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38화 (138/670)

# 138

귀환 마교관

138화

이제는 다수의 생도들이 사비강을 존경하고 따랐다.

하지만 생도들 사이에서 불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최근 들어 몇몇 생도들은 사비강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은근히 서운함을 드러내곤 했다.

염자량이나 연우경, 목단화 등이 그랬다.

이유는 한 가지.

단리정이나 조문탁, 곡보옥에게는 신병이기를 선물했다.

한데 그들은 뛰어난 무공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어떠한 신병이기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염자량 같은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교관님, 저도 신병이기 받고 싶습니다! 왜 저는 안 줍니까?”

“너만 안 준 게 아니다. 아직 안 준 녀석 많다.”

“아직… 이라는 말씀은 앞으로 주긴 주신다는 겁니까?”

“이 자식아, 맡겨 놨냐?”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염자량은 혼자 싱글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 법이라더니, 제자는 스승을 닮는 법인가?

‘어디서 그런 능청스러움을 배운 건지….’

염자량과의 대화를 떠올렸던 사비강은 피식 웃어 버리고는 승무각 곳곳을 살폈다.

능운파를 비롯한 맹의 수뇌 인사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들 중 절반은 맹주와 마찬가지로 별 생각이 없었고, 나머지 절반은 사비강이 혹여나 신병이기를 고를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비강은 일부러 그들을 더욱 약 올렸다.

“오오, 이건 정말 대단해 보이는군요.”

능운파는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어 보였고, 등왕패를 비롯한 몇몇 무인들은 눈에 잔뜩 힘을 주고는 노려보았다.

사비강이 집어 든 것은 명백한 보도였다.

손잡이에 붉은 수실이 달린 그 보도의 이름은 적룡패도(赤龍覇刀).

칼 자체에 양기의 속성이 있어, 극양의 무공을 익힌 자가 쥐면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라 할 수 있었다.

후웅! 후우웅!

사비강이 적룡패도를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자 세찬 파공음이 일어났다.

마침 그 칼이 무심코 뒤에 선 사람들에게 향하자, 몇몇 무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어허! 거참, 조심 좀 하시오!”

“위, 위험하잖소?”

사비강이 미안한 듯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그만….”

반면 능운파는 그저 웃음을 띤 채 물었다.

“그걸로 하시겠소?”

“흐음….”

사비강이 일부러 시간을 끌며 고민하는 척했다.

그만큼 등왕패를 비롯한 무인들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곧 사비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긴 하지만, 별로 멋이 없군요. 다른 걸로 하지요.”

그제야 등왕패를 비롯한 무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다가는 명도 하나가 멍청한 녀석 손에 넘어갈 뻔했다고 위안하면서.

‘멍청한 놈. 겉으로만 화려한 검은 저자거리에서 얼마든지 굴러다니지. 하지만 명검이나 명도일수록 수수한 법이라는 걸 모르는군.’

등왕패는 내심 비웃으며 사비강의 뒤를 따랐다.

그 후로도 사비강은 몇 차례 명검과 보도를 손에 쥐고 휘둘러대는 바람에 등왕패 쪽 무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 삼 층까지 올라갔을 때였다.

일 층이나 이 층과 달리 삼 층은 비교적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다.

진열장에 쌓인 도검 역시 일이 층과 달리 아무렇게나 던져진 느낌이랄까?

실제로 삼 층은 일이 층에 비해 삼류 병기들로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사비강은 일이 층보다 더욱 꼼꼼하게 삼 층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사비강의 시선이 향한 곳은 삼 층의 구석진 진열장.

그곳에 세로로 세워진 칼 한 자루가 있었다.

길이가 오 척은 족히 넘을 법한 대도(大刀)였다.

허리춤에 패용했다가는 바닥에 칼끝이 질질 끌릴 정도.

‘여기에 있었군. 다크블레이드(Dark blade).’

사비강이 다크블레이드를 손에 쥐고는 들어 올렸다.

