 겁니다. 본론은 이제부터지요.”

“그래도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될 걸세. 물론, 준비는 잘 해두었으리라 믿네.”

“걱정 마십시오. 그쪽에서는 최고를 다투는 자들입니다.”

“후후후. 감찰대로 넣을 자들은 선정해 두었는가?”

“물론입니다.”

“잘 했네.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아무렴요.”

전태수가 씨익 웃으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차가 달았다.

**

통문각.

정도맹의 외원에 입점하는 모든 건물들뿐만 아니라, 외원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에 한해서 인허가를 내려 주는 기관이다.

즉, 외원 내에서 장사를 한다거나, 건물을 확장하거나, 행사를 여는 등의 경우 전부 통문각을 통해 심사를 받아야만 한다.

때문에 정도맹 외원에서는 영향력이 제법 큰 조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건물 자체도 장엄한 편이었는데, 절벽 바로 아래에 지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우선 통문각 정문을 통해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절벽 아래의 안뜰이 나타난다.

이곳을 ‘하원(下園)’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하원을 지나 절벽 안쪽으로 만든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다시 또 너른 터가 나타나는데, ‘상원(上園)’이라고 부른다.

통문각주 양지강은 상원에 지어진 각주전에 머물렀다.

사비강을 비롯한 생도들은 통문각 정문 앞에 멈춰 서서 높다란 곳에 지어진 각주전을 올려다보았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다. 사정을 두지 말고 확실하게 제압하도록. 마음껏 설쳐라.”

“알겠습니다!”

생도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정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침 수문 무사 두 명이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이오?”

그러자 곡보옥이 불쑥 나서며 소리쳤다.

“감찰대요. 공금 횡령 및 고아 살해 용의자인 통문각주 양지강을 검거하러 왔소.”

수문 무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각주님은 지금 안 계시오. 다음에 다시 찾아 주시오.”

“지금 당장 비키지 않으면 무력을 써서라도 들어가겠소.”

그러자 정문 안쪽에서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나?”

수문 무사 두 명이 얼른 옆으로 물러났다.

마침 정문이 열리면서 덩치가 집채만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정문 꼭대기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키가 큰 사내는 웬만한 성인의 세 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덩치였다.

그 압도적인 외모에 생도들이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뭐야? 이 조무래기들은.”

생도들을 훑어본 그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