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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36화 (136/670)

# 136

귀환 마교관

136화

숲속에 위치한 사당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낡은 모습이었다.

비스듬히 열린 사당의 문짝은 바람결에 따라 삐걱거리며 듣기 싫은 마찰음을 연신 내질렀다.

잠시 후, 사당 앞으로 한 사내가 소리 없이 내려섰다.

그는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더니 한쪽 구석으로 가서 벽면을 발끝으로 툭 걷어찼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닥이 미끄러지면서 열리더니 그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사내는 익숙한 듯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군데군데 야명주가 박힌 어두컴컴한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지하 통로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마침 그가 어느 철문 앞에 멈춰 서더니, 누군가에게 보고했다.

“흑오조장(黑烏組長) 일오(一烏)입니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저절로 철커덩,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일오가 안으로 들어서자 음침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가 보였다.

전신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살기.

검은 기운이 연신 사내 주위로 넘실거렸다.

이따금씩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 때문에 일오조차도 숨을 잠시 멈추곤 했다.

바로 살막의 막주, 무살(無殺)이었다.

그를 찾은 일오는 흑오조의 조장으로, ‘흑오조’란 살수들의 사후 처리조를 부르는 말이었다.

일오가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암살은 실패했습니다. 특급 살수 세 명과 일급 살수 세 명이 모두 당했습니다.”

막주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살막의 살수들은 세 단계로 나뉜다.

특급 살수와 일급 살수, 그리고 이급 살수.

일살에서 십살까지가 특급 살수다.

특급 살수 두 명 이상이 모이면 초절정 고수를 암살할 수 있다.

정면 대결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은 평생을 암살 연구만 해온 자들이므로.

그리고 십일살부터 이십살까지 배정된 일급 살수는 네 명 이상 모였을 때 초절정 고수를 죽일 수 있다.

표적이 일류 고수 정도라면, 이급 살수 혼자서도 죽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사비강 한 명을 암살하는데 특급 살수 세 명과 일급 살수 세 명을 보냈다.

그만큼 신경을 쓴 셈이다.

그런데 전멸이라니.

일오가 말을 붙였다.

“구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얼음에 갇힌 채 죽었습니다. 구살은 강 하류에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얼음?”

“예, 아무래도 제공 받은 정보가 잘못된 듯합니다. 사비강이 극양의 무공만을 익힌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막주가 어금니를 꾹 씹었다.

아까보다 더욱 강한 살기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때문에 바로 앞에 서 있는 일오는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일살은?”

“현재 임무에 나가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호출을….”

“아니, 됐다.”

막주가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났다.

그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지목하는 특급 살수 세 명과 일급 살수 여섯 명을 대기시켜라. 내가 직접 나서겠다.”

일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말은 막주를 포함해 특급 살수 네 명과 일급 살수 여섯 명.

즉 총 열 명의 살수들이 사비강 하나를 암살하기 위해 투입될 것이라는 뜻.

지금까지 살막이 의뢰를 맡은 이래로 가장 큰 규모였다.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래향이 얼른 돌아서며 대답했다.

“들어와요.”

곧 문이 열리면서 환살단주 요신이 실내로 들어섰다.

그의 안색을 살피던 서래향이 초조한 심정으로 물었다.

“소식은?”

요신은 그녀가 무엇에 대해 묻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살막에 의뢰한 건에 대한 결과를 묻는 것이리라.

벌써부터 소식을 기다리던 그녀였다.

요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좋지 않은 소식이 네 가지입니다.”

“넷씩이나?”

서래향이 미간을 곱게 찡그렸다.

그녀가 생각할 틈도 없이 다그치듯 물었다.

“첫째는?”

“살막이 일차 암살 시도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런…! 방심을 한 모양이군!”

“그건 아닌 듯합니다. 처음부터 특급 살수 세 명과 일급 살수 세 명을 투입했습니다.”

서래향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녀도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대충은 알고 있었기에.

총 여섯 명의 살수를 투입했다는 것은 살막으로서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뜻이다.

한데도 실패라니…!

도대체 ‘사비강’은 어떤 자이기에?

“두 번째 안 좋은 소식은?”

“살막에서 이십만 냥을 더 요구해 왔습니다. 물론, 마무리했을 때도 같은 액수를 추가로 요구했습니다.”

“엉터리! 암살 실패에 대한 손실을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정보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책임입니다.”

“정보가?”

“예, 사비강이 극양의 신공만 익힌 게 아닌 모양입니다.”

“말도 안 돼!”

“수중전을 펼쳤는데 살수들이 대부분 얼음에 갇혀 사망했다고 합니다. 마치 북해빙궁의 무공을 사용한 것과 흡사하다고 하더군요.”

서래향은 입을 척 벌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해빙궁이라니….

분명 자신의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사비강은 극양의 무공을 사용했다.

한데 북해빙궁?

그야말로 극음의 무공이 아닌가?

한 사람의 무공이 음양의 양극에 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비강… 그 남자, 도대체 뭐야?’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완벽하게 틀린 정보를 제공한 셈이니 그들이 더 무리한 요구를 해오더라도 할 말이 없다.

이십만 냥이라….

완수금까지 추가하면 총 백만 냥을 내야 한다는 소리다.

그야말로 역대급 비용이다.

물론 이미 실행에 들어간 이상, 살막은 끝까지 시도할 것이다.