정도맹 인사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만, 이 칼은 마계에서 넘어온 것이었다.

누가 어떤 경로로 이 칼을 주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크블레이드는 승무각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도 깨진 결계에서 예전에 누군가 주운 것이리라.

도신은 전체적으로 까맣게 물들어 있어서 조금 특이했다.

하지만 워낙 큰데다가 특별한 장점이 보이지 않아 승무각 삼 층에 보관되어 왔다.

전의 생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비강은 바로 이 다크블레이드를 얻기 위해 승무각에서 무기를 고르겠다고 한 것.

‘단순하게 보면 무식하게 크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칼이지만….’

우우웅.

순간 아주 미약한 진동이 사비강의 손을 타고 전해졌다.

굉장히 미약했기에 뒤에서 지켜보는 자들은 누구도 눈치 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마나를 불어넣으면 그 효과가 훨씬 좋아지지.’

즉 마검사를 위한 칼이다.

사비강이 다크블레이드를 쥐고 한참이나 보고 있자, 등왕패는 내심 조소를 지었다.

‘크크. 멍청한 녀석. 결국 겉보기에 크고 화려한 칼을 선택할 모양이군. 별 볼 일 없는 칼을 가져가려고 승무각까지 들먹이다니. 한심한 놈. 어서 그 쓰레기를 들고 꺼져라.’

마침 사비강이 몸을 돌리더니 능운파에게 말했다.

“이게 마음에 드는군요.”

“흐음. 정말 그걸로 괜찮겠소?”

능운파가 안타까운 마음에 재차 물었다.

몇몇 무인들은 능운파처럼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등왕패를 비롯한 다른 무인들은 내심 조소를 짓고 있었다.

사비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예, 이게 마음에 듭니다.”

“잘 생각해서 말해 주시오. 이 승무각을 나서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결정을 바꿔도 좋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전 이게 아주 마음에 듭니다.”

능운파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사 교관의 뜻이 그렇다면.”

**

그날 밤, 정도맹 내원에서는 연회가 열렸다.

물론, 연회의 주인공은 사비강이었다.

술자리가 깊어지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사비강을 칭송했다.

물론, 등왕패를 비롯한 몇몇 무인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달갑지 않았지만.

그렇게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였다.

능운파가 사비강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번에 사 교관의 활약으로 본 맹의 위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소. 해서 말인데, 사 교관은 혈사련과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은근히 사비강과 맹주에게 향해 있었던 터라 술렁임이 곧 잦아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비강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피해가 꽤 심각합니다. 서로가 덕 볼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전쟁은 길어지고, 강호는 양분되어 서로에 대한 원망은 깊어지겠지요. 그런 만큼 피해도 커질 겁니다.”

“하면?”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자 등왕패가 발끈했다.

“그럼, 혈사련을 인정하자는 거요?”

“그렇습니다.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때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패악질을 그냥 넘어가자는 거요? 게다가 이번에 본 맹의 핵심 인사들을 포로로 끌고 가려고 한 건 어떻고?”

“뭐, 그럼 계속 싸우다가 지난번처럼 포로로 끌려가서 죽던가.”

사비강이 귀를 후비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매설란이 이마를 짚었다.

‘또 저 버릇이 나와 버렸네. 사람 약 올리는 버릇….’

아니나 다를까 등왕패가 약이 바짝 올라서 소리쳤다.

“뭣이! 그걸 지금…!”

“자자, 좋은 날, 좋은 자리니까 차분하게 대화를 해봅시다.”

능운파가 끼어들며 제지했다.

등왕패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지만,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이 있어 별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능운파가 사비강에게 물었다.

“하지만 혈사련은 현재 성장세가 아니겠소? 그런 상황에서 과연 그들이 본 맹과 대화를 하려고 하겠소?”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째서?”

