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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30화 (130/670)

# 130

귀환 마교관

130화

한눈에 보기에도 능소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얬다.

사비강이 손을 불쑥 뻗자, 조금 전 매설란이 벗어던진 장삼이 그의 손으로 휙 날아들어 왔다.

그가 장삼을 둘둘 말아 능소소의 목 뒤에 받쳤다.

그런 다음.

“후웁!”

능소소의 코를 막더니 다짜고짜 입술을 가져가 포개는 것이 아닌가?

우르르 모여서 지켜보던 생도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시는 거야?”

“글, 글쎄…?”

“왜 갑자기 입을 맞추는….”

어리둥절하기는 당이협과 매설란도 마찬가지였다.

매설란이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유가 있을 거야.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변태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다음 순간, 매설란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입을 맞춘 사비강이 이번에는 능소소의 가슴을 꾹꾹 눌러대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변태 성향이 있다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입을 맞추고 가슴을 만지다니!

세상에 이런 망측한 추태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비강은 대답 대신 연신 가슴을 압박하느라 바빴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그가 다시 입을 맞추려고 하자,

“이것 봐요! 지금 위독한 아이를 상대로 무슨 짓을…!”

“조용히 해. 이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사비강이 전에 없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매설란이 움찔거리고는 물러났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 역시 사비강의 표정이 여느 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뭘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능소소의 입에 숨을 불어넣은 사비강이 다시 가슴을 압박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그리고 다시 입으로 숨을 불어넣기.

중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입장에선 언뜻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마침내.

“크헉! 콜록! 헉, 헉!”

능소소가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발작을 일으키듯 기침을 해댔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사비강과 능소소를 번갈아 보았다.

그제야 사비강은 바닥에 벌러덩 드러눕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살수들을 상대하면서 필요 이상의 마나를 소진했다.

살막에게 자신을 확실히 각인시켜주기 위해서였다.

그 바람에 남은 기력이 별로 없는데다 초조한 심정까지 더해졌더니 몸이 지칠 수밖에.

“괜찮… 아요?”

매설란이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사비강이 피식 웃고는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인공호흡이라는 거야. 마계에서 익힌 응급처치 방법이지. 입으로 숨을 불어넣고 가슴을 압박하는 것.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기에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지.”

매설란은 괜히 오해한 것이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다.

“몰, 몰랐어요.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서. 오해해서 미안해요.”

“뭐,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처음 봤을 때는 황당했으니까. 이협, 소소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줘.”

“알겠습니다.”

당이협이 얼른 능소소를 데리고 갔다.

다른 생도들 역시 당이협과 능소소를 따라서 자리를 이동했다.

사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매설란이 다가오며 물었다.

“뭐였어요?”

습격한 자들의 정체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사비강의 시선이 강 쪽으로 향했다.

“살막.”

“예?”

매설란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살막이 어딘가?

한 번 찍히면 차라리 자결해 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이 떠도는 그곳 아닌가?

매설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살, 살막에서 왜 소소를…!”

“아니, 내가 목적이야.”

“소소가 아니라?”

“날 노리려고 소소를 인질로 잡은 거지. 이제 인질이 통하지 않는 걸 알았으니 그런 지저분한 수는 쓰지 않겠지만.”

“잠깐만요. 그럼 살막에서 정말 당신을 노리는 거라면….”

“앞으로 또 나타날 거야. 놈들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언제까지….”

매설란이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알잖아? 그놈들 내가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걸?”

“맙소사.”

매설란이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가 무심코 얼어붙은 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늘 습격한 자들은 모두 사비강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살막은 그럴수록 더욱 치밀하게 작전을 세워서 다시 암습을 가해 오리라.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지?’

위로를 해야 하나?

함께 분노를 해야 하나?

힘내라고 격려를?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도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게 가장 큰 문제처럼 느껴졌다.

한데 불과 강을 건너는 사이 더 큰 문제가 나타나 버렸다.

‘정말 이런 남자랑 결혼이라도 했다간 제명에 못 살 거야.’

무심히 떠올린 생각에 스스로 놀라서 흠칫거렸다.

‘나도 참… 무슨 생각을!’

괜히 혼자 당황하는데.

“차라리 잘 된 거지. 생각보다 조금 일찍 찾아오긴 했지만.”

사비강이 불쑥 내뱉은 말에 매설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았다.

무슨 말이냐고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한 번쯤은 부딪쳐 보고 싶은 조직이었으니까.”

“한 번쯤이라니…. 그 한 번이 평생의 족쇄처럼 따라다니게 생겼는데.”

“그렇게 지겹지 않도록 정리해야겠지.”

“뭐든지 자신만만하군요.”

“크크크. 각박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그 정도 자신감은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

매설란은 그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말았다.

알면 알수록 모를 사람이다.

누구나 끔찍하게 여기는 조직에서 노리는데도 오히려 히죽거리고 있다니.

사비강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저만치 얼어붙은 강바닥을 보았다.

살막.

그들은 마계가 침공할 때조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조직이다.

그들은 중원의 강호인들이 전멸을 각오한 상황 속에서도 오로지 살수 임무에만 충실했다.