단, 그들의 합당한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추후 의뢰자를 암살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일단 또 다른 소식은?”

“악천괴가 죽었습니다.”

“악 당주가?”

“예, 호작곡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포로들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매복 기습을 당해 사망했습니다.”

악천괴가 죽었다는 건 그리 나쁜 소식이 아니지만, 혈사련의 세가 그만큼 위축된다는 것이 나쁜 소식이다.

“그 영감이 정말 죽다니….”

실감이 가지 않았다.

“누가 그를 죽인 거죠? 기습한 사람이 누구죠?”

“그게 안 좋은 소식 네 번째입니다.”

“……?”

“사비강입니다.”

“사비강…!”

“예, 그자가 생도들을 이끌고 협곡에서 기습을 했습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또 사비강이라니!

‘도대체 이 남자 정체가 뭐야?’

이 보고가 전부 사실이라면, 사비강은 단숨에 강호의 유명인사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껏 그가 정도맹도 모르게 물밑에서 움직여 왔다면, 드디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그를 죽여야 한다.

이럴 때 그럴 죽여야 확실한 공이 세워지리라.

답은 나왔다.

서래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이 요구한 이십만 냥. 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

강호가 시끌벅적했다.

깜짝 놀랄 만한 두 가지 소식이 있었다.

첫째는 정도맹과 혈사련이 작심하고 부딪친 전투에서 정파가 참패를 면치 못했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이사흠을 비롯한 당주와 단주들이 대거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은 강호 무인들 사이에서는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정도맹의 작전명은 ‘쥐몰이’였다.

실패한 쥐몰이 작전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주루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안주거리였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안주거리가 자연스레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혈사련의 포로가 된 정도맹 핵심 요인들을 용천관의 교관과 생도들이 구해냈다는 소문이었다.

쥐몰이 작전의 실패에 대해서 반 시진을 떠든다면, 바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서는 반나절을 지치지 않고 떠들 정도였다.

그만큼 놀라운 이야기였다.

게다가 바닥으로 실추할 뻔했던 정파의 위신을 겨우 바로 세운 셈이니, 사람들은 용천관 교관과 생도들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 그 뿐이랴.

“글쎄, ‘사비강’이라는 그 교관이 정도맹의 수뇌 인사들을 구출한 것도 모자라서 혈사련의 주작당주인 악천괴를 죽여 버렸다는군!”

“악천괴라면 우리 정파의 입장에서는 가장 골칫거리가 아니었나?”

“그렇지! 무공도 고강한데다 굉장히 악랄하고 잔혹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지!”

“내가 듣기로는 이번 정사대전에서 주축이라고 해도 될 만큼 위협적인 자라고 했어.”

“그런 자를 죽여 버렸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주루나 다루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입이 부르트도록 사비강을 칭송했다.

명문 정파들 사이에서도 단숨에 유명해진 사비강은 이번 정사대전의 핵심 인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일전에 혈사련의 비밀 분타를 궤멸시킨 것도 바로 사비강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그가 단순히 운으로만 이 같은 업적을 남긴 게 아니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도맹 본단에서는 사비강을 정식으로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이번에 정도맹 요인들이 그대로 포로가 되었더라면, 정도맹은 그야말로 강호에서 큰 위기를 맞을 뻔했다.

그런 암울한 상황을 막아 준 은인으로서, 또 적의 수장을 죽여 버린 공로를 치하해 주기 위해 사비강을 초청한 것이었다.

물론 사비강과 함께 있었던 당이협과 매설란도 함께.

“이야, 으리으리하군! 여기에 비하면 용천관 건물들은 코딱지처럼 보일 지경이야.”

정도맹 외원으로 들어선 사비강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떠들어댔다.

물론 그는 지난 생에 한 번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인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와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매설란이 사비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좀… 이럴 땐 근엄한 척이라도 할 수 없어요?”

“음? 왜? 내가 부끄러워?”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설란도 이런 광경을 자주 보진 않았을 텐데, 이협도 그렇지?”

“예, 정말 넓고 화려하군요.”

당이협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사비강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감탄을 연발했다.

세 사람을 안내하는 무인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외원에서 내원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사비강이 안뜰에 마련된 분수대를 보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오오, 저건 분수로군! 이렇게 커다란 분수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마계에서는 광장 복판에 분수대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중원에서도 그 비슷한 광경을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전의 생에 그가 이곳에 왔을 때는 정도맹 본단 일부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기에 미처 보지 못했던 광경이기도 했다.

안내하던 무인이 자부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강호에서 기관 진식에 관한 지식이 가장 해박한 분이 직접 설계하신 겁니다. 물이 위로 솟구치면 저기 놓여있는 커다란 석구(石球)를 굴리게 되지요.”

“과연. 그런데 그 해박한 지식으로 고작 분수대를 만드는데 쓰는 건 좀 아쉽군.”

정곡을 찌르는 말에 안내하던 무인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당이협은 소리 없이 피식 웃었고, 매설란은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정도맹 본단은 정말이지 넓었다.

마음먹고 세세히 구경한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 정도로 복잡하고 넓었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적의 침습을 대비해서 일부러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기에 사비강도 거기에 토를 달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내원을 지나 맹주전으로 들어가자 웅장한 실내가 눈에 확 들어왔다.

거기에는 정도맹 핵심 인사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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