“지금 현재 악천괴가 죽었고, 이대로 구 군사님이 세운 작전을 바탕으로 몇몇 주요 분타를 궤멸시킨다면, 혈사련도 협상 자리에 나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군사에게 향했다.

구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세운 작전…? 도대체 언제까지 날 놀라게 할 생각이오?’

사비강은 말없이 의미심장한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

능운파가 그게 사실이냐는 듯 구윤을 돌아보았다.

이쯤 되자 구윤도 체념한 듯 대답했다.

“예, 사 교관의 말대로입니다. 제가 세운… 작전대로라면… 가능… 합니다.”

“과연. 그렇다면 해볼 만한 방법이군. 어쨌든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피해는 없어야 할 거네.”

“노력하겠습니다.”

대략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술자리는 다시 이어졌다.

그러던 중 패천단주(覇天團主) 전태수(全太水)가 안마당 복판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는 등왕패의 측근 중 한 명이었다.

“분위기 좋은 이 자리에서 제가 흥을 좀 더 돋우고자 합니다. 오늘 사비강 교관께서는 승무각에 들러 명도를 고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소.”

“하여, 나와 함께 칼 겨루기를 통해 그 명도를 한 번 시험해 보심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등왕패 측 사람들이 너도나도 찬성했다.

“오오, 그거 진귀한 모습이겠군!”

“사비강 교관께서는 대단한 명도를 구하셨으니, 이 기회에 그 위력 자랑 좀 해주시오!”

“아주 좋은 생각이오!”

등왕패가 내심 비소를 지었다.

그 역시 전태수의 속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칼 겨루기란, 두 개의 칼을 서로 부딪치게 해서 그 단단함과 예리함을 파악하는 방식이었다.

전태수가 사용하는 도는 벽수풍파도(碧水風波刀).

강철도 무를 썰 듯 잘라내는 보도 중의 보도였다.

한데 사비강이 멋있다며 고른 것은 이름도 없는 칼.

그런 것이 벽수풍파도를 상대로 버틸 재간이 없을 터였다.

즉 이 자리에서 전태수는 사비강이 고른 칼을 아예 절단을 낼 심산이었다.

그리 되면 사비강은 보도를 얻어 가기는커녕,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사지 않겠는가?

맹주 측 무인들은 사비강이 전태수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기를 내심 바랐다.

굳이 비웃음을 살 이유는 없었기에.

하지만 사비강은 그러한 바람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날 배려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 저 역시 영광입니다. 사비강 교관께서는 훌륭한 무공을 익히신 만큼 그 안목도 대단할 거라 봅니다. 오늘 고른 그 칼도 필시 엄청난 것이겠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사비강이 망설임 없이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보다 못한 능운파가 넌지시 말려도 보았다.

“사 교관. 보도는 굳이 시험하지 않아도 좋지 않겠소?”

“아닙니다. 저 역시 이 칼을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던 참이었습니다.”

결국 능운파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침내 안뜰에서 나란히 마주선 두 사람.

전태수가 내심 코웃음을 쳤다.

‘훗. 어디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 좀 당해 봐라.’

그가 씨익 웃었다.

“선공하시지요. 내가 먼저 막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멍청한 녀석. 좋아하기는….’

전태수가 속으로 비웃으며 힘주어 도를 잡았다.

사비강이 저벅저벅 다가가더니 다크블레이드를 치켜 올렸다.

다음 순간.

슈커억!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휙 젓기만 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 벌어진 현상은 놀라웠다.

전태수는 물론,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척 벌렸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믿을 수 없었기에.

벽수풍파도가 두부 썰리듯 단숨에 잘려 나간 것이 아닌가.

휘리리릭!

팍!

잘려 나간 벽수풍파도의 파편이 등왕패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서는 벽에 처박혀 부르르 떨었다.

“이, 이게… 어떻게… 가능…?”

전태수가 멍하니 잘려 나간 벽수풍파도를 보았다.

사비강이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와아! 역시 좋은 칼이군!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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