그렇기에 더욱 부딪쳐 보고 싶었다.

‘품어서 안을 조직은 아니지만, 두드려서 다룰 검은 되겠어.’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살막에 접촉할 방법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표적이 되는 게 제일 정확한 방법이지.”

**

덜그럭. 덜그럭.

공진철에 구속된 정도맹 요인들이 수레 철창에 갇힌 채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산발한 머리카락과 남루한 옷차림, 여기저기 멍이 든 얼굴.

그야말로 죄수의 몰골이 따로 없었다.

혈사련에서 특수 제작한 공진철은 내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 이상으로 기력을 쇄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더해져 있었다.

때문에 공진철에 구속된 채 이송되는 정도맹 요인들은 모두 병자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덜컹거려도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침 개울가에 도착한 혈사련 무리들은 악천괴의 지시에 따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저마다 목을 축였다.

입술이 쩍쩍 갈라진 석지평은 머리 위로 내려쬐는 뙤약볕을 보다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에 부스스 고개를 돌렸다.

한 여름은 아니었지만 기력이 쇄한 상태여서 갈증이 무척 심했다.

꿀꺽.

마른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석지평이 철창을 쥐고는 곁에 선 무인을 불렀다.

“이보시게. 내 부탁 좀 들어주게나.”

혈사련 무인이 고개를 힐끔 돌리고는 석지평을 보았다.

“내게도 물 한 바가지만 줄 수 없겠나? 부탁 좀 하지.”

석지평은 최대한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정중히 부탁했다.

“그렇게 목이 마르시오?”

“목구멍이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군. 부탁 좀 함세.”

“그럼, 내가 목 좀 축여 드리리다.”

“오, 고맙네. 고마….”

말을 꺼내던 석지평이 흠칫거리고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가 느닷없이 아랫도리를 풀어헤치는 것이 아닌가?

곧 그는 석지평 앞에 흉물을 꺼내 놓더니 시원하게 오줌을 쏘기 시작했다.

“크윽! 이게 무슨 짓인가!”

졸지에 오줌을 맞은 석지평이 날을 세웠지만, 사내가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목이 마르니 급한 대로 이거라도 마시라고 드렸소. 자주 줄 수 없는 거니까 아껴 드시오. 킬킬킬.”

석지평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도맹 무인으로 살면서 이처럼 치욕적인 순간이 또 있었을까?

그가 낙담한 표정으로 다른 수레에 갇힌 요인들의 몰골을 살펴보았다.

‘큰일이구나. 이대로라면 살아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르겠구나.’

지금쯤 정도맹 본단에서도 대패 소식이 들어갔으리라.

하지만 자신들을 구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맞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혈사련 총타까지 끌려가야만 하는 건가?’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

“자, 여기서 좀 쉬도록 하자.”

드디어 사비강의 입에서 휴식이라는 말이 떨어졌다.

“아구구.”

“으아아. 이게 얼마만의 휴식이냐?”

“이젠 정말 돌아가고 싶다.”

생도들이 저마다 앓는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학관을 나설 때만 해도 앉을 자리를 골라가며 따지던 여자 생도들 역시 이제는 길거리에 오물만 없으면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사비강은 피식 웃으며 그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좋은 현상이다.

진정으로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들을 한 번 놓아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생도들이 멈춘 곳은 가파른 경사가 내려다보이는 협곡의 언덕 위.

지금까지 줄곧 강행군을 이어 오다 보니 생도들 사이에서 하나둘 불만도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강을 건너면서 큰 위기를 겪었기에 생도들은 더욱 예민해진 상태였다.

물론, 사비강은 그 일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둘러댔을 뿐이다.

“교관님,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너무 위험한 곳에 온 것 아닌가요? 그렇잖아도 정사대전으로 세상이 흉흉한데….”

“강을 건널 때 소소가 크게 다칠 뻔도 했고.”

여기저기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런 불평들이 사비강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시끄럽다. 내가 너희만 할 때는 일부러 사파 소굴로 찾아가 우두머리 목을 따고 그랬어. 겨우 이 정도로 징징거리지 마.”

하지만 생도들 중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거짓말일 거야.”

“교관님 말은 어디까지 진짜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한편, 사비강은 말없이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파른 경사 아래로 보이는 비좁은 협곡은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빛조차 잘 들지 않았다.

미래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혈사련 무인들이 이곳을 지나갈 터다.

패배한 정도맹 요인들을 이끌고.

‘흐음. 적산이 준비는 확실히 해주었군.’

사비강의 시선이 언덕 끝에 쌓인 돌 더미를 보았다.

자신의 명령에 따라 고적산이 귀야채 무인들과 함께 준비한 것이리라.

협곡이 시작되는 지점인 이곳과 끝나는 지점인 저쪽에 돌무더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진로를 차단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사비강이 몸을 돌리고는 생도들을 보았다.

“자, 다들 충분히 쉬었나? 오늘은 지형지물에 관한 수업을 시작하겠다. 주목!”

생도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까맣게 모른 채, 사비강 앞에 모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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