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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37화 (137/670)

# 137

귀환 마교관

137화

맹주전의 천장은 과장 좀 보태서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았다.

그 높은 천장을 굵은 나무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마치 마계의 궁전이 연상될 정도로 장엄했다.

맹주전 좌우측에는 맹의 핵심 요인들이 대열을 갖춰 서 있었고, 붉은 융단 끝에는 성인 키 정도 되는 단상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단상 위에 마련된 태사의에 정도맹주 능운파(凌雲婆)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맹주 바로 곁에는 총군사 구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사비강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태사의 좌우에는 호법 두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시립해 있었고, 그 외에도 열다섯 명의 호신위들이 단상을 에워싸듯 서 있었다.

‘이거야 마치 궁에 입궐한 기분이군.’

물론, 사비강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모두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태사의를 중심으로 오른편에 선 자들은 대체로 사비강을 바라보는 눈빛이 냉랭했다.

바로 등왕패를 비롯한 그 측근들이었다.

사비강은 그런 자들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맹주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이때부터도 몸이 좋지 않았군.’

그는 한눈에 맹주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아챘다.

물론, 그건 다른 사람들이 파악하기 힘들만큼 미묘한 차이였다.

아마 이곳에서도 등왕패를 비록한 몇몇 고수들만이 그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으리라.

사비강과 당이협, 매설란이 걸음을 멈추자 능운파가 부드럽게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사비강 교관. 이번에 본 맹을 위기에서 구해 주어 맹을 대표해… 아니, 강호인들을 대표해 감사드리는 바요. 내 특별히 교관께 사례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초청했소.”

사비강이 포권을 취하며 대꾸했다.

“별 말씀을요.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허허허. 하지만 생도들을 이끄는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자신은 있었습니다.”

거침없는 대답에 능운파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소문대로 재미있는 분이시구려.”

“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물론이오. 사 교관께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그 상황에서 발 벗고 나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요.”

“과찬이십니다. 사실 지린내까지 풍기며 갇혀 있는 석 단주님을 뵙는 순간, 반드시 구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거기에 갇혀 오줌까지 지렸을까?’ 하고 생각하면 눈물이….”

사비강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석지평에게 향했다.

석지평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저놈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가 나설 수는 없었다.

능운파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한데 그곳에는 관외 수업을 위해 우연히 갔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오?”

“아닙니다. 사실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호오?”

능운파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뿐만 아니라 당이협과 매설란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비강이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돌발 발언을 쏟아냈다.

“구 군사께서 지시하셔서 갔습니다.”

순간 지켜만 보던 구윤이 깜짝 놀랐다.

‘내, 내가…?’

뜻밖의 대답에 구윤이 눈에 힘을 주고는 사비강을 쳐다보았다.

사비강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맹주인 능운파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구윤에게 향했다.

능운파가 다시 사비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예, 구 군사께서는 일전에 저를 찾아와 쥐몰이 작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전의 결점을 얘기하시면서 저에게 특별히 부탁을 하셨지요.”

그러자 듣고만 있던 등왕패가 발끈해서 끼어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비강이 등왕패를 보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입니다만? 설마하니 정말로 제가 그곳에 우연히 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하필 그 시간대를 맞춰서. 마침 누군가 재미삼아 쌓아 올린 바위 더미가 있어서 그걸로 길목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뭐, 그런 공상을 하신 건 아니시리라 생각합니다.”

등왕패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매를 파르르 떨었다.

사비강의 말대로 그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잘 계획된 것 같았으므로.

마침내 능운파의 시선이 구윤에게 향했다.

“군사, 그게 정말이오? 그대가 사 교관을 그곳으로 보낸 거요?”

총군사 구윤이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이내 구윤의 표정에 모종의 결단이 떠올랐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예, 사실입니다. 모두 제가 지시했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실내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능운파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하면 어째서 쥐몰이 작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미리 하지 않았소?”

“아닙니다. 일찌감치 그 작전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했습니다.”

“한데?”

“그 작전에 대해 총책임자나 다름없으셨던 등 당주님은 고심을 하시다가 결국 계획대로 작전을 실행하기로 하셨습니다. 쥐몰이 작전에 대해 깊은 확신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반은 진실이지만, 반은 거짓말이다.

등왕패는 한 치의 고심도 없이 구윤의 주장을 묵살해 버렸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등왕패를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었다.

때문에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등왕패는 점점 흙 씹은 표정으로 변해 갔다.

몇몇 무인들은 미묘하게 변하는 분위기를 읽어 내고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등왕패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구윤을 노려보며 물었다.

“한데 어째서 군사께서는 본 맹의 무인들로 구출대를 구성하지 않고 용천관 교관에게 그런 부탁을 했소?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구윤은 살짝 당황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비강이 얼른 나서며 답했다.

“거기에는 구 군사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깊은 뜻?”

“그렇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현재 혈사련의 모든 이목이 정도맹을 향했고, 만약 정도맹에서 구출대를 구성해서 준비하게 되면 혈사련이 반드시 알아차릴 것이라 하셨습니다. 해서, 혈사련 쪽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한 용천관으로 친히 찾아오셔서 제게 부탁을 하신 거지요.”

사비강의 막힘없는 대답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등왕패가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을 대비해 그런 계획 정도는 있다고 알려 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 역시 군사님의 배려였습니다.”

“배려?”

“그렇습니다. 구출대 구성은 어디까지나 쥐몰이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지요. 한데 시작도 하지 않은 전투를 미리 실패할 것이라 여기고 대비책을 세운다면 참전 무인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 여기신 겁니다.”

좌중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부분 군사의 깊은 생각에 감탄하는 내용이었다.

등왕패의 표정은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왠지 사비강에게 말려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구윤 역시 사비강의 신속한 대처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 속을 답답하게 하던 때와 달리, 이럴 때는 청산유수로구나. 정말 저 교관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군.’

사비강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구윤에 대한 칭찬을 이어 갔다.

“저는 사실 이번 임무를 통해 구 군사님의 심계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군사님은 혈사련이 호작곡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는 어떤 경로로 포로들을 이송할 것인지, 마치 꿰뚫어 본 것처럼 저에게 세세한 장소를 알려 주셨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군사님께서 말씀하신 협곡을 지나갔고, 저를 비롯한 생도들은 어렵지 않게 그들을 습격할 수 있었지요.”

이쯤 되자 사람들은 구윤을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시군.”

“그러게 말이야. 앉아서 천리를 본다더니,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구먼.”

뿐만 아니라 능운파 역시 구윤을 다시 보며 감탄했다.

“내 군사가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이처럼 세심할 줄은 미처 몰랐군. 정말 잘했네.”

“과찬이십니다.”

능운파는 부드럽게 웃음 짓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군사의 심계가 탁월했다고는 하나, 그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생도들과 함께 구출 임무에 임해 준 사비강 교관께 깊이 감사드리는 바요. 한창 무공을 수련할 생도들임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서도 그토록 침착하게 임무를 해냈다는 것은 모두 사 교관의 지도력이 우수하기 때문 아니겠소?”

“과찬이십니다. 모두 구 군사님 덕분이지요.”

“허허허. 공을 세운 자들이 서로에게 업적을 미루니 참으로 훈훈한 광경이오. 그러나 사비강 교관이 맹의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니 그대에게 감사패를 드리겠소.”

“영광입니다.”

사비강이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곧 무인 한 명이 사비강에게 다가와 청옥으로 세공된 감사패를 건네주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능운파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부상도 준비하려고 했으나,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오. 혹시 부상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시오.”

사비강이 잠시 뜸을 들이는 척하며 말했다.

“음… 사실 한 가지 있긴 있습니다만.”

“호오? 그게 무엇이요?”

“승무각(昇武閣)에서 무기를 하나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승무각은 정도맹의 병기고였다.

그곳에는 중원의 온갖 병기가 보관되어 있었는데, 저자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잡기부터 시작해서 평생 구경도 하기 힘든 신병이기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뜻밖의 요구에 능운파가 되물었다.

“승무각에서?”

“예, 그곳을 둘러보고 제가 원하는 놈으로 하나 가져가고 싶습니다.”

사비강이 당당하게 말하자, 등왕패가 불쑥 나섰다.

“아니 될 말입니다. 맹의 인사도 아닌 자가 승무각에서 제 마음대로 무기를 고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맹의 인사도 아닌 자가 포로들을 구하지 않았소? 그것도 등 당주가 아끼는 맹의 요인들을 말이오.”

말에 뼈가 있었다.

등왕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웬만하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맹주였다.

한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반박을 해왔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더 이상 나서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었다.

결국 등왕패가 물러났다.

“맹주님 뜻대로 하시지요. 단, 사비강 교관이 무기를 고를 때 어떠한 첨언도 하지 않는 조건이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어째서?”

“무기는 주인을 알아보는 법. 그가 좋은 병기를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그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사비강이 나서며 대답했다.

“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

승무각의 규모는 용천관의 병기고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예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지만, 다시 봐도 정말 크군.’

사비강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아무렇게나 쌓아 둔 잡기부터 시작해서, 진열장에 그럴싸하게 보관되어 있거나 관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도 있었다.

삼 층 규모의 승무각은 위층에서도 아래층이 내려다보이도록 입 구(口)자 형태로 지어져 있었다.

“와아, 정말 대단하군요. 이렇게 많은 병장기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사비강이 들뜬 아이처럼 소리치자, 뒤에 서 있던 능운파가 껄껄 웃었다.

반면 등왕패를 비롯한 몇몇 무인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사비강을 노려볼 뿐이었다.

‘놈, 어서 잡기 하나 골라서 꺼져라.’

등왕패는 혹여나 사비강이 신병이기를 고를까 봐 내심 조마조마했다.

자기 물건도 아니지만, 괜히 저런 녀석에게 신병이기가 유출되는 건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그럼,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사비강이 싱글벙글 웃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마치 찾는 물건이라도 있는 듯,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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